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효는 무엇을 말하는가
육이는 변혁의 괘 안에서 가장 조건이 잘 갖추어진 자리다. 하괘 리(離)의 가운데에 있어 밝게 살피는 문명(文明)의 주인이며, 음효가 음의 자리에 있어 유순하고 중정(中正)을 얻었고, 위로 강양한 군주 구오와 뜻이 맞는 정응(正應) 관계다. 때가 옳고, 자리를 얻었고, 재주가 넉넉하니 정이천의 말처럼 “혁명에 처함의 지극히 좋은 자”다. 그런데도 곧장 앞장서지 않는다.
먼저 나서지 않는 것은 신하의 도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결정권자보다 앞서 움직이면 그것은 월권이 된다. 그래서 육이는 이미 지난 날(巳日)에야 비로소 혁명한다. 위아래의 믿음이 무르익기를 기다린 뒤에 나아가니, 나아가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다만 여기에는 반대편의 경계도 함께 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끝내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의 폐단을 구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도 구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진짜 허물이다. 기다림은 회피가 아니라 때를 고르는 지혜여야 한다.
상전은 “행하면 아름다운 경사가 있다(行有嘉)“고 했다. 갖춘 자가 때를 만나 신뢰를 확인한 뒤에 움직이면, 그 행함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 조건이 갖추어진 순간이 곧 때가 아니라, 믿음이 확인된 순간이 참된 때다.
삶에 들이는 법
일이 무르익었다고 느낄 때일수록 한 호흡을 더 두어야 한다. 능력과 자리와 지지가 다 마련되어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직 “이대로는 안 된다”에 이르지 못했다면 아직 때가 아니다. 몸으로 말하자면, 관절과 근육의 정렬이 다 맞았어도 호흡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으면 움직일 순간이 아닌 것과 같다. 숨이 제자리를 잡는 그 찰나에 나아가라. 서두름은 힘이 아니라 조급함이며, 기다림은 물러섬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 능동적 수련이다. 갖춘 자의 절제, 그것이 육이의 자리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己日이라야 이에 革하니 나아가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己日乃革之 征吉 无咎)' — 六二는 음이 음자리 가운데에 있어 유순하고 中正을 얻었으며(柔順得中正), 아래 불(離)의 문명한 주인이라(文明之主) 세상을 밝게 비추어 알고, 위로 강양한 五와 응한다(應上九五·得權勢). 그러니 혁명의 처세를 지극히 잘하는 자다(處革之至善者)."
"다만 신하의 길은(臣道) 혁명에 먼저 앞장서면 안 되고, 반드시 위아래가 믿어줄 때까지 기다린 뒤라야 한다(必待上下之信). 세월이 지나 인심이 '이대로는 안 된다'를 깨달은 뒤에 밀어붙여야지, 처음부터 강하게 밀면 사람이 많이 죽고 실패한다 — 믿음을 얻은 뒤라야 성공한다."
"그래서 문왕은 천하의 3분의 2를 얻고도 남은 3분의 1을 차마 못 쳐 혁명을 미뤄 둘째 아들 무왕에게 넘겼고 — 무왕 대에 이르러 은나라 인심이 다 돌아온 뒤에 '이때다' 하고 혁명해 완전히 성공했다. 때와 자리와 재주 세 가지를 다 갖춘 것이다(時·位·才 足). 나아가지 않으면 도리어 때를 잃어 허물이 되니(不進則失時爲咎), 출세도 혁명도 때를 만들고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옛 주석들
효사(爻辭)
六二,巳日乃革之,征吉,无咎。
육이는 이미 지난 날(巳日)에 이에 혁명하니, 나아가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소상전(象傳)
象曰:巳日革之,行有嘉也。
상(象)에 말하기를, 이미 지난 날에 혁명하니, 행하면 경사가 있다.
정이천(程伊川) 전(傳)
以六居二,柔順而得中正,又文明之主。上有剛陽之君,同德相應,中正則无偏蔽,文明則盡事理,應上則得權勢,體順則无違悖。時可矣,位得矣,才足矣,處革之至善者也。
6으로 2효에 거하니 유순하고 중정을 얻었으며, 또 문명의 주인이다. 위에 강양의 군주가 있어 같은 덕으로 서로 응한다. 중정하면 치우침과 가림이 없고, 문명하면 사리를 다하며, 위에 응하면 권세를 얻고, 체가 순하면 어긋남이 없다. 때가 옳고, 자리를 얻었고, 재주가 넉넉하니, 혁명에 처함의 지극히 좋은 자다.
然臣道不當為革之先,又必待上下之信,故已日乃革之也。如二之才德,所居之地,所逢之時,足以革天下之弊,新天下之治,當進而上輔於君,以行其道,則吉而无咎也。不進則失可為之時,為有咎也。
그러나 신하의 도로서 마땅히 혁명의 앞에 서는 것이 아니고, 또 반드시 위아래의 믿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지난 날에 이에 혁명하는 것이다. 2효의 재주와 덕으로, 그 거한 자리와 만난 때에, 족히 천하의 폐단을 혁파하고 천하의 다스림을 새롭게 할 수 있으니, 마땅히 나아가 위로 군주를 보좌하여 그 도를 행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는 것이다. 나아가지 않으면 가히 할 수 있는 때를 잃으니, 허물이 있게 된다.
以二體柔而處當位,體柔則其進緩,當位則其處固。變革者事之大,故有此戒。二得中而應剛,未至失於柔也。聖人因其有可戒之疑而明其義耳,使賢才不失可為之時也。
2효는 체가 유하고 마땅한 자리에 처했으니, 체가 유하면 나아감이 더디고 마땅한 자리이면 머무름이 굳다. 변혁은 일의 큰 것이므로 이러한 경계가 있는 것이다. 2효는 중을 얻고 강(95)에 응하니, 유함에 잃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성인이 경계할 만한 의심이 있음을 인하여 그 뜻을 밝힌 것이니, 현명한 재주로 하여금 가히 할 수 있는 때를 잃지 않게 한 것이다.
주자(朱子) 본의(本義)
六二柔順中正,而為文明之主,有應於上,於是可以革矣。然必已日然後革之,則征吉而无咎。戒占者猶未可遽變也。
62는 유순하고 중정하며 문명의 주인이요, 위에 응이 있으니, 이에 가히 혁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이미 지난 날이 된 연후에 혁명해야 나아감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점치는 자에게 경계하되 오히려 아직 갑자기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一爻為一日,初至二已日也。初无位,二有位矣。初无應,二有應矣。柔順中正而文明,又有德矣。有德有位而有應,可革之時也。而必已日乃革之,寧詳緩无遽急也。如是則往吉而无咎。聖人謹重之意可見。
한 효가 하루이니 초효에서 2효에 이르면 이미 하루가 지난 것이다. 초효는 자리가 없으나 2효는 자리가 있다. 초효는 응이 없으나 2효는 응이 있다. 유순하고 중정하며 문명하고, 또 덕이 있다. 덕이 있고 자리가 있고 응이 있으니 가히 혁명할 때다. 그런데도 반드시 이미 지난 날에야 혁명하니, 차라리 자세히 더디게 하되 갑자기 급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나아감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성인이 삼가고 무겁게 여긴 뜻을 가히 볼 수 있다.
卦曰已日乃孚,爻曰已日乃革者。君之革不待已日,其所革已日而後孚耳。臣待君之造始而後代終,故已日乃革之。
괘사에서 ’이미 지난 날에 이에 믿어진다(已日乃孚)’고 하고, 효사에서 ’이미 지난 날에 이에 혁명한다(已日乃革)’고 한 것은, 군주의 혁명은 이미 지난 날을 기다리지 않으나 그 혁명한 바가 이미 지난 날이 되어야 비로소 믿어지는 것이요, 신하는 군주의 시작을 기다린 뒤에야 대신 마무리하므로 ’이미 지난 날에 이에 혁명한다’고 한 것이다.
왕씨(王氏)
二五雖有澤火之異,同處厥中,陰陽相應,往必合志,不憂咎也。
2효와 5효가 비록 연못과 불의 다름이 있으나, 함께 그 가운데에 처하여 음양이 서로 응하니, 나아가면 반드시 뜻이 합해져 허물을 걱정하지 않는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六二當革之時,上應九五,其才文明,其體柔順,其位中正,備此三者,處革之至善者也。然猶已日而後革者,示不輕變也。故以之征行則吉而无咎,而有可嘉之功也。凡卦中言嘉者,皆二與五應。如隨之孚于嘉,遯之嘉遯是也。
62는 혁명의 때를 당하여 위로 95에 응하고, 그 재주는 문명하고, 그 체는 유순하고, 그 자리는 중정하니, 이 셋을 갖추어 혁명에 처함의 지극히 좋은 자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미 지난 날이 된 뒤에야 혁명한 것은, 가벼이 변하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나아가 행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며, 경하할 만한 공이 있는 것이다. 무릇 괘 중에 ’가(嘉)’를 말한 것은 모두 2효와 5효가 응하는 것이니, 수(隨)괘의 ’부우가(孚于嘉)’와 둔(遯)괘의 ’가둔(嘉遯)’이 이것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彖言已日乃孚,爻言已日乃革。惟孚故能革也。
단전에서 ’이미 지난 날에 이에 믿어진다(已日乃孚)’고 하고, 효사에서 ’이미 지난 날에 이에 혁명한다(已日乃革)’고 했으니, 믿어졌기 때문에 능히 혁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