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風巽 · 64괘 사전

구이(九二) — 겸순함이 상 아래에 있으나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无咎.
지나친 겸손 속에서도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마음을 전하려는 의지양강(陽剛)이면서 음의 자리에 처해 겸손이 지나치나, 중(中)을 얻어 그 지나침이 진실됨에서 나온 자리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처지이나, 성의를 다해 신명과 윗사람에게 뜻을 도달시켜 호응을 얻음겸손·성의

풀이

구이는 양강한 기운이 음의 자리에 처하고 하괘의 가운데에 있다. 겸순함이 사람이 가장 편안히 여기는 평상(牀) 아래까지 내려간 모습이니, 겸손이 마땅한 정도를 넘어섰다. 흔히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거나 아첨에서 나온 것이라 둘 다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구이는 실제로 강중(剛中)한 자리이니, 겸손이 지나칠 뿐 사악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非有邪心).

관건은 성(誠)이다. 사무(史巫)란 글과 말로 정성을 신명에게 전달하는 자이니, 분약(紛若)이란 그 말이 성대히 많음이다. 무당이 정성을 다해 주문을 거듭 늘어놓아 마음을 다 쏟듯, 지극한 정성으로 자신의 뜻을 정녕하고 번쇄하게 전달하면(丁寧煩悉其辭) 도리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정성이 족히 사람을 감동시키기 때문이다(誠足以動人). 같은 지나친 겸손이라도 진심에서 나오면 길이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아첨이 된다.

소상전이 “분분한 것이 길함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라 한 것이 핵심이다. 겸손이 지나쳐도 중심을 잃지 않았기에, 그 정성이 아첨으로 흐르지 않고 길로 돌아선다. 지나침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중(中)이 살아 있느냐가 갈림길이다.

삶에의 적용

위치가 낮아 지나치게 몸을 낮춰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 겸손이 진심인지 아첨인지 의심한다. 답은 정성을 다하는 것뿐이다. 말을 거듭하되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오게 하고, 낮추되 중심을 잃지 마라. 몸을 굽히는 수련도 같다. 스승 앞에 낮추는 자세가 형식이면 비굴이 되고, 배우려는 참된 열망에서 나오면 그 낮춤이 곧 힘이 된다. 겉으로 같아 보이는 겸손이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로 완전히 갈린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二는 양강이 음자리에 처하고 아래에 있어 — 공손이 지나쳐(過於巽) 사람이 가장 편히 여기는 평상(牀) 아래까지 내려간 꼴이다. '史·巫'는 글·말로 귀신과 사람을 잇는 점쟁이·무당이니, '紛若'은 말이 성대히 많음 — 무당이 꽹과리 치며 주문을 많이 늘어놓아 귀신에게 정성을 다 쏟듯(誠意), 그렇게 지극한 정성이면 도리어 길하고 허물이 없다(吉无咎). 가만히 있으면 귀신이 안 오니, 그 정도로 말을 많이 해야(誠意足以動) 마음을 움직인다.

九二는 실은 剛中(강이 中에 듦)이나 사심 없이(非有邪心) 무작정 지나치게 공손한 것이라 — 지나친 공손이 두려움(怖懼)이 아니면 아첨(諂)으로 보이니, 정성으로 치욕·원망을 멀리하면(遠恥辱·絶怨咎) 비례(非正禮)라도 허물이 없다. 말이 많아야 할 자리(귀신 섬김)에 많은 것이 주역이요, 말 적어야 할 자리에 많으면 흉하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소상전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无咎.

구이. 겸순함이 상(牀) 아래에 있으나, 사무(史巫)를 써서 분분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象曰, 紛若之吉, 得中也.

분분한 것이 길한 것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 성의로 과순을 구함

二居巽時, 以陽處隂而在下, 過於巽者也. 牀人之所安, 巽在牀下, 是過於巽, 過所安矣. 人之過於卑巽, 非恐怯則諂説, 皆非正也. 二實剛中, 雖巽體而居柔為過於巽, 非有邪心也. 恭巽之過, 雖非正禮, 可以逺恥辱, 絶怨咎, 亦吉道也. 史巫者, 通誠意於神明者也. 紛若, 多也. 苟至誠安於謙巽, 能使通其誠意者多, 則吉而无咎, 謂其誠足以動人也. 人不察其誠意, 則以過巽為諂矣.

이효가 손(巽)의 때에 거하여 양으로 음에 처하면서 아래에 있으니 겸순이 지나친 자이다. 상(牀)은 사람이 편안히 하는 곳이니 겸순함이 상 아래에 있다는 것은 편안한 바를 넘어선 것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비겁하면 두려움이 아니면 아첨이니 모두 바름이 아니다. 그러나 이효는 실제로 강중(剛中)하니 겸순이 지나칠 뿐 사악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손함이 지나침이 비록 정례(正禮)는 아니나 부끄러움과 모욕을 멀리하고 원한과 허물을 끊을 수 있으니 역시 길한 도이다. 사무(史巫)란 성의를 신명에게 통하는 자이다. 분약(紛若)이란 많음이다. 진실로 지극한 정성으로 겸순에 편안하여 그 성의를 전달하는 자가 많으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그 정성이 족히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 성의를 살피지 못하면 과도한 겸순을 아첨이라 여긴다.

주자 『주역본의』 —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는 점괘

二以陽處隂而居下, 有不安之意. 然當巽之時, 不厭其卑, 而二又居中, 不至已甚. 故其占為能過於巽而丁寧煩悉其辭以自道達, 則可以吉而无咎, 亦竭誠意以祭祀之吉占也.

이효는 양으로 음에 처하면서 아래에 거하니 편안하지 않은 뜻이 있다. 그러나 손의 때에 마땅히 낮춤을 싫어하지 않으며 이효가 또한 중(中)에 거하여 지나침이 심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점괘는, 능히 겸순이 지나치되 그 말을 정녕하고 번쇄하게 다하여 스스로 뜻을 도달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역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는 길한 점괘이다.

주자 어록

朱子曰, 九二得中所以過… 用史巫紛若吉, 看来是個盡誠以祭祀之吉占.

주자가 말하였다. 구이가 중을 얻었으므로 지나침이… ’사무분약길’은 보건대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는 길한 점괘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상하(牀下)는 초효

建安丘氏曰, 牀下初也. 古者尊上坐於牀, 卑者拜跪於牀下, 牀下卑者之所處也. 二以陽居隂失位不安, 乃欲巽柔而處卑, 巽在牀下之象也.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상하(牀下)란 초효이다. 옛날에 존귀한 자가 위에서 상에 앉으면 비천한 자가 상 아래에서 절하고 꿇었으니, 상 아래는 비천한 자가 처하는 곳이다. 이효가 양으로 음에 거하여 자리를 잃고 편안하지 않으니, 이에 겸순하고 부드러워져 비하에 처하고자 하니 ’손재상하(巽在牀下)’의 상이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 사(史)와 무(巫)

厚齋馮氏曰, 周官史掌卜筮, 巫掌祓禳. 卜筮所以占其吉凶, 祓禳所以除其烖害.

후재 풍씨가 말하였다. 주관(周官)에서 사(史)는 복서(卜筮)를 관장하고 무(巫)는 불양(祓禳)을 관장한다. 복서는 그 길흉을 점치는 것이요, 불양은 그 재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반씨(潘氏) — 이효와 상효의 비교

潘氏曰, 以陽處隂, 過於巽也. 故九二上九皆有牀下之象. 然上九喪其資斧, 九二可用於史巫, 二得中而上失中也.

반씨가 말하였다. 양으로 음에 처하면 겸순이 지나친 것이다. 그러므로 구이와 상구 모두 ’상하(牀下)’의 상이 있다. 그러나 상구는 그 자부(資斧)를 잃고 구이는 사무(史巫)에 쓸 수 있으니, 이효는 중을 얻었고 상효는 중을 잃었기 때문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박(剝)의 상하와의 비교

雲峯胡氏曰, 牀所安也. 剝牀在隂爻言之, 是以隂剝陽, 使陽不能安. 巽在牀下, 在隂爻言之, 是以陽處隂, 陽不能自安. 巽之過者每失之不誠. 史職卜筮, 巫職禱祠, 丁寧煩悉其辭以自道達於鬼神, 雖巽之過而誠者也, 如是則吉无咎.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상(牀)은 편안한 바이다. 박(剝) 괘에서 ’상을 깎는다’는 음효에서 말한 것이니 음이 양을 깎아 양이 편안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손에서 ’상 아래에 있다’는 양이 음에 처하여 스스로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겸순이 지나친 자는 매번 불성실에서 잘못한다. 사(史)는 복서를 담당하고 무(巫)는 기도와 제사를 담당하니, 그 말을 정녕하고 번쇄하게 다하여 스스로 귀신에게 뜻을 도달함은, 비록 겸순이 지나치나 정성스러운 자이다. 이와 같으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 신을 섬기듯 윗사람을 섬겨라

中溪張氏曰, 他事過巽非所宜, 唯用史巫紛然其多, 則可以導達其誠意於神明. 人能以事神之禮而事上則吉而无咎, 葢以九二得乎中道故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다른 일에서 겸순이 지나침은 마땅하지 않으나, 오직 사무를 써서 분분히 많이 하면 그 성의를 신명에게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이 능히 신을 섬기는 예로써 윗사람을 섬기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대개 구이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효가 動하면風山漸(53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