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괘가 말하는 것
화지진(晉)은 나아감의 괘다. 위는 불(離), 아래는 땅(坤)이니, 해가 땅 위로 솟아오르는 형상이다(明出地上). 그러나 이 괘의 이름은 그저 앞으로 갈 진(進)이 아니라 밝을 진(晉)이다. 정이천이 짚었듯 진(進)은 앞으로 나아감만을 뜻해 밝고 성대해지는 뜻을 담지 못하지만, 진(晉)은 밝음이 나아가 점점 더 성해지는(明進而盛) 아침의 때를 가리킨다. 어둠 속에 축적된 것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받아 드러나고 인정받는 시간이다. 변화의 시대에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이 궤도에 올라 이름을 얻기 시작할 때, 이 괘가 우리 앞에 놓인다.
괘사는 이 밝은 때를 하나의 장면으로 그린다. 나라를 편안케 한 제후(康侯)가 임금에게 나아가, 수레와 말을 무리로 하사받고(錫馬蕃庶) 하루에 세 번이나 극진히 접견받는다(晝日三接). 그런데 여기서 강후가 누구인가를 놓치면 안 된다. 운봉 호씨가 못 박았듯, 강후는 무공(武功)을 세운 제후가 아니라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한 제후(治安之侯)다. 공을 세우려 무리하게 일을 벌여 총애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아래에서 순종함(坤)으로 밝은 임금(離)에게 붙어 나아간 자다. 이 괘의 임금 자리(오효)가 굳센 양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柔)인 까닭이 여기 있다. 빛나는 자리에 오를수록 뻣뻣해지지 않고 도리어 부드러워지는 자만이 그 빛을 오래 지킨다.
그러나 이 괘가 겨누는 가장 깊은 말은 밖의 영광이 아니라 안의 밝힘에 있다. 공자는 대상전에서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그 밝은 덕을 밝힌다(自昭明德)“고 하였으니, 『대학』의 첫 구절 ’밝은 덕을 밝힌다(明明德)’의 뼈대가 된 말씀이다. 진재 서씨의 비유가 정곡을 찌른다. 해의 밝음은 본래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으며(本无增損), 다만 가려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의 본성도 하늘에서 받은 그 자리에서 이미 밝은데, 물욕에 잠시 가려져 흐려졌을 뿐 그 본연의 밝음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러니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밖을 탓하기 전에, 내 눈을 가린 먹구름부터 스스로 걷어내야 한다. 건괘의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음(自強不息)’과 진괘의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힘(自昭明德)’ — 예순네 괘의 대상전 가운데 오직 이 둘만이 ’스스로 자(自)’를 썼으니, 힘써 행함과 밝게 앎이 모두 남이 아니라 나에게 달린 일임을 말한 것이다.
몸으로 익히면 이 이치는 더 분명해진다. 아침 해를 맞을 때 어깨의 힘을 빼되(柔) 가슴뼈를 하늘로 들어 올리고, 두 발은 땅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위로 솟는 밝음일수록 아래의 묵직한 순종과 뿌리가 받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발이 뜨면 태양은 빛을 잃고 추락한다. 밝음은 밖에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것을 걷어내어 안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은 남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닦아 낸 그 한 겹의 맑음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晉은 본래 '나라 진(晉)'자이나 여기서는 '밝을 진'으로 본다. 火地晉이니 위는 離(이허중, 불)·아래는 坤(곤, 땅) — 육지 위에 해가 떴다(明出地上). 그러니 숨길 것이 없다(無隱). 어두운 육지 위에 햇빛이 났으니 감출 것이 없이 다 드러났다.
사람에게 햇빛은 양심(良心)이다. 그런데 보통은 그 양심이 육체 속, 욕심 속에 숨어 있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晉괘는 양심이 햇빛이 되어 대지 위에 떠 있다 — 숨어 있지 않고 다 드러났다.
(…) 밝은 해가 땅 위에 떠오른 것이 晉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自) 밝은 덕(明德)을 밝힌다(昭).
원문과 주석 — 괘사(卦辭)
晉,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
진(晉)은 편안한 제후라야, 하사하는 말이 번성하고 많으며, 낮 동안에 세 번 접견하리라.
정이천『이천역전』
晉為進盛之時,大明在上而下體順附,諸矦承王之象也,故為康矦。康矦者,治安之矦也。上之大明,而能同德以順附,治安之矦也。
진(晉)은 나아가 성대해지는 때이다. 큰 밝음이 위에 있고 하체(하괘 坤)가 순히 붙어 있으니, 제후들이 왕을 받드는 상이다. 그러므로 강후(康侯)가 된 것이다. 강후라는 것은 세상을 다스려 편안하게 한 제후(治安之侯)이다. 위가 크게 밝은데 능히 덕을 같이하여 순히 붙어 있는 자가 치안의 제후인 것이다.
故受其寵數,錫之馬衆多也。車馬重賜也。蕃庶,衆多也。不唯錫與之厚,又見親禮,晝日之中至於三接,言寵遇之至也。晉,進盛之時,上明下順,君臣相得,在上而言則進於明盛,在臣而言則進升髙顯,受其光寵也。
그러므로 그 총애의 은수를 받아 그에게 하사한 말이 무리 지어 많은 것이다. 수레와 말은 무거운 하사품이다. 번서(蕃庶)는 무리 지어 많음이다. 오직 하사함이 후할 뿐 아니라 또 친히 예우를 받아, 낮 동안에 세 번 접견하는 데 이르렀으니 총애하고 대우함이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진은 나아가 성대해지는 때이니, 위는 밝고 아래는 순하여 군신이 서로 마음이 맞았다. 위에 있는 자로 말하면 밝고 성대함으로 나아간 것이요, 신하로 말하면 높고 드러난 곳으로 올라가 그 빛나는 총애를 받은 것이다.
주희『주역본의』및 어록
晉,進也。康侯,安國之侯也。錫馬蕃庶,晝日三接,言多受大賜而顯被親禮也。葢其為卦,上離下坤,有日出地上之象,順而麗乎大明之德。又其變自觀而來,為六四之柔進而上行以至于五。占者有是三者,則亦當有是寵也。
진은 나아감이다. 강후는 나라를 편안하게 한 제후(安國之侯)이다. ’석마번서 주일삼접’은 큰 하사품을 많이 받고 드러나게 친히 예우를 입음을 말한다. 대개 그 괘가 됨에 위는 리(離)요 아래는 곤(坤)이니 해가 땅 위로 나오는 상이 있고, 순응하면서(坤) 크게 밝은 덕(離)에 걸려 있는 것이다. 또 그 괘변이 관(觀)괘로부터 왔으니, 육사의 유(柔)가 나아가 위로 향하여 오효에 이른 것이 된다. 점치는 자가 이 세 가지를 가졌다면 또한 마땅히 이러한 총애를 받을 것이다.
康侯似説寕侯相似。用錫馬之用,只是箇虚字,説他得這箇物事。晝日是那上卦離也,晝日為之,是此意。
주자가 말하였다. “강후는 녕후(편안한 제후)를 말한 것과 비슷하다. ’용석마’의 ’용(用)’은 단지 허사(의미 없는 조사)일 뿐이니, 그가 이 물건(말)을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낮(晝日)’은 저 상괘인 리(離, 태양)이니, 대낮에 한다는 것이 이 뜻이다.”
성재 양씨
康侯者,治安之侯也。錫馬蕃庶,而思之者豐;晝日三接,而禮之者頻也。
강후는 세상을 다스려 편안하게 한 제후다. ’석마번서’는 임금이 그를 생각함이 풍성한 것이고, ’주일삼접’은 그를 예우함이 빈번한 것이다.
진재 서씨
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言諸侯有安民之功,故用此以受君之錫予,而被其親禮也。左傳僖公二十八年,晉文公朝王,王賜之車輅弓矢,命之曰:「敬服王命,以綏四國。」受策而出,出入三覲是也。
’강후 용석마번서 주일삼접’은 제후가 백성을 편안하게 한 공(安民之功)이 있으므로 이로써 임금의 하사를 받고 그 친히 예우함을 입는 것을 말한다. 좌전(左傳) 희공 28년에 진문공(晉文公)이 주나라 왕을 조회하니, 왕이 그에게 수레와 활과 화살을 하사하고 명하기를 “왕명을 공경히 복종하여 사방의 나라를 편안하게 하라(綏四國)” 하였다. 진문공이 죽책을 받고 나갔는데, 그날 출입하며 세 번 뵌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상 주씨
周官校人,天子十有二閑,馬六種;邦國六閑,馬四種。凡朝覲㑹同,毛馬而頒之,錫馬蕃庶也。大行人,公之禮,三享三問三勞,晝日三接也。
주관(周官, 주례) 교인 편에, 천자는 열두 마구간에 여섯 종류의 말이 있고 제후국은 여섯 마구간에 네 종류의 말이 있다. 무릇 조근과 회동 때 털색을 맞춘 말을 반포하여 주니 이것이 ’석마번서’다. 대행인 편에 공(公)을 대하는 예우로 ’세 번 향응을 베풀고 세 번 문안하고 세 번 위로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주일삼접’이다.
요소팽
晝日三接,王接侯之禮也。覲禮,延升一也;覲畢致命,升致命二也;享畢王勞之,升成拜三也。
’주일삼접’은 왕이 제후를 접견하는 예법이다. 제후가 조회할 때 이끌어 오르게 하는 것이 첫째요, 조회를 마치고 예물을 바칠 때 오르게 하여 명을 내리는 것이 둘째요, 향연을 마치고 왕이 위로할 때 오르게 하여 절을 완성하는 것이 셋째이다.
운봉 호씨
彖言侯者三。屯、豫建侯,震也;晉康侯,坤也。坤有土有民,有安之象。錫馬蕃庶,坤為牝馬、為衆之象。晝日三接,離為日、為中虚之象。
주역 괘사에서 제후(侯)를 말한 것이 세 번이다. 둔(屯)과 예(豫)의 ’제후를 세운다’는 진(震) 때문이고, 진(晉)의 ’강후’는 곤(坤) 때문이다. 곤은 영토가 있고 백성이 있으니 편안함의 상이 있다. ’석마번서’는 곤이 암말이 되고 무리가 되는 상이요, ’주일삼접’은 리(離)가 해가 되고 속이 비어 받아들이는 상이다.
離配卦十有六,象最美者莫如晉、大有。大有明在天上,其明最盛;晉明出地上,其明方新,有進義。明君在上,下以柔順進而承之,所謂康侯也。康侯者,治安之侯,非以功侯也。下之務進者易生事以徼寵,今多受大賜而顯被親禮者,惟治安之侯,其所以為大明之時乎!
리(離)가 배합된 괘가 열여섯인데 상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진(晉)과 대유(大有)만 한 것이 없다. 대유는 밝음이 하늘 위에 있어 그 밝음이 가장 성대하고, 진은 밝음이 땅 위로 나와 그 밝음이 바야흐로 새롭기에 ’나아감’의 뜻이 있다. 밝은 임금이 위에 있고 아랫사람이 유순함으로 나아가 그를 받드니 이른바 ’강후’다. 강후란 세상을 다스려 편안하게 한 제후이지 무공을 세운 제후가 아니다. 아래에서 힘써 나아가려는 자들은 쉽게 일을 벌여 총애를 구하기 십상인데, 지금 큰 하사를 많이 받고 드러나게 친히 예우를 입은 자가 오직 치안의 제후라는 사실 — 이것이 바로 크게 밝은(大明) 시대가 되는 까닭이다.
원문과 주석 — 단전(彖傳)
彖曰:晉,進也。明出地上,順而麗乎大明,柔進而上行。是以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也。
단전에 말하기를, 진(晉)은 나아감이다. 밝음이 땅 위로 나오고, 순응하며 큰 밝음에 걸려 있으며, 유(柔)가 나아가 위로 행한다. 이 때문에 강후가 하사하는 말이 많고 낮 동안에 세 번 접견함을 쓰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晉,進也,明進而盛也。明出於地,益進而盛,故為晉。所以不謂之進者,進為前進,不能包明盛之義。明出地上,離在坤上也。
진(晉)은 나아감이니 밝음이 나아가 성대해짐이다. 밝음이 땅에서 나와 더욱 나아가 성대해지므로 진(晉)이 되었다. ’진(進)’이라 일컫지 않은 까닭은, 진(進)은 그저 앞으로 나아감이라 밝고 성대한 뜻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밝음이 땅 위로 나왔음은 리(離)가 곤(坤) 위에 있는 것이다.
坤麗于離,以順麗於大明。順德之臣,上附於大明之君也。
곤(坤)이 리(離)에 걸렸으니 순종함으로써 큰 밝음에 걸린 것이다. 순종하는 덕을 가진 신하가 위에 있는 크게 밝은 임금에게 붙어 의지하는 것이다.
柔進而上行,凡卦離在上者,柔居君位,多云柔進而上行,噬嗑睽鼎是也。六五以柔居君位,明而順麗,為能待下,寵遇親密之義。
‘유가 나아가 위로 행한다’ 함은, 무릇 괘에서 리(離)가 위에 있는 것은 유(음효)가 군주의 자리에 거하니 대부분 ’유가 나아가 위로 행한다’고 하는데 서합·규·정 괘가 이것이다. 육오가 유로서 군주의 자리에 거하여 밝으면서도 순히 걸려 있으니, 능히 아랫사람을 대우하고 총애하여 친밀하게 만나는 뜻이 된다.
是以為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也。大明之君,安天下者也。諸侯能順附天子之明德,是康民安國之侯也。故謂之康侯。是以享寵錫而見親禮,晝日之間三接見於天子也。不曰公卿而曰侯,天子治於上者也,諸侯治於下者也。在下而順附於大明之君,諸侯之象也。
이 때문에 ’강후가 하사하는 말이 많고 낮 동안에 세 번 접견함을 쓴다’고 한 것이다. 크게 밝은 임금은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자요, 제후가 능히 천자의 밝은 덕에 순히 붙어 의지한다면 이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제후다. 그러므로 그를 ’강후’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하사하는 총애를 누리고 친히 예우를 받아 낮 동안에 세 번 천자에게 접견되는 것이다. ’공경(公卿)’이라 하지 않고 ’제후(侯)’라 한 것은, 천자는 위에서 다스리고 제후는 아래에서 다스리는데 아래에 있으면서 크게 밝은 임금에게 순히 붙어 있는 것이 제후의 상이기 때문이다.
주희『주역본의』
釋卦名義。以卦象卦德卦變釋卦辭。
괘의 이름과 뜻을 풀이한 것이다. 괘의 상(明出地上), 괘의 덕(順而麗乎大明), 괘의 변화(柔進而上行)로써 괘사를 풀이한 것이다.
건안 구씨
彖曰晉進也。雜卦曰晉晝也。葢晉之義,不特以進為進,而必以明為進也。
단전에서는 ’진(晉)은 나아감이다’라 했고 잡괘전에서는 ’진은 낮(晝)이다’라 했다. 대개 진(晉)의 뜻은 특별히 나아감으로써만 나아감을 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밝음(明)으로써 나아감을 삼는 것이다.
진재 서씨
明出地上,離乘坤也。順而麗乎大明,坤附離也。以順德之臣而附麗乎大明之君,宜六五以柔進而上行也。凡離居上體,皆柔進而上行。是以康侯用此順德,以受錫馬蕃庶之恩,晝日三接之禮也。
밝음이 땅 위로 나오는 것은 리(해)가 곤(땅)을 타고 오르는 것이요, 순응하며 큰 밝음에 걸려 있는 것은 곤(신하)이 리(임금)에 붙어 있는 것이다. 순종하는 덕을 가진 신하가 크게 밝은 임금에게 붙어 의지하니, 마땅히 육오가 유로서 나아가 위로 행한 것이다. 무릇 리(離)가 상체에 거하면 모두 ’유가 나아가 위로 행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강후가 이 순종하는 덕으로 말이 번성하는 은혜를 받고 낮에 세 번 접견하는 예를 입은 것이다.
임천 오씨
坤順之臣,進而附麗於離明之君,此釋康侯錫馬之義。柔,臣德也;五,君位也。四近君。卦自觀變,六四之柔近君,進而上行至五,九五之剛下降居四而成離日,猶朝貢之臣為天子所禮接,此釋晝日三接之義。
곤의 순종하는 신하가 나아가 리의 밝은 임금에게 붙어 의지하니, 이는 ’강후 석마’의 뜻을 푼 것이다. 유(柔)는 신하의 덕이요 오효는 임금의 자리이며 사효는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자리다. 괘가 관(觀)괘로부터 변하여, 육사의 유가 임금과 가까이 있다가 나아가 위로 향해 오효에 이르고, 구오의 강이 아래로 내려가 사효에 거하여 리(離, 해)를 이루었다. 이는 마치 조공을 바치러 온 신하가 천자에게 예우를 받으며 접견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주일삼접’의 뜻을 푼 것이다.
호씨
易言柔進而上行者三卦:晉、睽、鼎也。噬嗑則曰柔得中而上行。晉六五之柔,自觀四進五也;睽中孚之四進五也;鼎巽四進五也;噬嗑雖不言進,而六五之柔由益四上行至五也。此可以見柔進上行之例。
주역에서 ’유가 나아가 위로 행한다’고 말한 것이 세 괘이니 진(晉)·규(睽)·정(鼎)이다. 서합(噬嗑)은 ’유가 중을 얻어 위로 행한다’고 하였다. 진의 육오의 유는 관(觀)괘의 사효에서 오효로 나아간 것이고, 규는 중부(中孚)의 사효에서 오효로 나아간 것이고, 정은 손(巽)의 사효에서 오효로 나아간 것이다. 서합은 비록 나아간다고 하지 않았으나 육오의 유가 익(益)괘의 사효를 말미암아 위로 행하여 오효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유진이상행’의 전례를 볼 수 있다.
운봉 호씨
康侯,非順者不能;錫馬、三接,非君之大明而柔者不能。提起一二字,卦辭盡可見矣。
’강후’는 순종하는 자(坤)가 아니면 능히 될 수 없고, ’석마’와 ’삼접’은 임금이 크게 밝으면서도 유연한 자(離)가 아니면 능히 할 수 없다. 한두 글자를 끌어올려 살펴보면 괘사의 뜻을 모두 볼 수 있다.
원문과 주석 — 상전(象傳)
象曰:明出地上,晉。君子以自昭明德。
상전에 말하기를, 밝음(태양)이 땅 위로 나오는 것이 진(晉)이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그 밝은 덕을 밝힌다(自昭明德).
정이천『이천역전』
昭,明之也。傳曰「昭德塞違」,昭其度也。君子觀明出地上而益明盛之象,而以自昭其明德。
소(昭)는 밝힌다는 것이다. 좌전(左傳)에 “덕을 밝히고 어긋남을 막는다(昭德塞違)“고 하였으니 그 법도를 밝히는 것이다. 군자는 밝음이 땅 위로 나와서 더욱 밝고 성대해지는 상을 관찰하여 스스로 그 밝은 덕을 밝힌다.
去蔽致知,昭明德於己也。明明德於天下,昭明德於外也。明明德在已,故云自昭。
가려진 것(물욕)을 제거하고 앎에 이르는 것(去蔽致知)은 밝은 덕을 자기 자신에게 밝히는 것이다.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는 것은 밝은 덕을 밖으로 밝히는 것이다. 밝은 덕을 밝힘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으므로 ’스스로 밝힌다(自昭)’고 한 것이다.
주희『주역본의』
昭,明之也。
’소(昭)’는 밝힌다는 뜻이다.
진재 서씨
日初出地,進而上行,為晉之象。然日出地則明,入地則晦。日之明本无増損也,蔽與不蔽之隔耳。
해가 처음 땅 위로 나와 나아가 위로 향하는 것이 진(晉)의 상이다. 그러나 해가 땅 위로 나오면 밝고 땅속으로 들어가면 어둡다. 해의 밝음은 본래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고 단지 가려짐과 가려지지 않음의 차이일 뿐이다.
亦猶人之德性得於天者,其體本明。特為物欲所蔽,不能无少昏昧,而本然之明則未嘗息也。君子觀明出地上之象,悟性分之本明,故以之自昭其明德也。
이 또한 사람의 덕성이 하늘로부터 얻어진 바 그 본체가 본래 밝은 것과 같다. 특별히 물욕에 가려져 능히 조금 혼미하고 어두워지지 않을 수 없으나, 그 본연의 밝음은 일찍이 쉰(사라진) 적이 없다. 군자가 밝음이 땅 위로 나오는 상을 관찰하여 자기 본성의 분수가 본래 밝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것으로써 스스로 그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다.
건안 구씨
晉之「自昭明德」者,君子致知之學也;乾之「自強不息」者,君子力行之學也。易大象惟乾、晉二象以「自」言之,信矣!知行之學,皆君子已分所當為之事也。
진(晉)괘의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自昭明德)’는 것은 군자가 앎에 이르는 학문(致知)이요, 건(乾)괘의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自強不息)’는 것은 군자가 힘써 행하는 학문(力行)이다. 주역 예순네 괘의 대상전 가운데 오직 건(乾)과 진(晉) 두 상만이 ’스스로(自)’라는 글자로써 말했으니 참으로 진실하다. 앎과 행함의 학문은 모두 군자가 자기 분수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운봉 호씨
至健莫如天,君子以之自強;至明莫如日,君子以之自昭。
지극히 굳센 것은 하늘(天)만 한 것이 없으니 군자가 이로써 스스로 굳세어지고(自強), 지극히 밝은 것은 해(日)만 한 것이 없으니 군자가 이로써 스스로 밝힌다(自昭).
쌍호 호씨
合兩體成一卦。夫象天子論體,象君子只以卦之重者論。如此卦只取離明之義,置坤於不言。葢有不必盡論兩體者,即此亦可以推他卦矣。
주역의 대상전은 두 체(상하괘)를 합하여 하나의 괘를 이룬다. 무릇 ’천자’를 상징할 때는 두 체를 다 논하지만 ’군자(개인의 수양)’를 상징할 때는 단지 괘의 무거운(핵심적인) 것만을 논한다. 예컨대 이 진괘는 단지 리(離)의 밝음의 뜻만 취하고 곤(坤)에 대해서는 내버려 두고 말하지 않았다. 대개 반드시 두 체를 다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있으니, 이에 나아가 다른 괘들도 미루어 알 수 있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