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상육은 함괘(咸卦)의 맨 끝, 상괘 태(兌)의 꼭대기다. 몸으로 치면 입과 얼굴 — 잇몸(輔)과 뺨(頰)과 혀(舌)의 자리다. 발끝에서 시작된 감응(咸)이 다리와 가슴과 등을 지나 마침내 입으로 터져 나온 상태다. 그런데 여기서 감응은 진심이 아니라 말로만 터진다. 태(兌)는 기쁨과 입과 혀를 주관하니, 상육은 남을 감응시키려는 욕망이 극에 이르러 오직 말솜씨로 상대를 홀리려 한다. 정이천은 이를 “지극한 정성(至誠)으로 감응시키지 못하고 구설 사이에서 발현되는” 소인의 상태라 하여, 어찌 남을 움직이겠느냐고 물었다.
소상전은 이를 등구설(滕口說), 곧 입으로 말을 퍼뜨림이라 했다. 주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로써 사람을 감응시키려 하나 그 실질이 없다(感人以言而无其實)“고 못박았다. 눈여겨볼 것은, 이 효에는 길(吉)도 흉(凶)도 회린(悔吝)도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 주자에게 마땅히 후회와 부끄러움이 있어야 할 텐데 왜 말하지 않았느냐 묻자, 주자는 답했다. 길흉회린은 사악함과 바름(邪正)에 매인 것인데, 상육은 아직 잃은 바가 없고 다만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할 뿐이라 회린조차 말할 자격이 없다고. 악한 것이 아니라 그저 공허한 것 — 판단할 값어치조차 없는 얄팍함이다.
건안 구씨는 함괘 여섯 효를 몸으로 총정리했다. 발가락과 장딴지와 허벅지는 몸을 따라 움직이며 느낌에 응하고, 등살은 느끼지 못하며, 잇몸과 뺨과 혀는 말로만 기쁘게 하여 사람을 감응시키지 못한다. 오직 마음자리인 4효만이 감응의 주인이지만, 그마저 사심으로 동동거리며 오가면(憧憧往來) 온전히(咸) 느낄 수 없다. 그가 끌어낸 결론은 계사전의 한 구절이다. “역은 생각도 없고 작위도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마침내 천하에 통한다.” 참된 감응은 화려한 혀가 아니라, 사심을 비운 고요(無心)에서 나온다. 상육은 그 정반대 자리에서 함괘의 여정을 닫는다.
오늘 하루의 태도
말이 행동을 앞지르는 순간 신뢰에 금이 간다. “밥 한번 먹자”, “꼭 해줄게” 같은 가벼운 말은 입술은 바쁘게 하지만 마음은 비운다. 수양은 입을 다스리는 데서 시작한다. 오늘 하루, 지키지 못할 말을 앞세우려는 자신을 붙들어 보라. 혀를 가볍게 입천장에 대고 입을 다물면, 밖으로 새던 기운이 안으로 돌아온다. 말을 삼분의 일로 줄이고, 대신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 보라. 진심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몸의 고요와 눈빛에서 전해진다. 입이 움직이기 전에, 발과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원문과 주석 — 상육 효사와 소상전, 그리고 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와 소상전(小象傳)
上六,咸其輔頰舌。 상육은 그 윗잇몸과 뺨과 혀에 느낀다.
象曰:咸其輔頰舌,滕口說也。 상전에 말하였다. “함기보협설”은 입으로 말을 퍼뜨림(滕口說)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上隂柔而說體,爲說之主,又居感之極,是其欲感物之極也。故不能以至誠感物,而發見於口舌之間。小人女子之常態也,豈能動於人乎? 상육은 음유하고 기뻐하는 체(兌)로서 기쁨의 주인이 되고, 또 감응의 극에 거하니, 이는 사물을 감응시키려는 욕망이 극에 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으로 사물을 감응시키지 못하고 그저 구설 사이에서 발현되니, 이는 소인과 여자의 일상적 태도이다. 어찌 능히 남을 움직이겠는가?
不直云口而云輔頰舌,亦猶今人謂口過曰唇吻、曰頰舌也。輔頰舌皆所用以言也。 곧바로 ’입(口)’이라 하지 않고 ’보·협·설’이라 한 것은, 지금 사람들이 입의 허물을 두고 ’입술’이라거나 ’뺨과 혀’라 말하는 것과 같다. 보·협·설은 모두 말할 때 쓰는 것들이다.
唯至誠爲能感人,乃以柔說滕揚於口舌,言說豈能感於人乎? (소상전 풀이) 오직 지극한 정성이라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데, 부드럽게 기쁘게 함으로써 입과 혀로 말을 날리니, 말하는 것으로 어찌 사람을 감응시키겠는가?
주자『주역본의』
輔頰舌皆所以言者,而在身之上。上六以隂居說之終,處咸之極,感人以言而无其實。又兌爲口舌,故其象如此,凶咎可知。滕,騰通用。 보·협·설은 모두 말을 하는 도구로서 몸의 맨 위에 있다. 상육은 음으로서 기쁨의 끝에 거하고 감응의 극에 처하여, 말로써 사람을 감응시키려 하나 그 실질이 없다. 또 태(兌)는 입과 혀가 되므로 그 상이 이와 같으니, 흉하고 허물됨을 알 수 있다. (소상전의) 등(滕)은 오를 등(騰)과 통용된다.
或問:上六咸其輔頰舌,竊意此爻宜有悔吝,而不言悔吝何也?朱子曰:吉凶悔吝係乎邪正,此但見其不足以感人之意耳,未見有失,故不得以悔吝言也。 혹자가 물었다. “상육은 보협설에 느낀다 하였으니, 이 효에 마땅히 회린이 있어야 할 듯한데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주자가 답하였다. “길흉회린은 사악함과 바름(邪正)에 매인 것인데, 여기서는 다만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하다는 뜻만 보일 뿐 아직 잃은 바를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회린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제가(諸家)
중계 장씨(中溪張氏) — 소진·장의의 세 치 혀.
蘇秦張儀之徒,縱横其說,即滕口說也。 소진과 장의의 무리가 그 유세를 종횡무진으로 한 것이, 곧 입으로 말을 퍼뜨림(滕口說)이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 감응의 도가 쇠퇴한 자리.
上六居感之極,常以兌之口舌務爲柔媚,極感之事,此小人女子之常態,故曰咸其輔頰舌。夫以心思感人,所感己狹,况滕口說以求感,其能感人乎?此感道之衰也。 상육은 감응의 극에 거하여 항상 태(兌)의 입과 혀로 부드럽게 아첨하기를 힘쓰니, 이는 감응의 일을 지극히 한 것으로 소인과 여자의 상태이므로 ’함기보협설’이라 하였다. 무릇 마음과 생각으로 남을 감응시키는 것(4효)도 감응하는 바가 이미 좁은데, 하물며 말만 퍼뜨려 감응을 구한다면 어찌 남을 감응시키겠는가? 이는 감응의 도가 쇠한 것이다.
신안 정씨(新安程氏) — 몸의 앞·뒤·양옆으로 응함.
初與四應,故拇與心皆在前;二與五應,故腓與脢皆在後;三與上應,故股與輔頰皆在兩旁,而舌居中。有至理存焉。 1효와 4효가 응하므로 엄지발가락과 심장은 모두 앞(前)에 있고, 2효와 5효가 응하므로 장딴지와 등살은 모두 뒤(後)에 있으며, 3효와 상효가 응하므로 허벅지와 뺨은 모두 양옆(兩旁)에 있고 혀는 가운데 거하니, 여기에 지극한 이치가 있다.
주자 문답(朱子曰) — 함(咸)과 간(艮)의 동정(動静).
或問:咸内卦艮止也,何以皆說動?朱子曰:艮雖是止,然咸有交感之義,都是要動,所以都說動。卦體雖是動,然纔動便不吉。動之所以不吉者,以其内卦属艮也。 혹자가 물었다. “함괘의 내괘는 간(艮, 그침)인데 어째서 모두 움직임(動)을 말합니까?” 주자가 답하였다. “간이 비록 그침이나 함괘는 교감의 뜻이 있어 모두 움직이려 하기에 움직임을 말한 것이다. 괘체가 비록 움직임이나, 바야흐로 움직이면 곧 길하지 않으니, 움직여 길하지 않은 까닭은 그 내괘가 간에 속하기 때문이다.”
艮咸二卦皆就人身取義,皆主静。如艮其趾,能止其動便无咎;艮其腓,腓亦動物,故止之,不拯其隨,是不能拯止其隨限而動也,故其心不快,限即腰所在。咸其拇,自是不合動;咸其腓,亦是欲隨股而動,動則凶,不動則吉。 간괘와 함괘 두 괘는 모두 사람의 몸에 나아가 뜻을 취하였고 모두 고요함(静)을 위주로 한다. 간괘의 ’발가락에 그친다’는 그 움직임을 그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고, 간괘의 장딴지는 본래 움직이는 사물이라 그치게 하는 것인데 ’그 따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허리(3효)를 따라 움직임을 그치게 하지 못해 마음이 유쾌하지 않은 것이다. 함괘의 엄지발가락은 스스로 움직임에 합당하지 않고, 함괘의 장딴지 또한 허벅지를 따라 움직이려 하니, 움직이면 흉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길하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함괘 여섯 효 총정리.
咸六爻以人身取象。上卦象上體,下卦象下體。初在下體之下爲拇,二在下體之中爲腓,三在下體之上爲股,此下卦三爻之序也。四在上體之下爲心,五在上體之中爲脢,上在上體之上爲口,此上卦三爻之序也。 함괘 여섯 효는 사람의 몸으로 상을 취했다. 상괘는 상체를, 하괘는 하체를 상징한다. 1효는 하체의 아래로 발가락, 2효는 하체의 가운데로 장딴지, 3효는 하체의 위로 허벅지이니 하괘 세 효의 차례다. 4효는 상체의 아래로 마음(심장), 5효는 상체의 가운데로 등살, 상효는 상체의 위로 입이니 상괘 세 효의 차례다.
拇、腓、股隨體而動,應感者也;脢不能思,无感者也;輔頰舌以言爲說,不足以感人者也。皆不能盡乎感之道。惟四居心位爲感之主,似知感之義者。然无心者固无所感,而有心者憧憧徃來,亦不能以咸感。感之道其難哉!大傳曰:夫易无思也,无爲也,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必如是,而後可以言咸感之道。 발가락·장딴지·허벅지는 몸을 따라 움직이며 느낌에 응하는 자이고, 등살은 생각할 수 없어 느끼는 바가 없는 자이며, 뺨과 혀는 말로써 기쁘게만 하니 족히 사람을 감응시킬 수 없는 자이다. 모두 감응의 도를 다하지 못했다. 오직 4효만이 마음의 자리에 거하여 감응의 주인이 되니 감응의 뜻을 아는 듯하다. 그러나 마음이 없는 자는 진실로 느끼는 바가 없고, 사사로운 마음이 있는 자는 동동거리며 오가니 또한 온전히(咸) 느낄 수 없다. 감응의 도가 이토록 어렵구나! 계사전(大傳)에 “역은 생각도 없고 작위도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마침내 천하의 연고에 통한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된 뒤에야 함(咸)의 감응하는 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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