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 물가(干)에서 한 단계 올라 편평한 바위(磐) 위에 앉았다. 물가보다 높고 안정된 곳이다. 초육이 처음 나아가며 불안하고 위태로웠다면(小子厲有言), 육이는 바위 위에서 편안히 먹고 마시며 화락하게 운다(飲食衎衎). 같은 점진(漸)인데 한 걸음의 차이가 이토록 크다. 육이가 유순하고 중정하며(柔順中正), 위로 구오라는 바른 군주와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리가 바르면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하는 일이 풀린다.
핵심은 상전의 한 구절, “헛되이 배부른 것이 아니다(不素飽)“에 있다. 정이천은 후세 사람이 ’음식간간’을 그저 먹고 마시는 쾌락으로 오해할까 염려하여, 이것이 “뜻을 얻어 화락한 것(得志和樂)이지 공연히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풀이하였다. 안정된 자리에서 누리는 여유는 안주가 아니다. 그 여유는 장차 도를 행하여 천하에 미치려는 준비다. 녹봉을 받는 자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 국가를 반석에 놓고 백성을 화락하게 하는 것이 곧 ’음식간간’의 참뜻이다.
중계 장씨의 비유가 생생하다. 새는 먹을 때 늘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피고, 한 번이라도 놀라면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바위 위에 앉은 기러기는 높되 위태롭지 않아(高而不危) 비로소 편안히 먹는다. 이것이 ’중정한 자리’의 힘이다. 조급하게 뛰어오르려 하지 않고, 바른 자리에서 바른 호응을 지키며 때를 기다리니 두려울 것이 없다.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흔히 안정을 나태와 혼동한다. 그러나 육이가 일러주는 안정은 다르다.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먼저 다진 뒤에야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라앉아야 멀리 볼 수 있다. 수련도 그러하다. 기본기를 익혀 자세가 안정된 뒤에야 비로소 여유가 생기고, 의무감이 아니라 기쁨(衎衎)에서 몸을 움직일 때 실력이 빠르게 는다. 오늘 내 자리부터 바르게 딛고 서라. 편안함을 부끄러워하지 말되, 그 편안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잊지 말라.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기러기가 물가를 벗어나 편편한 반석에 이르니, 발에 물갈퀴가 있어 평지를 좋아하는 기러기에게 반석은 더없이 편안한 자리다. 이를 사람에 견주면 음식이 즐겁고 맛 좋은 것(飮食衎衎)이다. 자리가 편안하면 음식이 맛있고, 음식이 맛있으면 건강하고, 건강하면 인생이 즐겁고, 인생이 즐거우면 하는 일이 풀린다. '吉'은 가능성(吉하리라)이 아니라 딱 잘라 단정한 것이다(吉하니라). (…) 小象 飮食衎衎 不素飽也 — 공짜로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다. 군자의 '음식'은 곧 뜻을 펴는 교육이니,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보다 머리·지식을 파는 정신노동이 더 큰 수고다.
군자는 매일 노는 것 같아도 머리·지식·생각을 팔아 인류에 교육을 남기니, 그 수고가 육체노동보다 크다. 부열(傅說)은 "내가 섬길 임금이 못 되면 그 녹을 먹지 않는다(不食其祿)" 하였고, 맹자는 "내 앞에 사방 한 길의 음식이 차려져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食前方丈 我得志弗爲也)" 하였다 —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이 뜻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六二:鴻漸于磐。飲食衎衎,吉。
육이는 기러기가 바위(磐)로 점진하니, 먹고 마시며 화락하니(飲食衎衎) 길하다.
상전(象傳)
象曰:飲食衎衎,不素飽也。
상전에 말하였다. 먹고 마시며 화락한 것은 헛되이 배부른 것이 아니다(不素飽).
정이천(程伊川)『이천역전』— 효사
二居中得正,上應於五,進之安裕者也。但居漸,故進不速。磐,石之安平者,江河之濱所有,象進之安。自干之磐,又漸進也。二與九五之君,以中正之道相應,其進之安固平易,莫加焉。故其飲食和樂,衎衎然,吉可知也。
이효는 중(中)에 거하고 바름(正)을 얻어, 위로 오효와 호응하니 나아감이 안정되고 넉넉한(安裕) 자이다. 다만 점진의 때에 거하므로 나아감이 빠르지 않다. ’반(磐)’은 편평하고 안정된 바위로, 강하의 기슭에 있는 것이니 나아감의 안정을 형상한다. 물가(干)에서 바위(磐)로 간 것이니 또한 점진적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효와 구오의 군주가 중정의 도로 서로 호응하니, 그 나아감의 안정되고 평이함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며 화락하여 간간하니(衎衎然), 길함을 알 수 있다.
정이천『이천역전』— 상전
爻辭以其進之安平,故取飲食和樂為言。夫子恐後人之未喻,又釋之云:中正君子遇中正之主,漸進於上,將行其道以及天下。所謂飲食衎衎,謂其得志和樂,不謂空飽飲食而已。素,空也。
효사에서 나아감이 안정되고 평이하므로 먹고 마시며 화락함을 취하여 말한 것이다. 부자(夫子, 공자)는 후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염려하여, 다시 풀이하기를 ’중정한 군자가 중정한 군주를 만나 점진적으로 위로 나아가, 장차 그 도를 행하여 천하에 미치려 함이니, 이른바 음식간간(飲食衎衎)이란 뜻을 얻어 화락한 것이지, 공연히(空) 배불리 먹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라 하였다. ’소(素)’는 ’공(空, 헛되이)’이다.
주자(朱子)『주역본의』
磐,大石也。漸遠於水,進於磐而益安矣。衎衎,和樂意。六二柔順中正,進以其漸,而上有九五之應,故其象如此,而占則吉也。
’반(磐)’은 큰 바위이다. 물에서 점차 멀어져 바위 위로 나아가니 더욱 안정되었다. ’간간(衎衎)’은 화락한 뜻이다. 육이는 유순하고 중정하여, 점진적으로 나아가는데 위에 구오의 호응이 있으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점(占)은 길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艮為石,故有磐象。互坎有飲食象。鴻食則呼眾,飲食衎衎和鳴,二柔順而有應之象。初始進於下,未得所安;二則自干進於磐,未安者安矣。初之小子厲有言,危而傷也;二飲食衎衎,安且樂矣。時使之然也。在初則無應,在二則柔順中正而上有九五之應也。
간(艮)은 돌이니 바위(磐)의 상이 있다. 호체(互體)에 감(坎)이 있으니 음식(飲食)의 상이 있다. 기러기는 먹을 때 무리를 부르니, 음식간간은 화합하여 우는 것(和鳴)이니 이효가 유순하고 호응이 있는 상이다. 초효는 처음 아래에서 나아가 아직 편안함을 얻지 못했으나, 이효는 물가에서 바위로 나아가니 안정되지 못했던 것이 안정되었다. 초효의 ’소자려유언’은 위태롭고 서러운 것이요, 이효의 ’음식간간’은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다. 때(時)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초효에는 호응이 없으나, 이효에는 유순 중정하고 위에 구오의 호응이 있기 때문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凡禽鳥之食也,俛而啄,仰而四顧。一或驚心,則飛而去之。今鴻漸而進,由于干而處于磐之上,高而不危,飲食衎衎,何其吉也。二與五為正應,進居大臣之位,猶鴻漸于磐也,安然飲食,有衎衎和樂之意,其吉可知。
무릇 새가 먹을 때는 고개를 숙여 쪼고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핀다. 한 번이라도 놀라면 날아가 버린다. 지금 기러기가 점진하여 물가에서 바위 위에 처하니, 높되 위태롭지 않고 먹고 마시며 화락하니 얼마나 길한가. 이효와 오효가 정응이니, 대신(大臣)의 자리에 나아간 것은 기러기가 바위에 점진한 것과 같다. 편안히 먹고 마시며 간간하여 화락한 뜻이 있으니, 그 길함을 알 수 있다.
성재 양씨(誠齋楊氏)
鴻自干而至于磐石之上,則安而高矣。此六二漸進而居大臣之位也。食君之祿,又豈素飡云乎?亦欲置國家於磐石之安、納人民於和衎之樂而已。故傅說之志在中興有商,而非后則不食其祿;孟子之志在平治天下,而食前方丈則得志不為。
기러기가 물가에서 바위(磐石) 위에 이르렀으니 안정되고 높아졌다. 이것이 육이가 점진적으로 나아가 대신의 지위에 거하는 것이다. 군주의 녹봉을 먹으면서 어찌 헛되이 밥만 먹을 뿐이겠는가(素飡)? 또한 국가를 반석의 안정에 놓고 인민을 화락(和衎)의 즐거움에 들게 하고자 할 뿐이다. 그러므로 부열(傅說)의 뜻은 상(商)나라를 중흥하는 데 있었으니 임금이 아니면 그 녹봉을 먹지 않겠다 하였고, 맹자의 뜻은 천하를 평정하고 다스리는 데 있었으니 음식이 앞에 한 장(丈)이나 펼쳐져도 뜻을 얻으면 사치하지 않겠다 하였다.
출전: 주역전의대전 —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운봉 호씨·중계 장씨·성재 양씨). 훈장님 풀이는 허곡(장병호) 훈장님 금요주역 강의 정리 공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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