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어오르되, 아직 때가 아니다
혁(革)은 변혁의 괘다. 옛것을 벗겨 새것으로 바꾸는 시대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 첫 자리인 초구는, 역설적으로 “바꾸지 말라”는 경계로 시작한다. 세상이 바뀌어야 함을 가장 뜨겁게 느끼는 자리이면서, 정작 바꿀 힘도 때도 자리도 갖추지 못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이천은 변혁의 세 조건을 못 박는다. 그 때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재주가 있어야 한다. 초구는 셋 다 갖추지 못했다. 일의 처음에 있으니 때가 아니고(時), 맨 아래에 있으니 자리가 아니며(位), 위로 응원해 줄 짝조차 없다(應). 게다가 리(離) 체의 양이라 성질이 위로 솟구쳐 조급하게 움직이려 한다. 이런 사람이 함부로 나서면 “참람되고 망령된 허물(僭妄之咎)“만 쌓이고, 끝내 흉함이 이른다.
그래서 경문은 “누런 소의 가죽으로 단단히 묶으라(鞏用黃牛之革)“고 한다. 황(黃)은 가운데의 색이니 치우치지 않음(中)이요, 우(牛)는 가장 순한 짐승이니 때를 거스르지 않음(順)이다. 주자 역시 “성인이 변혁에 대해 삼가는 것이 이와 같다(聖人之於變革 其謹如此)“고 하여, 이 자리의 핵심을 용기가 아니라 절제에 두었다. 부족한 것이 중(中)과 순(順)이니, 그것으로 스스로를 굳게 묶어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는 것 — 그것이 혁명의 첫 걸음이다.
삶에의 적용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여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때, 불합리를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싶을 때, 초구는 먼저 자기 자신을 묶으라 한다. 이때 몸이 길이 된다. 불(離)의 기운이 명치와 얼굴로 치받아 오를 때, 그 열기를 누런 소의 무게 — 흙의 색,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 — 로 단전에 가라앉힌다. 함이불발(含而不發), 머금되 쏘지 않는 것. 대련에서 보이는 기회가 실은 상대의 유인일 수 있듯, 상기된 충동은 대개 진짜 때가 아니다. 축(中)을 흔들지 않고 흐름(順)에 부드럽게 따르며 진짜 때를 기다리는 힘 — 그 인내가 길러지는 자리가 초구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단단히 잡아매되 황소 가죽을 쓴다(鞏用黃牛之革)' — 鞏은 굳을 공·단단할 공이니, 어느 구역을 딱 묶어 고정하는 것이다(局束·固). 황소 가죽은 가장 질겨 끊어지지 않으니, 그것으로 묶으면 못 바꾼다. 혁명하는 괘인데도 初九는 도리어 '안 움직이는 革(不革)'이다 — 묶어서 못 바꾸게 하는 것도 革이다." (…) "初九는 양이 양자리에 있어(陽爻陽位) 건방지게 움직일 염려가 많은데 — 세력도 자리도 재주도 다 못 된다. 처음 자리라 때가 안 왔고, 위로 응원해 줄 짝도 없으며, 몸이 불이라 강하고 조급하다. 혁명하는 괘라 하여 함부로 革하면 — 자격도 그릇도 안 되는 자가 날뛰는 것이라 반역자로 몰려 죽는다."
"때가 온다는 것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지 '내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제 그릇과 자리와 자격에 때를 맞출 줄 알아야지, 때가 나를 위해 오기를 거꾸로 바라면 다친다. 신중히 살펴 삼간 뒤라야 허물이 없다(愼之愼之 而後可以無悔)."
"黃은 가운데 색(中色), 牛는 순한 짐승(順物)이니 — 황우의 가죽을 쓰라 함은 中順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단단히 매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양이 양자리라 본래 中順이 부족하니 — 中順이 자리에 없으면 제가 만들어 길러내야 한다(自養中順). 그렇게 하면 初九의 운명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改其命). (…) 음식이 짜면 설탕을 넣어 고치듯, 사람도 동물이라 마음도 몸도 변하니 팔자를 얼마든지 뜯어고친다 — 팔자대로 끌려가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일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소상전
初九,鞏用黃牛之革。 초구는, 단단히 묶되(鞏) 누런 소의 가죽(黃牛之革)을 쓴다.
象曰:鞏用黃牛,不可以有為也。 상(象)에 이르기를, 누런 소가죽으로 단단히 묶는 것은, 가히 함부로 할 수 없기(不可以有為) 때문이다.
정이천 전(傳)
變革事之大也,必有其時,有其位,有其才。審慮而慎動而後可以无悔。九以時則初也,動於事初則无審慎之意,而有躁易之象。以位則下也,无時无援而動於下,則有僭妄之咎,而无體勢之重。以才則離體而陽也,離性上而剛體健,皆速於動也。其才如此,有為則凶咎至矣。 변혁은 일의 큰 것이다. 반드시 그 때가 있고, 그 자리가 있고, 그 재주가 있어야 한다. 심사숙고하고 삼가 움직인 뒤에야 후회가 없을 수 있다. 9가 때로 말하면 초효이니, 일의 처음에 움직이면 살펴 삼가는 뜻이 없고 조급하고 경솔한 상이 있다. 자리로 말하면 아래이니, 때도 원조도 없이 아래에서 움직이면 참람되고 망령된 허물이 있고 체세의 무거움이 없다. 재주로 말하면 리(離) 체의 양이니, 리의 성질은 위로 솟구치고 강한 체는 건장하여 모두 빨리 움직이려 한다. 그 재주가 이와 같으니, 함부로 하면 흉함과 허물이 이른다.
蓋剛不中而體躁,所不足者中與順也。當以中順自固而无妄動則可也。鞏,局束也。革所以固束者也。黃,中色。牛,順物。鞏用黃牛之革,謂以中順之道自固,不妄動也。 대개 강하되 중(中)이 아니고 체가 조급하니, 부족한 것은 중과 순이다. 마땅히 중순의 도로 자기를 굳게 하여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공(鞏)은 묶어 속박함이요, 혁(革, 가죽)은 굳게 묶는 것이다.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우(牛)는 순한 물건이다. ’공용황우지혁’은 중순의 도로 자기를 굳게 하여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음을 말한다.
不云吉凶何也?曰:妄動則有凶咎,以中順自固則不革而已,安得便有吉凶乎? 길흉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답하되, 망령되이 움직이면 흉함과 허물이 있고, 중순으로 자기를 굳게 하면 혁명하지 않을 뿐이니, 어찌 곧 길흉이 있겠는가?
주자 본의(本義)
雖當革時,居初无應,未可有為,故為此象。鞏,固也。黃,中色。牛,順物。革,所以固物,亦取卦名而義不同也。其占為當堅確固守而不可以有為。聖人之於變革,其謹如此。 비록 변혁의 때를 당하였으나, 초효에 거하여 응(應)이 없으니 아직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상이 된 것이다. 공(鞏)은 굳힘이요,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우(牛)는 순한 물건이요, 혁(革, 가죽)은 물건을 굳게 묶는 것이니, 또한 괘 이름을 취하되 뜻은 다르다. 그 점(占)은 마땅히 굳게 확고히 지키되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인이 변혁에 대해 삼가는 것이 이와 같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鞏有拘束之義。革皮之堅韌者也。革下卦離,黃牛象。初剛在外為革。蓋初處變革之始,在下則非可革之位,居初則非當革之時,上无應援。豈宜輕躁?但當用此中順之道固執而堅守之,如用黃牛之革焉,而不可妄動以有為也。 공(鞏)에는 구속하는 뜻이 있다. 혁(革, 가죽)은 피혁의 굳세고 질긴 것이다. 혁 괘의 하괘가 리(離)이니 황우(黃牛)의 상이다. 초효는 강(剛)으로 바깥에 있어 변혁하려 한다. 대개 초효는 변혁의 시작에 처했으나, 아래에 있으니 혁명할 자리가 아니고, 초효에 거하니 혁명할 때가 아니며, 위로 응원이 없으니 어찌 경솔하고 조급함이 마땅하겠는가? 다만 이 중순의 도를 써서 굳게 잡고 견고히 지키되, 황우의 가죽을 쓰듯 하여 망령되이 움직여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뿐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革取卦名而義不同,猶噬嗑而取市合之義也。易道尚變,故賁之爻有不賁者存,損之爻有不損者在,而革亦不專言革也。反其義為黃牛之革,鞏而固之,戒其輕也。 ’혁(革, 가죽)’은 괘 이름을 취하되 뜻은 다르니, 마치 서합(噬嗑) 괘에서 ’시합(市合)’의 뜻을 취한 것과 같다. 역의 도는 변(變)을 숭상하므로, 비(賁) 괘의 효에 꾸미지 않는 자가 있고, 손(損) 괘의 효에 덜지 않는 자가 있듯이, 혁 괘도 전적으로 변혁만 말하지 않는다. 그 뜻을 뒤집어 ’황우의 가죽’으로 삼고 단단히 묶어 굳히니, 가벼이 움직임을 경계한 것이다.
遯六二執用黃牛之革,六柔順而二中正,中順之道所固有也。革初九鞏用黃牛之革,離性上而剛不中,中順之道所不足也。下无位,上无應,不可有為,惟可固守中順之道而已。 둔(遯) 괘의 62는 ’잡되 황우의 가죽을 쓴다’고 했으니, 6은 유순하고 2효는 중정이라 중순의 도가 본래 갖추어진 것이다. 혁 괘의 초구는 ’단단히 묶되 황우의 가죽을 쓴다’고 했으니, 리의 성질은 위로 솟구치고 강하되 중이 아니라 중순의 도가 부족한 것이다. 아래에 자리가 없고 위에 응이 없으니, 함부로 할 수 없고 오직 중순의 도를 굳게 지킬 수 있을 뿐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