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진(晉)은 밝음이 땅 위로 떠올라 다 함께 나아가는 때다. 구사는 상괘 리(離)의 맨 아래, 임금(오효) 바로 밑 대신의 고위직에 앉았다. 그러나 굳센 양(陽)이 음(陰)의 자리에 처하여 중정(中正)을 잃었으니, 정이천의 말대로 제자리가 아닌데 그곳에 거하여 그 자리를 탐내어 차지한 자다. 능력은 자리에 미치지 못하는데 높은 곳을 훔쳐 앉았고(竊高位), 위로는 밝은 임금에게 붙어 순종하나, 아래로는 치고 올라오는 세 음(初·二·三)이 반드시 위로 나아갈 것이라 그 마음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꺼린다.
이렇게 탐욕스러우면서도 남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큰 쥐(鼫䑕·석서)다. 그래서 ’나아감이 큰 쥐 같다’고 했다. 주자는 중정하지 못한 채 높은 자리를 훔쳐 앉아 탐하고도 사람을 두려워하니 대개 위태로운 길이라 하였다. 차지할 곳이 아닌 자리를 탐내어 두려워하고 꺼리는 마음을 품은 채, 이 자리를 바르고 굳게 지키려 한들(貞) 그 위태로움(厲)은 정해진 것이다. 다만 정이천은 ’정려(貞厲)’라 말한 것 자체가 고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라 읽는다. 억지로 버티지 말고 스스로 물러나라는 여지다.
제가(諸家)의 풀이가 이 상(象)을 더 넓힌다. 원나라 운봉 호씨는 해(解)괘의 여우와 진(晉)괘의 쥐를 나란히 놓아, 여우는 성질이 의심 많으니 그 의심을 없애야 하고 쥐는 성질이 탐욕스러우니 그 탐욕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진(晉)은 대낮인데 쥐는 낮에 숨는 짐승이니, 빛 가운데 당당히 나아갈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이다. 후재 풍씨와 중계 장씨는 『시경』의 석서(碩鼠) 편을 끌어와, 곡식을 갉아먹는 큰 쥐로 탐욕을 풍자한 그 뜻이 여기에 겹친다고 보았다. 동계 왕씨는 부드러움이 나아가는 진(晉)의 때에 구사 홀로 굳셈으로 나아가니, 그 나아감이 바름에서 위태롭고 자리에서 부당하다고 매듭지었다.
삶에 들이기
우리 안에도 쥐 한 마리가 산다. 분에 넘치는 자리나 몫을 움켜쥐고서, 들킬까 봐 눈동자를 굴리고 어깨를 안으로 말며 얕은 숨을 쉬는 자리다. 탐욕과 두려움이 교차할 때 몸은 가장 먼저 굳는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마음을 다잡는 훈련이 아니라 몸의 자세를 먼저 여는 데 있다. 움츠린 가슴을 펴고 시선을 흔들리지 않게 한곳에 두며 숨을 깊고 길게 내리면, 남의 눈치를 살피던 신경이 가라앉는다. 정이천이 ’정려’에서 고칠 길을 열어 두었듯, 내 그릇에 넘치는 자리라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제 발로 당당히 내려서는 것 — 그 한 번의 물러섬이 탐욕과 두려움을 함께 내려놓는 수양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四는 양효가 음자리(4)에 있어 틀렸고, 中도 正도 아니다(不中不正). 제 자리가 아닌 높은 자리를 탐해 차지하고(竊高位) 있으면서, 위의 밝은 임금(5)을 두려워해 감히 나아가지 못하는 꼴 — 그것이 '큰 쥐(鼫鼠)'다. 鼫鼠(석서)는 "탐하면서 사람을 두려워함(貪而畏人)" — 도둑도 강도도 그렇다고 한다. 그 자리를 '내 자리'라 고집하면(貞) 위험하다(厲).
"길에 돈이 떨어져 있으면 그냥 주우면 되는데, 손이 가는 동시에 고개는 뒤로 돌아간다 — 누가 보나 하고. 그것이 탐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 숟가락이 편안히 입에 들어가면 되는데, 나오기도 전에 입을 다물어 숟가락이 이에 걸리는 소리가 난다 — 그것도 탐이다. 남이 안 뺏어 먹는데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탐하는 마음을 타고난다."
다만 공부를 많이 하면 그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아도, "이건 나쁜 것이다" 하고 자제하면 된다고 한다.
원문과 주석 — 정이천 · 주자 · 후재 풍씨 · 중계 장씨 · 운봉 호씨 · 동계 왕씨
효사와 소상전
九四,晉如鼫䑕,貞厲。
구사는 나아감이 큰 쥐 같으니, 바르게 지키려 해도 위태롭다.
象曰:鼫䑕貞厲,位不當也。
상(象)에 이르기를, 큰 쥐라 바르게 해도 위태롭다 함은, 그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주: 鼫의 음은 석(石)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以九居四,非其位也。非其位而居之,貪據其位者也。貪處髙位,既非所安,而又與上同德,順麗於上。三陰皆在已下,勢必上進,故其心畏忌之。
9(양)로써 4(음)에 거하니 제자리가 아니다. 제자리가 아닌데 그곳에 거하는 것은 그 자리를 탐내어 차지한 자다. 탐욕스럽게 높은 자리에 처하니 이미 편안한 바가 아니고, 또 위(상구)와 덕을 같이하며 윗사람(육오)에게 순히 붙어 있다. 세 개의 음이 모두 자기 아래에 있어 그 기세가 반드시 위로 나아갈 것이니, 그러므로 그 마음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다.
貪而畏人者,鼫䑕也,故云晉如鼫䑕。貪於非據而存畏忌之心,貞固守此,其危可知。言貞厲者,開有改之道也。
탐욕스러우면서도 남을 두려워하는 것이 큰 쥐(鼫䑕)다. 그러므로 ’나아감이 큰 쥐와 같다’고 한 것이다. 차지할 곳이 아닌 곳을 탐내어 두려워하고 꺼리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바르고 굳게 이 자리를 지키려 한들 그 위태로움을 알 수 있다. ’바르게 지키려 해도 위태롭다(貞厲)’고 말한 것은, 스스로 물러나 고칠 수 있는 도(道)를 열어 준 것이다.
상전 해설:
賢者以正德,宜在髙位。不正而處髙位則為非據。貪而懼失則畏人,固處其地危可知也。
현자(賢者)가 바른 덕으로써 고위직에 있는 것은 마땅하다. 바르지 못하면서 고위직에 처하면 부당하게 차지한 것이 된다. 자리를 탐내어 잃을까 두려워하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니, 고집스레 그 자리에 처해 있으면 그 위태로움을 알 수 있다.
주자 『주역본의』
不中不正,以竊髙位,貪而畏人,葢危道也。故為鼫䑕之象。占者如是,雖正亦危。鼫音石。
중정하지 못하면서 높은 자리를 훔쳐 앉았으니, 탐욕스러우나 사람을 두려워함은 대개 위태로운 도(道)이다. 그러므로 큰 쥐(鼫䑕)의 상이 되었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다면, 비록 자리를 바르게 지키려 고집한다 해도 위태로울 것이다. 鼫의 음은 석(石)이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 중계 장씨(中溪張氏) — 『시경』의 석서(碩鼠)
鼫,詩作碩,疑此傳註從䑕。郭景純云:形大如䑕,好在田中食粟豆,葢田䑕也。
후재 풍씨가 말하였다. 석(鼫)은 『시경』에는 석(碩)으로 쓰였으니, 이 전(傳)과 주석은 쥐(䑕)를 따른 것일까 의심스럽다. 곽경순(郭景純)이 이르기를 “형태가 쥐처럼 크고, 밭 가운데 있으면서 조와 콩을 즐겨 먹으니 대개 들쥐(田䑕)다”라고 하였다.
詩以碩䑕刺貪,此之碩䑕象其貪於進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시경』에서 석서(碩鼠, 큰 쥐)로써 탐욕을 풍자하였으니, 여기서의 석서는 그 나아가기를 탐내는 것을 상징한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여우(狐)와 쥐(䑕)의 대조
鼫䑕貪而畏人,九四爻剛位柔之象。解以陰居陽者象狐,晉以陽居隂者象䑕。九家易,坎為狐,解以初至五互重坎,上下三陰,故稱三狐。艮為䑕,晉互體艮,艮上一陽,故稱鼫䑕。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석서(큰 쥐)가 탐욕스러우나 사람을 두려워함은, 구사 효가 효는 강한데 자리는 유(柔)한 상이다. 해(解)괘(육오)는 음(陰)으로서 양(陽)자리에 거하여 여우(狐)의 상을 삼았고, 진(晉)괘(구사)는 양(陽)으로서 음(陰)자리에 거하여 쥐(䑕)의 상을 삼았다. 구가역(九家易)에 감(坎)은 여우가 되는데, 해(解)괘는 1효부터 5효까지 호괘가 거듭된 감(坎)이고 상하가 3개의 음이라 세 마리 여우(三狐)라 칭했다. 간(艮)은 쥐가 되는데, 진(晉)괘의 호괘가 간(艮, 2·3·4효)이고 간의 꼭대기에 하나의 양이 있으므로 큰 쥐(鼫䑕)라 칭한 것이다.
狐性疑,解當去其疑;䑕性貪,晉當去其貪。取象各有攸當。况晉晝也,䑕亦晝伏,非能以晝進者。
여우는 성질이 의심이 많으니 해(解)괘에서는 마땅히 그 의심을 제거해야 하고, 쥐는 성질이 탐욕스러우니 진(晉)괘에서는 마땅히 그 탐욕을 제거해야 한다. 상을 취함에 각기 합당한 바가 있다. 하물며 진(晉)은 대낮(晝)인데 쥐는 낮에 숨어 지내니, 대낮에 능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九四不中不正,以竊髙位,又畏大明之君而不敢進,故有此象。其占曰貞厲,雖正亦危,况不中正乎!
구사가 중정하지 못한 채로 고위직을 훔쳐 앉았고, 또 위로 크게 밝은 임금(육오)을 두려워하여 감히 당당하게 나아가지 못하므로 이 상이 있는 것이다. 그 점에 ’정려(바르게 해도 위태롭다)’고 하였으니, 비록 바르게 한다 해도 위태롭거늘 하물며 중정하지 못함에랴!
동계 왕씨(童溪王氏)
當柔進之時,九四獨以剛進,故進之義於貞為厲,於位為不當也。
동계 왕씨가 말하였다. 부드러움이 나아가는 때를 당하여 구사 홀로 강(剛)으로써 나아가니, 그러므로 나아감의 뜻이 바름에 있어서 위태로운 것이 되고, 자리에 있어서 부당한 것이 된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