澤山咸 · 64괘 사전

구오(九五) — 咸其脢

九五,咸其脢,无悔。
사심을 등지고 공정을 지키려는 뜻 — 다만 감응을 끊어 고요한 데 머무니 그 뜻이 얕다(志末).오효, 양강이 상괘 태(兌)의 가운데 거함. 군주의 존위이자 중정(中正)의 자리.아래로 육이와 정응, 위로 상육과 친비(比) — 그 사사로운 얽매임을 도리어 등지는 자리.절제·무사(無私)

풀이

구오는 군주의 자리다. 상괘 태(兌)의 한가운데에 양효로 굳세게 서서 중정(中正)을 얻었다. 몸으로 보면 심장(구사) 위, 목(상육) 아래에 있는 ’등살(脢)’에 해당한다. 감응(咸)을 말하는 이 괘에서 유독 이 자리는 눈이나 귀처럼 사물을 직접 마주하는 기관이 아니다. 몸의 뒤쪽에 있어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둔감하고 고요한 부위다. 느낌의 괘에서 느끼지 않는 독특한 자리인 셈이다.

왜 하필 등살인가. 구오는 아래로 육이와 응하고, 위로 상육과 가까이 친하다. 만약 이 둘에게만 마음이 쏠린다면 그것은 곧 편애이자 사심이 된다. 군주가 끼리끼리만 감응하면 편벽되고 좁아져 천하를 공정하게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앞가슴(마음)을 등지고 등살처럼 둔감해져, 사사로운 얽매임을 끊으라 한 것이다. 눈앞에 보여서 기뻐하는 것에 휘둘리지 않을 때, 비로소 후회가 없다(无悔).

다만 상전이 “그 뜻이 얕다(志末)“고 덧붙인 것은 칭찬이 아니라 절반의 평가다. 사심을 끊은 것은 옳으나, 고요하기만 하고 천하와 크게 감응하지는 못하니 그 뜻이 얕은 데 머문다. ’후회가 없다’는 말은 ’잘했다’가 아니라 ’최소한 후회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사심을 등지는 것은 출발일 뿐이다. 참된 공정은 무감각에 있지 않다. 주희가 인용한 무왕처럼, 가까운 이에게 지나치게 기대지도 먼 이를 잊지도 않는—마음의 도량이 두루 미쳐 사사로움 없이 널리 감응하는 데 그 완성이 있다.

삶에의 적용

가까운 이의 부탁이나 윗사람의 눈치 때문에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 눈앞(가슴)은 정보를 너무 많이 받아들여 좋고 싫음의 편견이 낀다. 그럴 때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등에 두어 보라. 가슴을 살짝 머금고 기운을 등과 척추 쪽으로 넓게 펴면 호흡이 가라앉고 감정이 앞서지 않는다. 등은 눈이 없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 둔감함이 곧 공정의 바탕이다. 그러나 등지는 데서 멈추지는 말라. 사심을 끊은 그 자리에서 다시 몸을 돌려, 좋아하는 이도 미운 이도 없이 두루 대하는 것—그것이 ’후회 없음’을 넘어서는 길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經文)

九五,咸其脢,无悔。

구오는 그 등살에 느낌이니, 후회가 없다.

象曰:咸其脢,志末也。

상전에 말하였다. 그 등살에 느낌은, 뜻이 얕고 끝에 있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편협한 감응의 경계

九居尊位,當以至誠感天下。而應二比上,若係二而說上,則偏私淺狹,非人君之道,豈能感天下乎?

구오는 존귀한 자리에 거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천하를 감응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래로 이효에 응하고 위로 상효와 친하니, 만약 이효에 얽매이고 상효를 기뻐한다면 편벽되고 사사로우며 얕고 좁아져 인군의 도가 아니게 되니, 어찌 능히 천하를 감응시킬 수 있겠는가.

매(脢)의 의미: 사심을 등지다

脢,背肉也。與心相背而所不見也。言能背其私心,感非其所見而說者,則得人君感天下之正而无悔也。

매(脢)는 등살이다. 마음(앞가슴)과 서로 등지고 있어 보이지 않는 곳이다. 능히 그 사사로운 마음을 등지고서, 눈앞에 보여서 기뻐하는 바가 아닌 것에 감응할 수 있다면, 인군이 천하를 감응시키는 바름을 얻어 후회가 없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상전 해설: 지말(志末)

戒使背其心而咸脢者,爲其存心淺末,係二而說上,感於私欲也。

경계하여 그 마음을 등지고 등살에 감응하게 한 것은, 그 마음을 보존함이 얕고 지엽적이어서 이효에 얽매이고 상효를 기뻐하여 사사로운 욕심에 감응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주희 『주역본의』및 어록

본의: 사사로운 얽매임이 없음

脢,背肉,在心上而相背,不能感物而无私係。九五適當其處,故取其象,而戒占者以能如是,則雖不能感物,而亦可以无悔也。

매(脢)는 등살이니, 심장 위에 있으면서 서로 등을 지고 있어 사물과 감응하지 못하나 사사로운 얽매임도 없는 것이다. 구오가 마침 그곳에 해당하므로 그 상을 취하였고, 점치는 자를 경계하여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비록 사물에 감응하지는 못하더라도 또한 가히 후회가 없을 것이라 한 것이다.
(※ 원문 판본의 오류를 다른 주석서로 대조하여 복원한 대목이다.)

志末,謂不能感物。

상전의 ‘뜻이 얕고 끝에 있다(志末)’ 함은, 능히 사물에 감응하지 못함을 이른다.

주자 문답(朱子曰)

或問:程傳曰「感非其所見而說者」,此是任貞一之理,則如此。朱子曰:武王不泄邇,不忘逺,是其心量該遍,故周流如此,是此義也。

혹자가 묻기를 “정전에서 ’그 보여서 기뻐하는 바가 아닌 것에 감응한다’고 한 것은, 바르고 한결같은 이치를 맡기면 이와 같게 된다는 것입니까” 하니, 주희가 답하기를 “무왕이 ’가까운 자에게 지나치게 친압하지 않고, 먼 자를 잊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이는 그 마음의 도량이 넓고 두루 미쳤기 때문에 이처럼 두루 흐른 것이니, 바로 이 뜻이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悔亡是有悔而亡之也,无悔是无復有悔也。

후회가 없어진다(悔亡)는 것은 후회할 일이 있다가 사라진 것이고, 후회가 없다(无悔)는 것은 애초에 다시 후회할 일조차 없는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九五尊居君位,可以感人心而天下和平矣,而僅能无悔何耶?葢五與六二爲應,又比上六。係二而說上,所感以私,非聖人感人心之正道。亦猶背肉之脢,與心相背而昧无所見也。

구오는 존귀한 군주의 자리에 거하니 가히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천하가 화평해져야 할 터인데, 겨우 ’무회’라 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오효는 상육과 친하고 또 육이와 응한다. 이효에 얽매이고 상효를 기뻐하여 감응하는 바가 사사로우면,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바른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또한 마치 마음과 등지고 있어 어두워 보이는 것이 없는 등살과 같이 하라 한 것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脢无所感者。无所感,故无悔。

등살은 감응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느끼는 바가 없으므로 후회가 없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子夏云「在脊曰脢」。諸爻象拇、象股、象心,皆戒其感於物而動。五象脢,不動矣,而又不能感物。諸爻動而无静,五静而无動,皆非心之正也。但以其无私係,故曰无悔,非深取之也。

자하가 이르기를 ’등골에 있는 것을 매(脢)라 한다’고 하였다. 다른 여러 효들은 엄지발가락·넓적다리·심장으로 상을 취하여 모두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을 경계하였다. 반면 오효는 등살로 상을 취하였으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또한 능히 사물에 감응하지도 못한다. 다른 효들은 움직이기만 하고 고요함이 없었으며, 오효는 고요하기만 하고 움직임이 없으니, 모두 마음의 바름은 아니다. 다만 사사로운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고 했을 뿐, 깊이 취한 것은 아니다.

初曰志在外,三曰志在隨人,五雖无私係,不能感物,其志如此,亦末矣。

초효는 ’뜻이 밖(구사)에 있다’고 하였고, 삼효는 ’뜻이 남을 따르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오효는 비록 사사롭게 얽매임은 없으나 능히 만물과 감응하지도 못하니, 그 뜻이 이와 같으므로 또한 ’얕다(末)’고 한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雷山小過(62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