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큰 힘이 자라 오르는 대장(大壯)의 때다. 아래에서 굳센 양 넷이 나란히 밀고 올라오는데, 육오는 부드러운 음(陰)으로 군주의 자리에 앉아 있다. 자리로 보면 양의 자리에 음이 들었으니 마땅치 않다(位不當). 힘으로 이 기세를 막으려 하면 이기지도 못하고 도리어 후회만 남는다. 그래서 효사는 “양을 잃는다(喪羊)“고 한다. 양은 무리 지어 다니며 들이받기를 좋아하는 짐승, 곧 앞다투어 올라오는 굳센 힘의 상징이다. 육오는 그 들이받는 뿔을 정면으로 맞대지 않고, 조화롭고 평온하게(和易) 맞이하여 뭇 힘이 부딪칠 곳을 잃게 만든다. 정이천은 이를 두고 “부드러움과 온화함으로 대하면 뭇 양이 그 강함을 쓸 곳이 없어진다”고 풀었다. 자리로는 군주요 덕으로는 중(中)을 얻었기에, 힘을 버리고도 도리어 후회가 없다(无悔).
주자는 이 상(象)을 더 섬세하게 읽는다. 삼·사·오 세 효가 겹쳐 이룬 모습이 못을 상징하는 태(兌)와 닮아 양(羊)의 형상이 있는데, 겉은 부드럽고 속은 굳센 꼴이다. 오직 육오만이 부드러움으로 가운데 자리를 지켜 들이받지 않으니, 그 굳센 기운을 잃되 홀연히 사라진 줄도 모르는 사이에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다만 원나라 역학자 호병문이 짚었듯, 이 “후회 없음”은 크게 칭찬하는 말은 아니다. 애초에 부딪쳐 이길 처지가 못 되어 힘을 내려놓은 것이니, 승리라기보다 파국을 면한 자리다. 그러나 바로 그 물러섬 안에 이 효의 깊은 지혜가 있다.
역사가 이 지혜를 증언한다. 남송의 학자 중계 장씨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를 이 효에 견주었다. 광무제는 천하를 통일한 뒤 개국 공신들을 힘으로 숙청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에게 넉넉한 자리를 내주어 물러나 평온히 살게 하니, 억센 무장들의 강포한 기운이 스스로 꺾였다. “나는 천하를 부드러움의 도(柔道)로 다스린다”던 그 말이 바로 육오의 자리다. 강함을 다스리는 데는 강함을 쓰지 않는다(治壯不可用剛) — 이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부딪침 없이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가장 높은 다스림이다.
삶에의 적용
거센 힘이 나를 향해 밀려올 때,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맞서 굳어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턱을 세우며, 지지 않으려 뿔을 곧추세운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말로 힘을 거두어야 할 자리다. 상대가 강할수록 나는 부드러워야 한다. 강 대 강으로 부딪치면 남는 것은 싸움뿐이고, 뿔은 결국 부러진다. 비난이 날아들 때, 경쟁의 기세가 나를 압박할 때, 먼저 몸 어딘가에 잡힌 긴장부터 풀어 보라. 맞서 쳐내려는 힘을 내려놓고 그 기세가 지나갈 길을 열어 주면, 상대는 부딪칠 곳을 찾지 못해 스스로의 힘에 지친다. 붙들고 있던 통제권을 놓는 것은 지는 일이 아니다. 뿔을 거두는 부드러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며, 내가 힘을 버릴 때 도리어 가장 강해진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六五는 5번 홀수 자리(양자리)인데 음효(太陰)가 들어와 있으니 위부당(位不當) — 자리가 마땅하지 못해 틀렸다. 밑에서 강한 양효 넷이 밀고 올라오니 임금(5)이 정면으로 당할 길이 없다. 그래서 강력을 쓰지 않고 타협·화합으로 양의 세력을 쉽게 풀어(喪羊于易) 버린다. 그러니 후회가 없다(无悔).
六五는 틀렸기 때문에 도리어 다행이다. 만약 五에 양이 들어 中正得尊(중정으로 높은 자리를 얻음)했으면, 이 괘는 大壯이 아니라 夬괘(43)로 변해 버린다. 음효가 틀린 자리에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 세상이 편안해졌다.
씩씩한 大壯을 다스릴 때 강한 것을 쓰면 안 된다. 저놈이 강하면 나는 부드럽게 나와야 한다. 강한데 나도 강하게 나오면 싸움뿐이다. (…) 상대를 봐 가며 움직이는 것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중계 장씨·운봉 호씨
경문과 소상전
六五,喪羊于易,无悔。
육오는 양(羊)을 평온함(易)에서 잃으니, 후회가 없다.
象曰:喪羊于易,位不當也。
상전에 이르기를, 양을 잃어버림은 자리가 마땅치 않기(位不當) 때문이다.
(음주: ’易’의 발음은 이(以豉反)이며, 혹은 역(亦)의 음과도 같다. 려(旅) 괘의 상우우이(喪牛于易)와 같다.)
정이천 『이천역전』
羊羣行而喜觸,以象諸陽竝進。四陽方長而竝進,五以柔居上,若以力制則難勝而有悔,唯和易以待之,則羣陽无所用其剛。是䘮其壯于和易也。如此則可以无悔。
양(羊)은 무리 지어 다니며 들이받기를 좋아하니, 여러 양(陽)이 나란히 나아감을 상징한다. 네 양이 바야흐로 자라나며 나란히 나아가는데, 오효는 부드러움(柔)으로 위에 거하니, 만약 힘으로 통제하려 하면 이기기 어렵고 후회가 있을 것이다. 오직 조화롭고 평온함(和易)으로 그들을 대하면, 뭇 양이 그 강함을 쓸 곳이 없어진다. 이는 그 건장함을 화이(和易)에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후회가 없을 수 있다.
五以位言則正,以德言則中,故能用和易之道,使羣陽雖壯,无所用也。
오효는 지위로 말하면 바르고 덕으로 말하면 중(中)이다. 그러므로 능히 화이의 도를 써서, 뭇 양으로 하여금 비록 건장하나 그 힘을 쓸 곳이 없게 만든 것이다.
所以必用柔和者,以陰柔居尊位故也。若以陽剛中正得尊位,則下无壯矣。以六五位不當也,故設喪羊于易之義。然大率治壯不可用剛。
(상전 해설) 반드시 부드럽고 온화함을 써야 했던 까닭은, 음유(陰柔)로서 존위에 거했기 때문이다. 만약 양강 중정(陽剛中正)으로 존위를 얻었다면 아래에 대항하는 건장함이 없었을 것이다. 육오는 자리가 마땅치 않으므로(位不當) ’상양우이’의 뜻을 베푼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건장함을 다스리는 데는 강함을 쓸 수 없다.
夫君臣上下之勢,不相侔也。苟君之權足以制乎下,則雖有強壯跋扈之人,不足謂之壯也。必人君之勢有所不足,然後謂之治壯。故治壯之道,不可以剛也。
무릇 군신 상하의 형세는 서로 같지 않다. 진실로 임금의 권력이 족히 아랫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면, 비록 강장하고 발호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건장하다 이를 수 없다. 반드시 임금의 형세가 부족한 바가 있은 연후에야 ’건장함을 다스린다’고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장함을 다스리는 도는 강함으로써 할 수 없다.
주자 『주역본의』
卦體似兌,有羊象焉。外柔而内剛者也。獨六五以柔居中,不能抵觸,雖失其壯,然亦无所悔矣。故其象如此,而占亦與咸九五同。易,容易之易,言忽然不覺其亡也。或作疆埸之埸,亦通。漢食貨志埸作易。
괘체가 태(兌)와 비슷하여 양(羊)의 상이 있다. 겉은 부드럽고 안은 굳센 것이다. 유독 육오는 부드러움으로 가운데에 거하여 들이받지 못하니, 비록 그 건장함을 잃었으나 또한 후회할 바가 없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점(占) 또한 함(咸) 구오와 같다. ’이(易)’는 용이하다는 뜻이니, 홀연히 그것이 사라진 줄도 모르게 됨을 말한다. 혹은 밭두둑을 뜻하는 역(埸)으로도 쓰니 또한 통한다. 『한서』식화지에 역(埸)을 이(易)로 썼다.
朱子曰:䘮羊于易,不若作疆埸之易。漢食貨志「疆埸之埸」,正作易。葢後面有䘮牛于易,亦同此義。
주자가 말하였다. ’상양우이’의 이(易)는 밭두둑인 역(埸, 들판·경계)으로 푸는 것만 못하다. 『한서』식화지의 ’장역(疆埸)의 역’을 바로 ’이(易)’로 썼다. 대개 뒤(려 괘 상효)에 ’상우우이(喪牛于易, 소를 들판에서 잃다)’가 있는데, 이 또한 같은 뜻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출전: 『주역전의대전』육오.
五以柔處剛,其位不當,又値乾陽下進之衝,勢不容遏,故有䘮羊之象。然柔而得中,不與剛抗,能以和易處之,則衆陽无所用其壯,而強暴之氣屈矣。
오효는 부드러움으로 강한 자리에 처하여 그 자리가 마땅치 않고, 또 건(乾)의 양들이 아래에서 나아오는 충돌을 만나 그 기세를 억누를 수 없으므로 ’양을 잃는 상’이 있다.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중(中)을 얻어 강함과 맞서지 않고 능히 화이(和易)로써 처하니, 뭇 양이 그 건장함을 쓸 곳이 없어지고 강포한 기운이 꺾인다.
然則䘮羊雖五之不幸,而于易亦五之善處也。處以和易則不至有悔。漢光武曰「吾治天下以柔道」,六五之謂矣。
그런즉 양을 잃는 것이 비록 오효의 불행이나, 평온함으로 잃음은 또한 오효의 훌륭한 대처다. 화이로써 처하면 후회함에 이르지 않는다. 한나라 광무제(光武帝)가 “나는 천하를 유도(柔道)로써 다스린다”고 한 것이 바로 육오를 이른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출전: 『주역전의대전』육오.
諸家多以䘮羊爲下四陽,本義獨為五。五互兌自有羊象。
여러 주석가는 대부분 ’상양’을 아래 네 양의 힘을 빼는 것이라 했으나, 본의(주자)는 유독 오효 자신이 강함을 잃는 것으로 보았다. 오효의 호괘가 태(兌)이니 스스로 양의 상이 있다.
觀四隂有剝陽之勢,至四則曰「觀國之光」,觀五也。壯四陽有決隂之勢,至四則曰「大輿之輹」,載五也。凡若是者尊君也。䘮羊于易又若人君自亡其剛而不與衆陽較,然亦尊君也。
관(觀) 괘의 네 음이 양을 깎아내리려는 기세가 있으나 사효에 이르러 “나라의 빛을 본다”고 하였으니 곧 오효(군주)를 보는 것이요, 대장(大壯) 괘의 네 양이 음을 결단하려는 기세가 있으나 사효에 이르러 “큰 수레의 바퀴통”이라 하였으니 곧 오효를 실은 것이다. 무릇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임금을 높이는 것이다. ’상양우이’는 임금이 스스로 그 강함을 없애고 뭇 양과 다투지 않으려는 것 같으나, 이 또한 임금을 높이는 것이다.
旅上九䘮牛于易,牛性順,上九以剛居極,不覺失其所謂順。此曰䘮羊于易,羊性剛,六五以柔居中,不覺失其所謂剛。自失其壯,故爻不言壯。无悔與咸六五同,亦非深許之辭。
려(旅) 상구는 ’소를 평온함에서 잃는다’고 했는데, 소의 성질은 순한데 상구가 굳셈으로 극치에 거하여 그 순함을 잃은 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 대장 육오는 ’양을 평온함에서 잃는다’고 했는데, 양의 성질은 강한데 육오가 부드러움으로 가운데에 거하여 그 강함을 잃은 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그 건장함을 잃었으므로 효사에서 ’건장함(壯)’을 말하지 않았다. ’무회(无悔)’는 함(咸) 육오와 같으니, 또한 깊이 허여하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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