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미제(未濟)는 여섯 효가 모두 제자리를 잃은 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오직 육오만이 “바르면 길하고 뉘우침이 없다(貞吉, 无悔)“는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선다. 육오는 밝음의 괘 리(離)의 한가운데에 있는 문명의 주인, 곧 세상을 비추는 임금이다. 음(陰)이 양(陽)의 자리에 있어 본래 바르지 않으나, 밝음으로 중(中)을 얻어 뉘우침이 사라진다.
그 비결은 힘이 아니라 비움에 있다. 육오는 유약한 자신을 알기에 마음을 비워(虛心) 아래에 있는 강하고 반듯한 신하 구이(九二)의 도움을 구한다. 정이천은 “그 마음을 비우고 양이 보좌가 되니, 유로 존위에 거하나 처함이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선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풀었다. 리더가 제 능력의 부족을 메우는 길은 더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알아보고 그 힘을 모으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경문은 이를 “군자의 빛(君子之光)“이라 부른다. 소상전은 다시 그 빛이 “빛남(暉)“이 되어 길하다고 했다. 주자는 “휘(暉)란 빛이 퍼져나가는 것”이라 했고, 동계 왕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은 겸양에서 생긴다(光生於謙)“고 했다. 덕이 성대하여 공적의 실질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곧 믿음(有孚)이니, 겸손하게 마음을 비운 자리에서 빛이 솟고, 그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삶에의 적용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할 때 미제는 영원히 미제로 남는다. 자리가 높을수록, 일이 클수록, 도리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몸을 낮추어 곁의 재능을 구하고 그 힘을 모을 때, 나의 부족은 흠이 아니라 빛이 퍼져 나갈 통로가 된다. 수련도 같다 — 억지로 채우려는 몸은 굳고, 힘을 빼고 비운 몸에서 기운이 사방으로 흐른다. 겸손하게 비운 자리, 거기서 나오는 빛이 가장 멀리 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육오는 음유하나 리화(離火)의 가운데(中)에 있는 밝은 임금(文明之主)이다 — 음이 양자리라 본디 바르지 않아 후회가 있으나, 불의 주인이라 밝아 세상을 비추니 바르고 길하여 후회가 없다(貞吉 无悔).
군자(임금)의 빛이 믿음이 있어 길하다 — 육오는 리(불덩어리)의 주인이라 빛이 구사·상구(바깥 양효)로 발산한다. 그 빛이 헛되지 않아 믿음(有孚)이 있으니 길하다. 육오는 마음을 비우고(虛心) 아래의 강중한 신하(九二 剛中)의 도움을 구한다. 공순하고 강명한 신하를 얻어 쓰니 — 음유한 임금이 그 능력 부족을 '사람을 알아보아 쓰는 것'으로 메운다.
소상전의 '군자의 빛이 발산함(暉)이 길하다'는 것은 — 불덩어리(光)는 겸손에서 나오고(光生於謙), 발산하는 빛(暉)은 그 불빛이 흩어져 멀리 퍼짐(光之散)이다. 사람의 인기(德의 발산)도 불빛과 같으니 — 겸손한 자세로 일하면 그 덕이 불빛처럼 밖으로 멀리 퍼진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經文)
六五,貞吉,无悔。君子之光,有孚,吉。
육오는, 바르면 길하고 뉘우침이 없다. 군자의 빛이요, 믿음이 있으니 길하다.
소상전(小象傳)
象曰:君子之光,其暉吉也。
상(象)에 말하기를, ’군자의 빛’이란, 그 빛남(暉)이 길한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五文明之主,居剛而應剛,其處得中,虛其心而陽為之輔,雖以柔居尊,處之至正至善,无不足也。既得貞正,故吉而无悔。貞其固有,非戒也。以此而濟,无不濟也。
오효는 문명(리)의 주인이다. 강에 거하면서 강에 응하고, 그 처함이 중을 얻었다. 그 마음을 비우고 양(구이)이 보좌가 되니, 비록 유로 존위에 거하나 처함이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선하여 부족함이 없다. 이미 바름을 얻었으므로 길하고 뉘우침이 없으니, ’바름(貞)’은 본래 갖추어진 것이요 경계가 아니다. 이로써 건너면 건너지 못할 것이 없다.
五文明之主,故稱其光。君子德輝之盛而功實稱之,有孚也。上云吉以貞也,柔而能貞,德之吉也。下云吉以功也,既光而有孚,時可濟也。
오효는 문명의 주인이므로 그 빛을 칭한 것이다. 군자의 덕의 빛남이 성대하여 공적의 실질과 부합하는 것이 유부(有孚)이다. 위에서 ’길하다’함은 바름으로써 한 것이니, 유로 바를 수 있음이 덕의 길함이다. 아래에서 ’길하다’함은 공으로써 한 것이니, 이미 빛나면서 믿음이 있으면 때에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
以六居五,亦非正也。然文明之主,居中應剛,虛心以求下之助,故得貞而吉,且无悔。又有光輝之盛,信實而不妄,吉而又吉也。
6으로 5효에 거하니 역시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명의 주인이 중에 거하고 강에 응하여 마음을 비워 아래의 도움을 구하므로 바름을 얻어 길하고 또 뉘우침이 없다. 또 빛남의 성대함이 있고 믿음이 실질적이어서 거짓되지 않으니 길하고 또 길한 것이다.
暉者,光之散也。
’휘(暉)’란 빛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제가(諸家) 주석
이씨 광(李氏光) — 구이가 중정한 신하로 응한다
李氏光曰:九二中正之臣為之正應,四上二陽相與夾輔,能虛已而任用之,故貞吉而无悔也。
구이가 중정한 신하로 정응(正應)이 되고, 사효와 상효의 두 양이 서로 더불어 협보하니, 능히 자기를 비워 임용하므로 바르고 길하며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임씨 율(林氏栗) — 구사는 먼저 뉘우치고 오효는 뉘우침이 없다
林氏栗曰:四應在初,故先悔而後亡;五應在二,故貞吉而无悔。
사효(구사)는 응이 초효(초육)에 있으므로 먼저 뉘우치고 뒤에 사라지며, 오효(육오)는 응이 이효(구이)에 있으므로 바르고 길하여 뉘우침이 없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 문명의 주인이므로 군자의 빛
節齋蔡氏曰:文明之主,故稱君子之光;下得二四恭順剛明之臣,故言孚吉。
문명의 주인이므로 ’군자의 빛’이라 칭하였고, 아래에 구이·구사의 공순하고 강명한 신하를 얻었으므로 ’유부길(孚吉)’이라 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구사는 힘써야 하고 육오는 본래 빛난다
雲峯胡氏曰:九居四非貞,貞吉悔亡,勉之之辭也;六居五亦非貞,貞吉无悔,與之之辭也。蓋五文明之主,是為君子之光;虛心以求九二剛中之助,是為有孚。此所以為正吉而又吉也。
9가 4효에 거하니 바르지 않아 ’정길회망’은 힘쓰라는 말이요, 6이 5효에 거하니 역시 바르지 않으되 ’정길무회’는 인정하는 말이다. 대개 오효는 문명의 주인이니 이것이 ’군자의 빛’이 되고, 마음을 비워 구이의 강중한 도움을 구하니 이것이 ’유부(有孚)’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바르고 길하며 또 길한 것이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 빛이 넘쳐나는 것은 겸양에서 생긴다
童溪王氏曰:暉者,光之發也。光盛則有暉。然則暉生於光,而光又生於謙,此六五所以為未濟之謙主也。
’휘(暉)’란 빛이 발하는 것이다. 빛이 성대하면 휘가 있으니, 휘는 빛에서 생기고 빛은 또 겸양에서 생긴다. 이것이 육오가 미제의 겸양한 주인(未濟之謙主)이 되는 까닭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 군신이 동심하면 미제가 끝내 이루어진다
中溪張氏曰:君臣同心以致治,則未濟者終濟矣,此君子所以有光暉之吉也。
군신이 마음을 같이하여 다스림을 이루면 미제가 끝내 이루어지니, 이것이 군자에게 빛남(光暉)의 길함이 있는 까닭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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