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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괘

澤山咸 — 마음을 비워야 온전히 느낀다

억지로 다가가지 마라. 나를 비운 자리라야 상대가 스며든다.

咸,亨,利貞,取女吉。

이 괘가 말하는 것

택산함(咸)은 감응(感應)의 괘다. 위에는 기뻐하는 연못(兌, 소녀)이, 아래에는 묵묵히 멈춘 산(艮, 소남)이 놓여, 젊은 두 기운이 서로에게 끌려 마주 선 형상이다. 주목할 것은 괘의 이름이다. 느낄 감(感) 자에서 마음 심(心)을 덜어낸 글자가 바로 함(咸)이다. 왜 하필 마음을 뺐는가. 계산하고 의도하는 마음이 앞설수록 참된 감응은 오히려 막히기 때문이다. 함은 그래서 ’무심(無心)의 느낌’이다. 상경이 하늘과 땅의 창조로 열렸다면, 하경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이 감응에서 다시 시작한다. 관계가 빠르게 맺어지고 또 빠르게 흩어지는 시대에, 함괘는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계산하며 상대 앞에 서 있는가.

괘사는 짧지만 방향이 분명하다. “함은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며, 여자를 취함이 길하다(咸,亨,利貞,取女吉).” 감응에는 통하는 힘이 있지만, 아무 감응이나 좋은 것은 아니다. 바름(正)을 잃은 끌림은 이내 흐려진다. 부부가 예를 잃고 벗이 의를 잃은 채 서로에게 기대면, 옛 주석가들이 경계했듯 마침내 어긋나 등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바르게 함이 이롭다’는 단서가 붙는다. ’여자를 취함이 길하다’는 구절도 남녀의 이야기에만 갇히지 않는다. 강한 것이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부드러운 것에게 먼저 자신을 낮추는 자세 — 그 낮춤이 관계를 여는 열쇠라는 뜻이다.

공자는 단전에서 이 남녀의 감응을 단숨에 우주의 크기로 넓힌다. “천지가 감응하여 만물이 태어나고,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응시켜 천하가 화평해진다(天地感而萬物化生,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그리고 결론이 깊다. “그 감응하는 바를 관찰하면 천지만물의 정(情)을 볼 수 있다.” 한 존재의 참모습은 그가 무엇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힘으로 누르지 않고 마음을 움직여 사람을 얻는다. 위에 있는 자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아래로 다가갈 때, 위아래의 기운이 통하며 비로소 큰 조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함괘가 그리는 관계와 다스림의 원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대상전이 그 자세를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산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함이니, 군자는 이로써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君子以虛受人).” 산꼭대기 분화구가 텅 비어 있어야 그 안에 물을 품을 수 있듯, 마음도 비어 있어야 남이 들어온다. 정이천은 이를 ’무아(無我)’라 못박았고, 건안 구씨는 사사로운 선입견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감응의 기틀이 막혀 아무리 좋은 말이 와도 튕겨 나간다고 경계했다. ’내 생각이 옳다’로 꽉 찬 사람에게는 세상이 들어설 틈이 없다. 수양의 첫걸음은 지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일이다. 몸도 다르지 않다. 어깨와 배에 힘을 준 채로는 상대의 힘도 상대의 마음도 받아낼 수 없으니, 긴장을 풀고 무게중심을 낮춰 텅 비운 그 자리에서라야 비로소 참된 교감이 시작된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咸,亨,利貞,取女吉。

함(咸)은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며, 여자를 취함(取女)이 길하다.

정이천『이천역전』

咸,感也。不曰感者,咸有皆義。男女交相感也。物之相感,莫如男女,而少復甚焉。凡君臣上下,以至萬物,皆有相感之道。物之相感,則有亨通之理。君臣能相感,則君臣之道通;上下能相感,則上下之志通。以至父子、夫婦、親戚、朋友,皆情意相感,則和順而亨通。事物皆然,故咸有亨之理也。

함(咸)은 감응함(感)이다. ’감(感)’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함에는 ’모두(皆)’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교차하여 서로 감응하는 것이다. 만물이 서로 감응함은 남녀만 한 것이 없고, 젊을수록 더욱 심하다. 무릇 임금과 신하, 위와 아래로부터 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로 감응하는 도가 있다. 사물이 서로 감응하면 곧 형통하는 이치가 있다. 군신이 능히 서로 감응하면 군신의 도가 통하고, 상하가 능히 서로 감응하면 상하의 뜻이 통한다. 나아가 부자·부부·친척·붕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과 뜻으로 서로 감응하면 화순하여 형통하게 된다. 사물도 모두 그러하므로, 함에 형통의 이치가 있는 것이다.

利貞,相感之道利在於正。不以正,則入於惡矣。如夫婦之以滛姣,君臣之以媚說,上下之以邪僻,皆相感之不以正也。取女吉,以卦才言也。卦有柔上剛下,二氣感應相與,止而說,男下女之義。以此義取女,則得正而吉也。

’바르게 함이 이롭다(利貞)’는 것은, 서로 감응하는 도는 바름(正)에 있음이 이롭다는 것이다. 바름으로써 하지 않으면 악(惡)으로 들어간다. 부부가 음탕하고 요염함으로 하거나, 군신이 아첨하고 기쁘게 함으로 하거나, 상하가 간사하고 치우침으로 하는 것은 모두 서로 감응하되 바름으로써 하지 않는 것이다.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는 것은 괘의 재주로써 말한 것이다. 괘에 유(柔)가 위에 있고 강(剛)이 아래에 있어 두 기운이 감응하여 서로 더불며, 그치고 기뻐하니, 남자가 여자에게 낮추는 뜻이 있다. 이 뜻으로써 여자를 취하면 바름을 얻어 길한 것이다.

주희『주역본의』

咸,交感也。兌柔在上,艮剛在下,而交相感應。又艮止則感之專,兌說則應之至。又艮以少男下於兌之少女,男先於女,得男女之正,婚姻之時也。故其占亨,而利於貞,取女則吉也。葢感有必通之理,然不以貞則失其亨,而所爲皆凶矣。

함은 교감(交感)이다. 태(兌)의 유가 위에 있고 간(艮)의 강이 아래에 있어, 서로 사귀어 감응한다. 또 간은 그치니 감응함이 오로지하고, 태는 기뻐하니 응함이 지극하다. 또 간의 소남(少男)이 태의 소녀(少女)에게 자신을 낮추어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하니, 남녀의 바름을 얻어 혼인할 때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며, 여자를 취하면 길한 것이다. 대개 감응함에는 반드시 통하는 이치가 있으나, 바름(貞)으로써 하지 않으면 그 형통함을 잃어 하는 바가 모두 흉하게 된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易无思也,无爲也,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有心於求感,非易之道也。故去心而名卦以咸。

역(易)은 생각함도 없고 작위함도 없으며,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드디어 천하의 연고를 통한다(感而遂通). 마음을 두어 감응하기를 구하는 것은 역의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心)’을 버리고 괘의 이름을 ’함(咸)’이라 한 것이다.

여구 흔(閭丘氏昕)

感非其正,則夫婦不以禮合,君臣不以道合,朋友不以義合,終必至於睽離。故曰亨,利貞。

감응함이 그 바름(正)이 아니면, 부부가 예(禮)로써 합하지 못하고 군신이 도(道)로써 합하지 못하며 붕우가 의(義)로써 합하지 못하여 마침내 반드시 어긋나 이별함(睽離)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物之相感,莫如男女之少者,故二少爲咸。上下交感,則有亨通之理。然相感之道,利在守正。以此道而取女,其吉可知。

만물이 서로 감응함은 남녀의 젊은 자들만 한 것이 없으므로 두 젊은이(二少)가 함(咸)이 된다. 상하가 교감하면 형통하는 이치가 있다. 그러나 서로 감응하는 도는 바름을 지킴에 이롭다. 이 도를 써서 여자를 취하면 그 길함을 알 수 있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咸,感也。不曰感而曰咸。咸,皆也,无心之感也。无心於感者,无所不感也。感則必通,而利在於貞。凡言感之道當如此。取女吉,專言取女者當如此。女以静正爲主,男不下女而女從之,非貞女也,不可取矣。

함은 느낌이다. ’감’이라 말하지 않고 ’함’이라 했다. 함은 ’모두’라는 뜻이니, 무심(無心)의 느낌이다. 느낌에 무심한 자는 느끼지 못하는 바가 없다. 느끼면 반드시 통하나, 이로움은 바름(貞)에 있다. 무릇 느낌의 도를 말함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는 오로지 여자를 취하는 자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여자는 고요하고 바름(靜正)을 위주로 하니,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을 낮추지 않았는데 여자가 그를 따른다면 바른 여자(貞女)가 아니니 가히 취할 수 없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文王於咸卦自取取女象。二卦重在三上兩爻。三爲艮主,上爲兌主,男女皆得其正,故曰利貞,故取女吉也。况二五又正,其不正者初四而已。曰取女,二體又以艮爲重。而咸之所以得名,亦由於艮。艮爲感主,而兑已是應體。本義謂艮止則感之專,兌說則應之至,已盡卦義。此所以二少尤有夫婦感應之道,而爲下經之首,與乾坤分主上下經也。先儒謂上經乾坤以二老對立,下經咸以二少合體,深爲得之。

문왕(文王)은 함괘에서 스스로 ’여자를 취하는 상’을 취하였다. 두 괘는 3효와 상효 두 효에 중점이 있다. 3효는 간(艮)의 주인이고 상효는 태(兌)의 주인이니, 남녀가 모두 그 바름을 얻었다. 그러므로 ’이정’이라 하였고, 그래서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고 한 것이다. 하물며 2효와 5효 또한 바르니, 그 바르지 않은 것은 초효와 4효일 뿐이다. ’여자를 취한다’고 말함은 두 체 중에서 또 간을 무겁게 여긴 것이다. 함이 이름을 얻은 까닭 또한 간으로 말미암는다. 간은 느끼는 주체(感主)가 되고 태는 응하는 개체가 된다. 본의에 ’간이 그치면 감응이 오로지하고, 태가 기뻐하면 응함이 지극하다’고 한 것이 이미 괘의 뜻을 다하였다. 이것이 두 젊은이가 더욱 부부의 감응하는 도가 있어서 하경(下經)의 머리가 되어, 건곤과 함께 상경과 하경을 나누어 주관하는 까닭이다. 옛 선유가 “상경은 건곤 두 늙은이(二老)로써 대립하고, 하경은 함괘 두 젊은이(二少)로써 합체한다”고 하였으니 깊이 이치를 얻은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咸,感也。柔上而剛下,二氣感應以相與,止而說,男下女,是以亨利貞,取女吉也。天地感而萬物化生,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단전에 말하기를, 함(咸)은 느끼어 감응함(感)이다. 유(柔)가 위로 가고 강(剛)이 아래로 와서 두 기운이 감응하여 서로 더불며, 그치고 기뻐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을 낮추니, 이 때문에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며 여자를 취함이 길한’ 것이다. 천지가 감응하여 만물이 조화로 태어나고,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응시켜 천하가 화평해지니, 그 감응하는 바를 관찰하면 천지만물의 정(情)을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咸之義感也。在卦則柔爻上而剛爻下,柔上變剛而成兌,剛下變柔而成艮,隂陽相交,爲男女交感之義。又兌女在上,艮男居下,亦柔上剛下也。隂陽二氣相感相應而和合,是相與也。

함의 뜻은 느낌(感)이다. 괘에 있어서는 유효(음효)가 위로 가고 강효(양효)가 아래로 오니, 유가 위로 가서 강을 변화시켜 태(兌)를 이루고, 강이 아래로 와서 유를 변화시켜 간(艮)을 이루니, 음양이 서로 사귀어 남녀가 교감하는 뜻이 된다. 또 태(兌) 소녀가 위에 있고 간(艮) 소남이 아래에 거하니, 이 또한 유가 위에 있고 강이 아래에 있는 것이다. 음양 두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화합하니, 이것이 서로 더붊(相與)이다.

止而說,止於說,爲堅慤之意。艮止於下,篤誠相下也。兌說於上,和說相應也。以男下女,和之至也。相感之道如此,是以能亨通而得正。取女如是,則吉也。卦才如此,大率感道利於正。

’그치고 기뻐함’은 기뻐함에 그치는 것이니, 굳세고 진실한 뜻(堅慤之意)이 된다. 간(艮)이 아래에서 그침은, 돈독한 정성(篤誠)으로 서로 낮추는 것이다. 태(兌)가 위에서 기뻐함은, 화합하고 기뻐하며 서로 응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을 낮추니, 화합의 지극함이다. 서로 감응하는 도가 이와 같으므로, 능히 형통하고 바름을 얻는다. 여자를 취함이 이와 같으면 길한 것이다. 괘의 재주가 이와 같으니, 대개 감응하는 도는 바름(正)에 이로운 것이다.

既言男女相感之義,復推極感道,以盡天地之理、聖人之用。天地二氣交感而化生萬物,聖人至誠以感億兆之心而天下和平。天下之心所以和平,由聖人感之也。觀天地交感化生萬物之理,與聖人感人心致和平之道,則天地萬物之情可見矣。感通之理,知道者黙而觀之可也。

이미 남녀가 서로 감응하는 뜻을 말하고, 다시 감응의 도를 극도로 미루어 넓혀서 천지의 이치와 성인의 쓰임을 다하였다. 천지의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조화로 낳고, 성인이 지극한 정성(至誠)으로써 억조창생의 마음을 감응시켜 천하가 화평해진다. 천하의 마음이 화평해지는 까닭은 성인이 그들을 감응시켰기 때문이다. 천지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는 이치와,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응시켜 화평을 이루는 도를 관찰한다면, 곧 천지만물의 정(情)을 가히 볼 수 있다. 느끼고 통하는 이치는, 도를 아는 자가 묵묵히 관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주희『주역본의』및 어록

釋卦名義。或以卦變言柔上剛下之義曰,咸自旅來,柔上居六,剛下居五也,亦通。極言感通之理。

괘 이름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혹자가 괘변(卦變)으로써 ’유상강하(柔上剛下)’의 뜻을 말하기를, “함괘는 려(旅)괘에서 왔으니, 유가 위로 가서 상육에 거하고, 강이 아래로 와서 구오에 거한 것이다”라고 하니, 이 또한 통한다. ’감통(感通)’의 이치를 극도로 말한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咸者,感也。所以感者,心也。无心者不能感,故咸加心而爲感;有心於感者亦不能咸感,故感去心而爲咸。咸,皆也。唯无容心於咸,然後无所不感。聖人以咸名卦,而彖以感釋之,所以互明其㫖也。

함(咸)은 느낌(感)이다. 느끼는 까닭은 마음(心) 때문이다. 마음이 없는 자는 느낄 수 없으므로, ’함’에 마음 심을 더하여 ’감(感)’이 되었다. 반면, 느낌에 사사로운 마음을 두는 자는 또한 온전히 느낄 수 없으므로, ’감’에서 마음 심을 빼어 ’함’이 되었다. 함은 ’모두’라는 뜻이다. 오직 사사로운 마음을 용납함이 없이 온전히 한 연후에야, 느끼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된다. 성인이 괘 이름을 ’함’으로 짓고, 단전에서 ’감’으로 풀이한 것은, 그 깊은 뜻을 서로 밝히기 위함이다.

거산 양씨(龜山楊氏)

止而說,以卦才言也。夫婦之道,止而不說則離,說而不止則亂。男不下女,則剛柔不接,非夫婦之正也。

’그치고 기뻐함’은 괘의 재주로써 말한 것이다. 부부의 도는, 그치기만 하고 기뻐하지 않으면 이별하게 되고, 기뻐하기만 하고 그치지 않으면 문란해진다. 남자가 여자에게 낮추지 않으면 강과 유가 접하지 않으니, 부부의 바른 길이 아니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天地之感也以氣,聖人之感人也以心。…寂然不動,性也;感而遂通,情也。於其所感而觀之,而天地萬物之情可得而見矣。情者,感而動者也。

천지가 감응함은 기(氣)로써 하고, 성인이 사람을 감응시킴은 마음(心)으로써 한다. (…)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은 본성(性)이요, 느끼어 드디어 통하는 것은 감정(情)이다. 그 감응하는 바를 관찰하면 천지만물의 정을 가히 볼 수 있다. ’정’이라는 것은 느끼어 움직이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上經首乾,氣化之始,而曰「品物流形」;下經首咸,形化之始,而曰「二氣感應」。氣與形固未嘗相離也。上經首乾彖傳言性,下經首咸彖傳言情。復之彖言天地之心,咸言人心。學易者於此當有悟矣。

상경의 머리인 건(乾)괘는 기화(氣化, 기운의 변화)의 시작인데, 단전에서 ’만물이 형태를 흘려 둔다(品物流形)’고 형체를 말하였다. 하경의 머리인 함(咸)괘는 형화(形化, 형체의 변화)의 시작인데, 단전에서 ’두 기운이 감응한다(二氣感應)’고 기운을 말하였다. 기(氣)와 형(形)은 진실로 일찍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상경의 머리인 건괘 단전에서는 본성(性)을 말하였고, 하경의 머리인 함괘 단전에서는 감정(情)을 말하였다. 복(復)괘의 단전에서는 ’천지의 마음(天地之心)’을 말하였고, 함괘에서는 ’사람의 마음(人心)’을 말하였다. 주역을 배우는 자는 마땅히 여기서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대상전(大象傳)

象曰:山上有澤,咸。君子以虛受人。

상전에 말하기를, 산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함(咸)이니, 군자는 이로써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虛受人).

정이천『이천역전』

澤性潤下,土性受潤。澤在山上而其漸潤通徹,是二物之氣相感通也。君子觀山澤通氣之象,而虛其中以受於人。

연못의 성질은 아래를 적시고, 흙의 성질은 적심을 받는다. 연못이 산 위에 있어 그 적심이 점차 통하고 스며드니, 이는 두 사물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통하는 것이다. 군자는 산과 연못의 기운이 통하는 상(山澤通氣)을 관찰하여, 그 중심을 비움으로써 남을 받아들인다.

夫人中虛則能受,實則不能入矣。虛中者无我也。中无私主,則无感不通。以量而容之,擇合而受之,非聖人有感必通之道也。

무릇 사람이 속이 비어있으면 능히 남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고, 꽉 차 있으면 들어갈 수 없다. 속을 비운다는 것은 나를 없애는 것(无我)이다. 마음속에 사사로운 주관이 없으면, 감응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다. 반대로 자기의 도량에 맞추어 용납하거나, 내 뜻에 맞는 것만 가려서 받아들이는 것은, 성인이 감응함에 반드시 통하는 도가 아니다.

주희『주역본의』및 어록

山上有澤,以虛而通也。

’산 위에 연못이 있다’는 것은 비어있음(虛)으로써 통하는 것이다.

山上有澤,當如伊川說,水潤土燥,有受之義。上若不虛,如何受得?上兑下艮,兑上缺有澤口之象,兑下二陽畫有澤底之象;艮上一畫陽有土之象,下二隂畫中虛便是滲水之象。

산 위에 연못이 있다는 것은 마땅히 이천(정이천)의 말과 같이 물은 적시고 흙은 말라 있어서 서로 받아들이는 뜻이 있는 것이다. 위가 만약 비어있지 않다면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상괘는 태(兌)요 하괘는 간(艮)이다. 태괘(☱)는 위가 이지러져 있으니 연못 입구의 상이 있고, 태괘 아래의 두 양획은 연못 바닥의 상이 있다. 간괘(☶)의 맨 위 한 양획은 흙의 상이 있고, 아래의 두 음획은 속이 비어있으니 문득 물이 스며드는 상이 된다.

問:程傳「以量而容之」,莫是要著意容之否?曰:非也。「以量」者,乃是隨我量之大小以容之,便是不虛了。

묻기를 “정전의 ’도량으로써 용납한다’는 것은 혹 뜻을 두어 의도적으로 용납한다는 것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니다. ’도량으로써 한다’는 것은 곧 내 도량의 크고 작음에 따라 용납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비어있지 않은 것이다.”

백운 곽씨(白雲郭氏)

山澤通氣而後萬物化生,君子法之以虛受人。唯虛故受,受故能感。不能感者,以不能受故也;不能受者,以不能虛中故也。

산과 연못이 기운을 통한 뒤에 만물이 화생(化生)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 오직 비어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능히 감응한다. 능히 감응하지 못하는 자는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요, 능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속을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山上有澤,其中必虛。虛則山澤之氣通,而感應之理以生。君子觀虛而能感之象,而以虛受人。人之一心,其寂然不動感而遂通者,虛故也。苟以私意實之,則先入者爲主而感應之機窒,雖有至者,皆捍之而不受矣。故山以虛則能受澤,心以虛則能受人。

산 위에 연못이 있으려면 그 중심이 반드시 비어있어야 한다. 비어있으면 산과 연못의 기운이 통하여 감응하는 이치가 생겨난다. 군자가 비어있어 능히 감응하는 상을 관찰하여, ‘비움으로써 남을 받아들인다’.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드디어 통하는 것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속을 채운다면, 먼저 들어간 것(선입견)이 주인이 되어 감응하는 기틀이 막혀버린다. 비록 남의 말이 이르는 것이 있어도 모두 막아내어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산은 비어있음으로써 연못을 받아들이고, 마음은 비어있음으로써 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咸取无心之義,以虛受人,无心之感也。上經首乾坤,自强反諸己,厚德施於人;下經首咸恒,虛以施於人,立則反諸己。

함(咸)은 무심(無心)의 뜻을 취했으니, 비움으로써 남을 받아들임은 무심의 감응(無心之感)이다. 상경의 머리인 건(乾)·곤(坤)은 스스로 굳세어(自强) 자기에게 돌이키고 두터운 덕(厚德)으로 남에게 베풀며, 하경의 머리인 함(咸)·항(恒)은 비움(虛)으로써 남에게 베풀고 뜻을 세움(立)으로써 자기에게 돌이킨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雷風恆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山澤損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天風姤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重火離澤山咸雷風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