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기러기가 물가와 반석과 육지를 지나 이제 나무 위로 올라간다. 하괘의 산(艮)에서 상괘의 바람(巽)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바로 이 사효다. 물에서 살던 새가 처음으로 나무에 오른 것이니, 그 자리가 편안할 리 없다. 기러기는 물새라 발가락이 이어져 있어 나뭇가지를 움켜쥐지 못한다. 나무는 본래 기러기가 깃들 곳이 아니다.
게다가 사효는 음(陰)으로서 아래 구삼의 양(陽)을 타고 있다. 강한 것을 올라탄 형국이니(乘剛) 그 자체로 불안하다. 그러나 효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或得其桷,无咎).” 핵심은 ’혹(或)’이라는 글자다. 반드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편안한 도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평평하게 옆으로 뻗은 가지(桷)를 만나면 물새라도 그 위에 안착할 수 있다.
무엇이 그 가지를 얻게 하는가. 정이천은 “편안함을 구하는 도는 오직 순함(順)과 겸손함(巽)에 있다”고 했다. 사효는 음이 음의 자리에 있어 바름을 얻었고(居正), 손(巽)의 체로서 순하다. 그 순정함과 겸손함이야말로 불안한 자리에서 편안함을 찾는 비결이다. 의리가 순하고 바르며 처신을 낮추면, 어디에 처하든 편안하지 않겠는가(何處而不安).
삶에의 적용
익숙한 기본기에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자리에는 언제나 불안정이 따른다. 몸을 새 기술에 맡기는 순간, 물새가 처음 나무에 오르듯 발디딜 곳이 낯설다. 이때 환경을 탓하며 버티려 힘을 주면 오히려 미끄러진다. 자세를 낮추고(卑), 순서를 밟아(順) 천천히 익히면, 그 낯선 자리에도 나를 받쳐 줄 평평한 가지가 나타난다. 불안을 이기는 힘은 바깥의 조건이 아니라 나를 낮추는 태도에서 온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기러기가 일층에서 점점 올라 나무에 이르렀다. 나무는 세월이 가야 크고 높아지니 '높음'을 나무로 표현했다. 기러기는 발가락이 물갈퀴로 이어져 나뭇가지를 움켜쥐지 못하므로 나무에 깃들지 못한다. 그래서 나무는 불안한 자리다(不安之象).
桷은 옆으로 평평하게 뻗은 가지다. 오직 그 평평한 가지 위에서만 능히 편안할 수 있으니, 그것을 얻으면 허물이 없다. 六四는 음이 음자리에 바르고(居正), 겸손·순리(巽順)하다. 자세가 낮추고 겸손하면(卑巽) 평지 가지든 나무든 하늘이든 어디서나 수용된다 — 비손하면 어디 가도 수용을 해 주는 법이다. 평지 가지에만 뜻을 두지 말고, 자세를 비손히 하는 데 뜻을 두라.
길흉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점치고 책 보아 물리를 얻은 사람, 깨달은 사람은 좋은 쪽으로 가고, 못 깨달으면 흉하다. (…) 九三에서는 六四를 '내 여자'로 보았으나, 六四에 와서는 六四 자신의 눈으로 본다. 세상 모든 사람은 제 위치에서 세상을 보지, 세상의 위치에서 자신을 보지 않는다 — 주역은 내 위치에서 상대를 보고, 또 상대 위치에서 나를 보아야 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정이천·주자·제가
경문(經文)
六四:鴻漸于木。或得其桷,无咎。
육사는 기러기가 나무로 점진하니,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
상전(象傳)
象曰:或得其桷,順以巽也。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는 것은, 순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 효사
當漸之時,四以陰柔進據剛陽之上,陽剛而上進,豈能安處陰柔之下?故四之處非安地。如鴻之進于木也。木漸高矣,而有不安之象。鴻趾連,不能握枝,故不木棲。桷,橫平之柯。唯平柯之上,乃能安處。謂四之處本危,或能自得安寧之道,則無咎也。如鴻之于木,本不安,或得平柯而處之則安也。四居正而㢲順,宜無咎者也。必以得失言者,因得失以明其義也。
점진의 때를 당하여, 사효가 음유로서 강양(구삼)의 위에 올라가 자리하니, 양강은 위로 나아가는 것인데 어찌 음유의 아래에 편안히 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효의 처지는 편안한 곳이 아니다. 기러기가 나무 위에 올라간 것과 같다. 나무는 점차 높아졌으나 불안한 상이 있다. 기러기의 발가락은 연결되어 있어 가지를 쥘 수 없으므로 나무에 깃들지 않는다. ’각(桷)’은 가로로 평평한 가지이다. 오직 평평한 가지 위라야 편안히 처할 수 있다. 사효의 처지가 본래 위태로우나 혹시 스스로 편안한 도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사효는 바른 자리에 거하고 또한 손순하니, 마땅히 허물이 없는 자이다. 반드시 득실로 말한 것은 득실에 인하여 그 의를 밝힌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 상전
桷者,平安之處。求安之道,唯順與巽。若其義順正,其處卑巽,何處而不安?如四之順正而巽,乃得桷也。
’각(桷)’은 평안한 곳이다. 편안함을 구하는 도는 오직 순함과 겸손함에 있다. 만약 그 의리가 순하고 바르며 그 처신이 낮추고 겸손하면, 어디에 처하든 편안하지 않겠는가. 사효가 순정하고 겸손하니 곧 평평한 가지를 얻은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鴻不木棲。桷,平柯也。或得平柯,則可以安矣。六四乘剛而順巽,故其象如此。占者如之,則無咎也。
기러기는 나무에 깃들지 않는다. ’각(桷)’은 평평한 가지이다. 혹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편안할 수 있다. 육사는 강을 타고 있으나 순하고 겸손하니 그 상이 이와 같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허물이 없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巽為木,而處艮山之上。九三之前,三以一陽畫衡于下,有桷之象。鴻漸于此則愈高矣。鴻之掌不能握木,木雖高非鴻所安也。然陰居陰得正,如於木之中或得平柯而處之,則亦安矣,故无咎。
손(巽)은 나무이니 간(艮)의 산 위에 있다. 구삼의 앞에서, 삼효가 하나의 양획으로 가로로 아래에 놓여 있으니 ’각(桷)’의 상이 있다. 기러기가 여기에 점진하면 더욱 높아진 것이다. 기러기의 발바닥은 나무를 쥘 수 없으니, 나무가 비록 높아도 기러기가 편안할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음이 음의 자리에 거하여 바름을 얻었으니, 나무 가운데 혹 평평한 가지를 얻어 처하면 또한 편안할 수 있으므로 허물이 없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鴻水鳥而乘風以飛。下卦艮止而有坎水,故下三爻之象曰干、曰磐、曰陸,皆鴻之漸進而止于水際者也。上卦㢲為風為高,故上三爻之象曰木、曰陵、曰逵,皆鴻之漸進而飛于風中者也。
기러기는 물새로서 바람을 타고 난다. 하괘 간(艮)은 그치는 것이고 (호체에) 감(坎)의 물이 있으므로, 아래 세 효의 상이 ‘간(干, 물가)’, ‘반(磐, 바위)’, ’륙(陸, 육지)’이니, 모두 기러기가 점진적으로 나아가 물가에 머무는 것이다. 상괘 손(巽)은 바람이요 높은 것이므로, 위 세 효의 상이 ‘목(木, 나무)’, ‘릉(陵, 언덕)’, ’구(逵, 하늘길)’이니, 모두 기러기가 점진적으로 나아가 바람 속을 나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