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췌(萃)는 모이는 때다. 육이는 하괘 곤(坤)의 한가운데 자리하여 음효(陰爻)가 음의 자리에 있으니 중정(中正)을 온전히 갖추었고, 위로 강건중정한 군주인 구오(九五)와 정응(正應)한다. 뜻이 맞는 사람이 저 위에 분명히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효사가 “끌어당기라(引)“고 말하는 까닭은, 둘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초육·육삼 같은 뭇 음효가 북적이고 있어 자연히 모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영원히 스쳐 지날 뿐이다.
정이천은 이 대목을 여덟 글자로 못 박았다. “서로 구하면 합하고, 서로 기다리기만 하면 떠나간다(相求則合, 相待則離).” 저쪽에서 먼저 오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왜 먼저 다가가야 하나” 하는 마음은 자존심이지 중정이 아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서로 끌어당길 때(引) 비로소 모임이 이루어지고 길하며, 허물이 없다. 여기서 무구(无咎)란 잘못을 잘 보완한다는 뜻이니, 정응하는 둘이 끝내 서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허물이 된다.
일단 마음이 통했다면(孚) 화려한 형식은 필요 없다. 소박한 여름 제사(禴), 나물 한 그릇, 커피 한 잔이라도 정성만 담기면 신명을 감동시킨다. 정이천의 표현으로 “속이 실한 자는 밖의 꾸밈을 빌리지 않는다(中實者不假飾於外).” 진심이야말로 모든 모임의 뿌리이니, 군신의 사귐뿐 아니라 천하의 모든 모임이 오직 정성 하나에 달려 있다. 다만 소상전이 “중정한 덕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中未變)“고 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경계다. 뭇 무리 사이에 끼면 흔들려 본래의 뜻을 잊기 쉽다. ’아직’이라는 말 속의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삶에의 적용
뜻이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 조직의 계층, 잡다한 인간관계, 자존심이 그 사이를 가로막을 때가 있다. “저쪽에서 먼저 연락하겠지” 하는 기다림이 피어오르면 그것을 자존심임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먼저 손을 내밀되 형식을 따지지 말고 정성만 담는다. 몸으로 보면, 중심(丹田)이 흔들리지 않을 때 나의 호흡과 움직임 자체가 주변을 끌어당기는 자장이 된다. 화려한 기술보다 기본기의 정확함이 진짜를 만든다. 중정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모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六二는 九五와 中正으로 정응하니 — 同類 二·三으로 안 몰리고 九五를 끌어당겨 가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引吉无咎). '引(끌인)'은 二·五가 서로 정성·믿음으로 끌어당기라는 말이다. 믿음만 있으면 여름 소박 제사(禴)를 써도 이로우니(孚乃利用禴) — 여름엔 양식이 떨어져 음식이 없으니, 찬물 한 그릇·콩나물로 지내도 정성이면 된다.
제사는 음식을 잘 차려야 복 받는 게 아니다 — 형편껏 정성껏 지내면 되니, 물 한 그릇 떠 놓고 지내도 된다. 꾸밈(飾)을 숭상하면 정성이 못 되니(尚飾則非誠), 마음 속이 진실해야(中實) 바깥 꾸밈을 빌리지 않고 신명에 천거할 만하다(薦於神明). 위(임금)는 풍성히 큰 제물(大牲)을 쓰고 아래(신하)는 정성(禴)을 쓰니 — 때와 분수를 따른다(隨時).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정이천·주자·제가
효사
六二,引吉,无咎。孚乃利用禴。
육이는 끌어당기면(引) 길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진심으로 믿음이 있으면(孚) 곧 소박한 제사(禴)를 올리는 것이 이롭다.
소상전(象傳)
象曰:引吉无咎,中未變也。
상(象)에 말하기를, 끌어당기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함은, 중정한 덕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初隂柔,又非中正,恐不能終其孚,故因其才而為之戒。二雖隂柔而得中正,故雖戒而微辭。凡爻之辭,關得失二端者,為法為戒,亦各隨其才而設也。
초육은 음유하고 또 중정이 아니므로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그 재주에 인하여 경계를 지어준 것이다. 이효는 비록 음유하나 중정을 얻었으므로 비록 경계하되 말씀이 미미하다. 무릇 효의 말씀이 득실 두 가지에 관계되는 것은 법이 되기도 하고 경계가 되기도 하여, 각각 그 재주를 따라 설정한 것이다.
引吉无咎。引者,相牽也。人之交,相求則合,相待則離。二與五為正應,當萃者也。而相遠,又在羣隂之間,必相牽引,則得其萃矣。五居尊位,有中正之德;二亦以中正之道往與之萃,乃君臣和合也。其所共致,豈可量也!是以吉而无咎也。无咎者,善補過也。二與五不相引,則過矣。
’인길무구’라 함은: ’인(引)’은 서로 이끄는 것이다. 사람의 교제는 서로 구하면 합하고, 서로 기다리기만 하면 떠나간다. 이효와 오효는 정응이니 마땅히 모여야 할 자들이다. 그런데 서로 멀리 있고 또 뭇 음효 사이에 있으니 반드시 서로 이끌어야 곧 그 모임을 얻는다. 오효는 존귀한 자리에 있고 중정의 덕이 있으며, 이효 역시 중정의 도로써 나아가 그와 모이니 이는 곧 군신이 화합하는 것이다. 그 함께 이루어 낸 바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로써 길하고 허물이 없다. ’무구’란 잘 허물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효와 오효가 서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곧 허물이 된다.
孚乃利用禴。孚,信之在中,誠之謂也。禴,祭之簡薄者也。菲薄而祭,不尚備物,直以誠意交於神明也。孚乃者,謂有其孚則可不用文飾,專以至誠交於上也。以禴言者,謂薦其誠而已。上下相聚而尚飾焉,是未誠也。蓋其中實者,不假飾於外,用禴之義也。孚信者,萃之本也。不獨君臣之聚,凡天下之聚,在誠而已。
’부내이용약’이라 함은: ’부(孚)’란 믿음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정성을 이르는 것이다. ’약(禴)’이란 제사 가운데 간소하고 박한 것이다. 보잘것없고 박하게 제사 지내되 물건 갖추는 것을 숭상하지 않고 곧바로 정성스런 뜻으로 신명과 교감하는 것이다. ’부내(孚乃)’라 함은 그 진심이 있으면 곧 문식을 쓰지 않아도 되어 오로지 지극한 정성으로 윗사람과 교감하는 것이다. ’약’으로 말한 것은 그 정성을 올릴 뿐이라는 뜻이다. 위아래가 서로 모였으면서 꾸밈을 숭상한다면 이는 아직 정성이 없는 것이다. 대개 그 속이 실한 자는 밖의 꾸밈을 빌리지 않으니 이것이 ’약’을 쓰는 뜻이다. 진심이란 모임의 근본이다. 비단 군신의 모임뿐 아니라 무릇 천하의 모임은 오직 정성에 달려 있을 뿐이다.
소상전 해설:
萃之時,以得聚為吉,故九四為得上下之萃。二與五雖正應,然異處有間,乃當萃而未合者也。故能相引而萃,則吉而无咎,以其有中正之德,未遽至改變也。變則不相引矣。
췌의 때에는 모임을 얻는 것으로 길함을 삼는다. 그러므로 구사는 위아래의 모임을 얻은 것이다. 이효와 오효는 비록 정응이나 다른 곳에 처하여 사이가 있으니 마땅히 모여야 하면서도 아직 합하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능히 서로 끌어당겨 모이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그 중정의 덕이 있어 아직 갑자기 변하는 데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하면 곧 서로 끌어당기지 않게 된다.
或曰:二既有中正之德,而象云「未變」,辭若不足,何也?曰:羣隂比處,乃其類聚。方萃之時,居其間,能自守不變,遠須正應,剛立者能之。二隂柔之才,以其有中正之德,可覬其未至於變耳。故象含其意以存戒也。
혹자가 묻기를, 이효가 이미 중정의 덕이 있는데 소상전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하여 말이 부족한 듯하니 어째서인가. 답하기를, 뭇 음효가 나란히 처하여 같은 부류끼리 모여 있다. 바야흐로 모이는 때에 그 사이에 거하면서 능히 스스로 지켜 변하지 않고 멀리서 정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강하게 서 있는 자라야 능히 할 수 있다. 이효는 음유한 재주이니 그 중정의 덕이 있기에 아직 변하는 데 이르지 않았음을 바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상전이 그 뜻을 머금어 경계를 보존한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二應五而雜於二隂之間,必牽引以萃,乃吉而无咎。又二中正柔順,虛中以上應九五剛健中正,誠有孚也。
이효는 오효에 응하면서도 두 음효 사이에 섞여 있으니 반드시 이끌어 당겨 모여야 곧 길하고 허물이 없다. 또 이효는 중정하고 유순하며 속이 비어(虛中) 위로 구오의 강건하고 중정함에 응하니 진실로 ’부(孚, 믿음)’가 있는 것이다.
朱子曰:孚乃利用禴,說如伊川固好,但若如此,却是聖人說個影子,却恐不恁地。想只是說祭。(升卦同)
주자가 말하기를, ’부내이용약’은 정이천의 설명처럼 하면 물론 좋으나 만약 그렇다면 성인이 (실제 제사가 아니라) 그림자를 말씀하신 것이 되니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건대 이는 그냥 실제 제사를 말한 것이다. (승(升) 괘와 같음)
제가(諸家)
진재 서씨(進齋徐氏):
二五正應,宜萃也。二以柔居柔,中類聚而安於下;五以衆歸於四,有位而匪孚。雖應猶未萃也。人之情,相求則合,相持則睽。二五本應,相引而萃則吉无咎。
이효와 오효는 정응이니 마땅히 모여야 한다. 그런데 이효는 유로써 유에 거하여 같은 무리끼리 모여 아래에 편안해하고, 오효는 무리가 사효에 돌아가고 자리는 있으나 ’부’가 아니다. 비록 응하나 아직 모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의 정은 서로 구하면 합하고 서로 버티기만 하면 어긋난다. 이효와 오효는 본래 응하니 서로 끌어당겨 모이면 곧 길하고 허물이 없다.
후재 풍씨(厚齋馮氏):
下卦中爻,多引其類,如泰與小畜之二是也。本爻與五為正應,引初六、六三以萃於五,為得君臣之大義,故吉而无咎。
하괘의 중효(2효)는 대부분 같은 무리를 이끈다. 태(泰)와 소축(小畜)의 이효가 그러하다. 본 효는 오효와 정응이 되어 초육과 육삼을 이끌어 오효에게로 모이게 하니 이것은 군신의 대의를 얻은 것이므로 길하고 허물이 없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君臣相孚之後,上下皆以誠實相與,不尚虛文,猶用薄祭亦可薦之於神明矣。苟未孚而用禴,則非所利也。
군신이 서로 마음으로 믿은 뒤에는 위아래가 모두 정성과 실질로 서로 사귀고 허례허식을 숭상하지 않으니 소박한 제사를 쓰더라도 가히 신명에게 올릴 수 있다. 만약 아직 진심이 없으면서 약(禴)을 쓴다면 이로울 바가 아니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卦以用大牲為吉,而二乃以用禴為利,何歟?曰:備物乃王者所以隨其時,有孚乃臣下所以通乎上也。實而下交,故卜祭者有其孚誠,則雖薄物亦可以祭矣。
괘사에서는 ’대성(大牲)을 쓰면 길하다’고 하였는데 이효에서는 ’약(禴)을 쓰면 이롭다’고 하니 어째서인가. 답하기를, 물건을 갖추는 것은 왕자가 그 때에 따르는 바이고 ’부(孚, 진심)가 있다’는 것은 신하가 윗사람에게 통하는 바이다. 실질로써 아래에 교감하므로 제사를 점치는 자에게 그 진심과 정성이 있으면 비록 박한 물건이라도 가히 제사를 지낼 수 있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禴,夏祭,以聲為主,祭之薄也。
약(禴)은 여름 제사로서 소리(음악)를 위주로 하니 제사 가운데 박한 것이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周禮大宗伯以禴夏享先王。王氏註曰:夏則陽盛矣,其享以樂為主。秋嘗則薦新,冬烝則衆物備。
주례의 대종백에서 약(禴)으로 여름에 선왕을 향사하였다. 왕씨 주에 이르기를, 여름은 양기가 성한 때이니 그 향사에 음악을 위주로 한다. 가을의 상제(嘗祭)는 햇곡식을 올리고 겨울의 증제(烝祭)는 온갖 물건을 갖춘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二在三隂之中而與五應,唯牽引上下而萃於五,則吉无咎矣。爻之象占已備,而於占之下又發「孚乃利用禴」之義,以為卜祭之占者。蓋謂萃之時用大牲吉,然能如六二之孚,則雖用禴亦利也。本義謂「虛中」,誠實發明孚字。中虛,信之本;中實,信之質也。
이효는 세 음효 가운데 있으면서 오효와 응하니 오직 위아래를 이끌어 당겨 오효에게로 모여야 곧 길하고 허물이 없다. 효의 상(象)과 점(占)이 이미 갖추어졌는데 점 아래에 또 ’부내이용약’의 뜻을 밝힌 것은 제사를 점치는 점으로 삼은 것이다. 대개 췌의 때에 대성을 쓰면 길하지만 육이와 같은 진심이 있으면 비록 약을 쓰더라도 이롭다는 뜻이다. 본의에서 ’허중(虛中)’이라 한 것은 정성과 실질로 ‘부’ 자를 발명한 것이다. 속이 비어 있음은 믿음의 근본이요, 속이 꽉 참은 믿음의 바탕이다.
출전: 경문·소상전 및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잔주는 주역전의대전을 따름.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