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육이(六二)가 집안의 며느리로서 안에서 밥을 지어 살림의 바탕을 놓았다면, 육사(六四)는 그 살림을 총괄하는 안주인이자 임금 바로 아래의 대신(大臣)이다. 부드러운 음(陰)이 음의 자리에 앉아 바름을 얻었고(得正), 위로는 손(巽)의 공손함을 몸으로 삼았다. 집안의 기강이 초구·육이·구삼을 거치며 굳게 잡히고, 마침내 그 결실로 부유함을 누리는 자리 — 그래서 효사는 ’집안이 부유하니 크게 길하다(富家大吉)’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음효는 본디 가운데가 비어 가진 것이 없는데도 육사가 부자로 불린다는 역설이다. 정이천은 그 까닭을 손순(巽順)의 덕에서 찾는다. 공손하고 순한 몸으로 바른 도를 따르기에 능히 그 부를 보전할 수 있고, 집안에 거하는 도리로 그 부를 지켜내니 크게 길하다는 것이다. 주자는 이를 ’양은 의(義)를 주관하고 음은 이(利)를 주관한다’는 점법으로 풀었다. 밖에서 남편이 이름을 얻어 와도 안에서 알뜰히 지키고 모으지 못하면 이룬 것은 곧 흩어진다. 부를 만드는 힘이 채움(陽)에 있다면, 그 부를 지키는 힘은 비움과 순종(陰)에 있다. 육사가 크게 길한 까닭은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재물을 지키는 순종의 태도, 곧 ’순종하며 제자리에 있음(順在位)’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된 부(富)란 무엇인가. 진재 서씨는 금은보화가 쌓인 뒤에야 부자인 것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며 부부가 각각 제자리를 편안히 여겨 거스름 없이 집안을 보전하는 것, 그것이 곧 부유함이라는 것이다. 예기(禮記)가 말한 ’부자가 돈독하고 형제가 화목하며 부부가 화합함이 집안이 살찌는 것(家肥)’과 같은 뜻이다. 운봉 호씨는 육이의 상전과 육사의 상전에 거듭 놓인 두 ‘순(順)’ 자를 완미하면 부인의 도가 온전히 드러난다고 했고, 이씨 개는 초구가 법도로 막고 육이가 살림을 지으며 구삼이 엄히 다스린 끝에 육사에 이르러 그 부를 누리니 이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순서(治家之序)라 했다. 부는 다툼 없는 질서의 다른 이름이다.
삶에의 적용
돈이든 성취든,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백배 어렵다. 오차는 대개 이룬 뒤의 교만과 방종에서 시작된다. 무언가를 넉넉히 채웠다고 느낄 때가 바로 자세를 점검할 때다. 이룬 것이 클수록 어깨를 낮추고 호흡을 깊이 내려 마음을 그득히 채우되, 그 기운을 밖으로 흩뿌려 자랑하지 않는다. 안이 가득 차면 겉모습은 오히려 둥글고 넉넉해져, 누가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부를 지키는 것은 움켜쥠이 아니라 순종과 겸손이며, 그 순종은 굴종이 아니라 제자리를 아는 자의 태도다. 자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만이 이룬 것을 온전히 지키고, 곳간의 풍요를 곁의 사람들과 나누어 화목이라는 더 큰 부에 이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음효(陰爻)는 가운데가 뻥 비어(虛) 가진 게 없으니 본디 가난해야 한다 — 그런데 六四는 부자다. 비었기에 도리어 많은 것을 다물 수 있어, 물질이 허한 쪽으로 쏠려 들어오기 때문이다. 양효(陽爻)는 속이 꽉 차야 부자이지만, 음효는 비워서 받아들여 부자가 된다. 그래서 주역에서 손해 볼 損卦 다음 괘가 더할 益卦(부자 되는 괘)다 — 먼저 자리를 비워야 많은 걸 받아들이지, 장소도 안 만들고 어떻게 돈을 받아들이랴.
양(陽)은 빈틈이 없어 가질 필요가 없으니 의리(義)를 주관하고(재산 없어도 마음이 부자), 음(陰)은 가운데가 비어 허전하니 늘 끌어담아야 해서 이로움(利)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일 뿐, 자리와 변화에서 달라진다. 그러니 이것이 운명·팔자를 바꾸는 법이다 — 본질을 의식해 제 인격을 자유자재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집안을 부자로 만드는 자는 반드시 금(金)·옥(玉)·명주(明珠) 같은 보물이 있은 뒤라야 부자가 아니다 — 많이 가져야 부자라는 건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 각각 제 자리를 편안히 하고(各安其位) — '너 잘해라' 하지 말고 내 자리에서 나만 잘하여 서로 모범이 되니, 순리로 거스름이 없어(順以無逆) 능히 집을 보존하면 그것이 진짜 부자다.
원문과 주석 — 정이천 · 주자 · 중계 장씨 · 운봉 호씨 · 건안 구씨 · 이씨 개 · 진재 서씨
효사와 소상전
六四,富家,大吉。
육사는 집안이 부유하니, 크게 길하다.
象曰:富家大吉,順在位也。
상(象)에 이르기를, 집안이 부유하여 크게 길함은, (가장에게) 순종하며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六以巽順之體,而居四得其正位。居得其正為安處之義。巽順於事而由正道,能保有其富者也。居家之道,能保有其富則為大吉也。
육(六)은 손(巽)과 순(順)의 체(體)로써 4위에 거하여 그 바른 자리(正位)를 얻었다. 거함에 그 바름을 얻음은 편안히 대처하는 뜻이 된다. 일에 손순(巽順)하게 대처하면서 바른 도(正道)를 따르니, 능히 그 부유함을 보전할 수 있는 자이다. 집안에 거하는 도는 능히 그 부를 보전하면 ’크게 길함’이 된다.
四髙位而獨云富者,於家而言髙位家之尊也。能有其富,是能保其家也。吉孰大焉!
4효는 높은 자리인데 유독 부(富)를 말한 것은, 집안에 있어서 높은 자리는 집안의 어른(家之尊)을 말하기 때문이다. 능히 그 부유함을 둘 수 있다는 것은 능히 그 집안을 보전함이니, 길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출전: 정이천 『이천역전』가인괘 육사 전(傳).
주자 『주역본의』
陽主義,陰主利。以陰居陰,而在上位,能富其家者也。
양(陽)은 의(義)를 주관하고 음(陰)은 이(利)를 주관한다. 음으로서 음에 거하고 높은 자리에 있으니, 능히 그 집안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자이다.
朱子曰:占法,陽主貴,陰主富。
주자가 말하였다. 점법(占法)에, 양은 귀함을 주관하고 음은 부를 주관한다.
출전: 주자 『주역본의』가인괘 육사 및 어록.
제가 — 중계 장씨(中溪張氏)
六四與初九為正應,又介乎九三、九五之間。以柔得剛,以虛受實,故能富盛其家而有大吉之占。六四以巽順之道而在髙位,其一家之母歟?
육사는 초구와 정응(正應)이 되고, 또 구삼과 구오 사이에 끼어 있다. 부드러움(柔·虛)으로써 강함과 꽉 참(剛·實)을 받아들이므로, 능히 그 집안을 성대하게 부유하게 하여 대길(大吉)의 점이 있는 것이다. 육사가 공손하고 순종하는 도로써 높은 자리에 있으니, 한 집안의 어머니가 아니겠는가?
記曰:「父子篤,兄弟睦,夫婦和,家之肥也。」家之肥即家之富也。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부자가 돈독하고, 형제가 화목하며, 부부가 화합함이 집안이 살찌는 것(家肥)이다”라고 하였다. 집안이 살찐다는 것은 즉 집안이 부유해지는 것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小畜九五稱富,泰六五稱不富,陽實而陰虚也。家人六四陰也而稱富,陽主義,陰主利也。卦二陰爻皆得正,二之貞吉,順以巽也;四之大吉,順在位也。玩兩順字,婦道盡矣。
소축(小畜) 구오는 부유하다(富) 칭하고 태(泰) 육오는 부유하지 않다(不富) 칭하였으니, 양은 꽉 차고(實) 음은 비어(虛)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인 육사는 음(陰)인데도 부유하다 칭하였으니, 양은 의(義)를 주관하고 음은 이(利)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괘의 두 음효(2·4효)가 모두 바름을 얻었는데, 2효의 ’정길’은 ’순이손(順以巽)’이요 4효의 ’대길’은 ’순재위(順在位)’이다. 이 두 ‘순(順)’ 자를 완미해 보면 부인의 도가 다한 것이다.
二在下之婦也,四之位其在上而主家之婦乎。主家如此,是冝其家之富而大吉也。
2효는 아래에 있는 며느리요, 4효의 자리는 위에 있어 집안을 주관하는 안주인(主家之婦)이다. 안주인이 이와 같이 하니, 그 집안의 부유함과 크게 길함이 마땅한 것이다.
제가 — 건안 구씨(建安丘氏)
女子之道,以順為正。聖人於二之象曰順以巽,於四之象曰順在位。以言女子未有不順其夫而家道得其正者,故二象皆以順言之。
여자의 도는 순종(順)을 바름(正)으로 삼는다. 성인이 2효의 상을 ’순이손’이라 하고 4효의 상을 ’순재위’라 한 것은, 여자가 그 남편(가장)에게 순종하지 않고서 집안의 도가 바름을 얻은 적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두 상전에서 모두 ’순(順)’으로써 말한 것이다.
제가 — 이씨 개(李氏開)
初閑之,二饋之,三治之,四則享其富,此治家之序也。富家之大吉也。(一无有字也)
초효가 법도로 막고(閑), 이효가 가운데서 밥을 지으며(饋), 삼효가 엄격하게 다스리니(治), 사효에 이르러서는 곧 그 부유함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순서(治家之序)이다. 그러므로 부유한 집안의 대길이 있는 것이다. (어떤 판본에는 ‘유(有)’ 자가 없다.)
제가 — 진재 서씨(進齋徐氏)
富家者,非必金帛寳玉而後為富。但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各安其位,順而无逆,能保有其家而不敗,即所謂富也。吉莫大焉。若父子兄弟夫婦之間各失其道,則家敗无日,富可保乎?
부가(富家, 부유한 집안)라는 것은 반드시 금이나 비단, 보석과 옥이 있은 뒤에야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게’ 각각 그 자리를 편안히 여겨 순응하고 거스름이 없으며, 능히 그 집안을 보전하여 무너지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른바 부유함(富)이다. 길함이 이보다 클 수 없다. 만약 부자·형제·부부 사이에 각각 그 도를 잃는다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부를 가히 보전할 수 있겠는가?
출전(제가): 『주역전의대전』가인괘 육사 소주(小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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