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 화는 내가 부른다
육삼은 음(陰)이 양(陽)의 자리에 앉아 있다. 자질은 유약한 소인인데 하괘의 맨 위, 곧 군자가 앉을 높은 자리에 처했으니 그 근거가 없다. 정이천은 이 모습을 짐과 수레로 그린다. 소인은 마땅히 아래에서 등짐을 져야 하는데(負), 도리어 귀한 이가 타는 수레에 올라탔다(乘). 짐꾼이 짐을 진 채로 남의 수레를 빼앗아 탄 격이니 어울리지 않는 허세다. 위로는 구사를 등져 배신하고, 아래로는 강한 구이를 깔고 올라탔다. 자리에 넘치는 자가 그 자리를 지키려 버틸 때, 그 어색한 부(富)와 완장은 그 자체로 도둑의 눈에 띄는 먹잇감이 된다.
효사는 그 결말을 ’도둑이 이르는 것을 부른다(致寇至)’로 못박는다. 여기서 화는 밖에서 굴러온 것이 아니다. 소상전이 ’나로부터 도적을 불렀으니 또 누구를 탓하랴(自我致戎,又誰咎也)’라고 매섭게 되짚는 그대로, 도둑을 불러들인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를 움켜쥔 자기 자신이다. 주자는 이 자리에 처방을 하나만 남긴다. 오직 피하여 떠나는 것만이 화를 면할 수 있을 뿐이다(唯避而去之爲可免耳). 지키려 할수록 위험하고, 내려놓아야 산다. 운봉 호씨 역시 육삼이 스스로 피해 떠나면 그것이 곧 제 결박을 스스로 푸는 일(自解)이니 도둑도 흩어져 물러간다고 하였다.
효사는 이것을 두고 ’바르게 지키려 해도 부끄럽다(貞吝)’고 한다. 곧게 버티는 것조차 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이천은 그 까닭을 이렇게 풀었다. 소인이 성대한 자리를 훔쳐 앉아 아무리 힘써 바른 일을 하려 해도, 그 기질이 비천하여 본래 위에 있을 물건이 아니니 끝내 부끄러움을 면치 못한다(氣質卑下,本非在上之物). 다만 육삼은 흉(凶)까지는 가지 않고 인색함(吝)에서 멈추는데, 쌍호 호씨는 그것이 해괘 전체가 풀림의 좋은 때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자리가 사람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감당할 때 비로소 그 자리가 화를 부르지 않는다.
삶에 들이기
가장 위태로운 순간은 무너질 때가 아니라, 감당할 그릇보다 큰 것이 갑자기 내 손에 들어올 때다. 예상 밖의 돈, 분에 넘치는 완장, 실력보다 앞선 자리 — 그것을 지키려 등짐을 진 채 수레에 오르는 순간, 나는 나를 노리는 시선을 스스로 불러 모은다. 몸을 다스리는 사람은 이 이치를 자세에서 먼저 배운다. 하체가 부실한데 상체에만 힘을 실어 허세를 부리면, 그 어긋난 긴장을 상대는 귀신같이 파고든다. 버티려 힘을 줄수록 중심이 뜨고 뿌리가 흔들린다. 그럴 때 답은 손의 힘을 먼저 풀고 무게를 낮추어, 감당할 수 있는 자리로 내려서는 것이다. 내려놓음은 물러섬이 아니라, 화를 부르는 빈틈을 스스로 닫는 일이다. 오늘 내가 쥔 것을 두고 한 번 물어라. 이것은 내가 진 자리인가, 남의 수레를 빼앗아 탄 자리인가.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六三(음유)이 제 자리가 아닌 곳(下체의 위, 군자의 자리)에 처하여 — 짐을 지고서(負, 등짐 질 노동자) 또 수레를 탔으니(乘, 자가용을 빼앗아 탐) 격에 맞지 않는다(노숙자가 자가용 타고 다니는 격). (…) 제 자리 아닌 데 앉은 소인(非其位)이라, 그것이 곧 도둑(寇)을 불러들임이다(致寇至) — 六三은 上六에게 쏘여 죽는다.
도둑이 오는 것을 내가 만든 것이다(自致) — 총으로 권력을 뺏은 자는 총으로 죽고, 데모로 뺏으면 데모로 뺏긴다. 六三이 九四를 배신하고 九二를 빼앗아 탔으니, 그 화(寇)를 제가 일으킨 것이다. (…) 자리도 틀리고 행동도 틀렸으니, 아무리 힘써 바른 일을 하더라도 타고난 그릇이 낮아(才質卑下) 인색함으로 끝난다(本非在上之物). 소인이 군자로 변하는 일은 없다.
'自我致戎(나로부터 도둑·오랑캐를 이룩함)'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 繫辭傳에 '허술히 간수함이 도둑을 가르치고(慢藏誨盜), 요염하게 단장함이 음란을 가르친다(冶容誨淫)'고 했다. 재물을 함부로 두면 도둑에게 '훔쳐라' 가르치는 것이요, 음란히 꾸미면 '범하라' 가르치는 것이라 — 나를 죽일 도둑을 내가 손짓해 부른 셈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와 소상전
六三,負且乘,致寇至,貞吝。
육삼은 짐을 짊어지고서 또 수레를 타니, 도적이 이르는 것을 부르며, 바르게 지키려 해도 부끄럽다.
象曰:負且乘,亦可醜也。自我致戎,又誰咎也。
상전에 말하였다. 짐을 짊어지고 또 수레를 탐은 참으로 추한 짓이다. 나로부터 도적(무력)을 부른 것이니,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
정이천 『이천역전』
六三陰柔居下之上,處非其位。猶小人宜在下以負荷,而且乘車,非其據也,必致寇奪之至。雖使所爲得正,亦可鄙吝也。小人而竊盛位,雖勉爲正事,而氣質卑下,本非在上之物,終可吝也。若能大正則如何?曰:大正非陰柔所能也。若能之則是化爲君子矣。
육삼은 음유(陰柔)로서 아래의 위에 거하니 그 자리가 아닌 곳에 처했다. 마치 소인은 마땅히 아래에 있으면서 등짐을 져야 하는데 오히려 수레를 타니 그 근거가 없는 것이라, 반드시 도적이 빼앗으러 이르는 것을 부른다. 비록 하는 바가 바름을 얻었다 하더라도 또한 야비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소인이 성대한 자리를 훔쳐 비록 힘써 바른 일을 하려 해도, 그 기질이 비천하여 본래 위에 있을 물건이 아니니 끝내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다. 만약 크게 바르게 할 수 있다면 어떠한가? 대답하기를, 크게 바르게 함은 음유한 자가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만약 능히 그렇게 했다면 이는 곧 군자로 변화한 것일 뿐이다.
傳:負荷之人而且乘載,爲可醜惡也。處非其據,德不稱其器,則宼戎之致乃己招取,將誰咎乎?聖人又於繫辭明其致宼之道,謂「作易者其知盗乎」!貨財而輕慢其藏,是教誨乎盜使取之也。女子而妖冶其容,是敎誨淫者使暴之也。小人而乘君子之器,是招盜使奪之也。皆自取之之謂也。
(상전 해설) 짐을 지는 사람이 수레에 타니 추악하고 역겨운 것이 된다. 근거가 없는 곳에 처하여 그 덕이 그 그릇(수레·권력)에 걸맞지 않으니(德不稱其器), 도적이나 군대가 이르는 것은 곧 자기가 불러들인 것인데 장차 누구를 탓하겠는가? 성인(공자)이 또 계사전에서 그 도적을 부르는 도를 밝히시며 ’주역을 지은 자는 그 도둑의 심리를 알았을진저!’라고 하셨다. 재물을 가졌는데 그 보관을 소홀히 하는 것은 도둑에게 일러 가져가게 만드는 것이요, 여자가 그 용모를 요염하게 꾸미는 것은 음탕한 자에게 일러 폭행하게 만드는 것이며, 소인으로서 군자의 그릇을 타는 것은 도둑을 불러 빼앗게 만드는 것이니, 모두 스스로 자초한 것을 이른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주자어류』
本義:繫辭備矣。貞吝,言雖以正得之,亦可羞也。唯避而去之爲可免耳。
계사전에 풀이가 갖추어져 있다. ’정린(貞吝)’은 비록 바른 절차로 그것(자리)을 얻었다 하더라도 또한 부끄러울 수 있음을 말한다. 오직 피하여 떠나는 것만이 화를 면할 수 있을 뿐이다.
朱子曰:六居三,大率少有好底。負且乘,聖人到這裏又見得有箇小人乘君子之器底象,故又於此發出這箇道理來。
주자가 말하였다. 음(六)이 삼효(양자리)에 거하는 것은 대개 좋은 것이 적다. ’부차승’에서 성인은 여기에 이르러 또 ’소인이 군자의 그릇을 타는 상’을 보신 것이고, 그러므로 또 여기서 이런 도리를 밝혀 내신 것이다.
제가(諸家)
임천 왕씨(臨川王氏)
負者小人之事,六小人之材也。乘者君子之器,三君子之位也。
’등에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니 육효(음)가 소인의 재질이기 때문이요, ’수레를 타는 것’은 군자의 도구이니 삼효(양자리)가 군자의 지위이기 때문이다.
남헌 장씨(南軒張氏)
小人乘君子之器,乃所以招宼而起禍。貞固守此,寕不可吝乎?
소인이 군자의 도구를 타는 것이 곧 도적을 부르고 화를 일으키는 까닭이다. 이것을 바르고 굳세게 지키려 하니(안 내려오려 버티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운봉 호씨(雲峰胡氏)
六才柔,當上負乎四,負小人之事也。三志剛,欲下乘乎二,乘君子之器也。宼,上象。解難莫切於解小人。六三負者而乘君子之器,小人據非其分,宼至自致之也。本義謂唯避而去之爲可免耳。葢使三能避而去之,是三自解之也,宼亦當解而去矣。
육효(음)의 재질이 부드러우니 마땅히 위로 사효에게 업혀야 하는데, 등짐을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다. 삼효의 뜻이 강하니 아래로 이효를 타고자 하는데, 수레를 타는 것은 군자의 그릇이다. ’구(寇, 도적)’는 상효의 상이다. 어려움을 풂에 소인을 풀어 없애는 것보다 간절한 것이 없다. 육삼이 등짐을 지는 자로서 군자의 수레를 탔으니, 소인이 그 분수가 아닌 곳을 차지하여 도적 이름이 스스로 초래된 것이다. 본의에서 ’오직 피하여 떠나야 면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대개 삼효가 능히 피하여 떠나면 이는 삼효가 스스로 자기 결박을 푸는 것(自解)이 되고 도적 또한 마땅히 흩어져 떠나기 때문이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六爻中唯三爲吝而不言凶咎者,終是以卦體吉也。
여섯 효 가운데 오직 삼효만 인색함(吝)이 되고 흉(凶)이나 구(咎)를 말하지 않은 것은, 끝내 괘체(해괘)가 길하기 때문이다.
뇌씨(雷氏)
負且乘,小人自以爲榮,而君子所恥,故可醜。宼小則爲盜,大則爲戎。任使非人,則變解而蹇,天下起戎矣。已所致也,復誰咎哉?
짐을 지고서 또 수레를 타니, 소인은 스스로 영광이라 여기나 군자는 수치스럽게 여기는 바이므로 추한 짓이다. 도적이 작으면 도둑이 되고 크면 융(戎, 전란)이 된다. 사람 아닌 자를 임명하여 부리면 곧 해(解)가 변하여 건(蹇, 위기)이 되어 천하에 전란이 일어난다. 자기가 부른 것인데 다시 누구를 탓하겠는가?
중계 장씨(中溪張氏)
負販之人而且乘車,處非其據,竊位而已,亦可醜也。宼戎之至,自我招之,將誰咎乎?我指三也,戎指上也。
짐을 지고 장사하는 자가 또한 수레를 타니, 처함에 근거가 없이 자리를 훔쳤을 뿐이라 참으로 추한 일이다. 도적과 전란이 이르는 것은 스스로 부른 것이니 장차 누구를 탓하겠는가? ’나(我)’는 삼효를 가리키고, ’융(戎)’은 상효를 가리킨다.
출전: 정이천 『이천역전』, 주자 『주역본의』·『주자어류』, 임천 왕씨·남헌 장씨·운봉 호씨·쌍호 호씨·뇌씨·중계 장씨는 『주역전의대전』소인(所引). 강의록 발췌: 40. 解卦 — 허곡 훈장님 강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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