쾌(夬)는 다섯 양이 위에 남은 한 음을 결단해 내는 때다. 초구는 그 다섯 양 가운데 맨 아래에 있으면서, 하필 몸 전체가 아니라 앞발가락에만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걸음을 뗄 때 가장 먼저 힘이 실리는 곳이 발끝이다. 그 앞발끝의 힘만 믿고 홀로 경솔히 앞서 나가려는 것이 초구의 자리다. 세력으로 보면 이길 수밖에 없는 판이지만, 제 힘만 믿고 조급히 앞장서면 이겨야 할 싸움도 도리어 진다. 그래서 경문은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된다(往不勝爲咎)“고 못 박는다.
주목할 것은 초구가 결코 무능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리로는 맨 아래 꽁지이나, 움직임으로는 가장 먼저 나서는 머리다. 능력이 없어서 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어도 제 분수보다 지나치게 조급하게 움직여 진다. 소상전은 이를 “이기지 못할 것을 나아갔으니 허물이다(不勝而往,咎也)“라고 풀었다. 나아감 자체가 죄가 아니라, 이길 헤아림 없이 나아간 조급함이 죄다.
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지만, 순서가 있다. 나를 먼저 알고(知己) 그 다음에 상대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를 안다고 여기면서 정작 자기를 모른다. 자기를 모르면 건방져지고, 건방지면 진다. 자리(位)와 그릇(器)과 헤아림(度) 세 가지가 갖추어진 뒤에야 비로소 일을 결행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없이 세력과 때만 믿고 먼저 발을 내딛는 것이 초구의 위태로움이다.
삶에의 적용
이 효는 몸으로 읽으면 분명해진다. 발끝에만 힘이 들어간 사람은 이미 넘어질 준비가 된 사람이다. 무예에서 발끝으로만 서두르면 중심이 뜨고, 뜬 중심은 작은 흔들림에도 무너진다. 힘은 발끝이 아니라 발바닥 전체와 아랫배로 내려가 있어야 한다. 일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큰일을 앞두고 “다 잘 될 것”이라는 조급한 낙관만 앞세우는 것은 초구의 앞발가락이다.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뜨거울 때, 한 호흡 멈추어 나를 먼저 살피라. 자리가 되었는가, 그릇이 갖추어졌는가, 헤아림이 끝났는가. 이 세 물음을 통과한 뒤에 내딛는 한 걸음은 늦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初九는 다섯 양 중 맨 아래(乾體·양이 양자리)라 — 몸 전체에 힘이 센 것이 아니라 앞발가락에만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壯于前趾). 걸어갈 때 가장 먼저 힘쓰는 곳이 발가락이니 — 그 힘만 믿고 혼자 경솔히 앞서 나간다. 그리하여 가서 못 이기면(往不勝) 도리어 허물이 된다(爲咎).
그림으로 보면 初九는 맨 아래(꽁지)인데, 움직임으로 보면 가장 먼저 가는 머리(앞장)다 — 꽁지도 되고 머리도 되니, 자리는 맨 아래이나 능력은 三효와 같아 위로 가려 하니 — 좋은 때를 만났어도 제 분수보다 과하게 조급히 움직여 도리어 진다.
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나 — 나를 먼저 알고(知己) 저를 알아야 한다(知彼). 사람들은 저를 알고 나를 안다 하나, 나를 모르면 건방져 진다. (…) 자리(位)도 갖추고 인물(器)도 갖추고 생각(度)도 갖춰야 하니 — 일을 헤아려 가능한 뒤라야 결행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의 풀이
경문(爻辭)
初九,壯于前趾,往不勝爲咎。
초구는 앞발가락에 힘이 실려 있으니, 나아가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된다.
소상전(象傳)
象曰:不勝而往,咎也。
상전에 이르기를, 이기지 못할 것을 나아갔으니 허물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陽爻而乾體,剛健在上之物也,乃在下而居決時,壯於前進者也。前趾,謂進行。人之決於行也,行而宜,則其決爲是;往而不宜,則決之過也。故往而不勝,則爲咎也。九居初而壯於進,躁於動者也,故有不勝之戒。
구는 양효이고 건(乾)의 몸이니 강건하여 위에 있어야 할 것인데, 도리어 아래에 있으면서 결단하는 때에 거하여 앞으로 나아감에만 힘쓰는 자다. 전지(前趾)란 나아가 행함을 이른다. 사람이 행함을 결단할 때, 행하여 마땅하면 그 결단이 옳은 것이요, 나아감이 마땅하지 않으면 결단의 지나침이다. 그러므로 나아가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된다. 구가 초(初)에 거하여 나아감에만 힘쓰니, 움직임에 조급한 자다. 그래서 이기지 못하리라는 경계가 있는 것이다.
象傳:人之行,必度其事可爲,然後決之,則無過矣。理不能勝而且往,其咎可知。
(상전) 사람이 행할 때는 반드시 그 일이 할 만한지를 헤아린 뒤에 결단해야 허물이 없다. 이치로 이길 수 없는데도 나아가니, 그 허물은 알 만하다.
주자『주역본의』
前,猶進也。九陽居下而壯於進,故有壯于前趾之象。往而不勝,其咎宜矣。故其象占如此。
전(前)은 나아감과 같다. 구는 양으로서 아래에 거하면서 나아감에 힘쓰니, 그래서 ’앞발가락에 힘이 실린다’는 상이 있다. 나아가 이기지 못하면 그 허물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 이 효의 64괘 DB 원본 파일은 비어 있어(0바이트), 제가(諸家) 잔주는 수록하지 못했다. 경문·소상전·정이천·주자 원문은 주역전의대전 통행본을 따랐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