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대장(大壯)은 아래로 네 양(陽)이 씩씩하게 자라 오른 힘의 괘다. 상육은 그 맨 꼭대기, 움직임을 상징하는 진(震)의 끝에 놓인 부드러운 음(陰)이다. 본바탕은 유약한데 강함의 기세가 극에 달한 자리에 올라타, 제 힘도 아닌 힘을 흉내 내며 울타리를 들이받는다. 숫양이 뿔을 깊이 박아(羝羊觸藩)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빼지도 못하는(不能退不能遂) 완벽한 진퇴양난 — 이것이 상육의 초상이다. 나아가려 하면 몸이 걸리고 물러나려 하면 뿔이 걸리니, 무엇을 한들 이로울 바가 없다(无攸利).
그런데 주역은 여기서 살길 하나를 열어 둔다.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艱則吉).” 정이천은 이렇게 풀었다. 음유가 억센 힘에 얹혀 버티려다 곤경을 만나면 반드시 그 건장함을 잃게 되는데, 억센 힘을 잃는 바로 그 순간 도리어 제 본분인 부드러움(柔弱之分)을 되찾는다. 주자 역시 “다행히 그가 강(剛)하지 않기에” 어렵게 여겨 대처하면 길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힘이 모자란 것이 여기서는 오히려 구원이 된다. 억지로 버둥거려 뿔을 빼려 할수록 울타리의 장력은 더 팽팽해지고, 힘을 뺄 때 비로소 빠져나올 틈이 생긴다.
공자는 상전에서 진퇴양난의 원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탓(不詳也)“으로 짚고, 그럼에도 “허물이 오래가지 않는다(咎不長也)“고 했다. 곤경 그 자체보다 곤경을 자초한 불찰이 문제이며, 그 불찰을 자각하는 순간 매듭은 풀리기 시작한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종종 물러설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교착에 갇힌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내가 지금 뿔이 끼었구나” 하는 냉정한 자기 인식이다. 자기 처지를 아는 자만이 살길을 찾는다.
삶에의 적용
일에 물려 옴짝달싹 못 하거나 논쟁에서 논리가 막혔을 때, “내가 틀렸다”며 물러서지도 못하고 “끝까지 가보자”며 밀어붙이지도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 교착의 늪에서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덫에 걸린 짐승은 공포에 발버둥 치다 제 힘에 탈진해 죽지만, 몸이 부드러운 것은 반항을 멈추고 축 늘어질 때 물렸던 자리가 느슨해지며 미끄러져 나온다. 사람의 위기도 다르지 않다. 관절이 서로 맞물려 꼼짝 못 할 때 힘을 더 주면 부러진다. 먼저 텐션을 버리고 체중을 바닥으로 가라앉혀, 저항 없이 물러나듯 힘을 뺄 때 팽팽하던 줄이 끊어지고 길이 열린다. 가장 어려운 위기(艱)는 완벽한 이완(柔)으로만 풀린다. 힘을 빼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가장 강한 기술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觸藩) 뿔이 박히면, 앞으로 가자니 몸이 막히고(進則礙身), 뒤로 물러나자니 뿔이 걸린다(退則妨角). 양의 성질은 후퇴가 없어 죽어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 이로울 바가 하나도 없다(无攸利) — 꼭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 효사는 '艱則吉(어렵게 여기면 길하다)'로 맺는다. 이로운 게 하나도 없어 죽을 일밖에 없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살아난다. 제가 진퇴양난의 죽을 자리에 있음을 아는 사람은 어렵게 여겨(艱) 조심하니 길하고, 모르면 꼭 죽는다.
강을 끝까지 고집하면 어렵고 피곤한 일을 만나 반드시 그 씩씩함을 잃고(必失其壯), 도리어 유약한 분수(分)만 읊게 된다. 그러니 어렵게 여겨 조심하라(艱則吉). 인간은 분수대로 산다 — 세상에 태어날 때 제 몸뚱이만큼 가지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라.
원문과 주석 — 상육 효사와 소상전, 그리고 정이천·주자·제가
효사와 소상전
上六,羝羊觸藩,不能退,不能遂,无攸利。艱則吉。
상육은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음에, 능히 물러나지도 못하고 능히 나아가지도 못하여 이로울 바가 없다. 어렵게 여기면(어려움을 인지하고 삼가면) 길하다.
象曰:不能退,不能遂,不詳也。艱則吉,咎不長也。
상(象)에 말하기를, 물러나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함은 자세히 살피지 못했기(不詳) 때문이요,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 함은 허물이 오래가지 않는 것(咎不長)이다.
정이천 『이천역전』효사 풀이 — 뿔이 끼어 오도 가도 못하다
傳:羝羊但取其用壯,故陰爻亦稱之。六以陰處震終而當壯極,其過可知。如羝羊之觸藩籬,進則礙身,退則妨角,進退皆不可也。才本陰柔,故不能勝己以就義,是不能退也。陰柔之人雖極用壯之心,然必不能終其壯,有摧必縮,是不能遂也。其所為如此,无所往而利也。
’숫양(羝羊)’은 단지 그 ’건장함을 씀(用壯)’을 취한 것이므로 음효(陰爻) 또한 그렇게 칭하였다. 6(음)으로서 진(震)의 끝에 처하고 건장함의 극치(壯極)에 해당하니, 그 지나침을 알 수 있다. 마치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음에, 나아가려 하면 몸이 걸리고 물러나려 하면 뿔이 방해되어 나아감과 물러남이 모두 불가한 것과 같다. 재주가 본래 음유(陰柔)하므로 능히 자신을 이기고 의리로 나아가지 못하니, 이는 능히 물러나지 못하는 것(不能退)이다. 음유한 사람이 비록 건장함을 쓰려는 마음이 극에 달했으나 반드시 끝까지 그 건장함을 지속할 수는 없으니, 꺾임이 있으면 반드시 위축된다. 이는 능히 이루지(나아가지) 못하는 것(不能遂)이다. 그 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가서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이다.
효사 풀이 — 간즉길(艱則吉), 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산다
陰柔處壯,不能固其守。若遇艱困,必失其壯。失其壯則反得柔弱之分矣。是艱則得吉也。用壯則不利,知艱而處柔則吉也。居壯之終,有變之義也。
음유가 건장함에 처하여 능히 그 지킴을 굳게 하지 못한다. 만약 곤경(艱困)을 만나면 반드시 그 건장함을 잃게 될 것이다. 그 억센 건장함을 잃어버리면 도리어 유약한 본분(柔弱之分)을 얻게 된다. 이것이 ’어렵게 여기면 길함을 얻는다’는 뜻이다. 건장함을 쓰면 불리하지만, 어려움을 알고 부드러움에 대처하면 길한 것이다. 건장함의 끝에 거하였으니 변화(變)하는 뜻이 있다.
상전 풀이 — 스스로 삼가 살피지 못한 탓
傳:非其處而處,故進退不能。是其自處之不詳慎也。艱則吉,柔遇艱難,又居壯終,自當變矣。變則得其分,過咎不長,乃吉也。
처할 곳이 아닌데 처했으므로 나아감과 물러남이 불가능하다. 이는 스스로 처신함이 자세하고 신중하지 못했기(不詳慎) 때문이다.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함은, 유(柔)가 환난을 만나고 또 건장함의 끝에 거하였으니 스스로 마땅히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하면 그 본분을 얻게 되니, 허물이 오래가지 않아 길하게 되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본의 — 본래 부드럽기에 살 길이 있다
本義:壯終動極,故觸藩而不能退。然其質本柔,故又不能遂其進也。其象如此,其占可知。然猶幸其不剛,故能艱以處則尚可以得吉也。
건장함의 끝이요 움직임이 극에 달했으므로, 울타리를 들이받아 능히 물러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바탕이 본래 유(柔)하므로 또한 능히 그 나아감을 이루지(계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상이 이와 같으니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다행인 것은 그가 강(剛)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능히 어렵게 여겨 대처한다면 오히려 길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문답(朱子曰) — 대축(大畜)의 ’이간정’과 같은 뜻
或問:傳以艱字為遇艱困,則失其壯而得柔弱之分故吉。竊意不能退遂而無所利,則是已艱困矣,而又曰遇艱何也?恐此艱字只作艱難其事而不敢求進不已則吉,如大畜九三利艱貞之艱。朱子曰:當如大畜之例。
혹자가 묻기를 “정전에서 ‘간(艱)’ 자를 곤경을 만나 건장함을 잃고 유약한 본분을 얻어 길하다고 풀이했는데, 제 생각에는 이미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해 불리하다면 이미 곤경에 빠진 것인데, 또 ’어려움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아마도 이 ‘간’ 자는 단지 그 일을 어렵게 여겨(신중히 하여) 감히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으려 하지 않으면 길하다는 뜻으로, 대축(大畜) 구삼의 ’이간정(利艱貞)’의 간(艱)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주자가 답하기를 “마땅히 대축의 예와 같이 보아야 한다(스스로 어렵고 신중하게 처신한다는 뜻으로 동의함).”
문답(朱子曰) — 필경 나아갈 이치는 있으나 어렵게 여겨야 길하다
朱子曰:上六取喻甚巧。葢壯終動極,无可去處,如羝羊之角掛于藩上,不能退遂。然艱則吉者,畢竟有可進之理,但必艱始吉耳。
주자가 말하기를 “상육이 취한 비유가 심히 교묘하다. 대개 건장함의 끝이요 움직임의 극치라 가히 갈 곳이 없으니, 마치 숫양의 뿔이 울타리 위에 걸려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고 한 것은 필경 나아갈 수 있는 이치가 있긴 한데, 반드시 어렵고 신중하게 해야 비로소 길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문답 — 대장은 지나치면 곧 좋지 않다
問:大壯本好,爻中所取却不好。睽本不好,爻中所取却好。如六五對九二處非其位,九四對上九本非相應,都成好爻,不知何故?曰:大壯便是過了,纔過便不好。如睽卦之類却是易之取爻多為占者而言。占法取變爻,便是到此處變了。所以困卦雖是不好,然其間利用祭祀之屬却都好。問:此正與見羣龍无首吉利永貞一般。曰:然,却是變了故如此。
묻기를 “대장(大壯)은 본래 좋은 괘인데 효 중에서 취한 것은 도리어 좋지 않고, 규(睽)는 본래 좋지 않은 괘인데 효 중에서 취한 것은 도리어 좋습니다. … 무슨 연고입니까?” 주자가 답하기를 “대장은 곧 (힘이) 지나친 것이니,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곧 좋지 않게 된다. 규 괘 같은 부류는 도리어 주역이 효를 취할 때 점치는 자를 위해 말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점법(占法)은 변효(變爻)를 취하니, 곧 이곳에 이르러 변하는 것이다. … 이는 건괘의 ’군룡무수’나 곤괘의 ’이영정’과 같은 일반적인 이치다. 도리어 변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제가(諸家)
절재 채씨(節齋蔡氏) — 신중함의 부재
節齋蔡氏曰:大壯之時,剛者壯也。柔居動體之極,見剛者壯,亦從之而用壯,不知其不可也。故其進退皆无所利。艱則吉者,苟知其難,能安乎柔而不進,則吉也。
대장의 때에는 강(剛)한 자가 건장한 것이다. 상효는 유(柔)로서 움직이는 체(震)의 극치에 거하여, 강한 자가 건장함을 쓰는 것을 보고 또한 그를 따라 건장함을 썼으니, 그것이 불가함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진퇴가 모두 이로울 바가 없다. ’간즉길’이란 진실로 그 어려움을 알고 능히 부드러움(柔)에 안주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길하다는 것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 상세히 살피지 못한 탓
進齋徐氏曰:上六進退皆无所利,由自處之不詳審故也。苟知其艱難,順守以待終亦獲吉,雖有殃咎亦不長久也。
상육이 진퇴에 모두 이로울 바가 없는 것은 스스로 처신함이 상세히 살피지(詳審) 못한 까닭이다. 만약 그 험난함을 알고 순히 지키며 기다린다면 마침내 또한 길함을 얻을 것이니, 비록 재앙과 허물이 있더라도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咎不長).
운봉 호씨(雲峰胡氏) — 5효와 상효, 한 효와 한 괘
雲峰胡氏曰:五上皆隂,五已喪羊,上又取羝羊觸藩者。五䘮羊,專以一爻言也。上羝羊,合一卦而言也。葢至於上則壯終動極,故與下卦之終同象。
5효와 상효는 모두 음인데, 5효는 이미 ’양을 잃었다(喪羊)’고 했고, 상효는 또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다’는 상을 취했다. 5효의 상양은 오로지 한 효로써 말한 것이고, 상효의 숫양은 괘 전체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 대개 상효에 이르면 건장함이 끝나고 움직임이 극에 달하므로 하괘의 끝(구삼)과 같은 상(象)이 된 것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 3효와 6효, 강하지 않기에 힘쓸 수 있다
上之壯已極,不能退;六之質本柔,不能遂。然三羸角,上艱則吉者,三過剛必至於自困,上不剛故可勉之以艱也。兼壯終有變之義。
(상효는) 건장함이 이미 극에 달했으므로 능히 물러나지 못하고, 바탕이 본래 유하므로 능히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3효는 ’뿔이 얽혀 파리해진다’고만 했고 상효는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고 한 것은, 3효는 지나치게 강하여(過剛) 반드시 스스로 곤란해지는 데 이르지만, 상효는 강하지 않으므로 가히 어려움(신중함)으로써 힘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겸하여 건장함이 끝나면 변화한다는 뜻이 있다.
쌍호 호씨(雙湖胡氏) — 구삼과 정응이나 서로 응하지 못하다
雙湖胡氏曰:九三居乾體之極在下卦之上,剛動而欲進;上六居震體之極在上卦之上,動極而在上。又卦有互兌,全體有爽畫兌,故皆取羝羊用角之義。又三與上為正應,本當有合者也。然三欲進而為四所陷,故羸其角而不能應乎上。上雖與三為應,而窮於上,故既不能退而得乎三,又不能遂而成其進,故无攸利。必艱難自守以待之庶成其吉耳。
구삼과 상육은 정응이니 본래 합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구삼은 나아가고자 하나 구사에게 빠진 바 되어 그 뿔이 얽혀 능히 상효에 응하지 못한다. 상효는 비록 3효와 응하나 위에서 궁해졌으므로, 이미 물러나서 3효를 얻지도 못하고 또 나아가서 전진을 이루지도 못하므로 이로울 바가 없다. 반드시 어렵게 여기고 스스로 지키며 기다려야 거의 그 길함을 이룰 뿐이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 대장 6효 총정리
建安丘氏曰:大壯剛進也。二陰退而四陽進也。而九四乃壯之所以為壯者,其曰藩決不羸,壯于大輿之輹,葢許陽之壯也。壯貴進,不暴,過剛則失其所以為壯矣。
대장(大壯)은 강이 나아가는 것이다. 두 음이 물러나고 네 양이 나아가는 것이다. 구사가 곧 건장함을 건장하게 만드는 자이니 ’울타리가 터지고 얽히지 않음’이라 한 것은 대개 양의 건장함을 허여한 것이다. 건장함은 나아감을 귀하게 여기나 사납지 않아야 하니, 지나치게 강하면 그 건장함이 된 까닭을 잃게 된다.
其下三剛爻,當隨四而壯,不利自往。初、三皆以剛居剛,好進者也,故初征凶,而三羸其角。二以剛履柔,居中能守不進者也,故貞吉。若上之二陰,五柔居中而能受陽之壯,故雖喪羊而无悔。上柔居壯之終,不能壯者而亦終用壯焉,故有不能退不能遂之戒。
그 아래의 세 강효(1·2·3)는 마땅히 4효를 따라 건장해야지, 스스로 나아감은 이롭지 않다. 1효와 3효는 모두 강이 강에 거하여 나아가기를 좋아하므로, 1효는 ’나아가면 흉하다’고 했고 3효는 ’그 뿔이 얽힌다’고 했다. 2효는 강이 유를 밟아 중에 거하여 능히 지키고 나아가지 않으므로 ’정길’이라 했다. 위쪽의 두 음을 보면, 5효는 유가 중에 거하여 능히 양의 건장함을 수용하므로 ’양을 잃었으나 후회가 없다’고 했다. 상효는 유가 건장함의 끝에 거하여, 건장할 수 없는 자인데 끝내 건장함을 썼다. 그러므로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못한다’는 경계가 있는 것이다.
王輔嗣云:本有違謙越禮能全其壯者也。故陽爻皆以處陰位為美,用壯處壯則觸藩矣。
왕보사(王弼)가 이르기를 “본래 겸손함을 어기고 예를 넘어서면서도 그 건장함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양효는 모두 음자리에 처하는 것(2·4효)을 아름다움으로 삼으니, 건장함을 쓰면서 건장한 자리에 처하면(3효) 곧 울타리를 들이받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