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구삼(九三)은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지나치게 강하고(過剛), 하괘 리(離)의 맨 위에 올라 불꽃이 타오르듯 조급하다. 게다가 가운데를 얻지 못했으니(不中), 변혁의 때를 만나 곧장 밀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뜨거운 자리다. 그러나 효사는 그 열정에 두 번 제동을 건다. 성급히 나아가면 흉하고(征凶), 그렇다고 제 강함만 믿고 뻣뻣하게 버티기만 해도 위태롭다(貞厲). 나아가도 위험하고 머물러도 위험한 진퇴양난의 자리다.
정이천은 이 자리를 두려워하되 물러서지 말라고 이른다. “아래의 위에 거하여 일이 마땅히 혁명할 것이면, 만약 두려워하여 하지 않으면 때를 잃어 해가 된다.” 문제는 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 혼자 뜨거운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그래서 효사는 길을 하나 열어 둔다 — 혁명하자는 논의가 세 번 거듭 합당하면 비로소 믿음이 있다(革言三就 有孚). 주자는 이를 “세 번 매듭을 지어 성사시킨다”고 풀었다. 첫 번째 상의에서 이것이 바꿀 일인지 아닌지를 따져 결론을 내고, 두 번째로 다시 헤아려 같은 결론에 이르고,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말이 되는 것이지, 세 사람이 와서 떠드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삼취(三就)’가 남에게 묻는 절차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다짐하는 과정이라는 데 있다. 한 번은 흥분에서 나온 확신이라 아직 못 믿고, 두 번은 사심이 끼어들 수 있어 못 믿으며,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정리된다. 상전이 “또 어디로 가겠는가(又何之矣)“라고 한 것은, 세 번의 숙의를 온전히 거쳤다면 더는 망설이지 말라는 뜻이다. 열정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믿음의 온도까지 식혀 두라는 것이다.
삶에의 적용
“이건 무조건 바꿔야 해”라는 확신이 넘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그 확신이 뜨거울수록 한 박자 늦추어 스스로에게 세 번 되물어라. 큰 동작을 하기 전 세 번의 예비 호흡을 거치듯 — 하나는 정렬, 둘은 호흡, 셋은 실행이다. 몸을 다루는 사람은 안다. 준비 없이 과강하게 뻗은 힘이 근육을 찢는다는 것을. 세 번의 시험 동작으로 각도와 거리와 때를 확인한 뒤라야 전력을 실을 수 있다. 마음의 혁명도 다르지 않다. 세 번 다짐하여 한결같이 합당하거든, 그때는 더 망설이지 말고 나아가라.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三은 양이 양자리에 있어 지나치게 강하고(過剛), 아래 불(離)의 맨 위라 불꽃처럼 타올라 조급하며(剛而又火·躁), 가운데를 못 얻었다(不中). 그러니 곧장 밀고 나가면 흉하고(征凶), 곧게 버텨도 위태하다(貞厲) — 백 번 하면 백 번 다 실수하는 자리다. (…) 그 정답이 혁명할 만하다는 말이 세 번 거듭 합당함(革言三就)이다 — '혁명해도 되겠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세 번 다짐하여 다 합당하면(三就) 비로소 믿음이 있어(有孚) 밀어붙일 수 있다.
革言三就의 세 번은 남에게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다짐하는 것이라 — 한 번은 못 믿고 두 번은 사심이 생기고 세 번째라야 정리가 된다. (…) 九三은 나쁜 효라 실패하는 자리이나, 革言三就로 정성을 들이면 성공하니 — 사람 팔자는 정해진 게 없다(運命非定). 얼마든지 고치는 것이다(改命).
원문과 주석 — 경문·상전·정이천·주자·제가
경문(經文)
九三,征凶,貞厲,革言三就,有孚。
구삼은 나아가면 흉하고(征凶), 바르게 지키더라도 위태로우니(貞厲), 혁명의 논의가 세 번 성사되면(革言三就) 믿음이 있다(有孚).
상전(象傳)
象曰:革言三就,又何之矣。
상(象)에 이르기를, 혁명의 논의가 세 번 성사되었으니, 또 어디로 가겠는가(又何之矣).
정이천(程伊川)『이천역전』
九三以剛陽為下之上,又居離之上而不得中,躁動於革者也。在下而躁於變革,以是而行則有凶也。然居下之上,事苟當革,豈可不為也?在乎守貞正而懐危懼。
구삼은 강양으로 아래(하괘)의 위이고, 또 리(離)의 위에 거하여 중을 얻지 못하니, 조급하게 혁명에 움직이는 자다. 아래에 있으면서 변혁에 조급하면 이로써 행하면 흉함이 있다. 그러나 아래의 위에 거하니 일이 진실로 마땅히 혁명할 것이면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르게 지키고 위태로움을 품어 두려워함에 달려 있다.
順從公論則可行之不疑。革言猶當革之論。就,成也,合也。審察當革之言,至於三而皆合,則可信也。言重慎之至。能如是則必得至當,乃有孚也。已可信而衆所信也。如此則可以革矣。
공론에 순종하면 가히 행하되 의심하지 않는다. ’혁언(革言)’은 마땅히 혁명해야 한다는 논의와 같다. ’취(就)’는 이루어짐이요 합함이다. 마땅히 혁명해야 한다는 말을 심사하고 살펴 세 번에 이르러 모두 합치면 가히 믿을 수 있다. 무겁고 삼감의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능히 이와 같으면 반드시 지극한 합당함을 얻어 이에 믿음이 있다. 이미 가히 믿을 만하고 또 뭇 사람이 믿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가히 혁명할 수 있다.
在革之時,居下之上,事之當革,若畏懼而不為,則失時為害。唯當慎重之至,不自任其剛明,審稽公論,至於三就而後革之,則无過矣。
혁명의 때에 아래의 위에 거하여 일이 마땅히 혁명할 것이면, 만약 두려워하여 하지 않으면 때를 잃어 해가 된다. 오직 마땅히 신중함의 지극함으로, 스스로 그 강함과 밝음을 맡지 말고, 공론을 심사하여 세 번 성사된 뒤에야 혁명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주자(朱子)『주역본의』
本義:過剛不中,居離之極,躁動於革者也。故其占有征凶貞厲之戒。然其時則當革,故至於革言三就,則亦有孚而可革也。
과강하고 중이 아니며 리의 극치에 거하니, 조급하게 혁명에 움직이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점에 ’정흉 정려’의 경계가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마땅히 혁명할 것이므로, 혁명의 논의가 세 번 성사되는 데 이르면 또한 믿음이 있어 가히 혁명할 수 있다.
朱子曰:革言三就,言三番結裹成就。如第一番商量這個是當革不當革,說成一番。又更如此商量一番,至於三番然後說成了,却不是三人來說。
주자가 말하기를, 혁언삼취(革言三就)란 세 번 매듭을 지어 성사시킨다는 뜻이다. 마치 첫 번째 상의하되 이것이 마땅히 바꿔야 할 것인지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논하여 한 번 말이 되고, 또 이와 같이 한 번 더 상의하고, 세 번째에 이르러 그런 뒤에야 말이 되는 것이지, 세 사람이 와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가(諸家)
노천 모씨(瀘川毛氏)
火居澤下,能无危乎?往則凶而居則危,本爻適當其會也。
불이 연못 아래에 거하니 능히 위태롭지 않겠는가. 나아가면 흉하고 머물면 위태로우니, 본 효가 바로 그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이효와 삼효의 차이
革之征一也,而二征吉三征凶者。蓋以六居二,其才順而位中,及時而革,革而當者也,故以征則吉。以九居三,其才剛而位偏,過時而革,革之不當者也,故以征則凶。革雖同而時位異也。
혁명에서 나아감(征)은 하나이나, 이효가 나아가면 길하고 삼효가 나아가면 흉한 것은, 대개 육으로 이효에 거하면 재주가 순하고 자리가 중이라 때에 미쳐 혁명하니 혁명이 합당한 자요 나아가면 길한 것이고, 구로 삼효에 거하면 재주가 강하고 자리가 치우쳐 때를 지나 혁명하니 혁명이 합당하지 않은 자요 나아가면 흉한 것이다. 혁명은 같으나 때와 자리가 다른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중(中)의 가치
革貴乎中。初九不及乎中,故勉以鞏用黃牛之革。九三過乎中,故戒以征凶貞厲。以其過剛也,故恐其征而不已則凶。以其不中也,又恐其一於貞固而失變革之義,則厲。故必革之言至三就,審之屢,則有孚而可革矣。兌為口有言象,第三爻有三就象。
혁명은 중(中)을 귀하게 여긴다. 초구는 중에 미치지 못하므로 ’황우지혁으로 굳히라’고 면려하였다. 구삼은 중을 지나쳤으므로 ’정흉 정려’로 경계하였다. 과강하기 때문에 나아가 멈추지 않으면 흉할까 두려워한 것이요, 중이 아니기 때문에 또 바르게 굳히기만 하여 변혁의 뜻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위태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혁명의 논의가 세 번 성사되기에 이르러 여러 번 심사한 뒤에야 믿음이 있어 가히 혁명할 수 있다. 태(兌)는 입이니 ’말(言)’의 상이 있고, 셋째 효이니 ’삼취(三就)’의 상이 있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初未可革,二乃革之,三則有孚而變革之事成矣。凡事詳審至再至三則止矣。革至於就,又何往焉。
초효는 아직 혁명할 수 없고, 이효는 이에 혁명하고, 삼효는 믿음이 있어 변혁의 일이 이루어졌다. 무릇 일을 자세히 심사하되 두 번 세 번에 이르면 그치는 것이다. 혁명이 성사됨에 이르렀으니 또 어디로 가겠는가.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