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상과 자리
구오는 상괘 손(巽)의 가운데, 존귀한 군주의 자리(오효)에 있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자리를 얻었고(득위), 상괘의 가운데를 얻어 중정(中正)을 겸비한다. 아래 육이와는 정응(正應)을 이루니, 중정한 군주와 중정한 신하가 바르게 마주 선 형국이다.
기러기가 마침내 언덕(陵)에 올랐다. 기러기가 머무는 곳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니, 군주의 자리에 이른 상이다. 그러나 점진(漸)의 때이므로 그 도가 즉시 행해지지는 않는다. 정응인 육이(아내)와의 사이를 삼효·사효가 가로막고 있어, 아내가 삼 년 동안 잉태하지 못한다(婦三歲不孕). 삼효는 육이와 가까이 붙어(比) 붙잡고, 사효는 구오와 가까이 붙어 가로막으니, 바른 만남이 더디게 된다.
그러나 중정의 도에는 반드시 형통할 이치가 있다. 바르지 못한 것이 어찌 중정을 영원히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끝내 아무도 이기지 못하니(終莫之勝) 길하다. 다만 그 합함에 점진이 있을 뿐이다. 정이천은 이렇게 새긴다 — “바르지 못한 것으로 중정에 대적하는 것은 한때의 일일 뿐이니, 오래 간들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소상전이 “바라는 바를 얻기 때문(得所願)“이라 받은 까닭이 여기 있다.
삶에의 적용
가까운 사정(私情)보다 먼 정도(正道)가 이긴다. 삼효·사효처럼 가까이 붙어 있다고 다 좋은 인연은 아니며, 육이·구오처럼 거리가 멀고 가로막힌 것이 있어도 바른 호응은 끝내 합한다. ’삼세불잉(三歲不孕)’이라는 세월은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다. 점진의 도는 결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중정이라는 이치에는 반드시 관철되는 힘이 있다. 몸을 닦는 자리에서도 같다 —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오늘 당장 뚫리지 않더라도, 바름을 잃지 않으면 때가 무르익어 저절로 길이 열린다. 조급함을 내려놓되 바름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구오의 시중(時中)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언덕(陵)은 뾰족한 산이 아니라 평평하면서 높은 능선이다. 기러기는 물갈퀴 탓에 나뭇가지를 못 잡으니 나무 없는 능선을 좋아한다. 五는 임금 자리이나 점(漸)의 괘이므로 산 위의 나무가 여러 해 걸려 점점 자라듯 그 도(道)도 급해선 안 된다.
二(음·中正)와 五(양·中正)는 정응의 천생연분이나, 三이 二를 친비로 농락하고 四가 五를 이간질하여 길을 가로막는다. 부인(二)이 3년 임신을 못 한다. 그러나 三·四는 부정·부중이라 한때일 뿐, 끝내 中正의 二·五를 이기지 못한다. 二·五가 점진으로 합쳐 마침내 소원을 이루니, 小象에 得所願也라 하였다. 이 '길'은 단정이 아니라 "그토록 참고 견디면 길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의 토다 — 인생은 더디더라도 투명하게 내다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 나를 직접 보는 것과 삼자(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다르니,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 제 식만 옳다 우기면 주관만 있고 객관이 없어 골수(외고집)가 된다. 나를 너무 믿지도 말고 안 믿지도 말라.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주자, 제가
경문
九五:鴻漸于陵。婦三歲不孕,終莫之勝,吉。
구오는 기러기가 언덕(陵)으로 점진하니, 아내(婦)가 삼 년 동안 잉태하지 못하나, 끝내 아무도 이기지 못하니 길하다.
소상전(象傳)
象曰:終莫之勝吉,得所願也。
끝내 이기지 못하여 길한 것은, 바라는 바를 얻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효사
陵,高阜也。鴻之所止,最高處也,象君之位。雖得尊位,然漸之時,其道之行固亦非遽。與二為正應,而中正之德同,乃隔於三四。三比二,四比五,皆隔其交者也。未能即合,故三歲不孕。然中正之道,有必亨之理。不正豈能隔害之?故終莫之能勝。但其合有漸耳,終得其吉也。以不正而敵中正,一時之為耳,久其能勝乎?
’릉(陵)’은 높은 언덕이다. 기러기가 머무는 곳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니 군주의 자리를 형상한다. 비록 존위를 얻었으나 점진의 때이므로 그 도가 행해짐이 진실로 급하지 않다. 이효와 정응이 되고 중정의 덕이 같으나, 삼효·사효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삼효는 이효와 가까이 있고, 사효는 오효와 가까이 있으니, 모두 그 교류를 가로막는 자들이다. 아직 즉시 합할 수 없으므로 삼 년 동안 잉태하지 못한다. 그러나 중정의 도에는 반드시 형통할 이치가 있다. 바르지 못한 것이 어찌 가로막아 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끝내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그 합함에 점진이 있을 뿐이요, 끝내 그 길함을 얻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것으로 중정에 대적하는 것은 한때의 일일 뿐이니, 오래 간들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정이천 『이천역전』— 상전
君臣以中正相交,其道當行,雖有間其閒者,終豈能勝哉?徐必得其所願,乃漸之吉也。
군신이 중정으로 서로 교류하니 그 도가 마땅히 행해질 것이다. 비록 그 사이를 이간하는 자가 있더라도 끝내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서서히 반드시 바라는 바를 얻으니, 곧 점진의 길함이다.
주자 『주역본의』
陵,高阜也。九五居尊,六二正應在下,而為三四所隔。然終不能奪其正也。故其象如此,而占者如是則吉也。
’릉(陵)’은 높은 언덕이다. 구오가 존위에 거하고, 육이라는 정응이 아래에 있으나 삼효·사효에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끝내 그 바름을 빼앗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길하다.
제가(諸家)
사수 정씨(沙隨程氏):
二五當位,非三所能抗。終莫之勝,是以吉也。
이효와 오효가 자리를 얻었으니, 삼효가 능히 대항할 바가 아니다. 끝내 이기지 못하니, 이로써 길한 것이다.
개봉 경씨(開封耿氏):
剛上柔下,是以物終莫之勝。
강(剛)이 위에 있고 유(柔)가 아래에 있으니, 이로써 사물이 끝내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鴻漸于陵,陵為高阜,下視于磐于陸,則于陵為最高。此人君處九五位之象也。況五與二為正應,則二乃五之婦。二漸進以歸於五也。雖三欲塞之、四欲間之,歷三歲而不孕,然二五以中正之道相應,必得遂其室家之願。彼不中不正者,終莫能奪而勝之,宜其吉也。卦以㢲為女、艮為男,而爻以五為夫、二為婦者,蓋以二五陰陽相應而言,取義不同。此其所以為變易也。
’기러기가 언덕에 점진하다’에서 언덕은 높은 둔덕이니, 바위나 육지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언덕이 가장 높다. 이것이 군주가 구오의 자리에 처한 상이다. 더구나 오효와 이효가 정응이니, 이효가 곧 오효의 아내이다. 이효가 점진적으로 나아가 오효에게 시집가는 것이다. 비록 삼효가 막으려 하고 사효가 이간하려 하여 삼 년 동안 잉태하지 못하나, 이효와 오효가 중정의 도로 서로 호응하니 반드시 그 가정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저 중정하지 못한 자들이 끝내 빼앗아 이길 수 없으니, 마땅히 길한 것이다. 괘에서는 손(巽)을 여자로, 간(艮)을 남자로 삼았으나, 효에서는 오효를 남편으로 이효를 아내로 삼은 것은 이효·오효가 음양으로 상응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뜻을 취함이 다르다. 이것이 이른바 변역(變易)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三與五皆言婦。五以二為婦,正也。三與四為婦,非正也。三四相比而為夫婦,婦雖孕而不敢育,女歸之不以漸者也,故凶。二五相應而為夫婦,婦雖孕而三四莫能勝,女歸之以其漸者也,故吉。周公於三五二爻言婦之吉凶,而卦辭所謂女歸吉者愈明矣。
삼효와 오효 모두 아내를 말하였다. 오효가 이효를 아내로 삼은 것은 바름이요, 삼효가 사효와 부부가 된 것은 바르지 않음이다. 삼효·사효가 서로 가까이 있어 부부가 되었으나 아내가 비록 잉태하되 감히 기르지 못하니, 여자의 시집감이 점진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흉하다. 이효·오효가 서로 응하여 부부가 되었으나 아내가 비록 삼 년 잉태하지 못하더라도 삼효·사효가 끝내 이기지 못하니, 여자의 시집감이 점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길하다. 주공이 삼효와 오효 두 효에서 아내의 길흉을 말하였으니, 괘사에서 이른바 ’여귀길(女歸吉)’이라 한 것이 더욱 분명하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中正相應,乃二五所願。其合雖遲,終得其所願也。
중정으로 서로 호응하는 것은 이효와 오효가 바라는 바이다. 그 합함이 비록 늦으나 끝내 바라는 바를 얻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