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는 양효가 음의 자리에 놓였다. 원칙대로라면 자리에 어긋난 것이다. 항(恒)괘는 떳떳함을 오래 지키는 것을 말하는데, 그 자리의 바름(正)을 얻어야 떳떳한 도가 되거늘, 구이는 그 바름을 잃었으니 본래는 후회할 일이 생겨야 한다. 그런데 효사는 뜻밖에도 “후회가 없어진다(회망)“고 말한다. 무엇이 후회를 지웠는가. 하괘의 가운데(中)에 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로 육오와 정응하여, 가운데를 얻은 자가 가운데를 얻은 자에게 응하니, 그 처함도 움직임도 모두 중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리는 어긋났으되 중심은 어긋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주역의 한 이치가 드러난다 — 중(中)이 정(正)보다 무겁다. 정이천은 잘라 말한다. “중하면 곧 정하지만, 정하다고 해서 반드시 중한 것은 아니다.” 원칙에 맞는다고 다 알맞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주자는 이를 밥상으로 풀었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 먹고 마시는 것은 바른 일(正)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먹으면 그 순간 절도에 맞음(중절)을 잃는다. 절도에 딱 맞는 그 자리가 곧 중(中)이다. 정은 뼈대이지만, 그 뼈대 위에서 지은 일이 딱 알맞은 곳에 놓이지 않으면 아직 중은 아니다. 그래서 구이는 자리의 바름을 잃고도, 강중(剛中)의 덕으로 알맞음을 지켜 후회를 지운다.
문제는 결국 오래감(久)이다. 소상전은 후회가 없어진 까닭을 “능히 오래도록 중을 지키기 때문(능구중)“이라 밝힌다. 운봉 호씨는 이 세 글자를 짚어, 다른 효들이 중을 얻지 못해 오래가지 못함을 여기서 거꾸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백운 곽씨는 더 단순하게 말한다. “오래갈 수 있는 도는 다른 것이 없다. 중일 뿐이다.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과유불급)은 모두 오래갈 수 없다.” 항구함이란 규칙을 뻣뻣하게 붙드는 완고함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춰 알맞은 정도를 다시 찾아내고, 그 알맞음을 놓지 않는 유연한 지속이다. 그것이 십 년을 가는 힘이다.
원칙에 사로잡히면 도리어 오래 못 간다. ’매일 두 시간 운동’을 정답으로 세워두고 지친 몸을 억지로 밀어붙이면, 그것은 정(正)일지 몰라도 중(中)은 아니어서 다음 날 탈이 나고 루틴이 끊긴다. 몸의 이치가 그대로 마음의 이치다. 포만감 팔십에서 수저를 내려놓는 절제, 자세가 밀려 흐트러져도 아랫배의 중심 하나는 내주지 않는 버팀 — 완벽함(백)을 좇기보다 약간 부족한 듯 가운데 머무는 자가 몸을 가장 오래 쓴다. 오늘 무언가를 오래 이어가고 싶거든, 규칙을 더 조이지 말고 나에게 맞는 알맞음을 먼저 찾으라. 자리가 어긋나도 중심만 살아 있으면 후회할 일은 없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풀이
경문과 소상전
九二,悔亡。 象曰:九二悔亡,能久中也。
구이는 후회가 없어진다(회망). 소상전에 말하였다. “구이의 후회가 없어짐은 능히 오래도록 중을 지키기(능구중) 때문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在恒之義,居得其正則常道也。九,陽爻居隂位,非常理也。處非其常,本當有悔。
전(傳)에 말하였다. “항(恒)의 뜻에 있어서, 거함에 그 바름(正)을 얻으면 떳떳한 도이다. 9는 양효로서 음자리에 거했으니 떳떳한 이치가 아니다. 그 떳떳함이 아닌 곳에 처했으니, 본래 마땅히 후회가 있어야 한다.
而九二以中德而應於五,五復居中,以中而應中,其處與動皆得中也,是能恒久於中也。能恒久於中則不失正矣。中重於正,中則正矣,正不必中也。
그러나 구이는 중(中)의 덕으로써 5효에 응하고, 5효 또한 가운데에 거하니, 중으로써 중에 응함이라 그 처함과 움직임이 모두 중을 얻었다. 이는 능히 중에 항상하고 오래하는 것이다. 능히 중에 항구하면 바름(正)을 잃지 않는다. 중(中)이 정(正)보다 무거우니, 중하면 곧 정하지만, 정하다고 해서 반드시 중한 것은 아니다.
九二以剛中之德而應於中,德之勝也,足以亡其悔矣。人能識重輕之勢,則可以言易矣。
구이가 강중(剛中)의 덕으로써 중에 응함은 덕이 뛰어난 것이라, 족히 그 후회를 없앨 만하다. 사람이 능히 무겁고 가벼운 형세(중경지세)를 안다면 가히 주역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상전 해설에 이어 정이천은 말한다.
傳:所以得悔亡者,由其能恒久於中也。人能恒久於中,豈止亡其悔,德之善也。
“후회가 없어짐을 얻은 까닭은, 그가 능히 가운데에 항구하고 오래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능히 중에 항구한다면, 어찌 그 후회를 없애는 데 그칠 뿐이겠는가? 덕의 선함이다.”
주자 『주역본의』
本義:以陽居隂,本當有悔,以其久中故得亡也。(一无久字)
본의에 말하였다. “양으로서 음자리에 거하니 본래 마땅히 후회가 있어야 하나, 그 오래도록 중을 지킴(구중)으로써 후회가 없어짐을 얻은 것이다. (어떤 본에는 ’구’자가 없다.)”
或問:伊川云「中无不正,正未必中」如何?朱子曰:如君子而時中,則是中无不正。若君子有時乎不中,即正未必中。葢正是骨子好了,而所作事未有恰好處,故未必中也。
혹자가 물었다. “이천이 ’중이면 정하지 않음이 없으나, 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중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어떠합니까?” 주자가 답하였다. “(중용에서 말한) ’군자가 때에 맞게 중을 한다(군자이시중)’면 이는 중이면 정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만약 군자라도 때에 맞게 중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곧 정이라도 반드시 중한 것은 아니다. 대개 정(正)은 뼈대가 좋은 것이지만, 지은 바 일이 딱 알맞은 곳(恰好處)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중(中)한 것은 아니게 된다.”
又曰:中重於正,正不必中。一件物事,自以爲正,却有不中在。且如飢渴飲食是正,若過些了,便非中節,中節處乃中也。責善,正也;父子之間不責善。
또 말하였다. “중이 정보다 무거우니, 정이 반드시 중은 아니다. 한 가지 일이 스스로 정(正)이라고 여기지만, 도리어 중(中)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배고프고 목마를 때 마시고 먹는 것은 바른 것(正)이나, 만약 조금 지나치게 먹으면 곧 절도에 맞음(중절)이 아니니, 절도에 맞는 곳이 곧 중(中)이다. 선(善)을 책망함은 바른 것이나, 부자 사이에는 선을 책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제가 — 중계 장씨(中溪張氏) · 장횡거(張橫渠)
中溪張氏曰:二以陽而居隂,非恒也。處非其恒,宜有悔也。然二五相應,唯能恒久於中道,守而不變,其悔乃亡。
중계 장씨가 말하였다. “2효가 양으로서 음자리에 거하니 항(恒)이 아니다. 그 항상된 곳에 처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후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2효와 5효가 서로 응하여, 오직 능히 중도(中道)에 항상하고 오래하여 지키고 변하지 않으므로, 그 후회가 마침내 없어지는 것이다.”
張子曰:以陽係隂,用以為常,不能无悔。以其久中,故免。
장횡거가 말하였다. “양(2효)으로서 음(5효)에 매이고, 그것을 써서 떳떳함으로 삼으니 능히 후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오래도록 중을 지킴(구중)으로써 면한 것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雲峰胡氏曰:咸恒六爻非不相應,得者不過悔亡而已。咸九四曰貞吉悔亡,九居四非貞也,故必貞然後悔亡。恒九二亦非貞也,但曰悔亡而不勉以貞,何也?咸九四不正又不中,恒九二不正而得中,是爲久於中者也。所謂中重於正者此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함(咸)과 항(恒) 두 괘의 여섯 효가 서로 응하지 않음이 없지만, 얻은 바가 후회가 없어짐(회망)에 불과할 뿐이다. 함괘 구사에는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정길회망)’고 했는데, 구(양)가 4위(음)에 거함은 바른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바르게 한 연후에야 후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항괘 구이 또한 바르지 않은데, 단지 후회가 없어진다고만 하고 억지로 바르게 하기를(貞) 힘쓰라 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함괘 구사는 바르지도 않고 중(中)하지도 못하지만, 항괘 구이는 바르지는 않으나 중을 얻었기 때문이니, 이것이 가운데에 오래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중이 정보다 무겁다’는 것이 이것이다.”
九二提出能久中三字,諸爻不中故不久皆可見也。
“구이에서 ‘능구중(能久中)’ 세 글자를 제시함으로써, 여러 효들이 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함을 모두 가히 알 수 있다.”
제가 — 백운 곽씨(白雲郭氏) · 임천 오씨(臨川吳氏)
白雲郭氏曰:可久之道无他,中焉而已矣。過猶不及,皆非可久也。
백운 곽씨가 말하였다. “가히 오래갈 수 있는 도는 다른 것이 없고, 중(中)일 뿐이다.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과유불급)은 모두 가히 오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臨川呉氏曰:有悔而悔亡者,以能常久於中而不過於剛也。
임천 오씨가 말하였다. “후회가 있으나 그 후회가 없어지는 것은, 능히 가운데에 항상하고 오래하여 강함에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 사수 정씨(沙隨程氏)
沙隨程氏曰:大壯九二,觧初六及本爻皆不著其所以然,葢以爻明之也。
사수 정씨가 말하였다. “(이 효는) 뇌천대장 구이와 초육, 그리고 본 효를 해석함에 모두 그 그렇게 된 까닭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대개 효의 위치로써 그것을 밝힌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