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끝났으나 아직 때가 아니다
구삼은 하괘 손(巽)의 맨 위, 우물 아래쪽 세 효 가운데 꼭대기에 있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강하고 바르며(得正), 우물로 치면 물이 깨끗이 청소되어(渫) 이미 먹을 만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 위에서 길어 쓰지 않으니(不食), 준비는 되었으되 때가 오지 않은 자리다. 재질을 갈고 닦아 놓고 알아줄 이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정이천은 이를 재주와 쓸모가 있으면서 아직 펼치지 못한 자가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라 풀었다. 다만 ’위아심측(爲我心惻)’의 안타까움을 우물 자신의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운봉 호씨는 그 마음이 스스로 슬퍼함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이 나를 위해 아파하는 것이라 하였다. 맑은 물을 두고도 아무도 긷지 않는 것을, 지나던 행인마저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자리가 열리지 않는 사람을 보는 세상의 눈길과 같다.
핵심은 마지막 구절에 있다. ‘왕명병수기복(王明並受其福)’ — 밝은 이를 만나면 위아래가 함께 복을 받는다. 성재 양씨의 말이 이를 꿰뚫는다. 좋은 우물이 있어도 잘 긷는 자가 없으면 우물이 없는 것과 같고, 어진 이가 있어도 밝은 이가 없으면 어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요(堯)가 없었다면 순(舜)은 못가의 어부로 끝났을 것이고, 고종이 없었다면 부열은 바위 들판의 노역자로 끝났을 것이다. 나를 알아보는 밝은 눈이 있어야 갈고닦은 실력이 비로소 세상에 미친다.
삶에 새기는 한 줄
이 효는 조급함을 다스리는 자리다. 아직 쓰이지 못했다고 하여 물을 흐리거나 자리를 떠나지 말라. 청소를 마친 뒤에 구하는 것이 양심이요, 청소도 하지 않고 복만 구하는 것이 욕심이다. 몸으로 옮기면 이렇다 — 먼저 내 몸과 마음을 맑게 닦아 놓는 일, 곧 오늘의 수련과 공부를 다하는 일이 먼저다. 알아줌은 그 다음에 온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제 할 일을 다 해놓고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구삼의 자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三은 양강이 양자리에 거해 바르고(剛正), 우물의 아래 윗자락에 있으면서 물을 맑게 청소한 자라 — 우물을 깨끗이 쳐놓아 물맛이 좋은데도 사람이 안 먹어준다(井渫不食). 그러니 내 마음이 슬프고(爲我心惻), 지나는 행인도 거길 지나며 슬퍼한다 — 물맛 좋은데 왜 안 먹나. 길어 먹을 만한 좋은 물이니(可用汲) — 이는 재주·지혜를 타고난 賢者가 쓰임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밝은 임금을 만나면 함께 복을 받는다(王明 並受其福) — 임금이 밝아 이 좋은 물을 길어 백성에게 미치게 하면, 물 주는 자와 받아먹는 자가 아울러 복을 받는다.
우물을 깨끗이 청소해 놓고 먹을 사람을 구하는 것은 양심이요, 청소를 안 해 놓고 복을 구하는 것은 욕심이다 — 차이는 이것뿐이나 엄청난 차이다. 그래서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라 — 사람이 할 일을 다 해놓고 하늘의 운명을 기다린다. 제 할 일도 안 해놓고 복을 기다리면 욕심이니 — 내 할 일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복을 찾아라.
임금이 밝지 못하면 인재를 거두지 못하니 — 사람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 샘이 있어도 길어 먹지 않으면 샘이 없는 것과 같고, 어진 이가 있어도 밝은 임금이 없으면 어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정이천·주자·제가
경문(爻辭)
九三:井渫不食,爲我心惻,可用汲。王明,並受其福。
구삼은 우물이 깨끗이 청소되었으나 먹지 않으니, 나를 위해 마음이 안타깝다. 길어 쓸 수 있으니, 왕이 밝으면 위아래 아울러 그 복을 받는다.
상전(象傳)
象曰:井渫不食,行惻也。求王明,受福也。
상에 이르기를, ‘우물이 깨끗이 청소되었으나 먹지 않는다’ 함은 지나가는 이가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밝은 왕을 구한다’ 함은 복을 받는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천역전』— 효사 풀이
三以陽剛居得其正,是有濟用之才者也。在井下之上,水之清潔可食者也。井以上為用,居下未得其用也。陽之性上,又志應上六,處剛而過中,汲汲於上進,乃有才用而切於施為,未得其用,則如井之渫治清潔而不見食,為心之惻怛也。三居井之時,剛而不中,故切於施為。異乎用之則行,舍之則藏者也。然明王用人豈求備也?故王明則受福矣。三之才足以濟用,如井之清潔可用汲而食也。若上有明王,則當用之而得其效。賢才見用,則己得行其道,君得享其功,下得被其澤,上下並受其福也。
구삼은 양강으로 올바른 자리를 얻었으니 건져 쓸 재질이 있는 자이다. 우물 아래의 위에 있으니 물이 맑고 깨끗하여 먹을 수 있다. 우물은 위를 쓰임으로 삼으니 아래에 거하여 아직 쓰임을 얻지 못하였다. 양의 성질은 위로 향하고 상육에 응하려는 뜻이 있으며, 강에 처하면서 중을 지나쳤으니 위로 나아감에 급급하다. 재주가 있으나 아직 쓰이지 못하여 우물이 깨끗한데 먹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마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구삼은 강하되 중을 얻지 못하여 펼치고자 함이 절실하니, ‘쓰이면 행하고 버려지면 감추는(用之則行舍之則藏)’ 자와는 다르다. 그러나 밝은 왕이 사람을 쓸 때 어찌 완벽을 구하겠는가. 그러므로 왕이 밝으면 복을 받는다. 위에 밝은 왕이 있으면 마땅히 쓰여 그 효과를 얻으리니, 어진 이가 쓰이면 자기는 도를 행하고 군주는 그 공을 누리며 아래는 그 혜택을 입어, 상하가 아울러 복을 받는다.
주자(朱子)『주역본의』
渫,不停汙也。井渫不食而使人心惻,可用汲矣。王明則汲井以及物,而施者受者並受其福也。九三以陽居陽,在下之上而未為時用,故其象占如此。
설(渫)은 더러운 것이 머물지 않음이다. 우물이 깨끗한데 먹지 않으니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길어 쓸 수 있다. 왕이 밝으면 우물을 길어 만물에 미치니,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아울러 복을 받는다. 구삼은 양으로 양자리에 거하여 아래의 위에 있으면서 아직 때에 쓰이지 못하였으므로 그 상과 점사가 이와 같다.
정이천『이천역전』— 상전 풀이
井渫治而不見食,乃人有才知而不見用,以不得行為憂惻也。既以不得行為惻,則豈免有求也?故求王明而受福,志切於行也。
우물이 깨끗한데 먹어지지 않음은 사람이 재주와 지혜가 있으나 쓰이지 못하여 행하지 못함을 우려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미 행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으니 어찌 구함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밝은 왕을 구하여 복을 받으니, 뜻이 행함에 절실한 것이다.
주자 — 구삼의 상과 점
九三可用汲以上三句是象,下兩句是占。大槩是說理。決不是說汲井。○若非王明,則无以收拾人才。
구삼의 ‘가용급’ 이상 세 구절은 상이요 아래 두 구절은 점이다. 대체로 이치를 말한 것이지 결코 물 긷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밝은 왕이 아니면 인재를 거두어 쓸 수 없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九三以陽剛之才,而居一井之半,則泥者去,注者深,此渫治之井泉可食矣。泉可食而人莫之食,非惟使我心惻也,而行者過之亦為之惻然也。然三有甘潔之泉,苟上遇汲者之明,則美泉見食而邑人皆被其井養之功。猶下有陽剛之才而上遇王者之明,則賢才見用而天下並受其利澤之福也。
구삼은 양강한 재질로 우물의 절반에 거하니, 진흙은 없어지고 물은 깊어져 청소된 샘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샘이 먹을 수 있는데 사람이 먹지 않으니, 나의 마음만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지나는 행인도 안타까워한다. 구삼에 감미롭고 깨끗한 샘이 있으니, 위에서 밝은 이를 만나면 좋은 샘이 먹혀 고을 사람이 모두 우물 양육의 공을 입는다. 아래에 양강한 재질이 있는데 위에서 밝은 왕을 만나면, 어진 이가 쓰여 천하가 아울러 그 이택의 복을 받는 것과 같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初六井泥而不食可也。九三井渫可食矣,而不食何哉?為我心惻者,非我心自惻也,行道之人為我而心惻也。惻此水可用汲而不汲也。惻其與應者才柔不能汲也。汲之者其惟五乎?五非應也,而曰王明,周公特筆也。王明則汲之以汲物,而上下並受其福矣。
초육의 우물이 진흙이라 먹지 않음은 당연하다. 구삼의 우물이 깨끗해 먹을 수 있는데 먹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위아심측’이란 내 마음이 스스로 안타까워함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이 나를 위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이 물이 길어 쓸 수 있는데 긷지 않음을, 응하는 자(상육)의 재질이 유약하여 길어올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길어올리는 자는 오직 오효일 것이다. 오효는 응이 아닌데 ’왕명’이라 한 것은 주공의 특필이다. 왕이 밝으면 길어서 만물에 미치니 상하가 아울러 그 복을 받는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可食者泉也,不食者人也。井何惻焉?人之行者惻之。非為井惻也,為有才德之君子不見用於上者惻也。井一用,一邑受其福。君子一用,天下受其福。有美井无善汲,則如无井。有賢者无明王,則如无賢。仲尼曰:王明不興,天下孰能宗予?然則九三之惻也,井云乎哉!君子云乎哉!故微明揚之堯帝,則大舜雷澤之漁父;微明哲之高宗,則傅說巖野之胥靡。
먹을 수 있는 것은 샘이요 먹지 않는 것은 사람이다. 우물이 무엇이 안타깝겠는가. 지나는 사람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우물을 위함이 아니라 재덕이 있는 군자가 위에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우물 하나가 쓰이면 한 고을이 복을 받고, 군자 하나가 쓰이면 천하가 복을 받는다. 좋은 우물이 있어도 잘 긷는 자가 없으면 우물이 없는 것과 같고, 현자가 있어도 밝은 왕이 없으면 현자가 없는 것과 같다. 공자께서 ‘왕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천하에 누가 나를 종주로 삼겠는가’ 하셨으니, 구삼의 안타까움이 우물 때문이겠는가, 군자 때문이겠는가. 요제의 밝은 드러냄이 없었다면 대순은 뇌택의 어부요, 고종의 밝은 지혜가 없었다면 부열은 바위 들판의 노역자였으리라.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중계 장씨·운봉 호씨·성재 양씨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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