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火同人 · 64괘 사전

구삼(九三) — 복융우망 승기고릉 삼세불흥

九三 伏戎于莽 升其髙陵 三嵗不興
나아가거나 실행하려는 의지삼효, 양강이 하괘 상에 거함 (위태)강한 것에 대적함진출/전진

풀이

구삼은 양(陽)으로서 강(剛)한 자리에 거하고 중(中)을 얻지 못하니, 힘은 넘치되 절제가 없는 자리다. 정이천은 이를 “강하고 포악한 사람”이라 불렀다. 동인(同人)은 사람과 함께한다는 좋은 때이건만, 이 효만은 유독 매복과 다툼의 언어로 가득하다. 아래에 놓인 하나뿐인 음, 육이를 곁에 두고 탐내지만, 육이는 이미 저 위 구오와 바르게 응하는 사이다. 구삼은 정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덤불 속에 군사를 감춘다.

이치가 곧지 못하고 의리가 상대를 이기지 못하니, 감히 드러내 발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장기를 수풀에 숨기고(복융우망), 높은 언덕에 올라 틈을 엿보며(승기고릉), 삼 년이 되도록 끝내 일어나지 못한다(삼세불흥). 주자는 상대인 구오의 양이 바야흐로 강하여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라 하였고, 융산 이씨는 “모이면 반드시 다툰다”는 한 마디로 이 자리의 비극을 요약한다. 함께함이 지극히 쉽고 간단한 일인데도, 정당성을 잃은 자에게는 그 길이 험로가 된다.

주목할 것은 정이천이 이 효를 “흉하다”고 하지 않은 대목이다. 이미 감히 발동하지 못했으므로 아직 흉한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명분이 없어 스스로 멈춘 것이다. 소상전의 “안행(安行)“을 절재 채씨와 정이천은 “편안히 간다”가 아니라 “어찌 가겠는가”라는 반어로 읽는다. 떳떳하지 못한 걸음은, 애초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삶에의 적용

능력이 있어도 명분이 없으면 그 능력은 결국 자신을 가둔다. 무언가를 욕심내되 그것이 바른 자리에서 온 것이 아닐 때, 마음은 덤불에 숨어 삼 년을 벼르지만 몸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이 소모의 긴장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수양의 첫걸음이다. 나아가려는 뜻(志)이 강할수록 먼저 물어야 한다 — 이 걸음은 곧은가, 이겨야 할 것이 상대인가 나의 욕심인가. 몸을 다루는 자리에서도 같다. 힘으로 힘을 이기려 뻣뻣해지면 중심을 잃고 묶인다. 강한 것을 만났을 때 오히려 힘을 빼고 자리를 바로잡는 것, 그 부드러움이 매복보다 멀리 간다.

훈장님의 풀이는 이 대목의 강의 전사가 도달하는 대로 더해집니다.

원문과 주석 — 효사·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

九三 伏戎于莽 升其髙陵 三嵗不興

구삼은 군사를 덤불 속에 매복시키고, 그 높은 언덕에 오르니, 삼 년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한다.

소상전

象曰:伏戎于莽,敵剛也。三歲不興,安行也。

상전에 말하였다. “덤불에 병사를 매복함은 강한 적(구오) 때문이요, 삼 년 동안 일어나지 못함은 어찌 행하겠는가.”

정이천『이천역전』

三以陽居剛而不得中,是剛暴之人也。在同人之時,志在於同。卦唯一陰,諸陽之志皆欲同之,三又與之比。

삼효는 양으로서 강한 자리에 거하고 중을 얻지 못했으니, 강하고 포악한 사람이다. 동인의 때에 뜻이 함께함에 있다. 괘에 오직 하나의 음뿐이라, 뭇 양들의 뜻이 다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데, 삼효는 또 그와 가깝다.

然二以中正之道與五相應。三以剛强居二五之間,欲奪而同之,然理不直、義不勝,故不敢顯發,伏藏兵戎于林莽之中。

그러나 이효는 중정지도로써 오효와 상응한다. 삼효가 강강함으로써 이와 오 사이에 거하여 빼앗아 함께하고자 하나, 이치가 곧지 못하고 의리가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감히 드러내 발동하지 못하고, 병장기를 수풀 덤불 속에 매복시켜 감춘다.

懷惡而内負不直,故又畏懼。時升髙陵以顧望。如此至于三歳之久,終不敢興。

악한 마음을 품고 안으로 곧지 못함을 졌으므로 또한 두려워한다. 때때로 높은 언덕에 올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이와 같이 하기를 삼 년의 오램에 이르도록 끝내 감히 일어나지 못한다.

此爻深見小人之情狀。然不曰凶者,既不敢發,故未至凶也。

이 효는 소인의 정상을 깊이 보여준다. 그러나 흉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이미 감히 발동하지 못했으므로 아직 흉한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상전 주석:

所敵者五。五旣剛且正,其可奪乎?故畏憚伏藏也。至於三歲不興矣,終安能行乎?

대적하는 바는 구오이다. 오효가 이미 강하고 또 바르니 어찌 빼앗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두려워하고 꺼려 숨어 엎드린 것이다. 삼 년 동안 일어나지 못함에 이르렀으니, 끝내 어찌 능히 행하겠는가.

주자『주역본의』

剛而不中,上无正應。欲同於二,而非其正,懼九五之見攻,故有此象。

강하되 중하지 못하고 위로 정응이 없다. 이효와 함께하고자 하나 그 바름이 아니어서, 구오가 공격해 올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이 있다.

或問:伏戎于莽,升其髙陵,如何?朱子曰:只是伏于髙陵之草莽中,三歲不敢出。

어떤 이가 “복융우망 승기고릉은 어떠합니까” 하니, 주자가 말하였다. “단지 높은 언덕의 풀숲 속에 엎드려 삼 년 동안 감히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輿九四乘其墉,皆為剛盛而髙。三欲同於二而懼九五之見攻,故升髙伏戎欲敵之。而五陽方剛,則不可奪,故三嵗不興,而象曰不能行也。

구사가 그 담장에 오른다는 것과 더불어 다 강하고 성하며 높은 것이 된다. 삼효는 이효와 함께하고자 하나 구오가 공격함을 두려워하므로, 높이 올라 병사를 매복시켜 그를 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효의 양이 바야흐로 강하니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니, 상전에서 능히 행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程傳謂升髙陵有升髙顧望之意,此説雖巧,恐非本意。

정전에서 승기고릉을 높이 올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는 뜻이라 했는데, 이 설이 비록 교묘하나 아마도 본뜻은 아닐 것이다.

본의 소상전 주석:

本義:言不能行。

능히 행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제가(諸家)의 주석

동곡 정씨(東谷鄭氏):

伏戎于莽,以伺五之隙;升其髙陵,以窺二之動。

덤불에 병사를 매복함은 오효의 틈을 엿보기 위함이고, 높은 언덕에 오름은 이효의 움직임을 엿보기 위함이다.

유환(劉氏瓛):

三居下體之上,故謂之陵。有憑上之志,故謂之升。

삼효는 하체의 위에 거하므로 능(陵)이라 했고, 위로 기대어 오르려는 뜻이 있으므로 승(升)이라 했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三與五隔三爻,故曰三歲。

삼효와 오효는 세 효가 떨어져 있으므로 삼 년이라 했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安,何也。讀如安往而不得貧賤之安。

안(安)은 어찌(何)이다. “어찌 가서 빈천을 얻지 않겠는가”라고 할 때의 안과 같이 읽는다. 곧 소상전의 안행을 편안히 간다가 아니라 반어법인 어찌 가겠는가로 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융산 이씨(隆山李氏):

天下之理,萃則必爭。卦以相同為義,而三則㐲戎,四則乘墉,五則大師克,何也?

천하의 이치는 모이면 반드시 다툰다. 이 괘는 서로 같음으로써 뜻을 삼는데, 삼효는 매복하고 사효는 담장에 오르고 오효는 큰 군대로 이긴다고 하니 어째서인가.

二應五而三爻據之,所以争也。嗚呼!出而與人同,至易至簡之事,而乃如此。故易中必知險,簡中必知阻。不學易者,殆不可以涉世也。

이효가 오효에 응하는데 삼효가 그것을 점거하고 있으니, 이것이 다투는 까닭이다. 아아, 나가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지극히 쉽고 지극히 간단한 일이어늘 이에 이와 같다. 그러므로 쉬운 가운데 반드시 험함을 알아야 하고 간단한 가운데 반드시 막힘을 알아야 한다. 『역』을 배우지 않는 자는 위태로워 세상을 건널 수 없다.

평암 항씨(項氏):

言敵剛,恐人誤以為攻二也。

적강이라 말한 것은, 사람들이 삼효가 이효를 공격한다고 잘못 알까 두려워해서이다.

운봉 호씨(雲胡氏):

二與五同者也。九三欲攘二而畏五。伏與升,備見三之情狀。

이와 오는 함께하는 자이다. 구삼은 이효를 훔치고 싶으나 오효를 두려워한다. 복(伏)과 승(升)에서 삼효의 정상을 갖추어 볼 수 있다.

伏戎于莽,欲攻二,似有畏五意;升其髙陵,雖畏五,又有顧望意。五終不可敵也,是以三歳不興。

풀숲에 매복함은 이효를 공격하고자 하나 오효를 두려워하는 뜻이 있는 듯하고, 높은 언덕에 오름은 비록 오효를 두려워하나 또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엿보는 뜻이 있다. 오효는 끝내 대적할 수 없는지라 이로써 삼 년 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卦唯三四不言同人。二與五相同,而三四有爭奪之象,非同者也。

이 괘에서 오직 삼효와 사효만이 동인을 말하지 않았다. 이와 오가 서로 같은데 삼과 사는 쟁탈의 상이 있으니, 함께하는 자가 아니다.

이 효가 動하면天雷无妄(25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