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澤睽 · 64괘 사전

구이(九二) — 遇主于巷

遇主于巷,无咎。
어긋난 때에 임금(육오)과 뜻을 합쳐 어긋남을 구제하려는 뜻(濟睽) — 다만 정면이 막혔으니 굽혀 우회하여 다가가려 함(委曲求合)이효, 양강(陽剛)이 하괘 태(兌)의 가운데(中)에 거해 강중(剛中)의 덕을 지님 — 강하되 기뻐 순종할 줄 아는 자리위로 육오 임금과 정응(正應)하나, 어긋난 때라 떳떳이 만나지 못하고 골목에서 우회해 응함소통/융통

어긋남의 때(睽)다. 구이는 양강(陽剛)하고 강중(剛中)한 신하로, 위의 임금 육오와 정응(正應)을 이루니 본디 떳떳하게 만나 뜻을 합할 사이다. 그러나 세상이 갈라진 때에는 음양이 서로 응하는 도가 쇠하고, 강유가 서로 어긋나는 기운이 이긴다. 이럴 때 대궐 정문으로 격식을 갖추어 임금을 찾으면 도리어 파벌의 저항에 부딪혀 사귐이 깨진다. 그래서 좁은 골목(巷)에서 우연을 가장하여 임금을 만나라 한다. 격식을 한 겹 벗고 다가가야 비로소 어긋난 틈이 좁혀진다.

여기서 ’골목’은 사특한 샛길이 아니라 굽이진 우회로일 뿐이다. 정이천은 이 굽힘(委曲)을 두고, 선한 도로써 둥글게 굴려 상대를 맞추어 합하게 하는 것이지 제 몸을 굽히고 도를 굽히는(枉己屈道) 아부가 아니라고 못 박는다. 지극한 정성으로 임금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의리를 밝혀 그 앎에 이르게 하며, 가려진 미혹을 걷어 그 뜻을 진실하게 한다. 방법은 유연하게 굽히되, 관철하려는 뜻(義)은 조금도 굽히지 않는 것 — 그것이 위곡구합(委曲求合)이다.

그러므로 소상전은 “골목에서 주인을 만나도 도를 잃은 것이 아니다(未失道也)“라 한다. 겉보기에 떳떳하지 못해 보여도 그 뜻이 바르면 도를 잃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운봉 호씨는 이런 굽힘을 절도에 통달한 성현의 일(達節之事)이라 하고, 결벽으로 세상을 피하는 자는 알 수 없는 경지라 했다. 굽힐 줄 아는 것은 비겁이 아니라, 때를 읽어 안의 축을 지키는 힘이다. 오직 재주가 강하면서 중을 얻은 구이라야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막다른 문 앞에서 사람은 흔히 둘 중 하나로 무너진다. 문을 부수려다 제가 부러지거나, 썩은 세상 탓하며 주저앉거나. 그러나 뜻을 잃지 않은 걸음은 셋째 길을 낸다. 몸에 축이 서 있으면 겉은 얼마든지 굽어도 된다 — 안이 곧게 서 있기에 그 굽힘이 비굴로 무너지지 않고 되돌아올 탄성이 된다. 축이 흔들리는 굽힘은 삐끗이고, 축이 선 굽힘은 우회다. 오늘 막힌 자리가 있거든 부딪히지도 포기하지도 말고 격식을 한 겹 벗은 골목부터 찾되, 그 전에 안의 축을 먼저 세우는 것이 순서다. 무엇을 이루려는가(義)가 또렷할수록, 어떻게 다가가는가(委曲)는 얼마든지 부드러워도 좋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巷(항)'은 골목·달동네·후미진 구렁터미다 — 임금을 큰길·정문(正門)에서 떳떳이 만나지 말고, 골목에서 비겁하게(委曲) 우연히 만난 듯(求乎相遇) 해야 허물이 없다(无咎)."

"어긋난 때(睽時)에 임금과 신하가 떳떳이·정당하게 만나면 큰일 난다(죽는다) — 시대가 어긋났으니 어긋난 행동(비정상)을 해야 때를 따르는 것이다. 정당하면 죽고, 비겁하면 산다. 양강中正의 신하(二효)가 임금(五효)과 뜻을 합쳐 어긋난 시대를 구제하려면(濟睽之功), 정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들이듯 굽혀(委曲) 만나야 한다(운봉 호씨)."

"비겁하게 굽혀 만난다 해서 제 몸을 비굴하게 하거나 도(道)를 굽히는 것은 아니다(非枉道·非屈身) — 오직 때(時)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듯하되 실은 기약(期約)을 해서 만나는 것이니, 회우(會遇·우연)에 '반드시 필(必)' 자가 들어간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풀이

경문과 소상전

九二,遇主于巷,无咎。 象曰:遇主于巷,未失道也。

구이는 골목에서 주인을 만나니 허물이 없다(무구). 소상전에 말하였다. “’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는 것은 도를 잃은 것이 아니기(미실도)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傳:二與五正應,為相與者也。然在睽乖之時,陰陽相應之道衰,而剛柔相戾之意勝。學易者識此,則知變通矣。故二五雖正應,當委曲以相求也。

전(傳)에 이르기를, 2효와 5효는 정응(正應)이니 서로 더부는 사이다. 그러나 어그러지고 다른 규(睽)의 때에는 음양이 상응하는 도가 쇠하고 강유가 서로 어긋나는 뜻이 이긴다. 주역을 배우는 이가 이를 알면 변화하여 통함(변통)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2효와 5효가 비록 정응일지라도 마땅히 굽히고 돌아 서로 구해야 한다.

二以剛中之德居下,上應六五之君,道合則志行成濟睽之功矣。而居睽離之時,其交非固,二當委曲求於相遇,覬其得合也。故曰遇主于巷,必能合而後无咎。君臣睽離,其咎大矣。

2효가 강중(剛中)의 덕으로 아래에 거하여 위로 육오 임금에게 응하니, 도가 합하면 뜻이 행해져 어그러짐을 구제하는 공(제규지공)을 이룬다. 그러나 어그러져 떨어지는 때에 거하니 그 사귐이 굳지 못하여, 2효는 마땅히 굽히고 돌아 서로 만남을 구하여 그 합함을 바란다. 그러므로 ’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합한 뒤에야 허물이 없다. 군신이 어그러져 떨어지면 그 허물이 크다.

巷者,委曲之途也。遇者,會逢之謂也。當委曲相求,期於會遇與之合也。所謂委曲者,以善道宛轉將就,使合而已,非枉己屈道也。

’골목(巷)’은 굽이진 우회로요, ’만난다(遇)’는 모여 마주침을 이른다. 마땅히 굽히고 돌아 서로 구하여 만나서 합하기를 기약한다. 이른바 ’굽힘(委曲)’이란 선한 도로써 둥글게 굴려 맞추어 합하게 할 뿐이지, 제 몸을 굽히고 도를 굽히는(枉己屈道) 것이 아니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二五陰陽正應,居睽之時,乖戾不合,必委曲相求而得會遇,乃為无咎。故其象占如此。

본의: 2효와 5효는 음양 정응이나 규(睽)의 때에 거하여 어긋나 합하지 못하니, 반드시 굽히고 돌아 서로 구하여 만나야 비로소 허물이 없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本義:本其正應,非有邪也。

(소상전 풀이) 본래 그 정응이니, 삿됨(邪)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전(象傳) 해설 — 정이천

傳:當睽之時,君心未合,賢臣在下,竭力盡誠,期使之信合而已。至誠以感動之,盡力以扶持之,明義理以致其知,杜蔽惑以誠其意,如是宛轉以求其合也。遇非枉道迎逢也,巷非邪僻曲徑也。故夫子特云遇主于巷,未失道也。

어그러진 때를 당하여 군주의 마음이 아직 합쳐지지 않았으니, 현신(賢臣)이 아래에서 힘과 정성을 다하여 기어이 믿고 합하게 할 뿐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감동시키고, 힘을 다해 붙들며, 의리를 밝혀 그 앎에 이르게 하고, 가려짐과 미혹을 막아 그 뜻을 진실하게 하여, 이처럼 둥글게 굴려 그 합하기를 구한다. 만남(遇)은 도를 굽혀 영합함이 아니요, 골목(巷)은 사특하고 편벽된 샛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특별히 “골목에서 주인을 만남은 도를 잃은 것이 아니다”라 하였다.

제가 — 중계 장씨(中溪張氏)

中溪張氏曰:在睽之時,唯九二獨遇六五之主,故曰遇主于巷。彖所謂「得中而應乎剛」者,指此爻也。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어그러진 때에 오직 구이가 홀로 육오 주인을 만나므로 ’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고 하였다. 단전에서 이른바 “중을 얻어 강에 응한다”는 것이 이 효를 가리킨다.

제가 — 서계 이씨(西溪李氏)

西溪李氏曰:二五君臣之位,故言君臣之睽。當事勢睽離之時,君臣相求,必欲拘堂陛之常分,則賢者无自而進矣。遇主于巷,處睽之時則然。

서계 이씨가 말하였다. 2효와 5효는 군신의 자리이므로 군신의 어그러짐을 말한 것이다. 사태와 형세가 어그러진 때를 당하여 군신이 서로 구함에, 반드시 대궐 섬돌(堂陛)의 떳떳한 분수(정식 절차)에 얽매이려 하면 어진 이가 나아갈 길이 없어진다. ’골목에서 주인을 만남’은 규(睽)의 때에 대처함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峯胡氏)

雲峯胡氏曰:坎四「比五,納約自牖」,睽二「應五,遇主于巷」,皆非所由之正。坎險睽乖之時,不得不委曲相求如此也。委曲求合,乃聖賢達節之事,非狷介避世者之所知。唯二之才剛而得中,足以行之。爻言无咎者,當睽之時必如此然後无咎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감(坎) 구사가 ’5효와 가까이하여 뜻을 창문으로 들인다(納約自牖)’고 한 것과, 규(睽) 구이가 ’5효와 응하여 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遇主于巷)’고 한 것은, 모두 통과해야 할 바른길이 아니다. 감의 험난함과 규의 어그러진 때에는 이처럼 굽히고 돌아 서로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굽히고 돌아 합하기를 구함은 곧 성현이 절도에 통달한 일(達節之事)이지, 결벽으로 세상을 피하는 자가 알 바가 아니다. 오직 2효의 재주가 강하면서 중을 얻었으므로 족히 이를 행할 수 있다. 효사에서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규의 때에는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허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제가 — 남헌 장씨(南軒張氏)

南軒張氏曰:遇主于巷,巷者委曲之途也。或謂諫君者當盡其委曲之義,非也。伊川云「至誠以感動之…」,如是宛轉將就之,期於明信而後已,此其所以謂之委曲也。故孟子謂引君以當道。

남헌 장씨가 말하였다. ‘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 하니, 골목은 굽이진 우회로다. 혹자는 ’임금에게 간하는 이는 마땅히 눈치 보며 비위 맞추는 뜻을 다해야 한다’고 하나 이는 틀렸다. 이천이 “지극한 정성으로 감동시킨다”고 하였으니, 이처럼 둥글게 굴려 맞추기를 밝게 믿어줌에 기약한 뒤에 그치는 것, 이것이 ’위곡(委曲)’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임금을 이끌어 바른 도에 당하게 한다(引君以當道)’고 하였다.

제가 — 건안 구씨(建安丘氏)

建安丘氏曰:二五正應,乖戾不合,在二必委曲求與五應。象以為未失事君之道者,當睽之時故也。

건안 구씨가 말하였다. 2효와 5효 정응이 어그러져 합하지 못하니, 2효에서 반드시 굽히고 돌아 5효와 응하기를 구해야 한다. 상전에서 ’임금을 섬기는 도를 잃은 것이 아니다’라 한 것은 규의 때를 당했기 때문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 만남(遇)의 뜻

雲峰胡氏曰:不期而會曰遇,遇本非正也。二與五本正應,而亦曰遇者,非有邪也。睽之時不得不如此也。上曰遇雨,三曰遇剛,三與上本正應也。睽而未遇,彼此不無不見之疑。疑之既亡,彼此又若一旦之遇。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기약 없이 모임을 ’만남(遇)’이라 하니, 만남은 본래 정식 절차가 아니다. 2효와 5효는 본래 정응인데도 ’만남’이라 한 것은 삿됨이 있어서가 아니라, 규(睽)의 때에는 부득이 이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효에 ‘비(雨)를 만난다’, 3효에 ‘강(剛)을 만난다’ 하였으니 3효와 상효도 본래 정응이다. 어긋나 아직 만나지 못했을 때는 피차 만나지 못하는 의심이 없지 않으나, 의심이 이미 사라지면 피차 다시 하루아침의 만남(一旦之遇)처럼 반갑게 합쳐진다.

이 효가 動하면火雷噬嗑(21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