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송괘(訟)의 구이는 굳센 힘(양강)을 지녔고 험한 자리(坎) 한가운데 앉아, 본래 한바탕 다투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힘도 있고 물러설 곳도 없으니 싸움의 불씨를 품기 딱 좋다. 그러나 그가 맞서려는 상대는 하필 존위에 앉은 지극히 굳센 구오, 그것도 중정(中正)을 얻은 임금의 자리다. 정이천의 말대로 “그가 가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형국이니, 이 다툼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형세의 문제다.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효사는 ‘불극송(不克訟)’, 곧 “송사를 이기지 못한다”고 먼저 못 박는다. 여기서 구이의 지혜가 갈린다. 이길 수 없음을 알았으면 돌아와 몸을 피해 숨고(歸而逋), 세력을 아주 작게 줄여 삼백호의 작은 마을에 납작 엎드린다. 정이천은 이를 “적고 검약함으로 자처한다(寡約自處)“고 했다. 그렇게 하면 겨우 재앙이 없다(无眚). 눈여겨볼 것은 ’길하다’가 아니라 ’재앙이 없다’는 말이다. 초구·육삼·구사가 모두 끝내 길함을 얻는데 구이만 겨우 화를 면하는 데 그치는 까닭을, 쌍호 호씨는 “먼저 분수를 범하려다(犯分) 이기지 못하고 나서야 숨었기 때문”이라 짚었다. 애초에 위를 걸고넘어질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변화의 길목에 선 사람에게 이 효는 앞을 내다보며 말한다. 살다 보면 상대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큰 다툼과 마주친다. 그때의 용기는 끝까지 버티는 데 있지 않고, “내가 못 이기겠구나”를 빨리 정직하게 인정하고 몸을 낮추는 데 있다. 물러남에도 격이 있다. 진재 서씨의 경고대로, 물러난다면서 여전히 큰 읍을 끌어안고 있으면 그 자취가 도리어 의심을 산다. 진짜로 놓았다면 세력까지 내려놓아 자신을 작게 만들어야 한다. 작아지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재앙이 이르는 것을 손으로 줍듯(患至掇) 자초하지 않으려는 살아남는 자의 계산이다.
삶에의 적용
오늘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나 상황과 부딪히거든, 맞서는 힘부터 0으로 내려라. 손아귀에 힘을 꽉 줄수록 모래밭에서 더 깊이 빠지듯, 버틸수록 화는 커진다. 몸을 뒤로 빼고(退) 작게 웅크리는 축신(縮身)의 이치가 그대로 삶에도 통한다. 호흡을 깊이 내려 중심을 낮추고, 씀씀이와 활동 반경과 벌여 놓은 관계를 한 겹 덜어 내라. 덩치가 크면 표적이 된다. 지금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것은 물러섬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나를 지키는 자기 수양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 주자, 제가
경문·소상전
九二:不克訟,歸而逋。其邑人三百戸,无眚。
구이는 송사를 이기지 못하니, 돌아와서 피하여 숨는다(歸而逋). 그 읍 사람이 삼백 호(작은 마을)이니, 재앙이 없다(无眚).
象曰:不克訟,歸逋竄也。自下訟上,患至掇也。
상전에 말하였다. ’송사를 이기지 못함’은 돌아와서 도망쳐 숨는 것(逋竄)이다. ’아래로부터 위를 송사함(自下訟上)’은 환난이 이르는 것을 줍는 것(자초하는 것)과 같다(患至掇).
정이천 『이천역전』
二五相應之地,而兩剛不相與,相訟者也。九二自外來,以剛處險,為訟之主,乃與五為敵。五以中正處君位,其可敵乎?是為訟而義不克也。若能知其義之不可,退歸而逋避,以寡約自處,則得无過眚也。必逋者,避為敵之地也。三百户,邑之至小者。若處強大,是猶競也,能无眚乎?眚,過也,處不當也,與知惡而為有分也。
2와 5는 상응하는 자리이나 두 양(양강)이라 서로 더불지 못하고 서로 송사하는 자이다. 구이가 밖에서 와서 강으로써 험한 데 처하니 송사의 주인이 되는데, 이에 구오와 대적이 된다. 5효가 중정함으로써 군주 자리에 처했으니, 그(구이)가 가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송사를 하되 의리상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그 의리상 불가함을 알아서, 물러나 돌아가 도망치고 피하며, 적고 검약함(寡約)으로써 자처하면, 허물과 재앙(眚)이 없음을 얻을 것이다. 반드시 ’도망친다(逋)’고 한 것은 대적하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삼백 호’는 읍의 지극히 작은 것이다. 만약 강대함에 처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다투는 것이니, 능히 재앙이 없겠는가? ’생(眚)’은 허물이니 처신이 마땅치 않음이요, 악을 알면서도 하는 것과 구분이 있다. (逋는 보, 眚은 생으로 읽는다.)
象曰:義既不敵,故不能訟。歸而逋竄,避去其所也。
(상전 해설) 의리가 이미 대적할 수 없으므로 능히 송사할 수 없는 것이다. ’돌아가서 도망쳐 숨는다(逋竄)’는 것은 그 장소(다투는 곳)를 피하여 떠나는 것이다.
自下而訟其上,義乖勢屈,禍患之至,猶拾掇而取之,言易得也。
아래로부터 그 윗사람을 송사하니 의리가 어그러지고 형세가 굽혀져서, 화와 환난이 이르는 것이 마치 주워 오는(拾掇) 것과 같으니, (화를) 얻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九二陽剛,為險之主,本欲訟者也。然以剛居柔,得下之中,而上應九五。陽剛居尊,勢不可敵,故其象占如此。邑人三百户,邑之小者。言自處卑約,以免災患。占者如是,則无眚矣。(掇,自取也。故僅可以无眚焉耳。)
구이는 양강으로 험함(坎)의 주인이니 본래 송사하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강(양)으로 유(음)위(2효)에 거하여 하괘의 중을 얻었고 위로 구오에 응한다. (그런데 구오가) 양강으로 존위에 거하니 형세가 가히 대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읍인 삼백 호’는 읍의 작은 것이다. 스스로를 낮고 검약하게(卑約) 처신함으로써 재환을 면함을 말한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이 하면 재앙이 없을 것이다. (주: ’철(掇)’은 스스로 취함이다. 그러므로 겨우 재앙이 없을 수 있을 뿐이다.)
朱子曰:九二正應在五,五亦陽,故為窒塞之象。不克訟,歸而逋,其邑人三百户,无眚。何故不言二百户?以其有定數也。今觧者却要牽強,故只得説小邑。某嘗以為易有象數者以此。聖人之象,便依樣子。今不可考。王弼説得意㤀象,是要㤀了這象;伊川又説假象,是只要假借此象。今看得不觧恁地,全無那象,只是不可知,只得且從理上説。
주희가 말하였다. 구이의 정응이 5에 있는데 5 또한 양이므로 막히는(窒塞) 상이 된다. ’삼백 호’라 하고 어째서 ’이백 호’라 하지 않았는가? 그 정해진 수(定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해석하는 자들은 도리어 견강부회하려 하므로 단지 ’작은 읍’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일찍이 역에는 상수(象數)가 있다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이다. 성인의 상은 문득 모양(건너온 근거)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상고할 수 없다. 왕필은 ’뜻을 얻으면 상을 잊는다(得意忘象)’고 하여 이 상을 잊으려 했고, 정이천은 또 ’가상(假象, 빌려온 상)’이라 하여 단지 이 상을 가탁한 것으로 하려 했다. 지금 보건대 그렇게 풀어서는 안 되고, 전적으로 그 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있는데 모르는 것), 단지 알 수 없을 뿐이니 부득이 이치(理)를 따라 설명할 뿐이다.
제가(諸家)
절재 채씨가 말하였다.
節齋蔡氏曰:克,能也。位柔故不克。逋,逃也。隐兩柔之中,有逋象。邑,内地。退處卑小,故无眚。
’극(克)’은 능함이다. 자리가 유(음위)하므로 이기지(능하지) 못한다. ’포(逋)’는 도망침이다. 두 유(초·삼효) 사이에 숨으니 ’포’의 상이 있다. ’읍’은 안쪽 땅이다. 물러나 낮고 작은 데 처하므로 재앙이 없다.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雲峰胡氏曰:九二九四,皆以剛居柔,故皆不克訟。但九四居健體之初,非能用其健者;九二為險體之主,則本欲用其險者。本義謂其本欲訟,葢誅其心而言之也。但以九五勢不可敵,故從而退避省約。然則二之不克訟,非不能也,勢不可也。
구이와 구사는 모두 강(양)으로서 유(음)자리에 거하므로 모두 송사를 이기지(수행하지) 못한다. 다만 구사는 건체(乾)의 초기에 거하여(강하긴 하나) 능히 그 굳셈을 쓰지 못하는 자이고, 구이는 험체(坎)의 주인이니 본래 그 험함을 쓰고자 하는 자이다. 본의(주희)에서 ’본래 송사하고자 하는 자’라고 한 것은 대개 그 마음을 베어서(誅其心, 의도를 간파하여) 말한 것이다. 단지 구오의 형세를 가히 대적할 수 없으므로, 따라서 물러나 피하고 덜어서 절약(省約)한 것이다. 그렇다면 2효의 불극송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형세가 불가한 것이다.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進齋徐氏曰:退處卑小,示屈服之意也。茍猶據大邑,雖曰退聽,跡尚可疑。如都城百雉,足以偶國。臧武仲據防請後,豈理也哉?
물러나 낮고 작은 데 처함은 굴복의 뜻을 보이는 것이다. 만약 오히려 큰 읍(大邑)을 점거하고 있다면, 비록 물러나 명령을 듣는다(退聽)고 말하더라도 자취가 오히려 의심스럽다. 마치 (춘추시대에 제후의) 도성이 백 치(百雉, 높이 단위)가 되면 족히 나라와 짝하여 위협이 되는 것과 같다. 장무중이 방(防) 땅을 점거하고 후사를 요청한 것(협박)이 어찌 이치이겠는가?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雙湖胡氏曰:六爻自五君位外,上不足言,初三四吉,二僅无眚者,以犯分於先,不克而後逋竄,非本无訟上之心也。易於君臣之分,其嚴矣哉!
6효 중에서 5효 군위를 제외하고 상효(흉)는 말할 것도 없고, 초·삼·사효는 다 길한데(초육은 종길, 육삼은 종길, 구사는 길), 유독 2효만 겨우 ’무생(재앙이 없음)’인 것은, 앞서 분수를 범하려다(犯分) 이기지 못하고 난 뒤에야 도망쳐 숨었기 때문이니, 본래 윗사람과 송사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이 군신의 분수에 있어 그 엄격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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