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육오는 존위(尊位)에 앉은 임금의 자리다. 그러나 음유(陰柔)로 그 자리에 거하니, 자리는 높으나 자질이 자리에 못 미친다. 게다가 음이 지나친 소과(小過)의 때를 만났으니, 아무리 큰 일을 이루려 해도 이룰 수가 없다. 빽빽한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으나 끝내 비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서쪽 교외에서 음기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쪽은 음(陰)의 방위이니, 음 구름만 있고 양(陽)이 없어 음양이 화합하지 못하면 비는 내리지 않는다.
정이천은 “양이 내려가고 음이 올라가 합해야 화합하여 비가 되는데, 음이 이미 위에 있으니 구름이 아무리 빽빽한들 어찌 비가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소상전이 “이미 올라갔기 때문(已上也)“이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겉으로는 만반의 조건이 갖추어진 듯하나, 정작 일을 이루는 화합의 짝이 없다.
뒤이어 “공(公)이 주살로 저 굴에 있는 것을 잡는다(公弋取彼在穴)“고 하였다. 답답한 육오가 굴에 숨은 육이를 억지로 끌어와 도움을 구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육오도 음, 육이도 음이니 두 음이 만나 봤자 큰 일은 이룰 수 없다. 주자는 “두 음이 서로 얻으니 큰 일을 이루지 못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운봉 호씨는 다른 괘가 매(隼)와 꿩(雉)을 쏘는 데 견주어, 여기서는 “겨우 굴에 있는 것을 취할 뿐”이라 하여 음유한 힘의 옹색함을 짚었다.
삶에의 적용
형식과 실질의 간극을 정직하게 재는 효다. 지위와 역할은 갖추었으나 실질의 성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사람은 흔히 같은 처지의 사람을 급히 끌어모아 모양을 만들려 한다. 그러나 화합의 짝이 없는 자리에서는 아무리 그러모아도 비가 되지 않는다. 몸의 수련도 다르지 않다. 기운이 충만한 듯하나 실질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밀운불우의 상태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크게 노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빽빽한 구름이 무엇이고 비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조용히 직시하는 일이다. 거창한 기술을 좇기보다 조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기본기를 다지는 것 — 그것이 자리 높은 자의 겸손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시커먼 구름이 빽빽이 끼었는데 비가 오지 않음은 — 서쪽 들에서(自我西郊) 음기만 일어났기 때문이다(서쪽=음, 동쪽=양). 음 구름만 있고 양(흰 구름)이 없어 음양이 화하지 못하니 비가 안 온다(孤陰不能成雨). 시커먼 구름이 끼면 비가 꼭 올 줄 알지만 — 음만으로는 안 온다(될 것 같아도 안 됨).
공(公·五)이 주살로 굴 안에 숨은 것(六二)을 잡듯(公弋取彼在穴) — 답답하니 같은 음(二)을 억지로 끌어와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마른 굴에 작살을 던져도 고기가 없듯, 음만으로 비를 못 이루듯 — 안 된다.
五·二는 자리로는 정응이나 둘 다 음이라 본디 상응이 아니다(本非相應). 잡아와 보니 나와 같은 음이라(兩陰相得) — 둘 다 서로를 얻어 도움을 주고받으려는 욕심은 같으나, 못난 것끼리(陰柔) 만난 것이라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不能濟大事·임금도 못난 음, 신하도 못난 음). 곧 될 것 같아도 안 되니, 미리 알아야 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효사와 소상전
六五,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弋取彼在穴.
육오는, 빽빽한 구름이 비가 되지 않으니 나의 서쪽 교외로부터이다. 공(公)이 주살로 저 굴에 있는 것을 잡는다.
象曰: 密雲不雨, 已上也.
상(象)에 이르기를, 빽빽한 구름이 비가 되지 않는 것은 이미 올라갔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五以陰柔居尊位, 雖欲過爲, 豈能成功. 如密雲而不能成雨. 所以不能成雨, 自西郊故也. 陰不能成雨, 小畜卦中已解.
오효는 음유로 존위에 거하니, 비록 지나치게 하려 해도 어찌 능히 공을 이루겠는가. 빽빽한 구름이 비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다. 비를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서쪽 교외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음이 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소축(小畜)괘에서 이미 풀이하였다.
公弋取彼在穴. 弋, 射取之也. 射止是射, 弋有取義. 穴, 山中之空, 中虛乃空也. 在穴, 指六二也. 五與二本非相應, 乃弋而取之. 五當位, 故云公, 謂公上也. 同類相取, 雖得之, 兩陰豈能濟大事乎. 猶密雲之不能成雨也.
’익(弋)’은 쏘아서 취하는 것이다. ’쏘다(射)’는 다만 쏘는 것이고 ’익’에는 취하는 뜻이 있다. ’혈(穴)’은 산 가운데의 빈 곳이다. ’재혈(在穴)’은 육이를 가리킨다. 오효와 이효는 본래 서로 응하지 않으니 주살로 쏘아 취한 것이다. 오효가 당위하므로 ’공(公)’이라 한다. 같은 부류가 서로 취한 것이니 비록 얻더라도 두 음이 어찌 큰 일을 이루겠는가. 빽빽한 구름이 비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다.
陽降陰升, 合則和而成雨. 陰已在上, 雲雖密, 豈能成雨乎. 陰過不能成大之義也.
양이 내려가고 음이 올라가서 합하면 화합하여 비가 된다. 음이 이미 위에 있으니 구름이 아무리 빽빽하나 어찌 비가 되겠는가. 음이 지나쳐 큰 것을 이루지 못하는 뜻이다.
주자 『주역본의』
以陰居尊, 又當陰過之時, 不能有爲. 而弋取六二以爲助, 故有此象. 在穴, 陰物也. 兩陰相得, 其不能濟大事可知.
음으로 존위에 거하고 또 음이 지나친 때를 당하니 유위할 수 없다. 육이를 활 쏘아 취하여 도움으로 삼으니 이 상이 있다. ’재혈(在穴)’은 음물(陰物)이다. 두 음이 서로 얻으니 큰 일을 이루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주자 어록
密雲不雨, 大槩是做不得事底意思. 弋是俊壯底意, 却只弋得這般物事.
’밀운불우’는 대체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익(弋)’은 씩씩한 뜻인데, 다만 이런 부류의 물건만 쏘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운봉 호씨 — 소축과 소과의 밀운불우
密雲不雨自我西郊. 文王爲小畜六四言也, 而周公以言小過之六五. 蓋皆言小者不能大有爲也. 皆互兌皆有雲雨自西之象. 坎爲弓, 凡互坎或厚坎皆取弋射象. 然彼射隼射雉, 此僅取彼在穴. 甚言陰小之不足大有爲也. 初上有飛鳥象, 在穴不飛者也. 易之取象, 大者以田爲象, 最大者以狩爲象, 小則以弋爲象.
’밀운불우자아서교’는 문왕이 소축 육사에서 말한 것인데, 주공이 소과 육오에서 말하였다. 대개 모두 작은 것(小者)이 크게 유위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다른 괘는 매(隼)와 꿩(雉)을 쏘는데 이것은 겨우 굴에 있는 것을 취할 뿐이다. 음과 소가 크게 유위하기에 부족함을 심하게 말한 것이다. 주역의 취상에서 큰 것은 전(田)으로, 가장 큰 것은 수(狩)로, 작은 것은 익(弋)으로 상을 삼는다.
중계 장씨 — 소축과 소과의 밀운불우 비교
小畜小過皆言密雲不雨自我西郊, 何也. 曰, 陰陽二氣, 以均調適平而後雨. 陰多陽少陽多陰少, 則皆不雨也. 小畜以一陰畜五陽, 陰少於陽, 則不能以固乎陽, 故曰密雲不雨尚往也. 小過以四陰而包二陽, 陽少於陰, 則不能制乎陰, 故曰密雲不雨已上也.
소축과 소과가 모두 ’밀운불우자아서교’라 한 까닭은 무엇인가. 음양 이기(二氣)는 균등하게 조화하고 알맞게 평형을 이룬 뒤에야 비가 된다. 음이 많고 양이 적거나 양이 많고 음이 적으면 모두 비가 되지 않는다. 소축은 한 음이 다섯 양을 축(畜)하니 음이 양보다 적어 ’밀운불우 상왕(尚往)’이라 하고, 소과는 네 음이 두 양을 감싸니 양이 음보다 적어 ’밀운불우 이상(已上)’이라 한다.
운봉 호씨 — 군불가과(君不可過)
二曰臣不可過, 五太高則又言君不可過也.
이효에서 ’신불가과(臣不可過)’라 했고, 오효가 너무 높으면 또 ’군불가과(君不可過)’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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