雷風恆 · 64괘 사전

六五 — 恒其德貞

六五,恒其德貞,婦人吉,夫子凶。
믿는 하나를 끝까지 지키려는 뜻 — 유순하게 순종하여 한결같고자 함오효 군주의 자리, 음유가 양위에 거함 (유약한 존위, 그러나 중中을 얻음)아래 구이(강중)와 정응 — 강한 신하에게 순종·의존하는 호응순종/결단

풀이

육오는 항(恒)괘 상괘 진(震)의 가운데이자 군주의 자리다. 음유(陰柔)한 성질이 양(陽)의 자리에 놓여 자리는 마땅치 않으나, 가운데(中)를 얻어 아래의 강한 신하 구이(九二)와 바르게 응한다. 효사는 “그 덕을 항상되게 하는 것이 바르다(恒其德貞)“고 하면서도, 곧바로 “부인은 길하고 남편은 흉하다(婦人吉夫子凶)“며 같은 덕에 상반된 판정을 내린다. 한결같음 그 자체는 바름이되, 그 한결같음을 누가 어떤 자리에서 지키느냐에 따라 길흉이 갈린다는 뜻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믿는 하나를 끝까지 따르는 것(從一而終)은 자리를 지키며 순종하는 자의 미덕이다. 그에게 이 한결같음은 그대로 바름이 되어 길하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를 읽어 대의를 결단해야 하는 남편이나 군주가 오직 한 가지 방식, 곧 남의 말에 순종하는 것만 붙들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상전은 남편은 의리를 지어 결단하는 자이니(夫子制義) 부인의 도를 따르면 흉하다고 못 박는다. 정이천은 다른 괘에서라면 음(陰)이 임금 자리에서 강(剛)에 응하는 것이 허물이 아니지만, 항괘에서는 유순함을 항구함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고 하였다.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이 달라지면, 한결같음을 지키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주희는 이 대목에서 상(象)과 점(占)을 나누어 보라고 거듭 당부한다. 효 자체가 길흉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육오에는 “그 덕을 항상되게 함이 바르다”는 상이 있을 뿐이고, 그 상을 마주한 사람이 자신의 처지와 역할을 비추어 길흉이 갈린다는 것이다. 같은 한결같음이 부인에게는 길, 남편에게는 흉이 되는 까닭이다. 후대 주석가들은 이 경계를 인물로 풀었다. 겸산 곽씨는 지나치게 맑기만 하여 융통성 없던 백이(伯夷)를 맹자가 좁다(隘)고 평한 일과, 불이 났어도 예법을 지키느라 자리를 뜨지 않고 타 죽은 백희(伯姬)를 공자가 공손하다 했을 뿐 지혜롭다 하지는 않은 일을 들어, 한 원칙에 대한 맹목적 고수가 자리에 따라 도리어 허물이 됨을 보였다.

삶에의 적용

실무자로 성공했던 방식을 리더가 되어서도 똑같이 고집할 때, 부인의 길함이 남편의 흉함으로 뒤집힌다.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던 손발이 이제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누군가 결정해 주기만 기다린다면, 그것이 부인의 도를 따르는 흉함(從婦凶)이다. 그러므로 일 앞에서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따라야 할 자리인가, 결단해야 할 자리인가. 따를 자리라면 뚝심 있게 끝까지 밀고, 이끌 자리라면 미련 없이 낡은 방식을 내려놓고 새 원칙을 세운다. 몸으로 치면 들숨은 상대의 힘에 부드럽게 순응해 받아들이는 것이요, 날숨은 그 힘을 내 중심으로 거두어 방향을 끊어내는 결단이다. 부드러움만 이어가면 벽에 몰려 얻어맞고, 부드러움 끝에 단전에서 나오는 한 번의 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한결같음이 제 노릇을 한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와 소상전

六五,恒其德貞,婦人吉,夫子凶。

육오는 그 덕을 항상되게 하는 것이 바름이니, 부인은 길하고 남편(군주)은 흉하다.

象曰:婦人貞吉,從一而終也。夫子制義,從婦凶也。

상전에 말하였다. 부인이 바르고 길한 것은 한 사람을 따라 생을 마침이요, 남편은 의리를 지어 결단함이니 부인의 도를 따르면 흉한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五應於二,以隂柔而應陽剛,居中而所應又中,隂柔之正也。故恒久其德則為貞也。夫以順從為恒者,婦人之道,在婦人則為貞,故吉。

오효는 이효에 응하니, 음유로서 양강에 응하고 가운데에 거하면서 응하는 바(이효) 또한 가운데이니, 이는 음유의 바름이다. 그러므로 그 덕을 항상하고 오래가게 하면 바름(貞)이 되는 것이다. 무릇 순종으로써 항구함을 삼는 것은 부인의 도이니, 부인에게 있어서는 바름이 되므로 길하다.

若丈夫而以順從於人為恒,則失其剛陽之正,乃凶也。五君位而不以君道言者,如六五之義在丈夫猶凶,况人君之道乎?在它卦,六居君位而應剛,未為失也;在恒故不可耳。君道豈可以柔順爲恒也?

만약 대장부가 남에게 순종하는 것으로써 항구함을 삼는다면 그 강양(剛陽)의 바름을 잃는 것이니 곧 흉하다. 오효는 임금의 자리인데 임금의 도로써 말하지 않은 것은, 육오의 뜻(순종함)이 장부에게도 오히려 흉하거늘 하물며 임금의 도이겠는가. 그래서 남편으로 빗대어 말한 것이다. 다른 괘에서는 음(六)이 임금의 자리에 거하면서 강(剛)에 응하는 것이 잘못이 되지 않으나, 항괘에 있기 때문에 불가한 것이다. 임금의 도가 어찌 유순함으로 항구함을 삼을 수 있겠는가.

주자 『주역본의』

以柔中而應剛中,常久不易,正而固矣。然乃婦人之道,非夫子之宜也。故其象占如此。

유중(柔中)으로써 강중(剛中)에 응하여 항상 오래도록 바뀌지 않으니 바르고 굳세다. 그러나 이는 곧 부인의 도요, 남편에게 마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或問:恒其德貞,婦人吉,夫子凶。德指六,謂常其柔順之德,固貞矣。然此婦人之道,非夫子之義。葢婦人從一而終以順為正,夫子則制義者也,若從婦道則凶。朱子曰:固是如此。然湏㸔得象占分明。六五有「恒其德貞」之象,占者若婦人則吉,夫子則凶。大抵㸔易湏是曉得象占分明。

혹자가 물었다. “그 덕을 항상되게 함이 바르니 부인은 길하고 남편은 흉하다는 것은, 덕이 육(六)을 가리켜 그 유순한 덕을 항상하게 하면 진실로 바르나, 이는 부인의 도요 남편의 의리는 아니라는 뜻입니까? 부인은 한 사람을 따라 생을 마쳐 순종을 바름으로 삼고, 남편은 의리를 짓는 자이니 부인의 도를 따르면 흉하다는 것입니까?” 주희가 답하였다. “진실로 이와 같다. 그러나 모름지기 상(象)과 점(占)을 분명하게 나누어 보아야 한다. 육오에는 「그 덕을 항상되게 함이 바르다」는 상이 있는데, 점치는 자가 만약 부인이라면 길하고 남편(장부)이라면 흉하다는 것이다. 대저 주역을 볼 때는 모름지기 상과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所謂吉凶者,非爻之能吉凶。爻有此象,而占者視其德而有吉凶耳。且如此爻,不是既爲婦人又為夫子,只是有「恒其德貞」之象,而以占者之德爲吉凶耳。

이른바 길흉이라는 것은 효 자체가 능히 길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효에 이러한 상이 있고, 점치는 자가 자신의 덕을 비추어 보아 길흉이 있을 뿐이다. 또 이 효처럼 한 효가 부인이 되기도 하고 남편이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덕을 항상되게 함이 바르다」는 상이 있을 뿐이고 점치는 자의 덕(상황과 역할)으로써 길흉을 삼는 것일 뿐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六五中矣,然剛而中可恒也,柔而中,婦人之常,非夫子之所當常也。

육오는 가운데이긴 하나, 강하면서 가운데여야 가히 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유하면서 가운데인 것은 부인의 떳떳함이지 남편이 마땅히 항상해야 할 바가 아니다.

건안 구씨(建安丘氏)

二以陽居隂,五以隂居陽,皆位不當而得中者也。在二則悔亡,而五有夫子凶之戒者,葢二以剛中為常,而五以柔中為常也。以剛處常,能常者也,其悔可亡;以柔為常,則是婦人之道,非夫子所尚,此六五所以有從婦之凶。

이효(구이)는 양이 음에 거하고 오효(육오)는 음이 양에 거하니 모두 자리가 부당하나 중을 얻은 자들이다. 이효에서는 후회가 없다고 했는데 오효는 남편이면 흉하다는 경계가 있는 것은, 대개 이효는 강중(剛中)으로써 떳떳함을 삼고 오효는 유중(柔中)으로써 떳떳함을 삼기 때문이다. 강함으로써 떳떳함에 처하면 능히 항구할 수 있으니 그 후회가 없어지지만, 유함으로써 떳떳함을 삼으면 곧 부인의 도이니 남편이 숭상할 바가 아니다. 이것이 육오가 부인을 따르면 흉하다는 말을 가진 까닭이다.

겸산 곽씨(兼山郭氏)

柔而在中,位有餘而才不足稱也。婦人吉夫子凶何也?婦人從一而終可也,夫子制義,從婦之義可乎?是以伯夷聖之清,孟子謂之隘;伯姬守禮而不去,孔子取其恭,於此可見也。

유(柔)로서 가운데 있으니 지위는 넉넉하나 재주가 부족하여 걸맞지 않다. 부인은 길하고 남편은 흉함은 어째서인가. 부인이 한 사람을 따라 마침은 옳으나, 남편은 의리를 지어야 하는데 부인의 의리(맹목적 순종)를 따르면 옳겠는가. 이 때문에 백이(伯夷)가 성인 중의 맑은 자이나 맹자가 그를 좁다(隘)고 일렀고, 송나라 백희(伯姬)가 불이 났을 때 예절을 지키느라 보모가 오기 전에는 떠나지 않고 타 죽었는데 공자가 그 공손함만을 취하였을 뿐이니, 여기서 가히 알 수 있다.

이 효가 動하면澤風大過(28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