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상구는 송괘(訟卦)의 맨 끝, 강함이 극에 이른 자리다. 여섯 효 가운데 유일하게 끝까지 싸워 이긴 자리이며, 그 대가로 큰 띠(鞶帶) — 곧 벼슬을 하사받는다. 겉보기에는 완승이다. 그러나 경문은 곧바로 잔인한 뒷말을 붙인다. 아침이 다 가기도 전에 그것을 세 번이나 빼앗긴다(終朝三褫之). 힘으로 얻은 것은 힘으로 잃는다.
왜 그런가. 큰 띠는 본래 덕 있는 이에게 내리는 명복(命服)이지, 잘 싸운 자에게 주는 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쟁탈로 차지한 자리는 명분이 없다. 공자가 소상전에서 “송사로 관복을 받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 못 된다”(以訟受服,亦不足敬也)고 못박은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들은 승자를 우러르지 않고 “저 독한 자”라 손가락질한다. 존경이 빠진 자리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 곧 무너진다.
송괘 전체가 하나의 결론을 향한다. 송사는 이룰 수 없다(訟不可成). 약한 초육과 육삼은 굽혀서 화를 면했고, 강한 구이와 구사는 참아서 몸을 보전했다. 오직 끝까지 이기려 한 상구만 망신을 당했다. 다툼에서 완벽한 승리를 노리는 마음, 그 자체가 이미 패배의 씨앗이다.
오늘 하루의 태도
오늘 어떤 다툼에서 이길 기회가 오거든, 이겨야 할 만큼만 이기고 멈추라. 상대를 끝까지 몰아붙여 완전히 눌러버리려는 순간, 이긴 나 역시 상처투성이가 된다. 승리감에 취해 멈추지 못하는 것 — 기세가 뻗칠 대로 뻗쳐 회수하지 못하는 항(亢)의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공격이 성공한 직후가 가장 위험하다. 몸도 마음도, 이겼다 싶은 그 순간 곧바로 힘을 빼고 중심을 낮춰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긴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만이 이긴 것을 지킨다.
원문과 주석 — 상구 효사와 소상전, 그리고 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와 소상전(小象傳)
上九:或錫之鞶帶,終朝三褫之。 상구는 혹 큰 띠(관복·벼슬)를 하사받더라도, 아침이 가기 전에 세 번이나 빼앗긴다.
象曰:以訟受服,亦不足敬也。 상전에 말하였다. 송사함으로써 관복을 받는 것은, 또한 족히 공경받지 못하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以陽居上,剛健之極,又處訟之終,極其訟者也。人之肆其剛強,竆極於訟,取禍喪身,固其理也。設或使之善訟能勝,竆極不已,至於受服命之賞,是亦與人仇爭所獲,其能安保之乎?故終一朝而三見褫奪也。 구(9)는 양으로서 위에 거하니 강건함이 지극하고, 또 송사의 마침에 처했으니 그 송사를 끝까지 하는 자이다. 사람이 그 강함을 방자히 하여 송사에 끝장을 다하면, 화를 취하고 몸을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설령 송사를 잘하여 능히 이기고 끝장을 마지않아 벼슬의 상을 받는 데 이르렀다 하더라도, 이것은 남과 원수가 되어 다투어 얻은 것이니 어찌 능히 편안하게 보전하겠는가. 그러므로 하루 아침이 끝나기도 전에 세 번이나 빼앗김을 당하는 것이다.
象曰:竆極訟事,設使受服命之寵,亦且不足敬而可賤惡,况又禍患隨至乎? (상전 해설) 송사를 끝까지 하여 설사 벼슬의 은총을 받았더라도, 또한 족히 존경할 수 없고 천하고 미워할 만한데, 하물며 또 화와 근심이 따라 이름에 있어서랴.
주자『주역본의』
鞶帶,命服之飾。褫,奪也。以剛居訟極,終訟而能勝之,故有錫命受服之象。然以訟得之,豈能安久?故又有終朝三褫之象。其占為終訟无理而或取勝,然其所得終必失之。聖人為戒之意深矣。 ’반대(鞶帶)’는 관복의 장식이다. ’치(褫)’는 빼앗음이다. 강함으로 송사의 극에 거하여 송사를 끝까지 하여 능히 이겼으므로, 명을 받고 옷을 받는 상이 있다. 그러나 송사로 얻었으니 어찌 능히 편안하고 오래가겠는가. 그러므로 또 ‘아침이 다하기 전에 세 번 빼앗기는’ 상이 있다. 그 점은 ’송사를 끝까지 함은 이치가 없으나 혹 승리를 취할 수는 있는데, 그 얻은 바를 마침내 반드시 잃는다’는 것이다. 성인이 경계로 삼으신 뜻이 깊다.
제가(諸家)
남헌 장씨 — 육삼과 상구를 견준다.
以六三對上九,剛柔不敵矣。故六三但食舊徳,而上九錫之鞶帶焉。 육삼을 상구와 대조하면 강과 유가 대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육삼은 단지 옛 덕을 먹을 뿐이고, 상구는 싸워 이겨 큰 띠를 하사받는 것이다.
겸산 곽씨 — 큰 띠의 본뜻을 밝힌다.
鞶帶,大帶也。男子鞶帶,婦人帶絞。盖爵命之服,非以賞訟。 반대는 큰 띠이다. 남자는 가죽 띠를 하고 부인은 무명 띠를 띤다. 대개 벼슬의 옷이지, 송사를 상주는 것이 아니다.
운봉 호씨 — ’혹(或)’의 뜻을 새긴다.
或是設若也,非必之辭。上九過於剛,設若訟勝而得鞶帶,終朝且三禠之。况鞶帶命服,以錫有徳,非以賞訟也。豈有必得之理?甚言訟之不可終也。 ’혹(或)’은 만약이라는 뜻이니 반드시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상구는 강함에 지나쳐서 ‘설령 만약’ 송사에 이겨 큰 띠를 얻더라도 아침이 다하기 전에 세 번 빼앗긴다. 하물며 큰 띠와 관복은 덕 있는 자에게 내리는 것이지 송사를 상주는 것이 아니니, 어찌 반드시 얻을 이치가 있겠는가. 송사는 끝까지 해서는 안 됨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
평암 항씨 — 끝까지 싸우는 흉한 사람.
上九以剛居柔,可以不克訟矣。而在訟之終,居髙用剛,不勝不已。此終訟之凶人也。 상구는 강함으로 유의 자리에 거하니 가히 송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송사의 마침에 있고 높은 자리에서 강함을 쓰니, 이기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는다. 이는 송사를 끝까지 하는 흉한 사람이다.
후재 풍씨 — 초효와 상효의 침묵을 견준다.
初六上九,不能无訟明矣。而初不言訟,杜其始也;上不言訟,惡其終也。 초육과 상구는 송사가 없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초효에서 ’송’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 시작을 막은 것이요, 상효에서 ’송’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 마침을 미워한 것이다.
반간 동씨 — 송괘 전체를 아우른 총평.
觀訟一卦之體,只是訟不可成。初只不永所事,九二不克訟,六三守舊居正、非能訟者,九四不克訟而能復就正理、渝變心志、安處於正,九五聼訟元吉。上九雖有鞶帶之錫,而不免終朝之三褫。首尾皆是不可訟之意。故彖曰「終凶」,「訟不可成」,此即本義所指卦體者是也。 송괘의 체를 보건대, 단지 ’송사는 이룰 수 없다(訟不可成)’는 것이다. 초육은 일을 오래 끌지 않고, 구이는 이기지 못하고, 육삼은 옛것을 지키며 바름에 거하니 능히 송사할 자가 아니다. 구사는 이기지 못하여 능히 바른 이치로 돌아와 심지를 바꾸어 바름에 편안히 처하고, 구오는 송사를 들어주어 크게 길하다. 상구는 비록 큰 띠를 받음이 있으나 아침이 다하기 전 세 번 빼앗기는 모욕을 면치 못한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송사는 불가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단전에서 ‘마침은 흉하다’, ’송사는 이룰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곧 주자가 가리킨 ’괘체’라는 것이다.
건안 구씨 — 여섯 효를 강유(剛柔)로 갈라 본 총평.
以六爻言之,則上乾三爻與下坎三爻訟也。九五居尊,為聼訟之主,故訟元吉。餘五爻則皆訟者也。然天下之人,惟剛者訟,柔者不訟。初與三,柔也,故初不永所事而終吉,三食舊徳而終吉。二四上,剛也。二與五對,揆勢不敵而不訟;四與初對,顧理不可而不訟;亦以其居柔,故二无眚而四安貞也。獨上九處卦之竆,下與三對,柔不能抗,故有錫鞶帶之辭焉。然一日三褫,辱亦甚矣。訟之勝者,何足敬哉? 여섯 효로 말하면 상괘 건(乾)의 세 효와 하괘 감(坎)의 세 효가 송사하는 것이다. 구오는 존위에 거하여 송사를 듣는 주인이 되므로 크게 길하다. 나머지 다섯 효는 모두 송사하는 자이다. 그러나 천하 사람은 오직 강한 자가 송사하고 유한 자는 송사하지 않는다. 초육과 육삼은 유(柔)이므로, 초는 일을 오래 끌지 않아 길하고 삼은 옛 덕을 먹어 길하다. 구이·구사·상구는 강(剛)이다. 구이는 구오와 대적하나 형세를 헤아려 대적할 수 없어 송사하지 않았고, 구사는 초와 응하나 이치를 돌아보아 불가하므로 송사하지 않았으니, 또한 유의 자리에 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이는 재앙이 없고 구사는 편안하고 바르다. 오직 상구만이 괘의 궁극에 처하고 아래로 육삼과 대하매, 유약한 삼이 능히 저항하지 못하므로 ’큰 띠를 하사받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 빼앗기니 욕됨이 심하다. 송사해서 이긴 자를 어찌 족히 공경하겠는가.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