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오는 혁괘의 주인이다. 양의 자리에 양효가 앉아 양강중정(陽剛中正)을 온전히 갖추었고, 존위(尊位)에 거하여 아래로 문명한 육이의 보좌를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변혁은 더 이상 밀어붙이거나 다투어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호랑이가 가을이 되어 묵은 털을 벗고 새 털이 돋아 그 무늬가 환하게 빛나듯, 대인이 천하를 새롭게 하면 일의 이치가 저절로 드러나 사람들이 자연히 감화된다.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밝음이 드러나 스스로 따르게 하는 것이다.
“점치기도 전에 이미 믿음이 있다(未占有孚)“는 구절이 이 효의 핵심이다. 점이란 확신이 없을 때 묻는 것이다. 대인의 덕이 이미 천하에 가득 차 있으니, 새삼 점을 쳐 확인할 것도 없이 모든 이가 이미 그를 믿고 따른다. 주자는 이를 두고 “안으로부터 밖으로 해낸 것”이라 했다. 빈 껍데기를 꾸민 것이 아니라, 리더 자신의 내면이 먼저 온전히 바뀌었기에 그 변화가 밖으로 환하게 새어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새로워지는 자신(自新)이 백성을 새롭게 하는 신민(新民)으로 이어지는 극치의 순간이다.
다만 이 아름다운 말 속에는 조용한 경계가 담겨 있다. 운봉 호씨가 지적했듯, 믿음은 혁명하기 훨씬 전부터 오래 쌓여 있어야 한다. 성탕이 아직 하나라의 천명을 갈아엎기 전에 이미 온 백성이 소생의 기쁨을 미리 축하했던 것처럼, 구오의 성공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라 오래 쌓아온 신뢰(積孚)의 결과다. 변혁의 정점에 서 있을수록, 그 자리가 오랜 세월의 축적 위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이 효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 것은 하나다. “나는 진심으로 변했는가, 아니면 남들에게 변하라고 요구만 하고 있는가.” 대인호변은 남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 바뀌는 일이다. 내가 바뀌면 환경이 따라 바뀐다. 몸의 수련도 이와 같다. 고된 훈련기를 견디고 회복기에 들어서면 근육과 인대가 새롭게 재편되어 이전과 전혀 다른 몸이 완성된다. 그 변화는 서서히, 은밀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환하게 드러난다. 기세는 억지로 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익어 저절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五는 양강中正으로 존위에 있는 대인이라 — 양심을 쓸 줄 아는 자다(소인은 욕심을 쓴다). 그가 대인의 도로 천하를 革하니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때 아님이 없다. 그 革하여 변하는 문체가 호랑이 가죽의 알록달록한 무늬처럼 빛나니 — 그래서 '호랑이가 변하듯(虎變)'이라 했다. 대인이 변하는 것이라야 진실로 대인의 변함이다 — 호랑이는 산을 지배하며 큰 것만 잡고 쥐새끼는 안 잡듯, 대인은 양심과 욕심을 자신 있게 부합해 큼직하게 논다. 그래서 호랑이에 견준다.
그 징조가 불빛처럼 밖으로 다 보이는데 점은 무엇하러 하는가 — 점치지 않아도 천하가 반드시 믿으니(未占有孚) — 꼭 점을 치는 것은 초보자요, 무능하고 부족한 자라야 한번 점쳐 보자 하지, 자신 있으면 점을 하지 않는다. (…) 일반 사람도 자기 팔자를 고치려면 마음을 바꾸고 거울을 보라 — 얼굴색이 달라져 있다. 다 바뀌는 것이다. 운명을 믿으면 바보다 — 믿는 게 아니라 개발하는 것이니, 점치러 가는 것은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아무 필요 없다. 마음으로 조절하면 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
九五,大人虎變,未占有孚。
구오는 대인이 호랑이처럼 변하니, 점치기 전에 이미 믿음이 있다.
소상전(象傳)
象曰:大人虎變,其文炳也。
상에 말하기를, 대인이 호랑이처럼 변한다는 것은 그 문채가 빛나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九五以陽剛之才,中正之德,居尊位,大人也。以大人之道革天下之事,无不當也,无不時也。所過變化,事理炳著,如虎之文采,故云虎變。龍虎,大人之象也。
구오는 양강의 재주와 중정의 덕으로 존위에 거하니 대인이다. 대인의 도로써 천하의 일을 변혁하면 합당하지 않음이 없고 때에 맞지 않음이 없다. 지나는 곳마다 변화시키고 사리가 환하게 드러나는 것이 호랑이의 문채와 같으므로 ’호변(虎變)’이라 한 것이다. 용과 호랑이는 대인의 상이다.
變者,事物之變。曰虎何也?曰:大人變之,乃大人之變也。以大人中正之道變革之,炳然昭著,不待占決,知其至當,而天下必信也。天下蒙大人之革,不待占決,知其至當而信之也。
변(變)은 사물의 변화이다. ’호랑이’라 한 것은 무엇인가? 대인이 변화시킨 것이니 곧 대인의 변화이다. 대인의 중정지도로써 변혁하면 환하게 밝아 점을 쳐 결정할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그 지극히 합당함을 알아 천하가 반드시 믿는다. 천하가 대인의 변혁을 입고서 점결을 기다리지 않고도 그 지극히 합당함을 알아 믿는 것이다.
주자『주역본의』및 어록
本義:虎,大人之象。變,謂希革而毛毨也。在大人則自新新民之極,順天應人之時也。九五以陽剛中正為革之主,故有此象。占而得此則有此應。然亦必自其未占之時,人已信其如此,乃足以當之耳。
호랑이는 대인의 상이다. ’변(變)’이란 호랑이의 가죽이 바뀌어 털이 새로 나서 윤택해지는 것을 말한다. 대인에게 있어서는 스스로 새롭게 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극치이며,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 응하는 때이다. 구오가 양강중정으로 혁의 주인이 되므로 이 상이 있다. 점쳐서 이를 얻으면 이 응험이 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그 점치기 전의 때로부터 사람들이 이미 그가 그러하다고 믿고 있어야 비로소 족히 이에 합당하다.
朱子曰:未占有孚,伊川於爻中占字皆不把做卜筮尚其占說。
주자가 말하기를, 미점유부에서 정이천은 효 중의 ‘점(占)’ 자를 모두 복서(卜筮)의 점으로 풀지 않았다.
或問:大人虎變是就事上變,君子豹變是就身上變。朱子曰:豈止是事上也!從裏面做出來,這個事卻不只是空殼子做得。文王其命維新也是他自新後如此。堯克明俊德,然後黎民於變。大人虎變,正如孟子所謂所過者化,所存者神,上下與天地同流,豈曰小補之哉!
어떤 이가 물었다. “대인호변은 일 위에서 변하는 것이고, 군자표변은 몸 위에서 변하는 것인지요?” 주자가 답하였다. “어찌 일 위에서일 뿐이겠는가. 안으로부터 밖으로 해낸 것이니, 이 일은 빈 껍데기로만 이룬 것이 아니다. 문왕의 ’기명유신(其命維新)’도 그가 스스로 새롭게 한 뒤에 이와 같아진 것이다. 요임금이 준덕을 밝힌 뒤에야 백성들이 변하였다. 대인호변은 바로 맹자가 이른바 ’지나는 곳마다 감화시키고 머무는 곳에 신묘함이 있으니, 위아래가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흐르니 어찌 작은 보수라 하겠는가’라는 것과 같다.”
補只是這個裏破補這一些,如世人些小功只是補。如聖人直是渾淪都換過了,如爐鞴相似。補底只是銅露,聖人却是渾淪鑄過。
보수란 이 깨진 곳을 이것저것 기워 붙이는 것이니, 세상 사람의 작은 공이란 그저 기움일 뿐이다. 성인은 곧바로 뭉뚱그려 다 바꾸어버린 것이니, 마치 화로와 풀무와 같다. 기우는 것은 그저 구리를 덧대는 것이나, 성인은 도리어 뭉뚱그려 다시 주조해버린 것이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 태(兌)의 호랑이 상
漢上朱氏曰:兌為虎。虎其天地之文,然未著也。變則其文炳然。
태(兌)는 호랑이가 된다. 호랑이는 그 천지의 문채이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변하면 그 문채가 환하게 빛난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혁·변·개의 진행과 경계
雲峰胡氏曰:乾九五飛龍,革九五虎變,皆大人造之象。下卦言革,上卦言改言變。革道愈進而愈成也。虎變則希革而毛毨。蓋仲夏毛希而革易,仲秋毛落更生潤澤而鮮好。卦體離夏革為兌秋,故有此象。此所謂變,即孟子所謂存神過化,與天地同流而非區區小補之事也。
건 구오의 ’비룡(飛龍)’과 혁 구오의 ’호변(虎變)’은 모두 대인이 천하를 만들어가는 상이다. 하괘에서는 ’혁(革)’이라 하고 상괘에서는 ’개(改)’와 ’변(變)’이라 하니, 혁의 도가 더 나아가면 더욱 이루어지는 것이다. 호변이란 가죽이 바뀌어 털이 새로 나서 윤택해지는 것이니, 한여름에 털이 성기어지고 가죽이 바뀌며 한가을에 털이 빠져 다시 나서 윤택하고 선명하며 아름다워진다. 괘체가 리(여름)에서 태(가을)로 바뀌었으므로 이 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변은 곧 맹자의 존신과화이니, 천지와 더불어 흐르는 것이지 구구한 작은 보수의 일이 아니다.
未占有孚,諸家皆以為不待占決而人自信之,本義亦然。蓋革重事也,占當在未革之先,而孚又在未占之先,則其孚也久矣。必如成湯未革夏命而室家已相慶於來蘇之先,乃應此占。不然湯武之事未易舉也。如此則九五象占雖若美之之辭,而中實含戒之之意。
’미점유부’에 대해 여러 학자들이 모두 ’점결을 기다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믿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본의도 그러하다. 대개 혁명은 무거운 일이라 점은 마땅히 아직 혁명하기 전에 쳐야 하고, 믿음은 또 아직 점치기 전에 있어야 하니 그 믿음이 이미 오래된 것이다. 반드시 성탕이 아직 하나라의 천명을 혁명하기 전에 이미 온 집안이 소생의 기쁨을 서로 축하한 것과 같아야 이 점에 응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탕무의 일을 쉽게 거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보면 구오의 상과 점이 비록 아름다운 말 같으나 가운데 실은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
난씨 정서(蘭氏廷瑞) — 용과 호랑이의 차이
蘭氏廷瑞曰:乾之飛則曰龍,革之變則曰虎,要之為大人之象。人則一也。堯舜之揖遜,天下唯德之見,故曰龍。湯武之征伐,則有威存焉,故曰虎。
건의 ’비(飛)’에는 ’용(龍)’이라 하고 혁의 ’변(變)’에는 ’호랑이(虎)’라 하니, 요컨대 대인의 상이다. 사람은 하나이되 요순의 선양에서는 천하가 오직 덕만 보이니 ’용’이라 하였고, 탕무의 정벌에서는 위엄이 있으므로 ’호랑이’라 하였다.
쌍호 호씨(雙湖胡氏)·임천 오씨(臨川吳氏)와 정자
雙湖胡氏曰:文王卦辭於蒙比發筮義,周公又於此爻發占義。不但可見易為卜筮作,又可以見聖人於君師變革等事謹重不敢輕如此。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문왕이 괘사에서 몽(蒙)과 비(比)에 점치는 뜻을 밝혔고, 주공이 또 이 효에서 점(占)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역이 복서를 위해 지어진 것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성인이 군주의 변혁 등 일에 삼가고 무겁게 여겨 감히 가볍게 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程子曰:虎變文章大,故炳。豹變文章小,故蔚。 臨川吳氏曰:炳者,如火日之光明也。
정자가 말하였다. 호변(虎變)은 문장(무늬)이 크므로 ’병(炳, 환하게 빛남)’이라 하고, 표변(豹變)은 문장이 작으므로 ’울(蔚, 은은하게 무성함)’이라 한다.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병(炳)’이란 불과 해의 광명과 같은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