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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괘

水風井 — 자리를 옮기지 않고 다함 없이 기르는 우물

바깥이 다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의 우물은 무엇인가. 그리고 거의 다 온 일을 끝까지 길어 올리고 있는가.

井,改邑不改井,无喪无得,往來井井。汔至,亦未繘井,羸其瓶,凶。

이 괘가 말하는 것

우물은 세상에서 가장 한결같은 것이다. 사람이 이사를 가고, 나라가 도읍을 옮기고, 세상이 뒤집혀도 우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고을은 고쳐 옮길 수 있어도 우물은 옮기지 못한다(改邑不改井). 길어 먹어도 마르지 않고, 놓아두어도 넘치지 않으니(无喪无得), 오는 이도 가는 이도 모두 그 우물에서 물을 긷는다(往來井井). 변하지 않음을 덕으로 삼는 것, 이것이 우물이다.

그래서 이 괘는 묻는다. 바깥이 아무리 격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나의 우물은 무엇인가. 직장이 바뀌고 사는 곳이 바뀌고 관계가 바뀌어도, 그 밑에서 마르지 않고 솟는 나의 본성(性)은 무엇인가. 지금 흔들린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바깥의 고을(邑)이 바뀌는 것이지 안의 우물(井)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앞 괘 곤(困)이 물이 말라버린 운명의 자리였다면, 정(井)은 그 아래에 여전히 물이 있는 본성의 자리다. 운명은 편안히 받아들이고, 본성은 끝까지 다한다.

그런데 이 괘에는 가장 뼈아픈 경고가 뒤에 붙어 있다. 우물물을 거의 다 길어 올렸는데(汔至), 두레박 줄이 아직 물에 닿지 못하고(亦未繘井), 마지막에 두레박이 깨지면(羸其瓶) 흉하다. 아무리 맑은 물이 있어도 위로 올라와 쓰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팠어도 샘에 닿지 못하면 그것은 버린 우물이다.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흉함이다.

몸과 수련의 자리도 다르지 않다. 태극의 중정(中正)은 우물과 같아서, 손발은 움직여도 중심축은 변하지 않는다. 힘을 빼앗기지도(无喪) 과도하게 쓰지도(无得) 않으며, 고요히 품고 있다가 필요할 때 내어준다. 그리고 기술을 거의 완성했는데 마지막 순간 집중이 흐트러져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라. 거의 다 온 지점(汔至)에서 두레박을 놓지 않는 것, 마지막 한 삼태기를 마저 붓는 것 — 우물의 도는 거기서 완성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옛날 公劉가 도읍을 세울 때 반드시 먼저 샘이 있는 곳을 보았으니 — 물이 몸의 피와 같아 물이 맑아야 병이 안 나고 일이 잘된다. 그런데 동네·서울은 통치 조건 따라 얼마든지 옮기고 고치되(改邑), 우물은 그 자리에 있어 옮기지 못한다(不改井) — 우물을 옮기면 물이 나빠진다.

길어 먹어도 안 마르고(汲之不竭) 잃을 것이 없으며(无喪), 그냥 둬도 넘치지 않아(存之不盈) 얻을 것이 없으니(无得) — 땅에서 풀풀 솟는 좋은 샘은 360일 길어도 계속 나오고 안 길어도 그대로다. 가는 자 오는 자 누구나 길어 쓰니(往來井井) 두루 골고루 혜택을 준다 — 우물은 변하지 않음을 德으로 삼으니(不變爲德), 가볍게 잘 변하는 자는 우물물 한 바가지만도 못하다.

우물물을 거의 다 길어(汔至) 두레박 줄이 우물에 거의 닿았으나 아직 못 닿고, 두레박이 깨지면(羸其甁) 흉하다 — 우물을 아홉 길 파도 샘에 못 미치면 버린 우물이요(掘井九仞 不及泉 猶爲棄井), 산을 쌓다 마지막 한 삼태기를 안 하면 무너진다(爲山九仞 功虧一簣). (…) 군자의 도는 끝맺음을 귀히 여기니 — '공(功)'에 '성(成)'이 들어가야 성공이다. 아무리 고생해도 마지막에 못 이루면 그 인생은 끝난 인생이라, 고생한 것은 아무도 보상하지 않는다 —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井,改邑不改井,无喪无得,往來井井。汔至,亦未繘井,羸其瓶,凶。

정(井)은 읍을 고쳐도 우물은 고치지 않으며,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오고 가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삼는다. 거의 이르렀으나 또한 아직 두레박 줄이 우물에 닿지 못하고 그 두레박이 깨지면 흉하다.

정이천 전(傳)

井之為物,常而不可改也。邑可改而之他,井不可遷也。故曰改邑不改井。汲之而不竭,存之而不盈,无喪无得也。至者皆得其用,往來井井也。无喪无得,其德也常;往來井井,其用也周。常也,周也,井之道也。

우물의 물건됨은 한결같아서 고칠 수 없다. 읍은 고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지만 우물은 옮길 수 없으므로 ’개읍불개정’이라 한 것이다. 길어도 다하지 않고 놓아두어도 넘치지 않으니 잃음도 얻음도 없다. 이르는 자 모두 그 쓸모를 얻으니 오고 가며 우물을 우물로 삼는다. 잃음도 얻음도 없음은 그 덕이 한결같음(常)이요, 오고 가며 우물 삼음은 그 쓰임이 두루 미침(周)이다. 한결같음과 두루 미침, 이것이 우물의 도이다.

汔,幾也。繘,綆也。井以濟用為功,幾至而未及用,亦與未下繘於井同也。君子之道,貴乎有成。所以五穀不熟不如荑稗,掘井九仞而不及泉,猶為棄井。有濟物之用而未及物,猶无有也。羸,敗其瓶而失之,其用喪矣,是以凶也。

흘(汔)은 거의(幾), 율(繘)은 두레박 줄이다. 우물은 물을 건져 쓰임에 이르게 함으로 공을 삼는다. 거의 이르렀으나 아직 쓰임에 미치지 못한 것은 두레박 줄을 내리지 않은 것과 같다. 군자의 도는 이룸(成)을 귀히 여긴다. 그러므로 오곡이 익지 않으면 강아지풀·피만 못하고, 우물을 아홉 길 팠는데 샘에 닿지 못하면 여전히 버린 우물이다. 만물을 건질 쓸모가 있으면서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羸)는 두레박을 깨뜨려 잃는 것이니 그 쓰임을 잃어 흉하다.

주자 본의(本義)

井者,穴地出水之處。以巽木入乎坎水之下,而上出其水,故為井。改邑不改井,故无喪无得,而往者來者皆井其井也。汔,幾也。繘,綆也。羸,敗也。汲井幾至,未盡繘而敗其瓶,則凶也。其占為事仍舊,无得喪,而又當敬勉,不可幾成而敗也。

정(井)은 땅을 뚫어 물을 내는 곳이다. 손(巽)의 나무로 감(坎)의 물 아래에 들어가 그 물을 위로 내보내므로 정이 된다. 읍을 고쳐도 우물을 고치지 않으므로 잃음도 얻음도 없고, 가는 자 오는 자 모두 그 우물을 우물로 삼는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거의 이르렀는데 두레박 줄이 다하기 전에 두레박이 깨지면 흉하다. 그 점사는 일이 옛것 그대로이고 득실이 없으되, 마땅히 공경하고 힘써야 하니 거의 이루려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자 부연) 汔至作一句,亦未繘井羸其瓶是一句。意謂幾至而止,如繘未及井而瓶敗,言功不成也。

주자가 말하기를: ’흘지’를 한 구절로, ’역미길정리기병’을 한 구절로 한다. 뜻은 거의 이르렀는데 그치는 것이니, 두레박 줄이 우물에 닿지 못했는데 두레박이 깨진 것과 같아, 공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改邑不改井,井之體也。无喪无得,井之德也。往來井井,井之用也。此三句言井之事。汔至亦未繘井,未及於用也。羸其瓶,則併失其用也。此二句言汲井之事。

’개읍불개정’은 우물의 체(體), ’무상무득’은 우물의 덕(德), ’왕래정정’은 우물의 용(用)이다. 이 세 구절은 우물의 일을 말한 것이다. ’흘지역미길정’은 아직 쓸모에 미치지 못함이요, ’리기병’은 그 쓸모마저 잃음이다. 이 두 구절은 우물에서 물을 긷는 일을 말한 것이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繘,關西謂綆,汲水索。瓶,汲器,文從缶,瓦器也。或謂古無桶,故不取巽木象。韓信以木罌渡師,如尊罍,古皆用木。疑古以木為瓶,從缶則又瓦為之者,此象巽木無疑。

율(繘)은 관서 지방에서 경(綆)이라 하니 물 긷는 줄이다. 병(瓶)은 물 긷는 그릇이니 글자가 부(缶)를 따르니 질그릇이다. 혹자는 옛날에 통(桶)이 없어 손(巽)의 나무 상을 취하지 않았다 하나, 한신이 나무항아리로 군사를 건넸고 존·뢰 같은 그릇도 옛날엔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생각건대 옛날엔 나무로 병을 만들었으나 부(缶)를 따른 것은 질그릇으로도 만들었던 것이니, 이것이 손의 나무 상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井德之地也,而以不變為德。下體本乾,上體本坤。初五剛柔相易而成井。坤為邑,變坤為坎,改邑也。坎水為井,五以剛居中而不變,是不改井也。邑居其所而能聚,可改而就井。井居其所而有常,不可改而就邑。汲之而不竭,故无所喪。不汲之而不盈,故无所得。

우물은 덕의 자리이니 변하지 않음을 덕으로 삼는다. 하체는 본래 건(乾), 상체는 본래 곤(坤)이다. 초효와 오효가 강유를 서로 바꾸어 정을 이루었다. 곤은 읍이 되는데 곤이 변해 감(坎)이 되었으니 읍을 고친 것이다. 감의 물이 우물이 되니, 오효가 강(剛)으로 가운데 거해 변하지 않는 것이 곧 우물을 고치지 않음이다. 읍은 그 자리에서 능히 모이니 고쳐서 우물에 나아갈 수 있고, 우물은 그 자리에서 한결같으니 고쳐서 읍에 나아갈 수 없다. 길어도 다하지 않으므로 잃는 바가 없고, 길어 쓰지 않아도 넘치지 않으므로 얻는 바가 없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澤无水為困,命也。澤雖无水,而井則有水,性也。知困之義則知安命,知井之義則知盡性。易,性命之書,而言之明且切者,莫困井二卦若也。改邑不改井三句為井言,汔至三句為汲者言。改邑不改井,井之體也,性静而定也。无喪无得往來井井,井之用也,性動亦定也。汔至未繘井而羸其瓶,人之於性,知之行有未盡者,其猶是乎。

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이니 명(命)이요, 못에 물이 없어도 우물엔 물이 있으니 성(性)이다. 곤의 뜻을 알면 안명(安命)을 알고, 정의 뜻을 알면 진성(盡性)을 안다. 역(易)은 성명(性命)의 책인데 이를 밝고 절실하게 말한 것으로는 곤·정 두 괘만 한 것이 없다. ’개읍불개정’은 우물의 체이니 성이 고요하면서도 정(定)한 것이요, ’무상무득 왕래정정’은 우물의 용이니 성이 움직이면서도 정한 것이다. ’흘지미길정이리기병’은 사람이 성에 있어 앎과 행함을 다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음이 아니겠는가.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巽乎水而上水,井。井養而不窮也。改邑不改井,乃以剛中也。汔至亦未繘井,未有功也。羸其瓶,是以凶也。

단(彖)에 말하기를,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정(井)이다. 우물은 양육하되 다하지 않는다. 읍을 고쳐도 우물을 고치지 않는 것은 강중(剛中) 때문이다. 거의 이르렀으나 아직 두레박 줄이 우물에 닿지 못한 것은 아직 공이 없는 것이다. 그 두레박이 깨졌으니 이로써 흉하다.

정이천 전(傳)

巽入於水下而上其水者,井也。井之養於物,不有窮已。取之而不竭,德有常也。邑可改,井不可遷,亦其德之常也。二五之爻,剛中之德,其常乃如是。卦之才與義合也。

손(巽)이 물 아래로 들어가 그 물을 위로 올리는 것이 우물이다. 우물이 만물을 양육함에 다함이 없다. 취해도 다하지 않으니 덕이 한결같음이다. 읍은 고칠 수 있으나 우물은 옮길 수 없으니 역시 그 덕의 한결같음이다. 이효와 오효의 효가 강중의 덕이니 그 한결같음이 곧 이와 같다. 괘의 재질과 뜻이 합한 것이다.

雖使幾至,既未為用,亦與未繘井同。井以濟用為功,水出乃為用,未出則何功也。瓶所以上水而致用也。羸敗其瓶,則不為用矣。是以凶也。

비록 거의 이르렀다 해도 이미 쓰이지 못했으면 두레박 줄을 내리지 않은 것과 같다. 우물은 건져서 쓰임에 이르게 함으로 공을 삼으니, 물이 나와야 비로소 쓸모가 있고 나오지 못하면 무슨 공이 있겠는가. 병(瓶)은 물을 올려 쓰임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두레박이 훼파되면 쓸 수 없으니 이로써 흉하다.

주자 본의(本義)

以卦象釋卦名義。

괘의 상(象)으로 괘명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以卦體釋卦辭。无喪无得,往來井井,兩句意與不改井同,故不復出。剛中以二五而言。未有功而敗其瓶,所以凶也。

괘의 체(卦體)로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무상무득’, ‘왕래정정’ 두 구절의 뜻은 ’불개정’과 같으므로 다시 내놓지 않았다. 강중은 이효와 오효로 말한 것이다. 아직 공이 없는데 그 두레박마저 깨뜨렸으니 이로써 흉하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坎三爻,二陰在外為險陷,井象也。一陽居內,陷二陰之中,泉象也。以巽遇坎,巽木在坎水中,巽水而上,亦猶鑿木為機,後重前輕,挈水若抽者,蓋汲井之象也。井之汲為烹飲漑濯,日用可既乎?故曰巽乎水而上水井,井養而不窮也。

감(坎)의 세 효에서 두 음이 바깥에 있어 험하고 빠지니 우물의 상이요, 한 양이 안에 거해 두 음 가운데 빠져 있으니 샘의 상이다. 손이 감을 만나니 손의 나무가 감의 물 속에 있고, 물을 빨아올림이 마치 나무를 깎아 기구를 만들어 뒤가 무겁고 앞이 가벼워 물을 뽑아 올리듯 하니 우물에서 물을 긷는 상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끓이고 마시고 씻고 빨래하니 일상의 쓸모가 어찌 다하겠는가. 그러므로 ’손호수이상수정, 정양이불궁’이라 한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剛中,五也。剛則不變,故邑可改而井不可改。

강중(剛中)은 오효이다. 강(剛)하면 변하지 않으므로 읍은 고칠 수 있으나 우물은 고칠 수 없다.

井以上乎水為功。汔至亦未繘井,猶未可以得水,故未有功也。既不得水,併與其瓶而羸之,則汲之用廢矣。是以凶也。

우물은 물을 올리는 것으로 공을 삼는다. 거의 이르렀으나 아직 두레박 줄이 닿지 못한 것은 물을 얻을 수 없으므로 아직 공이 없다. 이미 물을 얻지 못했는데 그 두레박마저 훼파하니 긷는 쓸모가 폐해져 이로써 흉하다.

임씨 율(林氏栗)

井者君子之德。井不可改,以其剛中也。剛中者,泉在中也。

우물은 군자의 덕이다. 우물을 고칠 수 없는 것은 그 강중 때문이다. 강중이란 샘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惟井之不改,故不以往而喪,不以來而得,而往者來者自井其井。彖傳但言其體,而用已該矣。

오직 우물이 고쳐지지 않으므로 가는 것으로 잃지 않고 오는 것으로 얻지 않으며, 가는 자 오는 자 스스로 그 우물을 우물로 삼는다. 단전은 다만 그 체만을 말했으나 용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

숭산 조씨(嵩山晁氏)

或謂彖主三陽言。五井洌寒泉食,是陽剛居得中正,邑可改而井不可改也。三井渫不食,是水未見於用,未有功也。二甕敝漏,是既不得水,併其瓶而亡之,羸其瓶而凶者也。

혹자가 이르기를, 단전은 세 양효를 주인으로 말한 것이다. 오효의 ’정렬한천식’은 양강이 중정에 거해 읍은 고칠 수 있으나 우물은 고칠 수 없는 것이요, 삼효의 ’정설불식’은 물이 아직 쓰임에 나타나지 못해 공이 없는 것이요, 이효의 ’옹폐루’는 이미 물을 얻지 못한 데다 두레박마저 잃은 것이니 ’리기병’이 흉한 것이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木上有水,井。君子以勞民勸相。

상(象)에 말하기를,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井)이니,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위로하고(勞民) 서로 도우라고 권한다(勸相).

정이천 전(傳)

木承水而上之,乃器汲水而出井之象。君子觀井之象,法井之德,以勞徠其民,而勸勉以相助之道也。勞徠其民,法井之用也。勸民使相助,法井之施也。

나무가 물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 곧 그릇으로 물을 길어 우물에서 나오게 하는 상이다. 군자가 정의 상을 관찰하고 우물의 덕을 본받아 그 백성을 위로하고 데려오며, 서로 돕는 도리로 권면한다. 백성을 위로하고 데려옴은 우물의 쓰임을 본받음이요, 백성에게 서로 돕도록 권함은 우물의 베풂을 본받음이다.

주자 본의(本義)

木上有水,津潤上行,井之象也。勞民者,以君養民;勸相者,使民相養。皆取井養之義。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은 진액이 위로 올라감이니 우물의 상이다. ’노민’이란 군주가 백성을 양육함이요, ’권상’이란 백성으로 하여금 서로 양육하게 함이다. 모두 우물이 양육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주자 문답

木上有水井,說者以為木是汲器,則前面卻有瓶。瓶自是瓦器,此不可曉。怕只是說水之津潤上行,至那木之杪。這便是井水上行之象。

’목상유수정’에 대해 설명하는 이들은 나무가 물 긷는 그릇이라 하지만, 앞에서 ’병(瓶)’이라 했고 병은 본래 질그릇이니 이는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물의 진액이 위로 올라가 나무의 꼭대기(杪)에까지 이름을 말한 것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물물이 위로 올라가는 상이다.

草木之生,津潤皆上行,直至樹木。便是木上有水之義。雖至小之物亦然。如菖蒲葉,每晨葉葉尾皆有水如珠顆,雖藏之密室亦然,非露水也。

초목이 자라며 진액이 모두 위로 올라가 나무에까지 이른다. 이것이 ’목상유수’의 뜻이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그러하다. 창포 잎은 매일 아침 잎끝마다 구슬처럼 물방울이 맺히는데 밀실에 숨겨놓아도 그러하니 이슬이 아니다.

問:程子井桶之說是否?曰:不然。木上有水,是木穿水中張上那水。若作汲桶,則解不通矣。且與羸其瓶之說不相合也。

물음: 정자의 ‘나무 두레박(井桶)’ 설이 맞습니까. 답: 그렇지 않다. ’목상유수’는 나무가 물속을 뚫고 들어가 그 물을 위로 끌어당김이다. 물 긷는 두레박으로 풀이하면 뜻이 통하지 않고, 또 ’리기병’의 설명과도 합치하지 않는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井之養人,所及者眾。君子觀其象,教民以相養之道。勞者閔其勞而休息之也。勸,勤勉之意。相,助力也。勸相者,使之各勤勉以相助也。

우물이 사람을 양육함에 미치는 바가 많다. 군자는 그 상을 관찰해 백성에게 서로 양육하는 도를 가르친다. ’노(勞)’란 그 수고로움을 불쌍히 여겨 쉬게 함이요, ’권(勸)’은 부지런히 힘쓰라는 뜻, ’상(相)’은 힘을 돕는 것이다. ’권상’이란 각자 부지런히 힘써 서로 돕게 함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无君子莫治野人,无野人莫養君子。君勞乎民,民助乎君。古者井田之制,或取諸此。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리지 못하고 야인이 없으면 군자를 기르지 못한다. 임금이 백성을 위로하면 백성이 임금을 돕는다. 옛날의 정전(井田) 제도는 혹 여기에서 취한 것인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井以喻性。然則勞民勸相,所以養人之性也。而以君養民,使民自養,又有井田之義焉。

우물은 성(性)을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민권상’은 사람의 성을 양육함이다. 군주가 백성을 양육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양육하게 함에 또한 정전의 뜻이 있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澤水困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火雷噬嗑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火澤睽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澤水困水風井澤火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