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여(旅)괘의 맨 아래, 나그네 가운데서도 가장 낮고 곤궁한 자리다. 음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유약하니, 처지가 열악할 뿐 아니라 그 처지를 견디는 힘조차 약하다. 이런 자리에서 마음마저 자잘하고 옹졸해지는 것 — 그것이 쇄쇄(瑣瑣)다. 쇄쇄란 돌을 숫돌에 갈 때 떨어지는 돌가루처럼, 뜻이 잔잔하게 부스러져 좀스러워진 모양을 가리킨다.
주의할 것은 처지가 낮다는 사실 자체가 재앙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낮은 처지에서 마음까지 오그라들어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매달리고 원대한 것을 잊을 때, 바로 그 마음이 재앙을 불러들인다(斯其所取災). 정이천은 이를 “원대한 것을 도모하지 않고 자잘한 것에 얽매인다”는 진단으로 짚었다. 소상전이 “뜻이 궁하여 재앙이 된다(志窮災也)“고 한 것도 같은 뜻이다. 재앙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궁하게 몰린 뜻이 스스로 더 깊이 파고들어 부르는 것이다.
초육에게 정응인 사효가 있으나, 사효는 위로만 타오르는 불(離)이라 아래로 내려와 구원하지 않는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 효가 진짜로 말하는 것은 자리의 불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아는 사람은 마음을 바꿔 고칠 수 있고, 고치지 못하는 이는 처지에 짓눌려 잔잔히 부스러진다.
삶에의 적용
곤경에 처했을 때 몸이 먼저 움츠러든다. 어깨가 말리고 시선이 낮아지고 숨이 얕아진다. 그 위축된 몸이 곧 위축된 마음을 만들고, 위축된 마음이 자잘한 판단을 만든다. 그러니 처지가 낮을수록 의식적으로 척추를 세우고 가슴을 펴며 숨을 깊이 내려야 한다. 어려울수록 마음을 크고 대담하게 가지는 것 — 이것은 허세가 아니라 재앙을 부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수양이다. 작은 것에 얽매이려는 마음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추어 더 멀리 보는 연습. 그 한 호흡이 쇄쇄를 막는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初六은 旅瑣瑣 斯其所取災라. '瑣瑣(쇄쇄)'는 돌을 숫돌에 갈면 나오는 돌가루처럼 잔잔하고 쪼잔함 — 마음·뜻이 아주 좀스럽고 못남이니, 이것이 곧 제가 재앙을 취하는 바(斯其所取災)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마음을 돌가루처럼 잔잔하게 오그라뜨리면 그것이 진짜 재앙·형벌이 된다. "이제 죽었네" 하고 마음이 오그라들면 진짜 죽고, 어려울수록 마음을 크고 대담하게 가져야 산다.
初六과 정응인 九四는 위로만 타오르는 불이라 아래로 내려와 구원하지 않는다(불은 위로만 탐). 그래서 초효는 끝내 피곤하고 하는 일마다 망한다 — 알면 마음을 바꿔 고칠 수 있으나(성현·대인), 음유 소인은 못 바꾼다. (…) 詩傳 위나라 旄丘 '瑣兮尾兮 流離之子'(못나고 좀스러운 떠돌이)가 바로 初六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주자, 제가
효사·소상전
初六. 旅瑣瑣, 斯其所取災.
초육. 나그네가 자잘하고 옹졸하니(쇄쇄), 이것이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바이다.
象曰: 旅瑣瑣, 志窮災也.
상전에 이르기를, 나그네가 옹졸하고 자잘하니 뜻이 궁하여 재앙이 된다.
정이천 『이천역전』
六以陰柔在旅之時, 處於卑下, 是柔弱之人, 處旅困而在卑賤. 所存汚下者也. 志卑之人, 既處旅困, 鄙猥瑣細, 无所不至, 乃其所以致悔辱, 取災咎也. 瑣瑣, 猥細之狀. 當旅困之時, 才質如是, 上雖有援, 无能爲也. 四陽性而離體, 亦非就下者也. 又在旅, 與他卦爲大臣之位者異矣.
초육은 음유로 나그네의 때에 있으면서 비하(卑下)에 처했으니, 유약한 사람이 나그네의 곤궁함 속에서 비천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 마음에 품은 것이 더럽고 낮다. 뜻이 비루한 자가 나그네의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 비루하고 옹졸하며 자잘하여 하지 않는 짓이 없으니, 이것이 욕됨과 회한을 부르고 재앙을 취하는 까닭이다. 쇄쇄란 옹졸하고 자잘한 모양이다. 나그네의 곤궁한 때에 재질이 이와 같으면 위에 비록 돕는 자가 있더라도 어찌할 수 없다. 사효는 양의 성질이면서 이(離)의 체이니 아래로 내려오는 자가 아니다. 또한 나그네의 괘에서는 다른 괘의 대신(大臣)의 자리와는 다르다.
주자 『주역본의』
當旅之時, 以陰柔居下位, 故其象占如此.
나그네의 때에 음유로 아래 자리에 있으므로 그 상(象)과 점괘(占)가 이와 같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初以陰柔而在下, 是卑賤之人, 處旅不得志而困窮者也. 不務遠大而局於瑣屑, 此其所以自取災殃也.
초효는 음유로 아래에 있으니 비천한 사람이 나그네의 처지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곤궁한 자이다. 원대한 것을 도모하지 않고 자잘한 것에 얽매이니, 이것이 스스로 재앙을 취하는 까닭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旅而居下, 其道途負販之旅乎? 柔弱卑賤, 其鄙固… 象之意, 可以旁通, 又不特爲旅言也.
나그네로서 아래에 거하니 그 길가에서 짐을 지고 행상하는 나그네가 아니겠는가? 유약하고 비천하니 그 비루함은 본래 그런 것이다. 상전의 뜻은 넓게 통할 수 있으니, 다만 나그네만을 위해 말한 것이 아니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柔而居下, 其志猥陋, 故曰窮.
부드러우면서 아래에 거하니 그 뜻이 옹졸하고 누추하므로 ’궁(窮)’이라 한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詩云, 瑣兮尾兮, 流離之子. 初六有焉.
시경에 이르기를 ’자잘하고 꼬리뿐이라, 떠도는 사람이로다’라 하였으니, 초육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