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가장 좋은 처신
여괘(旅卦)는 집을 떠나 떠도는 나그네의 때다. 그 여섯 자리 가운데 육이는 가장 잘 처신하는 효로 꼽힌다. 음효가 음의 자리에 있어 유순중정(柔順中正)의 덕을 온전히 갖추었기 때문이다. 유순하면 사람들이 함께해 주고, 중정하면 처신이 마땅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나그네가 갖추기 어려운 세 가지 — 편히 들 여관(即次), 품을 밑천(懷資), 곁에서 충성하는 사람(得童僕) — 을 모두 얻는다.
효의 구조로 보면 이 세 가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원나라 역학자 장청자(중계 장씨)는 이렇게 풀었다. 육이가 가운데 자리를 얻었으니 여관에 든 것이요, 위로 구삼의 굳센 양을 받드니 재물을 품은 것이요, 아래로 초육의 부드러운 음을 타니 동복을 얻은 것이다. 강한 자에게는 몸과 재물을 의지하고, 부드러운 약자에게는 마음을 주어 위로받는다. 나그네가 외롭지 않으려면 의지할 강한 이와 마음 줄 반듯한 이가 함께 있어야 한다.
정이천은 이 효에 길(吉)이라는 글자가 붙지 않은 까닭을 새겨보라 한다. “나그네로 기거하는 때에 재앙과 위태로움을 면하면 이미 선한 것이다.” 떠도는 신세에서는 화를 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이라는 뜻이다. 주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육이를 “나그네의 가장 길한 자(旅之最吉者)“라 하였다. 여관에 들면 편안하고, 재물을 품으면 넉넉하며, 충실한 사람을 얻으면 속는 일 없이 기댈 수 있으니, 이 모두가 유순중정의 덕에서 나온다.
삶에의 적용
낯선 자리에 처음 들어설 때가 있다. 새 직장, 새 공동체, 새 국면. 이때 필요한 것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강함이 아니라 낮추고 순하되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다. 부드럽되 비굴하지 않고, 곧되 경직되지 않는 것 — 그것이 육이의 자리다. 몸으로 옮기면 선 자세에서 흔들림 없이 중심(中)을 지키는 연습이다. 상대의 힘에 부드럽게 순응하되 나의 중심은 결코 내주지 않는 것, 중심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 놓여도 곧 그 자리에 편안히 든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六二: 旅卽次(나그네가 여관·거처에 나아가 안정)·懷其資(노자·자본을 품음)·得童僕貞(어린 종의 곧음을 얻음) — '次'는 임시 거처(제 집), '資'는 자본·재화, '童僕'은 어리고 순한 종.
강자에 몸·재산 의지, 약자에 마음 의지: 六二(음)의 자본(資)은 이웃 친비인 九三(강·양)이니 — 강한 자에게 몸·재물을 의지하고(三효), 어린 약자(初六)에게는 마음을 주어 위로받는다(동복). 나그네가 의지할 데는 강한 이, 마음 줄 데는 어리고 반듯한 이라야 외롭지 않다. (…) 싸우러 나갈 때도 본심(착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정든 이를 본다.
정이천: 六二는 柔順中正之德을 갖춰 — 유순하니 무리와 친할 수 있고(衆與), 중정하니 처세에 마땅함을 잃지 않아 제 자리를 보존하며(能保其所有), 동복도 충신을 다한다(童僕亦盡其忠信).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주석
경문(經文)
六二. 旅即次, 懷其資, 得童僕貞.
육이(六二). 나그네가 여관에 든다(即次). 재물을 품고(懷資), 동복(童僕)의 충성(貞)을 얻는다.
소상전(小象傳)
象曰: 得童僕貞, 終无尤也.
동복의 충성을 얻으니, 끝내 허물이 없다(終无尤).
정이천(伊川) 전(傳) — 나그네의 선한 처신
二有柔順中正之德. 柔順則衆與之, 中正則處不失當, 故能保其所有. 童僕亦盡其忠信. 雖不若五有文明之德, 上下之助, 亦處旅之善者也. 次, 舍旅所安也. 財貨, 旅所資也. 童僕, 旅所賴也. 得就次舍, 懷畜其資財, 又得童僕之貞良, 旅之善也. 柔弱在下者, 童也. 強壯處外者, 僕也. 二柔順中正, 故得內外之心. 在旅所親比者, 童僕也. 不云吉者, 旅寓之際, 得免於災厲則已善矣.
이효는 유순중정의 덕이 있다. 유순하면 무리가 함께하고, 중정하면 처신이 마땅함을 잃지 않으니 그 소유를 보전할 수 있다. 동복 또한 충신을 다한다. 비록 오효의 문명한 덕과 위아래의 도움에는 미치지 못하나, 역시 나그네의 처신 중 선한 자이다. 차(次)는 나그네가 편안히 머무는 여관이요, 재화는 나그네가 의지하는 밑천이며, 동복은 나그네가 기대는 하인이다. 여관에 들고 재물을 품고 동복의 정성스러움을 얻으니 나그네의 선함이다. 유약하여 아래에 있는 자는 동(童)이요, 강건하여 밖에서 일하는 자는 복(僕)이다. 이효가 유순중정하기에 안팎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길(吉)이라 하지 않은 까닭은, 나그네로 기거하는 때에 재앙과 위태로움을 면하면 이미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자(朱子) 본의(本義) — 나그네의 최길(最吉)
即次則安, 懷資則裕, 得其童僕之貞信, 則无欺而有賴. 旅之最吉者也. 二有柔順中正之德, 故其象占如此.
여관에 들면 편안하고, 재물을 품으면 넉넉하며, 동복의 충실한 믿음을 얻으면 속이는 일 없이 기댈 수 있다. 나그네의 가장 길한 자이다. 이효가 유순중정의 덕이 있으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 세 가지의 구비
次, 旅之居也. 資, 旅之用也. 童僕, 旅之役走者也. 旅即次, 則其所舍也有其居. 懷其資, 則其所畜也有其用. 得童僕, 則其所以奔走而服役也, 又有其人. 旅道何脩而得此哉? 蓋以六居二之爲正故也.
차(次)는 나그네의 거처요, 자(資)는 나그네의 쓰임이요, 동복은 나그네가 부리는 자다. 여관에 들면 거처가 있고, 재물을 품으면 쓸 것이 있고, 동복을 얻으면 부릴 사람이 있다. 나그네의 도가 어찌하여 이를 얻었는가? 대개 육(六)이 이위(二位)에 거하여 바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 음이 중에 있음이 길
旅貴卑巽, 故位陰爻柔者多吉, 而六二兼之. 二以柔居中, 承剛乘柔, 旅之甚安而且裕者. 貞字, 諸家自作一句讀. 本義以連上文. 蓋即次懷資, 自見六二有柔順中正之德, 不必復以貞戒之. 惟旅中不能无賴乎童僕之用, 亦多不能免乎童僕之欺. 惟得其貞信者, 則无欺而有賴. 此旅之最吉者也.
나그네는 낮추고 순함(卑巽)을 귀하게 여기므로 자리가 음이고 효가 유한 자가 길함이 많으며, 육이는 이를 겸했다. 이효가 부드러움으로 가운데 거해 위의 강을 받들고 아래의 유를 타니, 나그네 중 매우 편안하고 넉넉한 자다. ‘정(貞)’ 자를 여러 학자는 따로 한 구절로 읽으나, 본의는 윗글에 연결하였다. 여관에 들고 재물을 품은 데서 이미 유순중정의 덕이 드러나므로 다시 바름으로 경계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나그네는 동복의 도움에 기대지 않을 수 없으나 그 속임을 면하기 어려우니, 오직 충실한 자를 얻으면 속임이 없고 기댈 수 있다. 이것이 나그네의 가장 길한 자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 효의 구조적 해석
六二居位得中, 旅即次也. 上承九三之剛, 懷其資也. 下乘初六之柔, 得童僕也. 人之處旅, 有次可安, 有資可用, 又有童僕之忠貞者可託, 雖在旅寓之中, 終无悔尤矣.
육이가 자리에 거하여 중을 얻었으니 ’여관에 듦’이다. 위로 구삼의 강을 받드니 ’재물을 품음’이요, 아래로 초육의 유를 타니 ’동복을 얻음’이다. 나그네 처지에 있으면서 편히 머물 여관이 있고, 쓸 재물이 있고, 또 충정한 동복에게 맡길 수 있으니, 비록 나그네의 기거 중에 있더라도 끝내 후회와 허물이 없다.
출전: 정이천『이천역전』, 주자『주역본의』, 제가 주석은 주역전의대전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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