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구오는 익(益)괘의 임금 자리다.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어 강건하고, 상괘의 가운데에 있어 중정(中正)을 온전히 갖추었다. 힘과 지위가 가장 큰 자리이면서, 아래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육이(六二)와 바르게 응한다. 그런데 이 임금은 힘을 자랑하거나 재물을 억지로 퍼주어 인심을 사지 않는다. 마음 한가운데에 백성을 아끼는 진실한 정성이 꽉 차 있어(有孚), 그 마음을 은혜로 삼아 세상을 덮을 뿐이다(惠心).
정이천은 이렇게 풀었다. 지극한 정성으로 천하에 보탬을 주는 임금이라면, 그 결과가 크게 길함은 점쳐 물을 것도 없이 이미 안다. 그래서 “묻지 않아도 크게 길하다(勿問元吉)“고 했다. 대가를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라, 베푸는 순간 이미 온전한 자리다. 주자는 여기에 한 겹을 더한다. 윗사람이 믿음으로 아래에 은혜를 베풀면, 아랫사람 또한 믿음으로 위에 은혜를 갚는다(有孚惠我德). 마음과 덕이 위아래로 오가며 한 몸이 되니, 이것이 익괘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상하(上下)의 모습이다.
융산 이씨의 통찰이 이 효의 핵심을 찌른다. 성인의 은혜란 집집마다 찾아가 밥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을 덮는 한 줄기 봄기운처럼, 저마다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스스로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내려다보며 하나하나 챙기는 은혜가 아니라, 모두가 제 삶을 살아낼 바탕을 깔아주는 은혜다. 소상전이 “크게 뜻을 얻었다(大得志也)“고 한 것은, 바로 이 마음이 천하에 통했다는 뜻이다.
삶에의 적용
내가 누군가를 돕고도 “저 사람이 알아줄까, 나에게 돌아오는 게 있을까” 묻고 싶어질 때, 그 물음 자체가 아직 마음이 다 차지 않았다는 신호다. 순수한 은혜에는 대답을 기다리는 조바심이 없다. 몸으로 옮기면 이렇다. 대가를 재는 굳은 표정과 움츠린 어깨를 풀고, 단전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으로 가슴을 부드럽게 연다.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려 하지 않아도, 내 중심이 깊고 고요하면 상대의 마음이 그 안정에 스스로 동기화된다. 먼저 베풀고 묻지 않는 것 — 이것이 힘을 쓰지 않고 세상을 움직이는 자리다.
훈장님의 풀이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五는 강양이 中正·尊位에 거해 힘(권력)이 가장 많은 자리다 — 그런데 힘은 본질이요, 거기에 도덕이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다. 그 힘(물질·권력)을 자랑·남용하지 않고, 믿음을 두어(有孚) 마음을 은혜·사랑 쪽으로 쓰니(惠心) — 권력으로 사람을 덮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덮는다. 그래서 묻지 않아도(勿問) 자연히 크게 길하다(元吉). 인간이 만든 법을 최대한으로 쓰면 사람을 다 잡아먹고, 최소한으로 쓰면 통치를 위해 조금만 쓴다 — 惠心이려면 법을 최소한으로 써야 한다.
惠心(마음을 사랑으로 씀)은 남을 위해서·남에게 보이려고 기르는 것(家養)이 아니라 — 제 몸을 닦는 自身 수양(克己復禮)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남을 사랑하랴 — 참선·수양으로 그릇을 키움도 남이 아니라 제 건강을 위함이다. (…) 대통령·임금이 아랫사람을 거울 들여다보듯 작은 것까지 다 비추면 정권이 무너진다 — 알아도 모르는 척, 약간 어두워야 한다. 부모도 자식을 다 살피면 자식이 삐뚤어진다 — 넓은 품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임금(九五)이 지성으로 천하를 이롭게 하면, 천하가 지성으로 임금처럼 그 덕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여(惠我德) — 아랫사람도 믿음을 두어 도리어 임금을 이익으로 받든다. 내가 먼저 손해(사랑)를 베푸니 둘째로 사람들이 위로 이익을 주는 것이다(損→益). 九五가 제 식으로 했을 뿐인데 천하가 그를 믿어 가슴에 품으니 크게 뜻을 얻은 것이다(大得志). 때가 되어야 그리되니, 꼭 그리되길 바람은 욕심이요 되든 안 되든 상관 않음이 양심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정이천·주자·제가
경문(爻辭)
九五,有孚惠心,勿問元吉。有孚惠我德。
구오는 진실한 믿음으로 마음을 은혜롭게 하니, 묻지 않아도 크게 길하다. 진실한 믿음으로 나의 덕을 은혜롭게 여긴다(백성들이 나의 덕에 보답한다).
소상전(象傳)
象曰:有孚惠心,勿問之矣。惠我德,大得志也。
상에 말하기를, 진실한 믿음으로 마음을 은혜롭게 한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됨이요, 나의 덕을 은혜롭게 여긴다 함은 뜻을 크게 얻은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五剛陽中正,居尊位,又得六二之中正相應以行其益,何所不利?以陽實在中,有孚之象也。
5효는 강양 중정으로 존위에 거하고, 또 육이의 중정과 서로 응하여 그 보탬(益)을 행하니, 어느 바인들 이롭지 않겠는가? 양이 실제로 가운데 꽉 차 있으니, 믿음이 있는 상이다.
以九五之徳、之才、之位,而中心至誠在恵益於物,其至善大吉,不問可知。故云勿問元吉。人君居得致之位,操可致之權,苟至誠益於天下,天下受其大福,其元吉不假言也。
구오의 덕과 재주와 지위로써 마음 중심의 지극한 정성이 백성에게 은혜를 보태주는 데 있으니, 그 지극히 선하고 크게 길함은 묻지 않아도 안다. 그러므로 ’묻지 않아도 크게 길하다’고 했다. 임금이 뜻을 이룰 수 있는 자리에 거하고 이룰 수 있는 권력을 쥐었는데, 진실로 지극한 정성으로 천하에 보탬을 준다면 천하가 그 큰 복을 받으니, 그 원길함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有孚恵我徳。人君至誠益於天下,天下之人无不至誠愛戴,以君之徳澤為恩恵也。
‘믿음이 있어 나의 덕을 은혜롭게 여긴다.’ 임금이 지극한 정성으로 천하를 보태주면, 천하의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하고 받들지 않음이 없으니, 임금의 덕택을 은혜로 여기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上有信以恵于下,則下亦有信以恵於上矣。不問而元吉可知。
윗사람이 믿음을 두고서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 아랫사람 또한 믿음을 두고서 윗사람에게 은혜를 보답한다. 묻지 않아도 크게 길함을 알 수 있다.
本義:以益下也有孚恵我徳,下有徳信以益上也。言恵不言益,益之大者也。不問而元吉可知矣。
(임금이) 아래를 보태줌으로써 ’유부혜아덕’이라 한 것은, 아랫사람이 덕과 믿음으로 윗사람을 보태주는 것이다. 굳이 ’보태준다(益)’고 말하지 않고 ’은혜롭다(惠)’고 말한 것은 보탬 중에서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묻지 않아도 원길함을 알 수 있다.
융산 이씨
隆山李氏曰:剛中有孚象。恵心者,非可人給而家養之也。聖人之仁,如一氣之春,舉斯加彼,使欲富夀安佚之心皆遂所欲也。我之所恵以心,則人之感恵以為徳矣。
강이 가운데 꽉 찬 것이 ’유부’의 상이다. ’마음을 은혜롭게 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직접 나누어 주고 집집마다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다. 성인의 어짊은 온 세상을 덮는 한 줄기 봄기운과 같아서, 이것을 들어 저들에게 가해주어 백성이 각자 부유하고 장수하며 편안하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이룰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내가 마음으로써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은 그 은혜에 감동하여 나의 덕으로 여긴다.
중계 장씨
中溪張氏曰:上之孚下以心為恵,下之孚上以徳為恵。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믿어주는 것은 마음으로써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믿어주는 것은 덕으로써 은혜를 갚는 것이다.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益莫大於信,恵莫大於心。有孚恵心,上有信象。
남에게 보태줌에 있어 믿음보다 큰 것이 없고, 은혜를 베풂에 있어 마음보다 큰 것이 없다. ’유부혜심’은 위에 믿음이 있는 상이다.
절재 채씨
節齋蔡氏曰:上以有孚而順下之心,即洪範所謂「皇建有極,用敷錫厥庶民」者也。下亦以有孚而順上之徳,即洪範所謂「錫汝保極」者是也。
윗사람이 믿음을 두고 아랫사람의 마음에 순응하는 것(有孚惠心)은, 곧 『서경』홍범편의 “임금이 표준(極)을 세워서 뭇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믿음을 두고 윗사람의 덕에 순종하는 것(有孚惠我德)은, 곧 홍범편의 “당신의 표준을 보전해 줄 것이다”라는 것이다.
백운 곽씨
白雲郭氏曰:損之上九言大得志,蓋自損得益而為得志也。此言大得志,蓋有君恵天下之志,至於天下信而懐其徳,是為大得志之時也。
손(損)괘 상구에서 “크게 뜻을 얻었다”고 한 것은 스스로 덜어냄으로써 보탬을 얻어 뜻을 얻은 것이다. 여기(익괘 구오)에서 “크게 뜻을 얻었다”고 한 것은, 임금이 천하에 은혜를 베푸는 뜻을 두어 마침내 천하가 그를 믿고 그 덕을 품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이 뜻을 크게 얻은 때가 된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