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대장(大壯)의 때다. 구사는 상괘 진(震)의 맨 아래에 굳센 양(陽)으로 올라서, 네 양이 자라오른 형세를 이끄는 주효(主爻)다. 자리로 보면 양이 음의 자리(짝수)에 있어 본디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정이천은 이 어긋난 자리가 도리어 이 효를 구한다고 본다. 양강이 이미 성대하여 씩씩함이 중을 넘었으니(壯已過中), 만약 이 강함을 곧이곧대로 홀수 자리에서 썼다면 지나쳐 넘쳤을 것이다. 음의 자리에 처해 강함이 극에 달하지 않은 덕에(不極其剛), 바르게 지키기만 하면(貞)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悔亡). 정이천은 경계를 붙인다. 군자의 도가 자라나는 때에는 작은 실수라도 나아가는 기세를 해쳐 후회가 되니, 그래서 굳이 ’바르게 하라’고 못박은 것이다.
주자는 이 상을 물상으로 짚는다. 앞선 구삼에는 바로 앞에 구사라는 울타리(藩)가 있어 숫양의 뿔이 얽혔지만, 구사 앞에는 두 음(육오·상육)만 있으니 울타리가 터졌다(藩決). 그래서 얽혀 곤해지지 않고(不羸), 큰 수레의 바퀴통이 튼튼하다(壯于大輿之輹). 정이천은 이 바퀴통을 수레의 요처로 풀이한다. 수레가 부서지는 것은 늘 바퀴통이 부러지는 데 있으니, 바퀴통이 튼튼하면 수레가 강하고, ’바퀴통이 튼튼하다’는 곧 ’나아감에 씩씩하다(壯于進)’는 말이다. 소상전이 ’藩決不羸는 더욱 나아감(尙往)이다’라 한 것도 그 나아감이 그치지 않음(進不已)을 가리킨다.
제가의 풀이는 이 자리의 성격을 더 밝힌다. 남송 역학자 채연은 구사를 대장의 주효로 보아 강으로 유를 결단하니 씩씩함의 바른 것이라 하고, 아래로 세 강(1·2·3효)을 타고 있어 바퀴통이 튼튼한 상이라 한다. 원나라 역학자 호병문은 같은 ’貞吉悔亡’이 나오는 함괘(咸卦) 구사와 견준다. 함의 구사는 양이 음에 거해 바름을 얻지 못한 탓에 ’동동왕래(憧憧往來)’의 경계가 있었지만, 대장의 구사는 같은 자리가 도리어 ’강함이 극에 달하지 않음’이 되어 ’번결불리’의 기쁨이 된다. 강함이 지나친 때에는 음의 자리가 오히려 좋은 제동이 된다는 것이다. 또 대축괘(大畜卦) 구이는 육오에게 그침을 당해 ’수레의 바퀴통이 벗겨졌’지만, 대장 구사는 육오가 그치게 하지 못하므로 ’큰 수레의 바퀴통이 튼튼하다’고 한 대비도 덧붙인다.
삶에 들이기
힘이 가장 셀 때가 가장 위험하다. 강함을 곧이곧대로 끝까지 밀어붙이면 구삼처럼 울타리에 뿔이 얽혀 제 힘에 제가 갇힌다. 구사가 보여주는 것은 정반대다. 가장 센 힘을 쥐고도 한 겹 힘을 빼는 것(不極其剛). 몸으로 옮기면 이렇다. 무거운 것을 밀 때 팔에만 힘을 몰면 관절이 상하고 벽에 튕겨 나오지만, 어깨와 팔의 힘을 풀고 허리와 골반의 중심으로 체중을 부드럽게 실으면 막힘없이 밀려 나간다. 이완된 근육에서 튕겨 나오는 힘이 뻣뻣한 힘보다 멀리 간다. 다만 힘을 빼는 것이 방심은 아니다. 바퀴통(輹)에 해당하는 중심 — 곧게 지켜야 할 원칙(貞)이 단단해야 한다. 중심이 단단하고 힘이 유연할 때, 앞을 막던 울타리는 스스로 열리고 나아감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니 일이 풀리는 국면일수록 멈추지 말되, 먼저 내 중심이 곧은지부터 점검하라.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四는 양(陽, 강력한 기운)이 음자리(네 번째, 짝수)에 있으니 기본적으로 틀렸다. 양은 양자리에 있어야 맞는데 음자리에 있다. 그런데 그냥 길한 게 아니라, 자기를 가다듬어 꿋꿋이 한 길로 가면(貞) 길해져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悔亡).
양효가 넷이나 되어 大壯이지만, 음효 둘(5·6)이 위에 있어 곧 체력이 떨어진다. 양효 넷이 함부로 밀고 올라가다가는 도리어 음유(陰柔)에게 진다. 그러니 내가 힘이 강할수록 조심하라. 실력이 많을수록 실력을 함부로 쓰지 말고 조심하라.
九四는 틀렸는데 곧은 자세를 하면 반대로 팔자가 바뀌어 길해져서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니 사주팔자 타고난 대로 되는 게 아니다. 마음을 바꾸면 사주팔자가 바뀌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주역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사주팔자를 안 믿는다.
원문과 주석 — 정이천 · 주자 · 절재 채씨 · 중계 장씨 · 운봉 호씨
효사와 소상전
九四,貞吉,悔亡。藩決不羸,壯于大輿之輹。
구사는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울타리가 터져 뿔이 얽히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통이 튼튼하다.
象曰:藩決不羸,尚徃也。
상전에 이르기를, 울타리가 터져 얽히지 않음은 더욱 나아가는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四,陽剛長盛,壯已過中,壯之盛也。然居四為不正,方君子道長之時,豈可有不正也?故戒以貞則吉而悔亡。葢方道長之時,小失則害亨進之勢,是有悔也。若在他卦,重剛而居柔,未必不為善也,大過是也。
사효는 양강이 길게 성대하여 씩씩함이 이미 중을 넘었으니, 씩씩함의 성대함이다. 그러나 사효의 음자리에 거하여 바르지 못하니, 바야흐로 군자의 도가 자라나는 때에 어찌 바르지 못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르게 할 것을 경계하니, 곧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대개 도가 자라나는 때에 작은 실수라도 하면 형통하게 나아가는 기세를 해치니, 이것이 후회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다른 괘라면 거듭 강한데 유(柔)에 거한 것이 반드시 선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대과괘(大過卦)가 그렇다.
藩,所以限隔也。藩籬決開,不復羸困其壯也。髙大之車,輪輹強壯,其行之利可知。故云壯于大輿之輹。輹,輪之要處也。車之敗常在折輹,輹壯則車強矣。云壯于輹,謂壯于進也。(輹與輻同)
번(藩)은 한계를 지어 가로막는 것이다. 울타리가 터지고 열려 그 씩씩함이 다시 얽히고 곤해지지 않는다. 높고 큰 수레가 바퀴통이 강하고 튼튼하니 그 나아감이 이로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큰 수레의 바퀴통이 튼튼하다’고 하였다. 복(輹)은 바퀴의 중요한 곳이다. 수레가 망가지는 것은 늘 바퀴통이 부러지는 데 있으니, 바퀴통이 튼튼하면 수레가 강해진다. ’바퀴통이 튼튼하다’는 나아감에 씩씩함을 이른 것이다. (輹은 輻과 같다.)
剛陽之長,必至於極。四雖已盛,然其往未止也。以至盛之陽用壯而進,故莫有當之。藩決開而不羸困其力也。尚往,其進不已也。
(소상전 해설) 강양의 자라남은 반드시 극치에 이른다. 사효가 비록 이미 성대하나 그 나아감이 아직 그치지 않았다. 지극히 성대한 양으로써 씩씩함을 써서 나아가므로 능히 당해낼 자가 없다. 울타리가 터지고 열려 그 힘이 얽히거나 곤해지지 않는다. ’더욱 나아감(尙往)’은 그 나아감이 그치지 않음이다.
주자 『주역본의』
貞吉悔亡,與咸九四同占。藩決不羸,承上文而言也。決,開也。三前有四,猶有藩焉;四前二隂,則藩決矣。壯于大輿之輹,亦可進之象也。以陽居隂,不極其剛,故其象占如此。
’정길회망’은 함괘(咸卦) 구사와 같은 점(占)이다. ’번결불리’는 윗글(구삼의 울타리에 얽힘)을 이어 말한 것이다. 결(決)은 열림이다. 삼효 앞에는 사효가 있어 오히려 울타리가 있었으나, 사효 앞에는 두 음(오·육효)뿐이니 곧 울타리가 터진 것이다. ‘장우대여지복’ 또한 나아갈 수 있는 상이다. 양으로서 음에 거하여 그 강함이 극에 달하지 않았으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朱子曰:此卦如九二貞吉,只是自守而不進。九四藩決不羸壯于大輿之輹,却是有可進之象。此卦爻之好者,葢以陽居隂,不極其剛,而前遇二隂,有藩決之象,所以為進。非如九二前有三四二陽隔之,不得進也。
주자가 말하였다. 이 괘의 구이가 ’정길’이라 한 것은 다만 스스로 지키고 나아가지 않음이나, 구사의 ’번결불리 장우대여지복’은 도리어 나아갈 수 있는 상이 있다. 이 괘에서 효가 좋은 것은, 대개 양이 음에 거하여 그 강함이 극에 달하지 않고 앞에서 두 음을 만나 울타리가 터지는 상이 있으므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는 구이 앞에 삼·사 두 양효가 가로막아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 · 중계 장씨(中溪張氏)
節齋蔡氏曰:九四為壯之主,以剛決柔,壯之正者也。位不當故有悔,得正而吉其悔可亡。藩五也,決開也,以剛決柔,易而无困也。輹在車之下所用以行者,下乘三剛,壯輹之象。象曰尚往者,前无困沮可以上進也。
절재 채씨가 말하였다. 구사는 대장의 주효로서 강으로 유를 결단하니 씩씩함의 바른 것이다. 자리가 마땅하지 못하므로 후회가 있으나, 바름을 얻어 길하면 그 후회가 없어질 수 있다. 번(藩)은 오효다. 터지고 열리니, 강으로 유를 결단함이 쉬워 곤함이 없다. 복(輹)은 수레 아래에서 나아가는 데 쓰는 것인데, 아래로 세 강(1·2·3효)을 타고 있으니 바퀴통이 튼튼한 상이다. 상전의 ’더욱 나아감’이란 앞에 곤함이나 막힘이 없어 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中溪張氏曰:四以上則震為大塗,羣羊竝驅而前,无羸困之患。輿之行正在輹,輹壯則大輿由大塗而徃。四陽上進,將為夬之決,乾之純矣。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사효 위로는 진(震)이 큰 길이 되니, 뭇 양 떼가 나란히 달려 앞으로 나아감에 얽히거나 곤할 근심이 없다. 수레의 나아감은 바로 바퀴통에 달려 있으니, 바퀴통이 튼튼하면 큰 수레가 큰 길을 따라 나아간다. 네 양이 위로 나아가면 장차 쾌괘(夬卦)의 결단이 되고 건괘(乾卦)의 순수함이 될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乾九二既言見龍,所以九四或躍在淵不必言龍;則此上爻言羊,故藩決不羸不復言羊。
건괘(乾卦) 구이에서 이미 ’나타난 용(見龍)’을 말했으므로 구사의 ’혹약재연’에서는 굳이 용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위 효(구삼)에서 ’양(羊)’을 말했으므로 구사에서는 ’번결불리’라고만 하고 다시 양을 말하지 않았다.
貞吉悔亡,與咸九四同占,皆因占以設戒之辭。但在咸之四,以陽居隂,不得其正,故有憧憧往來之戒;在壯之時,以陽居隂,又為不極其剛,故有藩決不羸之喜。
’정길회망’은 함괘(咸卦) 구사와 점이 같은데, 모두 점에 인하여 경계의 말씀을 베푼 것이다. 다만 함의 사효는 양이 음에 거하여 바름을 얻지 못했으므로 ’동동왕래’의 경계가 있었으나, 대장의 때에는 양이 음에 거한 것이 또 ’그 강함이 극에 달하지 않음’이 되므로 ’번결불리’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大畜九二在三陽之中,為六五所止,故輿説輹;壯九四在三陽之上,六五不能止,故壯于大輿之輹。
대축괘(大畜卦) 구이는 세 양의 가운데 있으면서 육오에게 그침을 당하므로 ’수레의 바퀴통이 벗겨진다’고 하였고, 대장 구사는 세 양의 위에 있으면서 육오가 능히 그치게 하지 못하므로 ’큰 수레의 바퀴통이 튼튼하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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