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괘 사전

제6괘

天水訟 — 다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멈출 자리를 아는 것

옳다는 믿음이 있어도 끝장을 보려 하면 흉하다. 다툼의 승패는 멈출 자리를 아는 데서 갈린다.

訟:有孚,窒。惕,中吉,終凶。利見大人,不利涉大川。

이 괘가 말하는 것

천수송(訟)은 다툼의 괘다. 위에는 하늘(乾)이 있어 자꾸 위로 오르고, 아래에는 험한 물(坎)이 있어 자꾸 아래로 흐른다. 방향이 어긋난(天與水違行) 두 힘이 만났으니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송(訟)은 억지를 부리는 자들만의 다툼이 아니다. 다투는 양쪽 모두 ’내가 옳다’는 나름의 진실(有孚)을 품고 있다. 다만 그 진실이 세상에 통하지 못하고 막혀(窒) 있으니 답답함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억울함이 있기에 싸우는 것이지, 싸움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툼 앞에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내가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두려워하며(惕) 조심하고 있는가’이다.

이 괘의 핵심은 ‘중길종흉(中吉終凶)’ 네 글자에 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화해하면 길하지만(中吉), 끝장을 보려고 판결까지 밀어붙이면 반드시 흉하다(終凶). 단전은 이를 ‘송불가성(訟不可成)’, 곧 송사는 완성하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못 박는다. 이기고 지는 것을 끝까지 가려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순간, 이긴 쪽도 상처투성이가 된다. 다툼에서 진짜 강한 사람은 이길 힘이 있으면서도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변화가 빠르고 이해가 엇갈리는 시대일수록, 끝장을 보려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첫 번째 수양이 된다.

그렇다면 막힌 다툼을 어떻게 풀 것인가. 괘사는 두 가지를 이른다. 하나는 ‘이견대인(利見大人)’, 공정하고 중정(中正)한 사람을 찾아가 판단을 구하라는 것이다. 둘이서만 맞서면 감정만 쌓이고 끝이 나지 않는다. 사사로움을 넘어 오직 바름을 숭상하는 제3의 눈이 있어야 다툼이 매듭지어진다. 다른 하나는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 다투는 중에는 큰 내를 건너지 말라는 것이다. 발밑이 이미 위험한데(坎) 새 사업을 벌이거나 큰 모험을 겹치면 깊은 못에 빠진다(入于淵). 분쟁의 한복판에서는 전선을 넓히지 말고 제 분수를 지켜(安分) 몸을 낮추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 괘가 가리키는 가장 높은 자리는 다툼을 잘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툴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대상전은 군자가 이 괘를 보고 ‘작사모시(作事謀始)’, 일을 시작할 때 그 처음을 신중히 도모한다고 했다. 관계를 맺을 때 삼가고 약속을 분명히 해 두면(明契券) 훗날 원수가 되어 다툴 일이 없다. 평암 항씨의 말처럼 화(禍)의 씨앗은 결코 큰 데 있지 않다. 밥상머리의 젓가락 하나, 웃고 떠드는 잠깐 사이에 천하가 갈라진다. 몸의 수련도 다르지 않다. 기운이 머리로 치솟고 아랫배가 비면(上剛下險) 중심이 무너지니, 시작부터 기운을 단전에 내려(剛來得中) 머리는 서늘하게 아랫배는 따뜻하게 하는 질서를 잡아야 한다. 오늘 내가 시작하는 말 한마디, 약속 하나를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두는 것 — 그것이 다툼 없는 하루를 사는 길이다.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訟:有孚,窒。惕,中吉,終凶。利見大人,不利涉大川。

송(訟)은 믿음이 있으나 막혀 있다. 두려워하여 중(中)하면 길하고, 끝까지 감은 흉하다. 대인을 봄이 이롭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은 이롭지 않다.

정이천『이천역전』

訟之道,必有其孚實。中无其實,乃是誣罔,凶之道也。卦之中實,為有孚之象。訟者,與人爭辯而待決於人。雖有孚,亦須窒塞未通。不窒則已明,无訟矣。事既未辯,吉凶未可必也,故有畏惕。中吉,得中則吉也。終凶,終極其事則凶也。

송사의 도는 반드시 그 미더움과 실상이 있어야 한다. 가운데에 그 실상이 없으면 이는 곧 무고하고 속이는 것이니 흉한 도다. 괘의 가운데가 꽉 찬 것이 유부(有孚)의 상이 된다. 송사란 남과 다투어 남에게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록 믿음이 있어도 또한 막혀 통하지 못한다. 막히지 않았다면 이미 명백하여 송사가 없을 것이다. 일이 아직 분별되지 않았으니 길흉을 기필할 수 없으므로 두려워하고 조심함이 있다. ’중길(中吉)’은 중도를 얻으면 길함이요, ’종흉(終凶)’은 그 일을 끝까지 가면 흉함이다.

訟者,求辯其曲直也,故利見於大人。大人則能以其剛明中正,決所訟也。訟非和平之事,當擇安地而處,不可䧟於危險,故不利渉大川也。

송사란 그 굽고 곧음을 분별하기를 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대인을 봄이 이롭다. 대인이라야 능히 그 강명중정(剛明中正)으로 송사를 결단할 수 있다. 송사는 화평한 일이 아니니 마땅히 안전한 땅을 가려 처해야 하고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되므로, 큰 내를 건너는 것은 이롭지 않다.

주희『주역본의』및 어록

訟,争辯也。上乾下坎,乾剛坎險。上剛以制其下,下險以伺其上。又為内險而外健,又為已險而彼健,皆訟之道也。九二中實,上无應與,又為加憂。且於卦變,自遯而來,為剛來居二,而當下卦之中,有有孚而見窒、能懼而得中之象。上九過剛,居訟之極,有終極其訟之象。九五剛健中正,以居尊位,有大人之象。以剛乘險,以實履䧟,有不利渉大川之象。故戒占者,必有争辯之事,而随其所處為吉凶也。

訟,攻責也。如今訟人,攻責其短而訟之。自訟,則反之於身亦如此。

송(訟)은 다투어 분별하는 것이다. 위는 건(乾)이고 아래는 감(坎)이니, 건은 강하고 감은 험하다. 위의 강함은 아래를 제어하려 하고, 아래의 험함은 위를 엿보려 한다. 또 안은 험하고 밖은 굳세며, 자기는 험하고 상대는 굳세니 모두 송사의 도다. 구이가 속이 찼으나 위에 응원이 없고 또 근심을 더한다. 또 괘변으로 보면 돈(遯)괘에서 와서 강이 이효에 거하여 하괘의 가운데를 맡으니, 믿음이 있으나 막힘을 당하고 능히 두려워하여 중을 얻는 상이 있다. 상구는 지나치게 강하여 송사의 끝에 거하니 송사를 끝까지 하는 상이 있다. 구오는 강건중정으로 존위에 거하니 대인의 상이 있다. 강함으로 험함을 타고 실함으로 빠진 곳을 밟으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지 않은 상이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자에게 반드시 다툴 일이 있으리니 그 처한 바에 따라 길흉이 됨을 경계한 것이다. — 송(訟)은 공격하고 책망함이다. 지금 남을 송사하는 자가 그 단점을 공격하고 책망하여 송사함과 같다. ’자송(自訟, 스스로를 꾸짖음)’은 그것을 자신에게 돌이키는 것이니 또한 이와 같다.

후재 풍씨

有孚而窒焉,故訟;訟而未明,則惕。

믿음이 있으나 막혀 있으므로 송사가 되고, 송사를 하되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두려워한다.

잠재 호씨

曲直未明故窒,勝負未明故惕。中吉,虞芮之相遜是也;終凶,雍子納賂而蔽罪邢侯是也。

곡직이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막힌 것이요, 승부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두려운 것이다. ’중길’은 우(虞)·예(芮) 두 나라가 서로 밭을 양보한 일이 이것이요, ’종흉’은 옹자(雍子)가 뇌물을 바쳐 형후(邢侯)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일(끝내 둘 다 죽었다)이 이것이다.

반간 동씨

九二中實為有孚,坎險為窒,坎為加憂為惕。九二居下卦之中,故曰有信而見窒、能懼而得中也。終凶,盖取上九終極於訟之象;利見大人,盖取九五剛健中正居尊之象;不利涉大川,又取以剛乘險、以實履䧟之象。此取義不一也。然亦有不必如此取者,此特其一例也。先生嘗曰:卦辭如此辭極齊整,葢所取諸爻義,皆與爻中本辭協。亦有雖取爻義,而與爻本辭不同者,此為不齊整處是也。

구이가 속이 차니 유부가 되고, 감의 험함이 막힘(窒)이 되고, 감은 근심을 더하니 두려움(惕)이 된다. 구이가 하괘의 가운데에 거하므로 ’믿음이 있으나 막힘을 당하고 능히 두려워하여 중을 얻었다’고 한 것이다. ’종흉’은 대개 상구가 송사를 끝까지 하는 상을 취했고, ’이견대인’은 구오가 강건중정하여 존위에 거한 상을 취했으며, ’불리섭대천’은 강으로 험을 타고 실함으로 빠진 곳을 밟는 상을 취한 것이다. 이렇게 뜻을 취함이 한결같지는 않으니, 반드시 이처럼 취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이는 다만 한 예일 뿐이다. 선생(주희)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길, 이 괘사처럼 말이 지극히 가지런한 것은 대개 취한 바 여러 효의 뜻이 모두 효의 본래 말과 들어맞기 때문이라 하셨다. 또한 효의 뜻을 취했으나 효의 본래 말과 같지 않은 것도 있으니, 이것이 가지런하지 못한 곳이다.

운봉 호씨

需訟二卦,皆以坎之中實為主。特需之坎在上,為光為亨;訟之坎在下,為窒為惕。窒惕者,光亨之反也。本義謂涉川尤貴於能待,就需待之義説利涉;以剛乘險、以實履䧟,就爭訟之危説不利涉。其義精矣。大槩能安其分,則為需以相待;不能安其分,則為訟以相持。故需卦辭有吉无凶,有利无不利;於訟則曰如是而吉,如是而凶,如是而利,如是而不利,别白言之。所謂随其所處為吉凶者也。

수(需)와 송(訟) 두 괘는 모두 감(坎)의 중실을 주인으로 삼는다. 다만 수괘의 감은 위에 있어 빛(光)과 형통(亨)이 되고, 송괘의 감은 아래에 있어 막힘(窒)과 두려움(惕)이 된다. 막힘과 두려움은 빛남과 형통의 반대다. 본의에서 ’내를 건넘은 더욱 기다림을 귀히 여긴다’고 한 것은 수괘의 기다리는 뜻에서 ’이섭(利涉)’을 말한 것이요, ’강으로 험을 타고 실함으로 빠진 곳을 밟는다’고 한 것은 송괘의 위태로움에서 ’불리섭(不利涉)’을 말한 것이니 그 뜻이 정밀하다. 대개 제 분수를 편안히 여기면 수(需)가 되어 서로 기다리고, 분수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면 송(訟)이 되어 서로 버틴다. 그러므로 수괘 괘사에는 길만 있고 흉이 없으며 이로움만 있고 불리함이 없으나, 송괘에서는 ’이러면 길하고 저러면 흉하며 이러면 이롭고 저러면 불리하다’고 구별하여 밝혔으니, 이른바 ’그 처한 바에 따라 길흉이 된다’는 것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訟,上剛下險,險而健。訟,有孚窒惕,中吉,剛來而得中也。終凶,訟不可成也。利見大人,尚中正也。不利涉大川,入于淵也。

단전에 이르길, 송(訟)은 위는 강하고 아래는 험하니 험하면서도 굳세다. ’송은 믿음이 있으나 막히고 두려워하며 중하면 길하다’는 것은 강이 와서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 ’종흉’은 송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며, ’이견대인’은 중정을 숭상하기 때문이고, ’불리섭대천’은 깊은 못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訟之為卦,上剛下險,險而又健也。又為險健相接,内險外健,皆所以為訟也。若健而不險,不生訟也;險而不健,不能訟也。險而又健,是以訟也。

송의 괘 됨이 위는 강하고 아래는 험하여 험하면서도 또 굳세다. 또 험함과 굳셈이 서로 접하고 안은 험하고 밖은 굳세니 모두 송사가 되는 까닭이다. 굳세되 험하지 않으면 송사가 생기지 않고, 험하되 굳세지 않으면(유약하면) 송사할 수 없다. 험하면서 또 굳세므로 이 때문에 송사가 된다.

訟之道固如是。又據卦才而言,九二以剛自外來而成訟,則二乃訟之主也。以剛處中,中實之象,故為公言。

송사의 도가 진실로 이와 같다. 또 괘의 자질로 말하면, 구이가 강으로 밖에서 와 송괘를 이루었으니 곧 이효가 송의 주인이다. 강으로 가운데 처하니 속이 찬 상이므로 공적인 말이 된다.

訟非善事,不得已也。安可終極其事?極意於其事則凶矣,故曰不可成也。成,謂竆盡其事也。

訟者,求辯其是非也。辯之當,乃中正也。故利見大人,以所尚者中正也。聽者非其人,則或不得其中正也。中正大人,九五是也。

與人訟者,必處其身於安平之地。若蹈危險,則䧟其身矣,乃入于深淵也。

송사는 좋은 일이 아니요 부득이한 것이다. 어찌 그 일을 끝까지 갈 수 있겠는가? 그 일에 뜻을 극진히 하면 흉하므로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성(成)이란 그 일을 끝까지 파헤침을 이른다. — 송이란 그 시비를 분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분별이 마땅한 것이 곧 중정이다. 그러므로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 그가 숭상하는 바가 중정이기 때문이다. 판결을 듣는 자가 그 사람(대인)이 아니라면 혹 그 중정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중정한 대인은 구오다. — 남과 송사하는 자는 반드시 그 몸을 안전하고 평탄한 땅에 두어야 한다. 만약 위험을 밟으면 그 몸을 빠뜨리는 것이니, 곧 깊은 못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희『주역본의』및 어록

以卦徳釋卦名義。

以卦變、卦體、卦象釋卦辭。

訟卦變自遯而來,為剛來居二。此是卦變中二爻變者。葢四陽二隂自遯來者十四卦,訟即初變之卦。剛來居二,柔進居三,故曰剛來而得中。

卦中有中正險䧟之象。

괘덕(卦德)으로 괘의 이름과 뜻을 해석한 것이다. — 괘변·괘체·괘상으로 괘사를 해석한 것이다. — 송괘는 돈(遯)괘에서 변하여 와서 강이 이효에 거한 것이다. 이는 괘변 가운데 두 효가 변한 것이다. 대개 사양이음(四陽二陰)으로 돈괘에서 온 것이 열넷인데 송괘는 곧 처음 변한 괘다. 강이 이효에 거하고 유가 삼효로 나아가므로 ’강이 와서 중을 얻었다’고 한 것이다. — 괘 가운데 중정과 험함(함정)의 상이 있다.

숭산 조씨

上以剛陵下,下不險則未必訟;下以險䧟上,上不剛則未必訟。外健而内不險,未必生訟;内險而外不健,未必能訟。

위가 강함으로 아래를 능멸해도 아래가 험하지 않으면 반드시 송사하지 않고, 아래가 험함으로 위를 빠뜨리려 해도 위가 강하지 않으면 반드시 송사하지 않는다. 밖이 굳세고 안이 험하지 않으면 반드시 송사를 낳지 않으며, 안이 험해도 밖이 굳세지 않으면 반드시 송사하지 못한다.

운봉 호씨

上下以分言,本不當訟。上剛以勢陵下也,下險其情始不可測矣。以一人言,内險而外健;以二人言,已險而彼健也。

상하의 분수로 말하면 본래 송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윗사람이 강함으로 세력을 믿고 아래를 능멸하고, 아랫사람은 험하여 그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한 사람으로 말하면 안은 험하고 겉은 굳센 것이요, 두 사람으로 말하면 자기는 험하고 상대는 굳센 것이다.

有孚處訟之時,雖有孚信,亦必艱阻窒塞而有惕懼,不窒則不成訟矣。又居險䧟之中,亦為窒塞惕懼之義。二以陽剛自外來而得中,為以剛來訟而不過之義,是以吉也。卦有更取成卦之由為義者,此是也。卦義不取成卦之由,則更不言所變之爻也。據卦辭,二乃善也,而爻中不見其善。葢卦辭取其有乎得中而言乃善也;爻則以自下訟上為義,所取不同也。

’유부’는 송사의 때에 처하여 비록 믿음이 있어도 반드시 어렵고 막혀 두려움이 있는 것이니, 막히지 않으면 송사를 이루지 않는다. 또 험함에 빠진 가운데 거하므로 또한 막히고 두려운 뜻이 된다. 구이가 양강으로 밖에서 와 중을 얻었으니, 강으로 송사하러 왔으되 지나치지 않은 뜻이 되어 이 때문에 길하다. 괘에서 다시 ’괘가 이루어진 유래’를 취하여 뜻을 삼은 것이 있으니 이것이 그것이다. 괘사에 의거하면 이효가 곧 선한 것인데 효사에서는 그 선함이 보이지 않는다. 대개 괘사는 그 ’중을 얻음’을 취해 선하다 했고, 효사는 ’아래에서 위를 송사함’을 뜻으로 삼았으니 취한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진재 서씨

天下唯剛者訟,柔者不訟。以險而遇健,所以訟也。二以剛中,則為有孚。但二五剛敵而不相應,上下猶有窒塞之情。必因其窒塞,而懐吾怵惕憂懼之心,不過於訟,則為吉。以其剛來而得中也。訟卦下體本艮,今九自三來居於下卦之中而成訟,故得訟之中吉。終極而成則凶,故又以不可成戒之。

천하에 오직 강한 자가 송사하고 유한 자는 송사하지 않는다. 험함으로 굳셈을 만나니 송사하는 까닭이다. 구이가 강중하니 유부가 된다. 다만 이효와 오효가 강으로 대적하여 서로 응하지 않으니 상하에 오히려 막히는 정이 있다. 반드시 그 막힘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품어 송사에 지나치지 않으면 길하니, 강이 와서 중을 얻었기 때문이다. 송괘의 하체는 본래 간(艮)인데 지금 양이 삼효에서 와 하괘의 가운데에 거하여 송을 이루었으므로 송사의 ’중길’을 얻은 것이다. 끝까지 가서 이루면 흉하므로 또 ’이룰 수 없다’로 경계한 것이다.

건안 구씨

剛來而得中,此卦變也。易中言卦變,始於此。剛自上而反下為來,柔自下而升上為徃為進。凡卦中言剛柔上下之徃來者,多三隂三陽之卦,謂内外兩體之變也;如噬嗑、賁之類是也。有四陽二隂、四隂二陽之卦,亦言剛來柔進者,謂上下一爻之變也;如訟、晉之類是也。聖人之言卦變,於此見其兩端焉。

’강이 와서 중을 얻었다’는 것은 괘변(卦變)이다. 역에서 괘변을 말한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강이 위에서 아래로 돌아옴을 ’래(來)’라 하고, 유가 아래에서 위로 오름을 ‘왕(往)’ 또는 ’진(進)’이라 한다. 무릇 괘에서 강유의 상하 왕래를 말한 것은 대부분 삼음삼양의 괘로 안팎 두 몸의 변함을 이르니 서합·비 따위가 이것이요, 사양이음·사음이양의 괘로 ’강래 유진’을 말한 것은 상하 한 효의 변함을 이르니 송·진(晉) 따위가 이것이다. 성인이 괘변을 말함에 여기서 그 두 갈래를 볼 수 있다.

양씨(성재 양씨)

虞芮爭田之訟,必欲見文王,故其訟之理決;䑕牙雀角之誠偽,必欲見召伯,故其訟之理明。為聽訟之大人者,不尚中正可乎?

우나라와 예나라가 밭을 다툰 송사는 반드시 문왕을 뵙고자 했으므로 그 송사의 이치가 결단났고, 쥐 이빨과 참새 뿔 같은 사소한 참·거짓은 반드시 소백(召伯)을 뵙고자 했으므로 그 송사의 이치가 밝혀졌다. 송사를 판결하는 대인이 된 자가 중정을 숭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원문과 주석 — 대상전(大象傳)

象曰:天與水違行,訟;君子以作事謀始。

상전에 이르길,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행하는 것이 송(訟)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일을 지음에 시작을 도모한다.

정이천『이천역전』

天上水下,相違而行,二體違戾,訟之由也。若上下相順,訟何由興?君子觀象,知人情有爭訟之道,故凡所作事,必謀其始。絶訟端於事之始,則訟无由生矣。謀始之義廣矣,若慎交結、明契券之類是也。

하늘은 위에 있고 물은 아래에 있어 서로 어긋나게 행하니, 두 몸이 어긋나고 거스름이 송사의 유래다. 만약 상하가 서로 순하다면 송사가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군자가 상을 관찰하여 사람의 정에 다투는 도가 있음을 아는 까닭에, 무릇 일을 지을 때 반드시 그 처음을 도모한다. 일의 처음에 송사의 실마리를 끊으면 송사가 생겨날 까닭이 없다. 처음을 도모하는 뜻은 넓으니, 사귐을 삼가고 계약서를 분명히 하는 따위가 이것이다.

주희『주역본의』

天上水下,其行相違。作事謀始,訟端絶也。

하늘은 위에 있고 물은 아래에 있어 그 행함이 서로 어긋난다. 일을 지음에 처음을 도모하면 송사의 실마리가 끊어진다.

구산 양씨

天左旋而水東注,違行也。作事至於違行,而後謀之,則无及矣。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니 어긋나게 행하는 것이다. 일을 짓다가 어긋나게 행하는 데 이른 뒤에야 도모하려 하면 미칠 수 없다.

운봉 호씨

凡事有始有中有終。訟,中吉終凶。然能謀於其始,則訟端既絶,中與終不必言矣。

무릇 일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 송(訟)은 중간은 길하고 끝은 흉하다. 그러나 능히 그 처음에 도모하면 송사의 실마리가 이미 끊어지니 중간과 끝은 말할 필요도 없다.

평암 항씨

乾陽生於坎水,坎水生於天一。乾坎本同氣而生者也。一動之後,相背而行,遂有天淵之隔。由是觀之,天下之事,不可以細㣲而不謹也,不可以親暱而不敬也。禍難之端,夫豈在大?曹劉共飯,地分於匕筯之間;蘇史滅宗,忿起於笑談之頃。謀始之誨,豈不深切著明乎?

건양(乾陽)은 감수(坎水)에서 생겨나고 감수는 천일(天一)에서 생겨나니, 건과 감은 본래 같은 기운에서 난 것이다. 그러나 한번 움직인 뒤 서로 등지고 행하여 마침내 하늘과 못의 격차를 두게 되었다. 이로 보건대 천하의 일은 가늘고 미세하다고 삼가지 않을 수 없고, 친하다고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화난(禍難)의 실마리가 어찌 큰 데 있겠는가? 조조와 유비가 밥을 함께 먹을 때 천하의 땅이 숟가락과 젓가락 사이에서 나뉘었고, 소씨와 사씨가 종족을 멸한 분함이 웃고 떠드는 잠깐 사이에 일어났다. 처음을 도모하라는 가르침이 어찌 깊고 절실하며 분명하지 않겠는가?

단양 도씨

天為三才之始,水為五行之始。君子法之,作事謀始。

하늘은 삼재(三才)의 시작이고 물은 오행(五行)의 시작이다. 군자가 이를 본받아 일을 지음에 처음을 도모한다.

여섯 효 — 자리마다 다른 말

변화의 지도

도전(綜)水天需위아래를 뒤집으면
배합(錯)地火明夷음양을 모두 바꾸면
호괘(互)風火家人속에 품은 괘

서괘의 이음:← 水天需天水訟地水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