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 마침내 구름 위 하늘길(逵)에 오른 자리다. 여기서 ’陸(육지)’은 삼효의 땅이 아니라 사방으로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하늘길(逵)로 새긴다. 안정 호공과 정이천, 주자가 모두 운(韻)으로 보아도 ’逵’가 옳다 하였다. 머무는 곳을 떠나 허공을 나는 것이니, 세속의 지위를 초월한 현달(賢達)의 경지다.
다른 괘에서는 맨 위 효가 극에 이르러 지나침(亢)이 되거나 막힘(窮)이 되기 쉽다. 건(乾)괘의 상구가 ‘항룡유회(亢龍有悔)’, 곧 극에 이르러 후회가 있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점(漸)괘의 상구만은 극에 이르러도 길하다. 정이천은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건은 순양(純陽)의 극이라 너무 높아 지나침이 되지만, 점은 세 음과 세 양이 순서를 밟아 나아가므로 높아져도 길하다(致高而吉). 점진으로 올라간 높이는 추락하지 않는 것이다.
‘기우가용위의(其羽可用爲儀)’ — 그 깃이 의식의 장식이자 법도(儀)로 쓰일 수 있다. 깃은 기러기가 나아가는 데 쓰는 도구다. 그 나아감의 도구가 세상의 모범이 된다는 것은, 지위 없는 곳(無位)에 있어도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의표(儀表)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상전이 ’불가란(不可亂)’이라 한 것은, 이 사람의 뜻(志)이 우뚝하여 어떤 외물도 그 마음을 굽히거나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순서를 밟아 올라온 삶은 마지막에 뒤돌아볼 후회가 없다.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헛되이 배부르지 않고(不素飽), 자리를 내려놓은 뒤에는 지위 없이도 세상의 본보기가 되는 것 — 나아가든 물러나든 쓸모가 있는 것이 점진의 도가 궁극에 이르는 자리다. 몸으로 오래 닦아온 수련의 끝도 이와 같다. 최고 경지에 이른 노사(老師)는 더 이상 겨루지 않으나, 그 존재 자체가 후학의 의표가 되고 그 기술과 정신은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욕심을 비운 자리에는 누구도 어지럽힐 것이 없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여기 '陸'은 三효의 육지(땅)와 달리, 좌변에 책받침(辶)을 더한 逵(구거리규)로 새긴다 — 사통오달(四通五達)의 구거리, 곧 하늘(雲路·허공)이다. 기러기가 하늘에 점점 올라 그 깃(羽)이 의표(儀=法·모범)가 될 만하니 길하다. 철새가 줄지어 나는 깃과 질서를 사람이 우러러 본받으니, 군자의 진퇴·거동의 법이 된다.
初·上은 벼슬자리(位)가 없고 二~五만 자리가 있다. 양효든 음효든 가장 위(極)는 대개 흉하나(예: 乾 上九 亢龍有悔), 漸은 三陰三陽이 차례로 있어 점손(漸巽)이 극에 이른 현달의 자리이므로 도리어 길하다 — 비록 높아 자리가 없으나 쓸모없는 상이 되지 않는다. 인간 세상의 일반사를 뛰어넘어(超乎常事之外) 편히 사는 자다. 사람은 가족·재물·건강에 정(情)으로 묶여 아무리 부자라도 고민 속에 사니, 그 묶임을 벗어나야 참으로 편안하다. 욕심이 없으니 누구도 어지럽히지 못한다.
여섯 효가 순서대로(干→磐→陸→木→陵→逵) 올라 뒤돌아볼 일이 없다. 죽을 때 우는 것은 인생이 늦어 정에 묶였기 때문이니, 젊어서부터 순서로 살면 후회가 없다.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經文)
上九:鴻漸于陸。其羽可用爲儀,吉。
상구는 기러기가 하늘길(逵, 구름 위)로 점진하니, 그 깃이 의식의 장식(儀)으로 쓰일 수 있으니 길하다.
교정: ’陸’에 대해 안정 호공과 정이천, 주자가 모두 ’逵(하늘길)’로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운(韻)으로 보아도 ’逵’가 맞다. 이아(爾雅)에 “구달위지구(九達謂之逵)“라 하여, 사방팔방으로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길이다.
상전(象傳)
象曰:其羽可用爲儀吉,不可亂也。
상전에 말하였다. 그 깃이 의식의 장식으로 쓰일 수 있어 길한 것은, 그 뜻을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不可亂).
정이천『이천역전』— 효사
安定胡公以陸為逵。逵,雲路也,謂虛空之中。爾雅:九達謂之逵。逵,通達無阻蔽之義也。上九在至高之位,又益上進,是出乎位之外。在他時則為過矣,於漸之時,居㢲之極,必有其序。如鴻之離所止而飛于雲空,在人則超逸乎常事之外者也。進至於是而不失其漸,賢達之高致也。故可用爲儀法而吉也。羽,鴻之所用進也。以其進之用,況上九進之道也。
안정 호공이 ’륙(陸)’을 ’구(逵)’로 보았다. ’구’는 구름 위의 길(雲路)이니 허공 가운데를 말한다. 상구는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또 더 위로 나아가니 지위의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다른 때라면 지나침이 되겠으나, 점진의 때에 손(巽)의 극에 거하니 반드시 그 순서가 있다. 기러기가 머무는 곳을 떠나 구름 위 허공을 나는 것과 같으니, 사람으로 치면 일상의 일을 초월한 자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되 그 점진의 도를 잃지 않았으니 현명한 이의 고상한 경지(賢達之高致)이다. 그러므로 본받을 만한 법도(儀法)로 삼을 수 있어 길하다. ’우(羽, 깃)’는 기러기가 나아가는 데 쓰는 것이니, 그 나아감의 도구로 상구의 나아가는 도를 비유한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상전
君子之進,自下而上,由微而著。跬步造次,莫不有序。不失其序,則無所不得其吉。故九雖窮高而不失其吉。可用為儀法者,以其有序而不可亂也。
군자의 나아감은 아래에서 위로, 미미한 데에서 드러나는 데로이다. 반걸음과 잠깐 사이에도 순서가 있지 않음이 없다. 그 순서를 잃지 않으면 길함을 얻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극히 높은 데 이르렀으나 그 길함을 잃지 않는다. 본받을 법도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순서가 있어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주자『주역본의』
胡氏、程氏皆云陸當作逵,謂雲路也。今以韻讀之,良是。儀,羽毛旌纛之飾也。上九至高,出乎人位之外,而其羽毛可用以為儀飾。位雖極高,而不為無用之象。故其占為如是則吉也。
호씨와 정씨가 모두 ’륙(陸)’은 마땅히 ’구(逵)’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구름 위의 길을 말한다. 지금 운으로 읽어 보건대 참으로 그러하다. ’의(儀)’는 깃·꿩꼬리(旌纛)의 장식이다. 상구는 지극히 높아 사람의 지위 바깥에 나갔으나 그 깃이 의식의 장식으로 쓰일 수 있다. 지위가 비록 극히 높으나 쓸모가 없는 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으면 길하다.
정씨 강중(鄭氏剛中)
鳥羽皆有用而各有所取。雉取其綵,鷺取其白,鴻取其知時。取其羽以為儀則,則君子進退去就之義亦孰得而亂之?可觀以為法矣。
새의 깃은 모두 쓰임이 있으되 각각 취하는 바가 다르다. 꿩은 그 채색을, 백로는 그 흰 빛을, 기러기는 그 때를 아는 것(知時)을 취한다. 그 깃을 취하여 의식의 법칙으로 삼으면, 군자의 나아가고 물러남(進退去就)의 의리를 또한 누가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보고 법으로 삼을 만하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상효
上九居漸之極,猶鴻自江干漸進于此而雲飛也。羽乃鴻所用以進者,而其進莫不有漸,可以為儀也。
상구는 점(漸)의 극에 거하니, 기러기가 강가에서부터 점진하여 여기까지 와서 구름 위를 나는 것이다. 깃은 기러기가 나아가는 데 쓰는 것인데, 그 나아감에 점진이 아닌 것이 없으니 법식(儀)으로 삼을 만하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육효 종합
六爻皆以鴻為象。鴻,水鳥也。初言于干,進之始也;二言于磐,則進于干矣;三言于陸,則又進于磐矣。至四于木、五于陵,則鴻之漸愈高而無可進之地,故以鴻飛為象。言逵者,以其在天位之外也。然漸卦以女歸為義,故中四爻有夫婦之象。五與二應,夫婦之正配也,故以婦三歲不孕終莫之勝為象。三與四比,夫婦之邪匹也,故以婦孕不育失其道也為象。蓋夫婦之交亦當以漸。夫苟患正配之難合而樂邪匹之易從,則亦失漸之義矣。
여섯 효가 모두 기러기로 상을 삼았다. 초효의 ’물가(干)’는 나아감의 시작이요, 이효의 ’바위(磐)’는 물가에서 나아간 것이요, 삼효의 ’육지(陸)’는 또 바위에서 나아간 것이다. 사효의 ‘나무(木)’, 오효의 ’언덕(陵)’에 이르면 더 나아갈 곳이 없으므로 기러기가 나는 것으로 상을 삼았다. ’구(逵)’라 한 것은 하늘 자리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점괘는 여자의 시집감으로 뜻을 삼으므로 가운데 네 효에 부부의 상이 있다. 오효와 이효가 호응하니 바른 짝(正配)이라 ’삼 년 잉태하지 못하나 끝내 이기지 못한다’를 상으로 삼고, 삼효와 사효는 가까이 붙은 사사로운 짝(邪匹)이라 ’잉태하되 기르지 못하고 도를 잃는다’를 상으로 삼았다. 부부의 교류도 마땅히 점진적이어야 하니, 바른 짝의 어려움을 걱정하여 사사로운 짝의 쉬움을 즐긴다면 이 또한 점진의 뜻을 잃은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本義獨釋二與上兩爻象傳。蓋以二居有用之位,有益於人之國家而非素飽者;上在無位之地,亦足為人之儀表而非無用者。二志不在溫飽,上志卓然不可亂。士大夫之出處,於此當有取焉。
본의가 유독 이효와 상효 두 효의 상전만을 풀이하였다. 이효는 쓸모 있는 자리에 거하여 남의 국가에 유익하되 헛되이 배부른 자가 아니고, 상효는 자리 없는 곳에 있으나 역시 남의 의표가 되기에 족하여 쓸모없는 자가 아니다. 이효의 뜻은 따뜻하게 먹는 것에 있지 않고, 상효의 뜻은 우뚝하여 어지럽힐 수 없다. 사대부의 나아감과 물러남(出處)에 있어 여기서 취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