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益)은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태는 괘다. 그 여섯 효 가운데 다섯은 보탬을 주고받으며 흐르는데, 마지막 상구에 이르러 흐름이 막힌다. 이미 꼭대기에 올라 남에게 베풀어야 할 자리인데도, 상구는 도리어 “더 내놓으라”며 자기 이익만 끝없이 구한다(求益之甚). 보탬의 극에서 자신을 덜어낼 줄 모르니, 아무도 보태주지 않고(莫益之) 오히려 사방에서 몽둥이를 들고 그를 치러 온다(或擊之).
소상전은 이 파국의 뿌리를 마음에서 찾는다. “아무도 보태주지 않음은 치우친 말이요(偏辭), 혹 그를 침은 밖으로부터 온다(自外來).” 정이천은 말한다. 이치(理)는 천하의 지극히 공평함이요 이익(利)은 뭇사람이 함께 바라는 바이니, 마음을 공평히 하여 무리와 이익을 같이하면 남들도 그에게 주려 하지만, 홀로 독식하려 하면 온 세상이 힘껏 다투어 빼앗으러 온다. 치는 자가 밖에서 온다지만, 실은 안에서 스스로 부른 것이다.
’입심물항(立心勿恒)’을 두고 정이천과 주자의 해석이 갈린다. 정이천은 ’물(勿)’을 금지사로 보아 “이렇게 이익만 좇는 마음을 항상하지 말라, 마땅히 속히 고치라”는 경계로 읽고, 주자는 ’물’을 ’불(不)’로 보아 “마음 세움에 항구함이 없다”는 서술로 읽는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하나다. 이익 앞에서 마음이 한결같이 사욕으로만 기울면 흉하다는 것이다. 뒤집으면, 흉을 피하는 길도 마음에 있다.
이 효는 채움의 임계점을 가리킨다. 투자든 성취든 인정이든, 이익이 정점에 오를수록 “조금만 더”라는 소리가 커진다. 그때가 바로 자신의 몫을 덜어내야(損) 하는 자리다. 몸의 이치도 다르지 않다. 배부르다는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밀어 넣으면 몸은 염증으로 되받아친다. 채우는 힘보다 비우는 힘이 생존의 핵심이다. 이익의 꼭대기에서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서는 자제, 조금 손해 보는 듯 나누는 태도 — 그것이 밖에서 오는 몽둥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五는 그렇게 좋았는데 上九는 益의 끝(益極)이라 더 보탤 수 없다(莫益之) — 마지막이라 누구도 이익을 더 줄 수 없다. 그런데도 아직 욕심을 부려 '누가 나 이익을 안 줄까' 하니 —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 하므로 뭇사람이 미워하여 누군가 도리어 친다(或擊之). 그러니 마음 세우기를 한결같이(늘 이익만 보려고) 하지 말라(立心勿恒) — 그러면 흉하다. (…) 義를 뒤로 하고 利를 앞세우면 남의 것을 뺏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하니(不奪不饜) — 욕심이 극에 이르면 양심을 덮어 의리를 잊고 원수만 부른다.
上九는 이익의 끝까지 갔으니 더 가질 수 없는데(莫益之) 혼자 다 가지려 하면 반드시 공격자가 있다(或擊之) — 이익은 나눠 먹어야 하고, 약간 손해를 보는 듯해야 도리어 이익이다(욕심으로만 살지 말고 양심으로도 살라).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주자, 제가
효사(爻辭)
上九,莫益之,或擊之。立心勿恒,凶。
상구는 아무도 보태주지 아니하고, 혹 그를 친다. 마음을 세우는 데 항상하지 못하니, 흉하다.
소상전(象傳)
象曰:莫益之,偏辭也。或擊之,自外來也。
상에 말하기를, 아무도 보태주지 않는다는 것은 치우친 말씀이요, 혹 그를 친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上居无位之地,非行益於人者也。以剛處益之極,求益之甚者也。所應者隂,非取善自益者也。利者衆人所同欲也,専欲益已,其害大矣。
상효는 지위가 없는 땅에 거하니 남에게 보탬을 행하는 자가 아니다. 강(剛)으로써 보탬의 극치에 처했으니 보탬을 구함이 심한 자다. 응하는 바(삼효)가 음이니 선을 취하여 스스로 보태는 자가 아니다. 이익은 뭇사람이 똑같이 바라는 바인데, 오로지 자신만 보태고자 한다면 그 해로움이 크다.
欲之甚則昏蔽而忘義理,求之極則侵奪而致仇怨。故夫子曰:「放於利而行,多怨。」孟子謂:「先利則不奪不饜。」聖賢之深戒也。九以剛而求益之極,衆人所共惡,故无益之者,而或攻擊之矣。
욕망이 심하면 어둡게 가려져 의리를 잊고, 구함이 지극하면 남의 것을 침탈하여 원수와 원망을 부른다. 그러므로 공자가 “이익에 따라 행하면 원망이 많다”고 하셨고, 맹자가 “이익을 우선하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성현의 깊은 경계다. 강함으로써 이익을 구함이 극에 달해 뭇사람이 다 함께 미워하므로, 그를 보태줄 자가 없고 혹 그를 공격하여 치는 것이다.
立心勿恒,凶。聖人戒人存心不可専利,云勿恒如是,凶之道也。所當速改也。
’마음을 세우는 데 항상하지 못하니 흉하다’는, 성인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존함에 오로지 이익만 챙겨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것으로, “이와 같이 항상하지 말라, 흉한 도이다”라고 한 것이니 마땅히 속히 고쳐야 한다. (정이천은 勿을 금지사로 해석)
소상전 해설(정이천):
理者,天下之至公;利者,衆人所同欲。苟公其心不失其正理,則與衆同利,无侵於人,人亦欲與之。若切於好利,蔽於自私,求自益以損於人,則人亦與之力爭,故莫肯益之,而有擊奪之者矣。
이치는 천하의 지극히 공평함이요 이익은 뭇사람이 똑같이 바라는 바다. 진실로 그 마음을 공평하게 하여 바른 이치를 잃지 않으면 무리와 이익을 같이하여 남을 침범함이 없으니 남들도 그에게 주려 한다. 만약 이익을 좋아함에 절실하고 스스로의 사사로움에 가려 스스로 보태기를 구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남들 또한 그와 힘껏 다투므로 기꺼이 보태줄 자가 없고 쳐서 빼앗을 자가 있는 것이다.
既求益於人,至於甚極,則人皆惡而欲攻之,故擊之者自外来也。人為善則千里之外應之,六二中正虚己,益之者自外而至是也。苟為不善則千里之外違之,上九求益之極,擊之者自外而至是也。
남에게 보탬을 구함이 매우 지극한 데 이르면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여 공격하고자 하니, 그러므로 ’치는 자가 밖으로부터 온다’고 한 것이다. 선을 행하면 천 리 밖에서도 응하니 육이가 중정하고 자기를 비워 밖에서 보태주러 이르는 것이 이것이요, 불선을 행하면 천 리 밖에서도 어긋나니 상구가 보탬을 구함이 극에 달해 밖에서 치는 자가 이르는 것이 이것이다.
주자『주역본의』
以陽居益之極,求益不已,故莫益而或擊之。立心勿恒,戒之也。
양으로서 익의 극치에 거하여 이익을 구하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아무도 보태주지 않고 혹 그를 치는 것이다. ’입심물항’은 그를 경계한 것이다.
주자 문답(朱子曰):
或問:或擊之。朱子曰:或字,衆无定主之辭。言非但一人擊之也。立心勿恒,勿字只是不字,非禁止之辭。此處亦可疑,且闕之。
혹자가 ’혹격지’를 묻자 주자가 답하기를, “‘혹(或)’ 자는 정해진 주인이 없는 무리를 뜻하니 한 사람만 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입심물항’에서 ‘물(勿)’ 자는 단지 ‘불(不, ~하지 않다)’ 자이지 금지하는 말이 아니다. 이 대목은 의심스러우니 우선 빼둔다.” (정이천은 勿을 금지사로, 주자는 부정사 不로 보아 해석이 갈림)
損益二卦諸爻,皆互換。損好,益却不好。如損六五却成益六二,損上九好,益上九却不好。
손과 익 두 괘의 여러 효는 모두 서로 뒤바뀐다. 손 괘에서 좋았던 것이 익 괘에서는 도리어 좋지 않다. 손 육오는 익 육이가 되고, 손 상구는 좋았으나 익 상구는 도리어 좋지 않은 것이다.
계사전 인용(공자)
君子安其身而後動,易其心而後語,定其交而後求。君子修此三者故全也。危以動則民不與也,懼以語則民不應也,无交而求則民不與也,莫之與則傷之者至矣。易曰:「莫益之或擊之立心勿恒凶。」
군자는 그 몸을 편안히 한 연후에 움직이고, 그 마음을 평온히 한 연후에 말하며, 그 사귐을 정한 연후에 구한다. 군자가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하다. 위태롭게 움직이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고, 두렵게 말하면 백성이 응하지 않으며, 사귐 없이 구하면 백성이 주지 않으니, 함께하는 자가 없으면 그를 상하게 하는 자가 이른다.
쌍봉 호씨(雙峰胡氏)·운봉 호씨(雲峰胡氏)
雙峰胡氏曰:益之上九,即恒之九三,不安於恒,陵躐等級超於震上以求益者也,故其辭同。三上皆巽體,説卦謂巽為不果、為進退、為躁卦,其立心勿恒之驗歟!此所以莫有以益之,而反或有以擊之也。
쌍봉 호씨가 말하였다. 익 괘 상구는 곧 항(恒) 괘 구삼이니, 항구함에 편안하지 못해 등급을 뛰어넘어 진(震) 위로 초월하여 보탬을 구하는 자이므로 그 효사가 같다. 삼효와 상효는 모두 손(巽)의 체인데, 설괘전에 손을 ’결단력이 없고, 나아가고 물러나며, 조급한 괘’라 하였으니 이것이 ’입심물항’의 징험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보태주는 자는 없고 도리어 혹 치는 자가 있는 것이다.
雲峰胡氏曰:六二柔居下之中,不求益而或益之;上九剛居上之極,求益不已,人莫益之而或擊之。嗚呼!九二之吉由中心之有孚,上九之凶由立心之勿恒。吉凶之道孰有不自心生者哉!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육이는 유로서 아래의 가운데 거하여 보탬을 구하지 않아도 혹 보태주었고, 상구는 강으로서 위의 극치에 거하여 보탬을 구하기를 마지않아 남이 보태주지 않을 뿐 아니라 혹 그를 친다. 아아, 길함은 마음속 믿음에서 말미암고 상구의 흉함은 마음 세움이 항구하지 못함에서 말미암으니, 길흉의 도가 어느 것인들 마음에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건안 구씨(建安丘氏)
建安丘氏曰:益者,損上乾之陽以益下坤之隂也。合六爻觀之,損在上則益在下矣。……其在上卦,四以順下之動而為益,故曰利用遷國。五以感人以誠而致益,故曰有孚惠心。上則不知損己,反以求人之益,而人或擊之矣,故曰莫益之或擊之。此三爻則處益而當損者也。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익은 위 건의 양을 덜어 아래 곤의 음에 보탠 것이다. 여섯 효를 합하여 보면 덜어냄은 위에 있고 보탬은 아래에 있다. (…) 상괘에 있어 육사는 아래에 순응하는 움직임으로 보탬이 되므로 ’이용천국’이라 하였고, 구오는 정성으로 사람을 감동시켜 보탬을 이르렀으므로 ’유부혜심’이라 하였으며, 상구는 자기를 덜어야 함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남의 보탬을 구하여 남들이 혹 그를 치므로 ’막익지혹격지’라 하였다. 이 세 효는 보탬에 처하여 마땅히 자신을 덜어내야 하는 자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