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64괘의 마지막 괘, 그 마지막 효다. 상구는 강한 양이 미제(未濟)의 극에 있고 밝음(離)의 끝에 있으니, 강함의 극이자 밝음의 극이다. 강하되 밝으므로 조급하게 날뛰지 않고 이치를 꿰뚫어 결단할 줄 안다. 그러나 미제의 끝이라 아직 건널 수 없는 자리이니, 억지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하늘을 즐기고 명(命)에 순응하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효사는 말한다.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有孚于飮酒 无咎).” 아직 이룰 때가 아니니 조급히 굴면 다 깨지고, 조금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이 지루하니, 스스로 즐기며(飮酒) 마음의 믿음을 잃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여기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방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때를 담담히 견디며 스스로 편안히 즐기는 자세다.
그러나 즐거움에 빠져 예(禮)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머리까지 적시면 믿음이 있어도 옳음을 잃는다(濡其首 有孚失是).” 여우가 물을 건너다 머리까지 젖으면 힘이 다 빠지듯, 즐거움에 머리까지 빠지면 제자리를 편히 지키지 못한다. 마음속에 지녔던 믿음(有孚)이 도리어 그 마땅함(是)을 잃는다. 절제를 잃는 순간 믿음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소상전은 이를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함(亦不知節)“이라 맺는다. 절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때를 따라 중(中)을 취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성재 양씨의 비교가 날카롭다 — 물에 빠짐은 한 몸을 빠뜨리지만, 술에 빠짐은 마음을 빠뜨려 천하국가에까지 미친다.
삶에 옮기면 이렇다. 큰일을 건너 이룬 뒤가 도리어 위험한 때다. 성취에 취해(飮酒) 방심하면 마지막 순간의 방심이 부상을 부르고, 다 이긴 대련에서 마음을 놓으면 역전을 허용한다. 몸을 다스리는 절제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절제가 급하다. 즐기되 度를 잃지 않는 것 — 이것이 384효를 닫는 마지막 경계이며, 곧 몸을 지키는 수련의 첫 규칙이기도 하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上九는 양강이 未濟의 극(極)에 있고 離火의 끝이라 — 강함의 극이자 밝음의 극이다. 강하되 밝아 조급하지 않고 결단할 줄 안다.
有孚于飮酒 无咎 — 믿음을 두고 즐겁게 기다리면 허물이 없다. 未濟의 끝은 곧 旣濟의 처음이니 — 아직 旣濟가 안 됐으니 조급히 날뛰면 다 깨지고, 조금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이 지루하니 술을 적당히 마시며 즐겁게 기다리면(樂天順命) 허물이 없다.
濡其首 有孚失是 — 그러나 즐거움을 탐해 방자하여 예를 넘어(耽樂過禮) 머리까지 술독에 빠지면(濡其首) 그 머무는 자리를 편히 못 하고 — 본래 있던 믿음(有孚)이 도리어 그 옳음(是)을 잃는다. 절제를 잃으면 믿음이 무너진다.
(…) 물에 빠짐은 그 한 몸만 빠뜨리나, 술에 빠짐은 그 마음을 빠뜨려 천하·국가에까지 미친다. 그러므로 홍수의 해보다 술의 해가 크다 — 度를 넘는 즐거움의 경계가 64괘를 닫는 마지막 효의 가르침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풀이
효사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상구는, 음주에 믿음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이 있어도 옳음을 잃는다.
소상전
象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
상에 말하기를, ’음주에 머리를 적신다’함은,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以剛在上, 剛之極也. 居明之上, 明之極也. 剛極而能明則不爲躁而爲決, 明能燭理, 剛能斷義. 居未濟之極, 非得濟之位, 无可濟之理, 則當樂天順命而已.
9가 강으로 위에 있으니 강의 극이요, 밝음의 위에 거하니 밝음의 극이다. 강극이면서 능히 밝으면 방종이 되지 않고 결단이 되며, 밝으면 이치를 꿰뚫을 수 있고 강하면 의리를 결단할 수 있다. 미제의 극에 거하니 건넘을 얻는 자리가 아니요 건널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기고 명에 순하는 것일 뿐이다.
未濟則无極而自濟之理, 故止爲未濟之極. 至誠安於義命而自樂則可无咎, 飮酒自樂也. 不樂其處則忿躁隕穫, 入於凶咎矣. 若從樂而耽肆過禮, 至濡其首, 亦非能安其處也. 有孚, 自信于中也. 失是, 失其宜也. 如是則於有孚爲失也. 人之處患難, 知其无可奈何而放意不反者, 豈安於義命者哉.
미제에는 스스로 건너지는 이치가 없으니 다만 미제의 극이 될 뿐이다. 지성으로 의명에 편안히 하여 스스로 즐기면 허물이 없으니, 음주는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그 처함을 즐기지 못하면 분하고 조급하여 무너지고 잃어 흉구에 들어간다. 만약 즐거움을 좇아 빠지고 방자하여 예를 넘겨 머리를 적시는 데 이르면, 역시 능히 그 처함에 편안한 것이 아니다. ’유부’는 마음속에 스스로 믿는 것이요, ’실시’는 마땅함을 잃은 것이다. 이와 같으면 유부에 대해 잃는 것이다. 사람이 환난에 처하여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뜻을 놓아 돌이키지 않는 자가 어찌 의명에 편안한 자이겠는가!
주자『주역본의』
以剛明居未濟之極, 時將可以有爲, 而自信自養以俟命, 无咎之道也. 若縱而不反, 如狐之涉水而濡其首, 則過於自信而失其義矣.
강명으로 미제의 극에 거하니, 때에 장차 가히 할 수 있는 바가 있으되 스스로 믿고 스스로 기르며 명을 기다리는 것이 허물이 없는 도이다. 만약 방종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여우가 물을 건너다 머리를 적시는 것과 같으니, 지나치게 스스로 믿어 그 의리를 잃는 것이다.
朱子曰: 未濟卦取狐爲象, 上象頭, 下象尾.
주자가 말하기를 “미제 괘는 여우를 상으로 취하였으니, 위는 머리의 상이요 아래는 꼬리의 상이다.”
朱子曰: 未濟只陽爻便好, 隂爻便不好. 但六五上九兩爻不如此, 六五謂其得中故以爲吉, 上九有可濟時之才, 又當未濟之極可以濟矣, 亦不云吉, 更曉不得. 又曰: 濡首分明是狐過溪而濡其首, 今象却云飮酒濡首, 皆不可曉.
주자가 말하기를 “미제는 양효만 좋고 음효는 좋지 않다. 다만 육오와 상구 두 효는 그렇지 않으니, 육오는 중을 얻었으므로 길하다 하고, 상구는 때에 건널 재질이 있고 또 미제의 극을 당하여 건널 수 있으되 역시 ’길하다’고 하지 않으니 더 알 수 없다. 또 말하기를 ’유기수’는 분명히 여우가 시내를 건너다 머리를 적신 것인데, 지금 상전에서는 ’음주에 머리를 적신다’고 하니 모두 알기 어렵다.”
朱子曰: 易不是說殺底物事, 只可輕輕地說. 若是確定一爻吉一爻凶, 便是揚子雲太玄, 易不恁地. 兩卦各自說濡尾濡首, 不必拘說在此言首在彼言尾. 大槩既濟是那日中將晡時盛了, 只是向衰去. 未濟是那五更初時, 只是向明去.
주자가 말하기를 “역은 죽이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볍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한 효가 길하고 한 효가 흉하다고 확정하면 곧 양자운의『태현경』이지 역은 그렇지 않다. 두 괘가 각각 유미·유수를 말하되 반드시 여기서 머리를 말하고 저기서 꼬리를 말한다고 구애할 필요가 없다. 대개 기제는 해가 중천에서 오후로 넘어갈 때이니 성대했다가 쇠퇴로 향하는 것이요, 미제는 오경 초에 해가 떠오를 때이니 다만 밝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음주의 무구와 유수의 실
既言飲酒之无咎, 復言飲酒濡首之失, 何耶. 蓋飲酒可也, 耽飲而至於濡首, 則昔之有孚者今失於是矣.
이미 음주의 ’무구’를 말하고 다시 음주 유수의 ’실’을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대개 음주는 괜찮으나, 음주에 빠져 머리를 적시는 데 이르면 예전에 믿음이 있던 것이 이제 이것에서 잃게 되는 것이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 기제의 유수는 물이고 미제의 유수는 술이다
既濟上六之濡首者水也, 未濟上九之濡首者非水也酒也. 水之溺人溺其一身, 酒之溺人溺其心以及其天下國家. 故洚水之害小於儀狄之酒, 禹惡㫖酒之功大於平洚水.
기제 상육의 ’유기수’는 물이요, 미제 상구의 ’유기수’는 물이 아니라 술이다. 물에 빠지는 것은 한 몸을 빠뜨리는 것이요, 술에 빠지는 것은 마음을 빠뜨려 천하국가에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의 해가 의적의 술보다 작고, 우임금이 맛있는 술을 미워한 공이 홍수를 평정한 것보다 크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 오효가 건너는 주인이니 상구는 음주로 즐긴다
五爲濟主, 三四助之, 已成濟功矣. 已獨處上无所用力, 唯孚于飲酒自樂, 不妄生事, 乃爲无咎. 又曰: 既濟之後必亂, 故處在初卦而亨取二. 未濟之後必濟, 故主在上卦而亨取五.
오효가 건넘의 주인이고 삼효·사효가 돕고 이미 건넘의 공을 이루었다. 자기만 홀로 위에 처하여 힘을 쓸 곳이 없으니, 오직 음주에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즐기며 망녕되이 일을 일으키지 않아야 허물이 없다. 또 말하기를 “기제 뒤에는 반드시 어지러우므로 초괘에 처하면서 형통을 이효에 취하고, 미제 뒤에는 반드시 이루므로 상괘에 주인을 두면서 형통을 오효에 취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역의 마지막 말: 중과 시와 절
既濟以中道, 離之中也. 未濟中以行正, 坎之中也. 既濟九五東隣殺牛不如西隣之時, 時即所謂中也. 未濟上九不知節, 節即所謂中也. 堯之授舜只是一中字, 易三百八十四爻只是一時字. 易於小象之末曰中曰時, 易之大義略可見矣. 末一句亦不知節也, 不知節者不知隨時以取中也. 大易教人之意切矣.
기제는 중도로써 하니 리의 중이요, 미제는 중으로써 바름을 행하니 감의 중이다. 기제 구오의 ’동린이 소를 잡는 것이 서린의 때만 못하다’에서의 ’때’가 곧 이른바 ’중’이요, 미제 상구의 ’절제를 알지 못한다’에서의 ’절’이 곧 이른바 ’중’이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한 것은 오직 하나의 ‘중’ 자요, 역 384효는 오직 하나의 ‘시’ 자이다. 역이 소상의 끝에서 ’중’이라 하고 ’시’라 한 것에서 역의 대의를 대략 볼 수 있다. 끝의 한 구절 ’역부지절’이란 때를 따라 중을 취할 줄 모르는 것이다. 대역이 사람을 가르치는 뜻이 간절하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 미제로 끝나는 것은 생생불궁의 뜻
聖人設卦必終於未濟者, 所以寓生生不窮之意也. 未濟易之終, 上九未濟之終, 生生不窮之理在是. 大亂者治之基, 治者亂之伏, 未濟之極豈終不濟哉. 以上九之才言, 終於必濟矣.
성인이 괘를 베풀어 반드시 미제로 끝낸 것은 생생불궁의 뜻을 부탁한 것이다. 미제는 역의 끝이요, 상구는 미제의 끝이니, 생생불궁의 이치가 여기에 있다. 크게 어지러운 것은 다스림의 기초요, 다스려진 것은 어지러움이 잠복한 것이니, 미제의 극에 어찌 끝내 이루지 못하겠는가! 상구의 재질로 말하면 끝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하삼효는 아직 험에 있고 상삼효는 이미 험을 벗어났다
未濟合坎離成卦, 坎在内猶有險也, 故爲未濟. 合六爻言之, 内三爻坎險也, 初言濡尾之吝, 二言曵輪之貞, 三有貞凶位不當之戒, 皆未濟之事也. 外三爻離明也, 四言伐鬼方有賞, 五言君子之光有孚, 上言飲酒无咎, 則未濟爲既濟矣.
미제는 감과 리를 합하여 괘를 이루니, 감이 안에 있어 아직 험이 있으므로 미제가 된다. 여섯 효를 합하여 말하면, 안의 세 효는 감의 험이니 초효는 유미의 린을 말하고 이효는 예륜의 정을 말하고 삼효는 정흉과 위부당의 경계가 있어, 모두 미제의 일이다. 밖의 세 효는 리의 밝음이니 사효는 벌귀방의 상을 말하고 오효는 군자지광의 유부를 말하고 상효는 음주의 무구를 말하니, 미제가 기제가 된 것이다!
보양 유씨(莆陽劉氏) — 하삼효는 미출험, 상삼효는 이출험
未濟下三爻未出險, 初濡尾, 二曵輪, 三征凶. 上三爻已出險矣, 四志行, 五有孚吉, 上有孚飲酒而已. 既濟吉少凶多, 未濟吉多凶少. 然雖吉未甞不戒也.
미제의 하삼효는 아직 험을 벗어나지 못하여 초효는 유미, 이효는 예륜, 삼효는 정흉이다. 상삼효는 이미 험을 벗어나니 사효는 지행, 오효는 유부길, 상효는 유부음주일 뿐이다. 기제는 길이 적고 흉이 많으며, 미제는 길이 많고 흉이 적다. 그러나 비록 길하되 일찍이 경계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서계 이씨(西溪李氏) — 상편은 수화의 바름으로, 하편은 수화의 사귐으로 끝난다
上篇首乾坤終坎離, 下篇首咸恒終既濟未濟, 亦坎離也. 天地之道不過於隂陽, 五行之用莫先於水火. 上篇首天地隂陽之正也, 故以水火之正終焉. 下篇首夫婦隂陽之交也, 故以水火之交終焉.
상편은 건·곤으로 시작하고 감·리로 끝나며, 하편은 함·항으로 시작하고 기제·미제로 끝나니 역시 감·리이다. 천지의 도는 음양에 불과하고, 오행의 쓰임은 수화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상편은 천지 음양의 바름으로 시작하므로 수화의 바름으로 끝내고, 하편은 부부 음양의 사귐으로 시작하므로 수화의 사귐으로 끝낸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