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네 개의 양이 맹렬하게 자라 올라오는 대장(大壯)의 때다. 저마다 제 힘을 뽐내려 드는 이 국면에서 홀로 칭찬을 받는 효가 구이다. 구이는 양강(陽剛)이면서 음의 자리, 그것도 하괘의 한가운데(中)에 처했다. 원칙으로 보면 양이 음자리에 놓였으니 자리가 바르지 않다. 그런데 효사는 단 한마디, 바르게 하니 길하다(貞吉)고 한다. 힘이 넘치는 자리에서 도리어 부드러움을 취하고 가운데를 지킨 것이, 이 괘에서 가장 바른 처신이 되었다.
정이천은 여기서 주역의 한 이치를 끌어낸다. 강과 유가 중을 얻어(剛柔得中) 건장함에 지나치지 않았기에(不過於壯) 바르고 길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양이 음자리에 있으니 바르게 하라고 경계한 말이 아니냐” 묻자, 정이천은 주역이란 이기는 바를 취하여 뜻으로 삼는 것이라 하며, 중도를 얻은 이상 바르지 않음이 없다고 답한다. 그리고 못을 박는다. 가운데 하면 곧 바름을 잃지 않는다(中則不失正). 주자도 같은 자리를 짚되 한결 엄히 말한다. 양이 음자리에 거해 이미 바름을 얻지 못했으나, 처한 바가 중이니 그 중으로 인하여 바름을 되찾을 수 있다고. 中이 있어야 正이 산다는 것이다.
여러 유학자가 이 대비를 거듭 짚는다. 운봉 호씨는 구이와 구사가 똑같이 ’정길’이라 쓰였지만, 구이는 이미 중을 얻어 바름을 허여받은 칭찬이고 구사는 중하지 못해 제발 바르게 하라는 경고라 갈랐다. 임천 오씨는 중하면 허물이 없으니 제 건장함을 믿고 맹렬히 나아가지 않는다(不恃其壯而猛進) 하였고, 중계 장씨는 중용이 말한 “가운데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여(中立而不倚, 強哉矯)“라는 덕을 구이가 지녔다 하였다. 강을 다 쓰지 않고 여유를 남기는 절제 — 그 남겨둔 힘이 사람을 오래 가게 한다.
삶에 들이기
일이 잘 풀릴수록, 힘이 오를수록 위험은 바로 그 힘에서 온다. 액셀을 더 밟고 싶은 순간에 발을 브레이크에 얹는 것, 그것이 구이의 수양이다. 백을 할 수 있어도 팔십에서 멈추어 스무 몫의 여유를 남겨두는 것, 포만감이 차오르기 전에 수저를 내려놓는 것, 주먹 끝에는 힘을 싣되 어깨와 목은 물처럼 풀어두는 것. 강함을 부드러움으로 감싸 가운데로 수렴시킬 때 몸은 다치지 않고 오래 간다. 자리가 조금 어긋나 있어도 중심 하나만 잃지 않으면, 넘치지 않은 그 힘이 정작 위기의 순간에 나를 구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二는 양(陽)이 음자리(2번, 짝수)에 있으니 자리가 틀렸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효보다 제일 좋은가? 틀렸기 때문에 좋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자세가 반듯하면 바를 正자다. 하지만 그 자리가 가운데 中자리인 것은 아니다. 중심부에 앉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가운데 中자에는 바를 正자가 한없이 많이 들어 있고, 바를 正자에는 가운데 中자가 한 글자도 없다. 中자를 쪼가리 쪼가리 내도 그 안에서 正자가 끝없이 나온다. 그걸 이해하면 사회생활에 참 도움이 된다.
강한 것을 음(柔)으로 쓰고 中으로 처세하니, 그게 바른 자세라 참 길합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풀이
경문과 소상전
九二,貞吉。 象曰:九二貞吉,以中也。
구이는 바르게 함이 길하다(정길). 소상전에 말하였다. “구이가 바르고 길함은 가운데를 얻었기(이중야)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二雖以陽剛當大壯之時,然居柔而處中,是剛柔得中,不過於壯,得貞正而吉也。
2효는 비록 양강으로서 대장의 때를 당하였으나 유(柔)에 거하고 중(中)에 처하였으니, 이는 강과 유가 중을 얻은 것이다. 건장함에 지나치지 않아(불과어장) 바르고 올곧음을 얻어서 길하다.
或曰:貞非以九居二為戒乎?曰:易取所勝為義。以陽剛健體當大壯之時,處得中道,无不正也。在四則有不正之戒。人能識時義之輕重,則可以學易矣。
혹자가 물었다. “’정(貞)’이라 한 것은 구(양)가 2위(음)에 거했으므로 바르게 하라고 경계한 것이 아닙니까?” 정이천이 답하였다. “주역은 이기는 바를 취하여 뜻으로 삼는다. 양강하고 굳센 체로써 대장의 때를 당하여 대처함에 중도를 얻었으니 바르지 않음이 없다. 4효에 가서는 곧 바르지 않다는 경계가 있다. 사람이 능히 때와 뜻의 가볍고 무거움(시의지경중)을 안다면, 가히 주역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所以貞正而吉者,以其得中道也。中則不失正,况陽剛而乾體乎?(一有壯字)
바르고 올곧아서 길한 까닭은 그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운데 하면 곧 바름을 잃지 않거늘, 하물며 양강이며 건(乾)의 체임에랴! (어떤 본에는 장(壯) 자가 있다.)
주자 『주역본의』
以陽居隂,已不得其正矣。然所處得中,則猶可因以不失其正。故戒占者使因中以求正,然後可以得吉也。
양으로서 음에 거하니 이미 그 바름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처한 바가 중(中)을 얻었으니, 오히려 그 중에 인하여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자를 경계하여, 중(中)으로 인하여 바름(正)을 구하게 한 연후에야 가히 길함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峰胡氏曰:易春秋,美惡不嫌同辭。九二因中得正,曰貞吉,許之也。九四不中不正,曰貞吉,戒之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주역과 춘추는 아름다움과 악함을 같은 말로 쓰기를 꺼리지 않았다. 구이는 중(中)으로 인하여 바름을 얻었으므로 ’정길’이라 하여 이를 허여한 것이고, 구사는 중하지도 바르지도 못하므로 ’정길’이라 하여 이를 경계한 것이다.”
제가 — 임천 오씨(臨川吳氏) · 중계 장씨(中溪張氏)
臨川吳氏曰:中則无過,不恃其壯而猛進也。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중(中)하면 허물(지나침)이 없으니, 그 건장함을 믿고 맹렬히 나아가지 않는(불시기장이맹진) 것이다.”
中溪張氏曰:中立而不倚,強哉矯!九二有焉。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중용에서 말한) ’가운데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여(중립이불의 강재교)!’라는 덕을 구이가 가지고 있다.”
제가 — 쌍호 호씨(雙湖胡氏) · 유씨(劉氏) · 백운 곽씨(白雲郭氏)
雙湖胡氏曰:九二不正而云貞吉者,戒之以正則吉也。若匪正則有凶矣。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구이가 바르지 않은데 정길이라 이른 것은, 바름으로써 경계한 즉 길하다는 것이다. 만약 바르지 않으면 흉함이 있을 것이다.”
劉氏曰:二之應五,以陽剛承柔。用剛得中,乃能貞吉。四剛不中,故必貞吉而後悔亡。
유씨가 말하였다. “2효가 5효에 응함에 양강으로써 유(柔)를 받든다. 강함을 쓰되 중을 얻었으므로 능히 정길하다. 4효는 강하되 중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정길’한 연후에야 후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白雲郭氏曰:卦辭言利貞,指九二也。然九二以剛而居下體之中,未能究天德之用,故但曰貞吉而已。若九二者,葢非禮弗履之士也。
백운 곽씨가 말하였다. “괘사에서 ’이정(利貞)’이라 한 것은 구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구이는 강으로서 하체(하괘)의 가운데 거하여 아직 천덕(天德)의 쓰임을 다 궁구하지 못했으므로 단지 ’정길’이라고만 한 것이다. 구이 같은 자는 대개 예가 아니면 밟지 않는 선비(비례불리지사)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