澤天夬 · 64괘 사전

九四 — 볼기에 살이 없으니 그 걸음이 머뭇거린다

九四,臀无膚,其行次且。牽羊悔亡,聞言不信。
나아가 실행하려는 의지지위가 마땅하지 않음 — 능력이 자리에 못 미침초구와 정응 관계위기·경계

자리가 어긋난 우유부단

구사(九四)는 상괘 태(兌)의 맨 아래, 소인을 몰아내는 선봉에 서야 할 대신(大臣)의 자리다. 그러나 양효(陽爻)가 음(陰)의 자리에 있어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不當位). 속은 강하되 겉자리가 부드러워 결단력을 잃은 상태다. 볼기에 살이 없어 앉아 있어도 편치 않고(臀无膚), 앞으로 가자니 다리가 후들거려 머뭇거린다(其行次且). 뒤에서 밀고 올라오는 동지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서지만, 줏대가 없어 앞뒤로 어정쩡한 진퇴양난이다.

효사의 핵심은 양(羊)을 다루는 법에 있다. 양은 무리 지어 다니는 짐승이라, 아무리 힘센 자라도 앞에서 목을 끌면 버티며 가지 않는다. 뒤로 물러서서 앞세워 따라갈 때에야 비로소 순하게 나아간다(牽羊悔亡). 정이천은 “스스로 굳세게 하여 뭇사람의 행보를 따른다면 후회를 없앨 수 있다”고 풀었고, 주자 역시 “앞다투어 나아가지 않고 편안히 그들의 뒤에 나선다면(安出其後) 후회가 사라진다”고 했다. 장횡거의 통찰은 더 선명하다 — 양을 끈다는 것은 억지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여 앞장세우는 것(讓而先之)“이다.

그런데 구사는 그 훌륭한 조언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聞言不信). 상전은 그 까닭을 “듣는 귀가 밝지 못하기 때문(聰不明)“이라 짚는다. 자존심과 고집이 귀를 막아, 자기에게 맞는 말만 들으려 하는 확증편향의 자리다. 실력이 부족하면서 남의 말도 듣지 않는 자의 처참한 말로를, 이 효는 정직하게 보여준다.

삶에의 적용

내가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앞장서서 완력을 쓰려 할 때, 일은 도리어 꼬인다. 힘 좋은 상대를 앞에서 당기면 목과 척추가 굳어 넘어오지 않고 오히려 내 균형이 무너지듯, 사람도 조직도 마찬가지다. 먼저 힘을 빼고 한 발 물러서서 상대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을 열어주면, 상대는 제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자존심을 꺾는 극기(克己)가 팀을 살리고 내 후회를 없애는 유일한 지혜다. 몸으로 보면 이는 둔근(엉덩이 근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심축이 비어 있는데 머리만 무거우면 작은 지형 변화에도 넘어진다. 뒷근육의 힘을 길러 몸이 바로 서야, 귀가 열려 남의 옳은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臀无膚' — 볼기에 살이 없어 앉아도 드러누워도 편치 못해 불안하다(나이 들어 볼기 살이 굳으면 오래 못 앉음과 같다). '其行次且' — 가려 해도 자꾸 막혀 머뭇거린다(딱딱 브레이크 잡히듯). 九四는 양이 음자리에 거해 부중부정(不中不正)이라 — 강결의 능력을 잃어(失其剛決) 결단을 과감히 못 하니, 아래 양들이 밀고 올라와 편안할 수 없다."

"'牽羊悔亡' — 양(羊)은 떼로 다니는 짐승이라, 아무리 힘센 자도 앞에서 목을 끌면(牽) 죽어도 안 끌려간다. 양을 모는 법은 톡 때려 앞에 보내고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니(後其身) — 그래야 잘 간다. 그렇게 양을 앞세워 따라갈 줄 알면 후회가 사라진다(悔亡)." 그러나 九四는 못 한다 — "앞장서지 말고 남을 앞세워 따라가야 하는데(不爭先) — 그 지능이 없다."

"'양을 앞세워 따라가라'는 좋은 말을 들어도(聞言) 九四는 믿지 않는다(不信) — 강퍅(剛愎)하여 제 생각의 장벽을 쌓고, 자기에게 맞는 말만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 못 깨달으면 못 듣고, 깨달아야 잘 들린다 — 허물이 있어 능히 고치고(過而能改) 좋은 말을 능히 쓰는 것(聞善能用)은 제 사욕을 이겨 의를 따름(克己從義)이라, 강하고 밝은 자(剛明者)만이 한다."

원문과 주석 — 효사·상전·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九四,臀旡膚,其行次且。牽羊悔亾,聞言不信。

구사는 볼기에 살이 없으니, 그 걸음이 머뭇거린다. 양을 끌듯(양보하며 무리를 따르듯) 하면 후회가 없어지려니와,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旡는 无와 같고, 亾은 亡과 같다. 차(次)와 저(且)는 ’머뭇거리다’는 뜻이다.)

상전(象傳)

象曰:其行次且,位不當也。聞言不信,聰不明也。

상에 말하기를, 걸음이 머뭇거린다 함은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요,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함은 듣는 귀가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이천(程伊川) 전(傳)

臀无膚,居不安也。行次且,進不前也。九四以陽居隂,剛決不足。欲止,則衆陽竝進於下,勢不得安,猶臀傷而居不能安也。欲行,則居柔失其剛壯,不能强進,故其行次且也。

’둔무부’는 거처가 불안한 것이요, ’행차저’는 나아가도 앞으로 못 가는 것이다. 구사는 양으로서 음에 거하여 강한 결단이 부족하다. 머물고자 하면 뭇 양이 아래에서 나아오니 편안할 수 없고, 행하고자 하면 유(柔)에 거해 건장함을 잃어 억지로 나아갈 수 없으므로 머뭇거린다.

牽羊悔亾。羊者羣行之物,牽者挽拽之義。言若能自强而牽挽以從羣行,則可以亾其悔。然既處柔,必不能也。(…) 夫過而能改,聞善而能用,克己以從義,唯剛明者能之。

양은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이고, 견(牽)은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스스로 굳세게 하여 뭇사람의 행보를 따른다면 후회를 없앨 수 있으나, 이미 유에 처했으니 그러지 못할 것이다. 허물을 고치고 선을 들어 쓰며 자기를 이겨 의를 따르는 것은 오직 강하고 밝은 자만이 능히 한다.

주자(朱子) 본의(本義)

以陽居隂,不中不正,居則不安,行則不進。若不與衆陽兢進而安出其後,則可以亾其悔。(…) 牽羊者,當其前則不進,縱之使前而隨其後則可以行矣。

양으로서 음에 거해 중정하지 못하니 머물면 불안하고 행하면 못 나아간다. 뭇 양과 앞다투지 않고 편안히 그 뒤에 나선다면 후회를 없앨 수 있다. 양을 끄는 것은 앞에서 끌면 나아가지 않으니, 놓아주어 앞세우고 그 뒤를 따르면 나아갈 수 있다. (주자는 이 해설이 허신『설문해자』의 학설에서 나온 것이라 하였다.)

정강중(鄭剛中)·이씨(李氏)·서계 이씨(西溪李氏)

鄭氏剛中曰:膚隂柔之物,故噬嗑剥言膚皆隂爻。 李氏曰:四以剛居柔,欲決而泥於和,故止則不能安,有臀无膚之象;進則不能前,有其行次且之象。不果於決也。 西溪李氏曰:四與上同在君側,位望已重,无意除亂。(…) 四若能牽引羣陽以進,則悔可亾。然四不中正,非能決者,雖聞此言亦必不信。

정강중: 살갗은 음유한 물건이라 서합·박 괘에서 살갗은 모두 음효다. 이씨: 4효는 강으로 유에 거해 결단하려 하나 조화에 얽매여, 멈추면 편치 못하고 나아가면 못 가니 결단에 과단성이 없다. 서계 이씨: 4효와 상효는 함께 임금 곁에 있어 지위가 무거워 난리를 없앨 뜻이 없다. 뭇 양을 이끌고 나아가면 후회가 없어지나, 중정하지 못해 결단할 자가 아니니 이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장횡거(張橫渠)·동곡 정씨(東谷鄭氏) — 양의 습성

張子曰:牽羊讓而先之。蓋牽羊者非挽拽之象,讓之使先行則有肯前之勢故也。 東谷鄭氏曰:羊之性狠,居前而力挽之則忿而不行,却行而使之先則行矣。

장횡거: 양을 끈다 함은 양보하여 앞장세우는 것이다. 억지로 당기는 상이 아니라, 양보해 먼저 가게 하면 기꺼이 나아가려는 형세가 생기기 때문이다. 동곡 정씨: 양의 성질은 사나워 앞에서 힘으로 당기면 성을 내고 가지 않으나, 뒤로 물러서서 먼저 가게 하면 곧 간다.

운봉 호씨(雲峰胡氏)·임천 오씨(臨川吳氏)

雲峰胡氏曰:牽羊,諸家以為牽連衆陽而進,横渠獨謂牽羊者讓而先之。(…) 唯如牽羊然,不與衆陽竝進而安出其後,則可以亾其悔。 臨川吳氏曰:位不當謂以剛居柔,故次且。聰不明謂坎耳塞其内也,故不聰於聽。

운봉 호씨: ’견양’을 여러 주석가는 ’뭇 양을 이끌고 나아감’으로 보았으나 횡거만은 “양보하여 앞세움”이라 했다. 오직 양을 끄는 것처럼 다투지 않고 편안히 그 뒤에 나서면 후회를 없앨 수 있다. 임천 오씨: 자리가 마땅치 않다 함은 강이 유에 거함이요, 귀가 밝지 못하다 함은 감(坎, 호괘)의 귀가 안으로 막혀 듣는 데 밝지 못함이다.

이 효가 動하면水天需(5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