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괘가 말하는 것
천화동인(天火同人)은 위에 하늘(乾)이 있고 아래에 불(離)이 있다. 불은 위로 타올라 하늘에 가닿으려 하고, 하늘은 그 불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성질이 서로 향하니 이것을 “사람과 함께한다(同人)“고 이름했다. 이 괘는 사람이 사람과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를 묻는다. 변화의 시대에 혼자 건널 수 없는 강 앞에 설 때, 누구와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괘사는 그 답을 한마디로 준다. 동인우야(同人于野) — 들판에서 하라. 골방과 밀실, 학연과 지연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쑥덕이며 뭉치는 것은 정이천이 말한 친압하여 무리 짓는 정(暱比之情)일 뿐이다. 그것은 편안하지만 사사롭고, 사사로우니 오래가지 못한다. 뜻을 모으려거든 뻥 뚫린 들판으로 나가라. 나와 다른 이가 섞여 있는 열린 자리, 사사로움이 스밀 틈이 없는 넓고 먼 곳에서 손을 잡을 때 형통함이 열린다.
그러나 넓기만 해서는 안 된다. 괘사는 이군자정(利君子貞), 곧 군자의 바름이 이롭다고 못 박는다. 소인은 이익으로 뭉쳐 “우리가 남이가” 하며 패거리(阿黨)를 짓고, 군자는 대의로 뭉쳐 천하의 뜻을 이룬다. 그 중심이 바르냐 사사로우냐에 따라 같은 편이 동지(同志)가 되기도 하고 공범이 되기도 한다. 상전이 일러준 유족변물(類族辨物)이 여기서 빛난다. 대동은 억지로 다 똑같아지는 잡탕이 아니다. 장씨는 장씨끼리, 이씨는 이씨끼리, 저마다의 결을 또렷이 분별한 다음에야 진짜 하나에 이른다. 다름을 살펴야 같음에 이른다(審異而致同). 다름을 지우려는 평등은 폭력이고, 다름을 품는 연대라야 대동(大同)이다.
이 괘를 몸의 자리로 옮겨보면, 가슴을 옹졸하게 웅크리면 기운이 막히고, 활짝 열어야 안팎이 통한다. 안은 문명(離)의 밝은 눈으로 상대의 결을 읽되, 밖은 강건(乾)한 축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부드러운 중심과 굳센 추진력이 하나로 만날 때, 여럿의 힘이 흩어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모인다. 사사로움을 이기는 극기(克己)가 곧 사람을 모으는 힘이라는 것 — 동인은 밖에서 찾는 세력이 아니라 안에서 닦는 마음가짐이다.
훈장님의 풀이는 이 대목의 강의 전사가 도달하는 대로 더해집니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괘사 경문
同人于野 亨 利渉大川 利君子貞
동인우야면 형하니 이섭대천이요 이군자정하니라. — 동인(同人)을 들판에서 하면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군자의 바름이 이롭다.
정이천『이천역전』
野,謂曠野,取遠與外之義。夫同人者,以天下大同之道,則聖賢大公之心也。
야(野)는 광활한 들판을 이르니, 멀고 밖이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대저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천하의 크게 같은 도(大同之道)로써 하는 것이니, 곧 성현의 크게 공정한 마음(大公之心)이다.
常人之同者,以其私意所合,乃暱比之情耳。故必于野,謂不以暱近情之所私,而于郊野曠遠之地。
보통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 사사로운 뜻으로 합하는 것이니 곧 친압하고 무리 짓는 정(暱比之情)일 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들판에서 한다고 했으니, 친압하고 가까운 정의 사사로움으로 하지 않고 교외와 들판의 멀고 넓은 땅에서 함을 이른 것이다.
既不繫所私,乃至公大同之道,无遠不同也,其亨可知。能與天下大同,是天下皆同之也。天下皆同,何險阻之不可濟?何艱危之不可亨?故利渉大川。
이미 사사로운 바에 매이지 않으면 지극히 공정하고 크게 동하는 도에 이르러 멀다고 함께하지 않음이 없으니 그 형통함을 알 수 있다. 능히 천하와 크게 같아지면 천하가 다 그와 함께하는 것이다. 천하가 다 함께하는데 무슨 험한 곳인들 구제하지 못하며 무슨 위태로운들 형통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利君子貞。上言于野,止謂不在暱比,此復言宜以君子正道。小人則唯用其私意,所比者雖非亦同,所惡者雖是亦異。故其所同者,則為阿黨,葢其心不正也。故同人之道,利在君子之貞正。
이군자정. 위에서 우야(于野)라 한 것은 친압하여 무리 짓는 데 있지 않음을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다시 군자의 바른 도로써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소인은 오직 사사로운 뜻을 쓰므로 친한 자는 그르더라도 동조하고 미워하는 자는 옳더라도 배척한다. 그러므로 그 함께하는 바가 아당(阿黨)이 되니 그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인의 도는 군자의 바르고 곧음에 있음이 이롭다.
주자『주역본의』
離亦三畫卦之名。一陰麗於二陽之間,故其徳為麗,為文明;其象為火,為日,為電。同人,與人同也。以離遇乾,火上同於天,六二得位得中,而上應九五,又卦唯一陰,而五陽同與之,故為同人。
리(離)는 3획 괘의 이름이다. 1음이 2양 사이에 걸려 있으므로 그 덕이 걸림(麗)이 되고 문명(文明)이 되며, 그 상은 불·해·번개가 된다. 동인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함이다. 리로써 건을 만나니 불이 위로 타올라 하늘과 같아지는 것이다. 육이가 자리를 얻고 중을 얻어 위로 구오에 응하고, 또 괘에 오직 하나의 음뿐이라 다섯 양이 함께 그와 더불므로 동인이 된다.
于野,謂曠遠而无私也,有亨道矣。以健而行,故能渉川。為卦内文明而外剛健,六二中正而有應,則君子之道也。佔者能如是,則亨而又可渉險。然必其所同,合於君子之道,乃為利也。
우야(于野)는 넓고 멀어 사사로움이 없음을 이르니 형통한 도가 있다. 굳셈으로써 행하므로 능히 내를 건넌다. 괘가 됨이 안은 문명하고 밖은 강건하며 육이가 중정하면서 응함이 있으니 곧 군자의 도이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형통하고 또 험한 것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 함께하는 바가 군자의 도에 합해야 이로움이 된다.
제가(諸家)의 주석
정자(정이천)가 말하였다.
同人于野亨利渉大川,是兩象一義。利君子貞,是一象。
동인우야형과 이섭대천은 두 가지 상에 하나의 뜻이고, 이군자정은 하나의 상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가 말하였다.
以三畫卦言之,二五皆在人位,相應則相同,故曰同人。野者,廣大曠遠之地;川者,險阻艱難之所。于野而亨者,大同也。涉川而利者,此同舟共濟,何患胡越之異心也?利君子貞者,葢正則同,邪則異;正則公,邪則私。所以利君子之守正也。
3획 괘로 말하면 2와 5가 모두 인위(人位)에 있어 서로 응하니 서로 같으므로 동인이라 한다. 야(野)는 광대하고 요원한 땅이요 천(川)은 험조하고 간난한 곳이다. 들판에서 하여 형통함은 대동이요, 내를 건너 이로움은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건너는 것이니 어찌 오월(胡越)의 딴마음을 근심하겠는가. 군자의 바름이 이로움은, 바르면 같아지고 사악하면 달라지며 바르면 공정하고 사악하면 사사로운 까닭이다. 이것이 군자가 바름을 지킴이 이로운 소이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가 말하였다.
或曰:君子周而不比,和而不同。而卦名曰比、曰同,何哉?曰:比者,一陽為衆隂所比,而坎陽居五為得其正,故曰元永貞。是其比也,即所以為君子之周。同人,一陰為五陽所同,而離陰居二為得其正,故曰利君子貞。是其同也,即所以為君子之和。同人于野,其同也大;利君子貞,其同也正。為人大同亨道也。雖大川可涉,然有所同者大而不出於正者,故又當以正為本。
혹자가 “군자는 두루하되 편당 짓지 않고(周而不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和而不同) 했는데, 괘 이름이 비(比)이고 동(同)인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물었다. 답하기를, 비괘는 1양이 뭇 음에게 친비함을 받는데 감(坎)의 양이 5위에서 바름을 얻었으므로 원영정(元永貞)이라 했으니, 그 비(比)가 곧 군자의 두루함(周)이 되는 까닭이다. 동인괘는 1음이 다섯 양에게 함께함을 받는데 리(離)의 음이 2위에서 바름을 얻었으므로 이군자정이라 했으니, 그 동(同)이 곧 군자의 화합(和)이 되는 까닭이다. 동인우야는 그 함께함이 크고, 이군자정은 그 함께함이 바르니, 사람을 위하는 대동의 형통한 도이다. 비록 큰 내를 건널 수 있으나 함께하는 바가 크되 바름에서 나오지 않는 자가 있으니, 마땅히 정(正)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단전 경문
彖曰:同人,柔得位得中,而應乎乾,曰同人。同人于野,亨。利涉大川,乾行也。文明以健,中正而應,君子正也。唯君子為能通天下之志。
단전에 말하였다. 동인은 유(柔)가 자리를 얻고 중을 얻어 건(乾)에게 응하니 동인이라 한다. 들판에서 함께하니 형통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움은 건(乾)의 행함이기 때문이다. 문명하고 굳세며 중정하여 응하니 군자의 바름이다. 오직 군자라야 능히 천하의 뜻을 통하게 한다.
정이천『이천역전』
柔得位,謂二以陰居陰,得其正位也。五中正,而二以中正應之,得中而應乎乾也。五剛健中正,而二以柔順中正應之,各得其正,其徳同也,故為同人。五乾之主,故云應乎乾。象取天火之象,而彖專以二言。
유득위는 2효가 음으로서 음의 자리에 거하여 바른 자리를 얻음을 이른다. 5효가 중정한데 2효가 중정으로 응하니 중을 얻어 건에게 응하는 것이다. 5효는 강건중정하고 2효는 유순중정으로 응하여 각기 바름을 얻어 그 덕이 같으므로 동인이 된다. 5효는 건의 주인이므로 건에게 응한다고 한 것이다. 상전에서는 천화의 상을 취했으나 단전에서는 오로지 2효를 가지고 말하였다.
至誠无私,可以蹈險難者,乾之行也。无私,天徳也。
지성무사(至誠无私)하여 험난함을 밟을 수 있는 것은 건의 행함이다. 사사로움이 없는 것은 하늘의 덕이다.
天下之志萬殊,理則一也。君子明理,故能通天下之志。聖人視億兆之心猶一心者,通於理而已。文明則能燭理,故能明大同之義;剛健則能克己,故能盡大同之道。然後能中正合乎乾行也。
천하의 뜻은 만 가지로 다르나 이치는 하나다. 군자는 이치를 밝히므로 능히 천하의 뜻을 통하게 한다. 성인이 억조창생의 마음을 한 마음같이 보는 것은 이치에 통했기 때문이다. 문명하면 능히 이치를 비추므로(燭理) 대동의 의리를 밝힐 수 있고, 강건하면 능히 자기를 이기므로(克己) 대동의 도를 다할 수 있다. 그런 뒤에야 중정하여 건행에 합한다.
주자『주역본의』
柔,六二。乾,謂九五。同人曰,衍文。通天下之志,乃為大同。不然,則是私情之合而已,何以致亨而利涉哉?文明則察於理,外剛健則勇於義。中正則内无私心,應乾則外合天徳。此皆君子之正道也。
유(柔)는 육이이고 건(乾)은 구오를 이른다. ’동인왈’은 연문(衍文)이다. 천하의 뜻을 통하게 해야 대동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로운 정의 합함일 뿐이니 어찌 형통을 이루고 섭천을 이롭게 하겠는가. 문명하면 이치를 살피고 밖으로 강건하면 의로움에 용감하다. 중정하면 안에 사심이 없고 건에 응하면 밖으로 천덕에 합한다. 이것이 다 군자의 정도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乾行也,言須是這般剛健之人,方做得這般事。若柔弱者,如何㑹出去外面同人,又去涉險?
건행(乾行)이란 모름지기 이와 같은 강건한 사람이라야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음을 말한다. 만약 유약한 자라면 어찌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함께하고 또 험한 것을 건너겠는가.
주자가 또 말하였다.
程説得通天下之志處好。云文明則能燭理,故能明大同之義;剛健則能克己,故能盡大同之道。此説甚善。大凡讀書,只就眼前説出底便好,﨑嶇尋出底便不好。
정자가 통천하지지를 설명한 곳이 좋다. 이르기를 문명하면 이치를 밝혀 대동의 의리를 밝히고, 강건하면 극기하여 대동의 도를 다한다고 하였으니 이 설명이 심히 훌륭하다. 대저 책을 읽을 때는 눈앞에 나아가 설명해낸 것이 좋고 억지로 기구하게 찾아낸 것은 좋지 않다.
제가(諸家)의 주석
사수 정씨(沙随程氏)가 말하였다.
所以成卦者在六二,故曰柔得位得中而應乎乾。所以同人利涉者,在九五,故曰乾行。
괘를 이룬 소이가 육이에 있으므로 유가 자리를 얻고 중을 얻어 건에게 응한다고 했다. 동인하고 이섭하는 소이는 구오에 있으므로 건행이라 한 것이다.
후재 풍씨(厚齋馮氏)가 말하였다.
孔子贊易,五陽一陰卦,則以一陰為主,明卦名義。自是孔子之例,非經之本旨也。至序卦,乃云與人同者物必歸焉,則經之本旨,孔子非不知之。
공자께서 역을 도우실 때 오양일음의 괘인 경우 1음을 주인으로 삼아 괘명의 뜻을 밝히셨다. 이것은 공자의 예이지 경(經)의 본지는 아니다. 서괘전에 이르러 “사람과 함께하는 자는 만물이 반드시 돌아간다” 하였으니, 경의 본지를 공자가 알지 못한 것은 아니다.
숭산 조씨(嵩山晁氏)가 말하였다.
按虞翻,諸儒無一人為之説者,特王弼失之耳。
우번(虞翻)을 상고하건대 뭇 유학자 중에 이것을 설명한 자가 한 명도 없는데 유독 왕필(王弼)만이 그것을 놓쳤을 뿐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가 말하였다.
以象言,則文明以健;以爻言,則中正而應。
상(象)으로 말하면 문명하고 굳셈이요, 효(爻)로 말하면 중정하여 응하는 것이다.
임천 오씨(臨川吳氏)가 정이천의 말을 인용하였다.
内文明,天下之志萬殊,理則一也。
안이 문명하니, 천하의 뜻은 만 가지로 다르나 이치는 하나다.
성재 양씨(誠齋楊氏)가 말하였다.
人異乎人者,物之棄;人同乎人者,物之歸。然同而隘,則其同不大;同而暱,則其同不公。同人于野,公而大也。
사람이면서 사람들과 고집스럽게 다른 자는 만물에게 버림받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는 만물이 돌아간다. 그러나 함께하되 좁으면 그 함께함이 크지 못하고, 함께하되 친압하면 그 함께함이 공정하지 못하다. 동인우야는 공정하고도 큰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가 말하였다.
必通天下之志,乃為大同。然非明與健,不能大同也。
반드시 천하의 뜻을 통하게 해야 대동이 된다. 그러나 밝음과 굳셈이 아니면 대동할 수 없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상전 경문
象曰:天與火,同人。君子以類族辨物。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과 불(天與火)이 동인이니, 군자는 이로써 족속을 분류하고(類族) 사물을 분별한다(辨物).
정이천『이천역전』
不云火在天下,而云天與火者,天在上,火性炎上,火與天同,故為同人之義。君子觀同人之象,而以類族辨物。各以其類族,辨物之同異也。若君子小人之黨、善惡是非之理、物情之離合、事理之異同,凡異同者,君子能辨明之,故處物不失其方也。
’불이 하늘 아래 있다’고 이르지 않고 ’하늘과 불’이라 이른 것은, 하늘은 위에 있고 불의 성질은 타올라 오르는 것(炎上)이라 불이 하늘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인의 뜻이 된다. 군자가 동인의 상을 관찰하여 유족변물하니, 각기 그 족속을 분류함으로써 사물의 같고 다름을 분별하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의 무리, 선악과 시비의 이치, 사물 정의 떠나고 합함, 사리의 다르고 같음같이, 무릇 다르고 같은 것을 군자가 능히 분별하여 밝히므로 사물에 대처함에 그 방법을 잃지 않는다.
주자『주역본의』
天在上而火炎上,其性同也。類族辨物,所以審異而致同也。
하늘은 위에 있고 불은 위로 타오르니 그 성질이 같다. 유족변물은 다름을 살펴서 같음에 이르는(審異而致同) 방편이다.
주자가 말하였다.
類族是就人上説,辨物是就物上説。天下有不可皆同之理,故随他頭項去分别。類族,如分姓氏,張姓同作一類,李姓同作一類。辨物,如牛類是一類,馬類是一類。就其異處以致其同,此其所以為同。伊川之説不可曉。
유족은 사람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변물은 사물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천하에는 다 같을 수 없는 이치가 있으므로 그 머리 항목을 따라 분별해 간다. 유족은 성씨를 나누는 것과 같으니 장씨는 한 부류, 이씨는 한 부류로 만드는 것이다. 변물은 소 부류가 한 부류, 말 부류가 한 부류인 것과 같다. 그 다른 곳에 나아가 같음을 이루니 이것이 동(同)이 되는 까닭이다. 이천의 설은 깨닫지 못하겠다.
주자가 또 말하였다.
類族辨物,言類其族、辨其物。且如青底做一類,白底做一類。恁地類了時,同底自同,異底自異。
유족변물은 그 족속을 분류하고 그 사물을 분별함을 말한다. 예컨대 푸른 것으로 한 부류, 흰 것으로 한 부류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분류했을 때 같은 것은 스스로 같고 다른 것은 스스로 다르다.
제가(諸家)의 주석
풍거비(馮氏去非)가 말하였다.
類族,如天之兼覆;辨物,如火之燭照。
유족은 하늘이 겸하여 덮어줌과 같고(포용), 변물은 불이 밝게 비춤과 같다(분별).
후재 풍씨(厚齋馮氏)가 말하였다.
族,如非此族也,不在祀典之族。物,如是其生也與吾同物。其物,如士大夫之族為士大夫,農之族為農,工商之族為工商,此類族也。裸生為裸物,羽生為羽物,毛生為毛物,鱗介之生為鱗介之物,此辨物也。
족(族)은 ’이 족속이 아니면 사전(제례)에 있지 않은 족속이다’라고 함과 같고, 물(物)은 ’이 태어난 것이 나와 더불어 같은 물건이다’라고 함과 같다. 사대부의 족속은 사대부가 되고 농민의 족속은 농민이 되고 공상의 족속은 공상이 되는 것이 유족이다. 나체로 사는 것은 나물(裸物), 깃털 난 것은 우물(羽物), 털 난 것은 모물(毛物), 비늘과 갑각 있는 것은 인개지물이 되는 것이 변물이다.
임천 오씨(臨川吳氏)가 말하였다.
天之所生各族殊分,法乾覆之无私者,於殊分之族而類聚,其所同異中之同也。火之所及凡物均照,法離明之有别者,於均照之物而辨析,其所異同中之異也。
하늘이 낳은 각 족속이 다르게 나뉘어 있는데 건(乾)의 덮어주는 무사함을 본받아 다르게 나뉜 족속을 유유상종하여 모으니 이것은 다름 가운데 같음(異中之同)이다. 불이 미치는 모든 사물을 고르게 비추는데 리(離)의 밝음이 분별함을 본받아 고르게 비추는 사물을 분석하니 이것은 같음 가운데 다름(同中之異)이다.
소동파(東坡蘇氏)가 말하였다.
水之於地為比,火之於天為同人。然比以无所不比為比,同人以有所不同為同也。
물이 땅에 있는 것은 비(比)가 되고 불이 하늘에 있는 것은 동인이 된다. 그러나 비는 친비하지 않는 바가 없음(무차별적 결합)으로써 비라 하고, 동인은 같지 않은 바가 있음(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동이라 한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