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상구는 화지진 여섯 효의 맨 위, 밝음과 나아감(晉)이 극에 이른 자리다. 상괘 리(離)의 꼭대기이자 양강(陽剛)이 더 오를 곳 없는 벼랑 끝이다. 짐승으로 치면 몸에서 가장 높고 단단한 뼈, 곧 뿔(角)에까지 에너지가 다다른 형국이다. 진기각(晉其角), 나아감이 그 뿔에 이르렀다는 것은 앞으로 뻗던 힘이 더 갈 데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밀어붙이면 뿔이 부러진다. 그래서 효사는 방향을 튼다. 밖으로 남을 치지 말고 오직 자기 고을을 정벌하는 데 쓰라(維用伐邑). 밖으로 향하던 칼끝을 안으로 돌려, 내 안의 문제를 다스리라는 처방이다.
이 ’벌읍’을 두고 두 스승의 풀이가 갈린다. 정이천은 이를 내 마음속의 악을 쳐내는 자기 통제(自治)의 비유로 읽는다. 사방을 치는 것은 밖을 다스림이요 제 고을을 치는 것은 안을 다스림이니, 강함이 극에 이른 사람은 그 힘을 밖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는 좀 더 현실의 사건으로 읽어, 내부의 작은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로 본다. 그리고 정이천이 모든 것을 비유로만 푸는 태도를 비판한다. 주역이 말한 ’읍을 친다’는 것은 공자가 노나라에서 반역한 가문의 근거지를 허문 일처럼 그 쓰임이 늘 작다는 것이다. 풀이는 달라도 방향은 하나다. 뻗어 나가던 에너지를 거두어 안으로 돌리라는 것.
그런데 효사는 위태로우나 길하다(厲吉)고 해놓고, 다시 고집하면 인색하다(貞吝)고 덧붙인다. 소상전은 그 까닭을 도미광(道未光), 곧 도가 아직 빛나지 못한 것이라 짚는다. 힘으로 안을 다스려 공을 세우긴 했으나 그것은 중화(中和)의 덕이 아니다. 거산 양씨의 말이 날카롭다. 만약 도가 천하를 비출 만큼 넓고 밝다면 굽혀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텐데, 어찌 읍을 정벌할 일이 있겠는가. 칼을 빼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덕으로 감화하지 못했음을, 그 도가 크게 빛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자치는 벼랑 끝의 차선책일 뿐, 애초에 극단까지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서늘한 경계다.
삶에 들이기
끝없이 오르다 마침내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천장에 머리를 부딪는 순간이 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하며 무리하면 뿔이 부러져 추락한다. 상구가 일러주는 것은 방향의 전환이다. 시선을 바깥의 경쟁과 성취에서 안으로 돌려, 나를 갉아먹는 습관과 무너진 중심을 다스리는 것. 몸을 써 본 사람은 안다. 주먹이 리치의 끝에 다다른 순간 더 뻗으려 하면 관절이 빠지고 무게중심을 빼앗겨 도리어 카운터를 맞는다. 최대치에 이르렀거든 힘의 방향을 돌이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 공격의 끝을 다음 방어의 시작으로 삼는 것 — 회광반조(迴光返照), 빛을 돌이켜 안을 비추는 그 절제가 벼랑 끝에서 나를 지킨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上九는 양효가 晉의 맨 위에 있어 나아감의 극단 — 뿔(角)이다. 더 갈 곳이 없으니 그 뿔로 받아 혁명이나 하는 꼴이라, 오직 읍(邑)을 쳐서(維用伐邑) 제 주위·자신을 정리·관리하면 위태로우나(厲) 길하고 허물이 없다(吉无咎). 그러나 고집하면 인색·실패한다(貞吝).
강(剛)이 더 갈 곳 없는 극단에 이르면, 앞으로 가다 막혀 극단이 되니 조급(躁急)해지고, 조급하면 실패한다. 밝은 세상이 좋다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올 길을 안 보면 떨어져 죽는다. 성공·출세해도 중심을 잃은 것이 심하면 위험을 면할 길이 없다. (…) 사람은 항상 시간 여유를 두고, 조급하게 살지 마라.
나라를 치는 것(伐國)은 밖을 다스림(治外)이고, 읍을 치는 것(伐邑)은 자기 집안·자신을 다스림(自治)이다. 강한 것이 극단에 이르면 밖으로 쓰지 말고 자기를 다스려라 — 자기 집안을 다스리든, 자기 병을 치료하든, 자기 주의(主義)를 다스리든 모두 '治(다스릴·치료할 치)'다.
원문과 주석 — 상구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과 소상전
上九,晉其角,維用伐邑,厲吉无咎,貞吝。 상구는 나아감이 그 뿔에 이르렀으니, 오직 자신의 고을을 정벌하는 데 쓰면 위태로우나 길하여 허물이 없거니와, 고집하면 인색하다(부끄럽다).
象曰:維用伐邑,道未光也。 소상전에 말하였다. 오직 고을을 정벌하는 데 쓴다는 것은, 도(道)가 아직 빛나지 못함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傳:角,剛而居上之物。上九以剛居卦之極,故取角為象。以陽居上,剛之極也。在晉之上,進之極也。剛極則有強猛之過,進極則有躁急之失。以剛而極於進,失中之甚也。无所用而可,維獨用於伐邑,則雖厲而吉且无咎也。 뿔(角)은 강(剛)하면서 위에 거하는 물건이다. 상구는 강으로서 괘의 극치에 거하므로 뿔을 취하여 상으로 삼았다. 양(陽)으로서 위에 거하니 강함의 극치요, 진(晉)의 위에 있으니 나아감의 극치이다. 강함이 극에 달하면 강하고 사나운 잘못이 있고, 나아감이 극에 달하면 조급한 실수가 있다. 강함으로써 나아감에 극에 달했으니 중(中)을 잃음이 심하다. 달리 쓸 만한 데가 없고, 오직 홀로 읍(邑)을 정벌하는 데 쓰면 비록 위태로우나 길하고 또한 허물이 없다.
伐四方者,治外也;伐其居邑者,治内也。言伐邑,謂内自治也。人之自治,剛極則守道愈固,進極則遷善愈速。如上九者,以之自治,則雖傷於厲而吉且无咎也。嚴厲非安和之道,而於自治則有功也。 사방을 정벌하는 것은 밖을 다스리는 것이요, 그 거주하는 읍을 정벌하는 것은 안을 다스리는 것이다. ’읍을 정벌한다’고 말한 것은 안으로 스스로 다스림(자치)을 이른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다스림에 있어, 강함이 지극하면 도를 지킴이 더욱 견고해지고 나아감이 지극하면 선으로 옮겨감이 더욱 빨라진다. 상구와 같은 자가 그것으로 스스로 다스린다면, 비록 지나친 엄격함에 상하더라도 길하고 허물이 없다. 엄격하고 매서운 것은 편안하고 조화로운 도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에는 공(功)이 있다.
復云貞吝,以盡其義。極於剛進,雖自治有功,然非中和之德,故於貞正之道為可吝也。不失中正為貞。 다시 ’정린(고집하면 인색하다)’이라 한 것은 그 뜻을 다한 것이다. 강하게 나아감이 극에 달했으니, 비록 스스로 다스림에 공은 있으나 중화(中和)의 덕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르고 올곧은 도에 있어서는 가히 인색함이 된다. 중정을 잃지 않아야 정(貞)이 된다.
傳:維用伐邑,既得吉而无咎,復云貞吝者,其道未光大也。以正理言之,尤可吝也。夫道既光大,則无不中正,安有過也?今以過剛自治,雖有功矣,然其道未光大,故亦可吝。聖人言盡善之道。 (상전 풀이) ‘오직 읍을 치는 데 쓴다’ 함에 이미 길하고 허물이 없음을 얻었는데도 다시 ’정린’이라 한 것은, 그 도가 빛나고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른 이치로 말하자면 더욱 인색한 것이다. 무릇 도가 이미 빛나고 크다면 중정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지금 지나친 강함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니 비록 공은 있으나 그 도가 빛나고 크지 못하므로 또한 인색한 것이다. 성인은 지극히 선한 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및 문답
朱子曰:貞吝之義,諸義只云貞同守此則吝,不應於此獨云於正道為吝也。 주자가 말하였다. ’정린(貞吝)’의 뜻은, 여러 다른 괘에서는 단지 ’정(貞)은 굳게 지킴과 같으니 이 지나친 강함을 굳게 지키면 인색하다’고 하였는데, 정이천처럼 이곳에서만 유독 ’바름(正)의 도에 있어서 인색함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응당 맞지 않다.
或問:上九剛進之極,以伐私邑,安能吉而无咎?朱子曰:以其剛故可伐邑,若不剛則不能伐邑矣。但易中言伐邑,皆是用之於小。若伐國,則其用大矣,如髙宗伐鬼方三年之類。維用伐邑,則不可用之於大可知。雖用以伐邑,然亦必能自危厲,乃可以吉而无咎。過剛而能危厲,則不至於過矣。 혹자가 묻기를 “상구가 강하게 나아감의 극치로서 사사로운 읍을 치는데, 어찌 능히 길하고 허물이 없겠습니까?” 하니, 주자가 답하였다. “그가 강하기 때문에 가히 읍을 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강하지 않다면 능히 읍을 칠 수 없다. 다만 주역에서 「읍을 친다(伐邑)」고 한 것은 모두 그 쓰임이 작은 데 쓰인 것이다. 만약 나라를 친다면 그 쓰임이 큰 것이니, 기제 괘의 고종이 귀방을 3년 동안 쳤다는 부류와 같다. 「오직 읍을 치는 데 쓴다」고 했으니 이 힘을 큰 데 쓸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읍을 치는 데 쓴다 하더라도 반드시 능히 스스로 위태롭게 여겨야 비로소 길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지나치게 강하나 능히 위태롭게 여긴다면 지나침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問:本義作伐其私邑,程傳以為自治,如何?曰:便是程傳多不肯説實事,皆以為取喻。伐邑,如墮費墮郈之類是也。大抵今人説易,多是見易中有此一語,便以為通體事當如此。不知當其時節、地頭、其人所占得者,其象如何。若果如今人所説,則易之説有窮矣。 묻기를 “본의에서는 「그 사사로운 읍을 친다」고 풀었고, 정전(정이천)은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自治)」으로 여겼는데 어떠합니까?” 하니, 주자가 답하였다. “그것이 바로 정전이 실제 사건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모두 비유로 여기는 대목이다. 「읍을 친다」는 것은 공자가 노나라에서 세 반역 가문의 근거지인 비(費) 땅과 후(郈) 땅을 허문 일과 같은 부류가 이것이다. 대저 지금 사람들이 주역을 설함에, 주역에 이 한마디가 보이면 곧 「전체의 일이 마땅히 이렇다」고 여긴다. 그 시절,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점을 쳐서 얻은 그 상(象)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과연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걸 비유로만 푼다면, 주역의 설은 궁해질 것이다.”
제가 — 진재 서씨(進齋徐氏) · 이씨(李氏)
進齋徐氏曰:此爻剛而在上,有角之本義。角,剛而居上。上九剛進之極,有其象矣。占者得之,而以伐其私邑,則雖危而吉且无咎。然以極剛治小邑,雖得其正,亦可吝矣。 진재 서씨가 말하였다. 이 효는 강(剛)이 위에 있으니 뿔의 본뜻을 가졌다. 뿔은 강하면서 위에 거하는 것이다. 상구는 강이 나아감의 극치이니 그 상이 있다. 점치는 자가 이를 얻어 그 사사로운 읍을 치면 비록 위태로우나 길하고 또한 허물이 없다. 그러나 지극한 강함으로 작은 읍을 다스리는 것이니 비록 그 바름을 얻었다 해도 또한 인색하다.
進齋徐氏曰:上九之維用伐邑,所用者小,而於晉進之道,未為光大也。 (상전 풀이) 상구가 ‘오직 읍을 치는 데 쓴다’ 함은 그 쓰이는 바가 작아서, 밝게 나아가는 진(晉)의 도에 있어서는 빛나고 크지 못함이 된다.
李氏聞曰:晉而至於角,前无餘地矣。伐其邑,自治也。春秋之墮三都,其策雖窮,不猶愈於不墮乎?雖危而吉,此公至自圍郕,所以善之也。 이씨가 말하였다. 나아가서 뿔에 이르렀으니 앞에는 여유 공간이 없다. 그 읍을 친다는 것은 내부를 다스리는 것이다. 춘추시대에 세 도읍을 허문 일은 그 계책이 비록 궁색했으나(성공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허물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비록 위태로우나 길하다 함은, 노나라 정공이 성(郕) 땅을 포위하고 돌아왔다고 춘추에 기록하여 이를 선(善)으로 여긴 까닭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 쌍호 호씨(雙湖胡氏)
雲峰胡氏曰:上九剛進之極,而以伐私邑,雖危而吉且无咎,許之也。然以剛進之極,僅能伐其小邑,雖正亦可吝,鄙之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상구가 강하게 나아감의 극치로서 사사로운 읍을 치니 비록 위태로우나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그를 허여한 것이다. 그러나 강하게 나아감의 극치로써 겨우 그 작은 읍을 능히 칠 뿐이니, 비록 바르더라도 인색하다고 한 것은 그를 비루하게 여긴 것이다.
本義曰私邑,又曰小邑。謙六五伐,不言邑,其伐也公。晉上九伐其内地之邑,則為私矣。既濟九三伐鬼方,其伐也大。晉上九僅能伐其私邑,則為小矣。 본의에서 사사로운 읍(私邑)이라 하고 또 작은 읍(小邑)이라 하였다. 겸(謙) 육오의 정벌에는 읍을 말하지 않았으니 그 정벌이 공(公)적인 것이요, 진 상구는 그 안쪽 땅의 읍을 치니 사(私)적인 것이다. 기제 구삼은 귀방을 정벌하니 그 정벌이 큰 것이요, 진 상구는 겨우 그 사사로운 읍을 능히 칠 뿐이니 작은 것이다.
雙湖胡氏曰:晉其角與姤其角同義,皆剛上之象。上九與九四皆不正,一云貞厲,一云貞吝者,葢云雖正猶厲、猶吝,况不貞乎?其警戒之意抑又深切矣。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진기각(나아감이 뿔에 미침)’은 구(姤) 상구의 ’구기각(만남이 뿔에 미침)’과 같은 뜻으로 모두 강이 위에 있는 상이다. 상구와 구사는 모두 바르지 못한데, 하나(구사)는 ’정려(바르더라도 위태롭다)’라 하고 다른 하나(상구)는 ’정린(바르더라도 인색하다)’이라 한 것은, 대개 비록 바르다 하더라도 오히려 위태롭고 오히려 인색하거늘 하물며 바르지 않음에랴 하는 뜻이다. 그 경계하는 뜻이 도리어 깊고 간절하다.
제가 — 거산 양씨(龜山楊氏) · 건안 구씨(建安丘氏)
龜山楊氏曰:非日中之時,剛上窮而不足以照天下,道未光也。故維用伐邑而已。若夫道足以照天下,則无思不服矣,尚何伐邑之有? 거산 양씨가 말하였다. 상구는 해가 저무는 때이지 해가 중천에 뜬 때가 아니니, 강함이 위로 궁하여 족히 천하를 비출 수 없으므로 ’도가 아직 빛나지 못함(도미광)’이다. 그러므로 오직 읍을 치는 데 쓸 뿐이다. 만약 무릇 도가 족히 천하를 비출 수 있다면 뜻을 굽혀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을 텐데, 하물며 어찌 읍을 정벌할 일이 있겠는가.
建安丘氏曰:上,陽體本光。以四據其應,陽不得用,故道本光,如屯陰為初九所據,萃陰為九四所據,故九五皆以未光言之。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상효는 양의 본체라 본래 빛나는 것이다. 그런데 4효가 그 응(초효)을 차지하고 있어 양이 능히 쓰이지 못하므로 본래 빛나야 할 도가 빛을 잃었다. 마치 둔(屯)의 음이 초구에게 차지당하고 취(萃)의 음이 구사에게 차지당하여, 두 괘의 구오가 모두 ’빛나지 못함(미광)’으로 말한 것과 같다.
제가 — 건안 구씨(建安丘氏, 6효 총정리) · 조씨(趙氏)
建安丘氏曰:晉,進也。柔進而上行也。故卦專主柔進為義。六爻,四柔二剛。六五一柔,自四而升,已進者也,故往吉无不利。下坤三柔皆欲進者,而九四以剛間之,故有晉如鼫䑕之象。三與五近,下接二柔,志在上行,四莫能間,故曰衆允悔亡。二在下卦之中,去五漸逺,則憂其不得進,故晉如愁如。初最逺於五,當進之始,上與四應,反為所抑,故晉如摧如也。上以剛居一卦之窮,无可進之地,故有晉其角之象。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진(晉)은 나아감이니 ’유(柔)가 나아가 위로 향함’이다. 그러므로 괘는 오로지 유가 나아감을 위주로 뜻을 삼는다. 여섯 효는 네 음(柔)과 두 양(剛)이다. 육오는 한 유로서 4에서 올라가 이미 나아간 자이므로 왕길무불리(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음)다. 아래 곤(坤)의 세 유(초·이·삼)는 모두 나아가려 하는데 구사가 강으로써 사이를 막으니 ’진여석서(晉如鼫䑕)’의 상이 있다. 육삼은 5효와 가깝고 아래로 두 유를 접하여 뜻이 위로 감에 있는데 4가 막지 못하므로 ’중윤회망’이다. 육이는 하괘의 가운데 있어 5에서 멀어 점차 나아감을 얻지 못할까 근심하므로 ’진여수여’다. 초육은 5에서 가장 멀어 나아감의 시작인데 4와 응하여 도리어 억눌리므로 ’진여최여’다. 상효는 강으로서 한 괘의 궁한 곳에 거하여 나아갈 땅이 없으므로 ’진기각’의 상이 된 것이다.
趙氏曰:下三爻皆柔順而坤體,故初二吉,三悔亡。四上以陽不當位,故厲且吝。唯五以柔明居尊位,故往吉无不利也。 조씨가 말하였다. 아래 세 효는 모두 유순한 곤체(坤體)이므로 초효와 이효는 길하고 삼효는 후회가 없다. 사효와 상효는 양으로서 자리가 마땅하지 못하므로(부당위) 위태롭고 인색하다. 오직 오효가 유명(柔明)으로 존위에 거하므로 나아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