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구이는 강한 양이면서도 음의 자리에 있고, 아래 손괘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대과(大過)는 양이 지나치게 성한 때다. 그 지나침 속에서 구이는 홀로 굳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운데를 얻어 부드러움을 겸한다. 강함이 지나친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어 부드러움으로 자신을 구제하는 형상이다.
효사는 이를 두 겹의 그림으로 말한다. 마른 버드나무(枯楊)에 새싹(稊)이 돋고, 늙은 지아비가 젊은 아내를 얻는다. 버드나무는 물을 가장 좋아하는 나무인데, 양기가 지나쳐 말라버렸다. 그런 등걸이 바로 아래 촉촉한 초육(음)을 만나 뿌리에서 다시 싹을 낸다. 지나침이 극단에 이르기 전에 부드러운 기운과 만나 생기를 되찾는 것이다. 정이천은 “지나치게 강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바가 없으나(구삼), 가운데를 얻고 부드러움을 쓰면 능히 대과의 공을 이룬다(구이)“고 하여 이 갈림을 짚었다.
늙은 지아비가 젊은 아내를 얻는 사귐은 나이 차가 커서 상식의 분수를 넘어선다. 그러나 대과는 상식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 비상한 때다. 소상전은 이를 “지나치게 서로 더불어 한다(過以相與也)“고 풀었다. 정상의 도를 지나친 사귐이지만, 그 지나침이 도리어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된다. 그래서 효사는 대뜸 길하다고 하지 않고 다만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고만 말한다. 이롭게 되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 아래와 손잡았기 때문이지, 강함 그 자체 덕분이 아니다.
삶에의 적용
전성기가 지났다고 느낄 때, 사람은 흔히 지난날의 방식을 더 세게 움켜쥔다. 그러나 이 효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마른 등걸이 되살아나는 길은 더 굳어지는 데 있지 않고, 낮은 곳의 새 기운과 손잡는 부드러움에 있다. 경험 많은 이가 젊은 사람의 속도를 무시하지 않고 그 템포에 자기 호흡을 맞출 때, 오히려 되살아난다. 몸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은 관절에 억지로 힘을 주면 상하지만, 부드러운 숨을 그 사이로 흘려보내면 풀린다. 나의 강함을 내려놓고 상대의 유연함에 밀착하는 것—그것이 마른 나에게 새싹을 틔우는 회춘의 수련이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구이는 고양(枯楊)이 생제(生稊)하며—늙은 고목 버들나무가 뿌리에서 새싹이 새로 나오며. 初爻는 陰爻기 때문에 습하고 물이고 땅이며, 2번은 陽爻기 때문에 나무다. 이 세상 나무 중에 물을 가장 많이 먹고 좋아하는 나무가 버들나무다. 늙은 버들나무(九二)가 뿌리(初六)를 얻어 새싹을 낸다."
"노부(老夫)—늙은 남자는 2번이고, 득기여처(得其女妻)—젊은 여인은 1번이다. 늙은 남자가 젊은 여인을 얻어 새로 결혼하니, 무불리(无不利)—이롭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비상시국에는 陽爻끼리도 상응을 하고, 좋은 때에는 상응을 안 해. 지금은 5번·2번이 천생연분 자리인데 (둘 다 양이라) 못하고 있으니, 1번 2번이 더부는 것을 가히 알 수 있다. (…) 여기(九二)는 생산이 되지, 자식이."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의 풀이
경문
九二,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
구이는 마른 버드나무에 싹이 트고, 늙은 남자가 그 어린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소상전(象傳)
象曰: 老夫女妻, 過以相與也.
상에 말하기를, 늙은 남자와 어린 아내는 지나치지만(나이 차가 크지만) 서로 더불어 하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陽之大過, 比隂則合. 故二與五皆有生象. 九二當大過之初, 得中而居柔, 與初密比而相與. 初既切比於二, 二復无應於上, 其相與可知. 是剛過之人, 而能以中自處, 用柔相濟者也.
양이 크게 지나친 때에는 음과 친하면 화합한다. 그러므로 2효와 5효가 모두 생겨나는 상이 있다. 구이는 대과의 초기에 해당하여 중(中)을 얻고 유(柔)의 자리에 거하며, 초육과 밀접하게 친하여 서로 더분다. 초육이 이미 구이와 간절히 친하고, 구이 또한 위에 응하는 바가 없으니, 그 서로 더붊을 알 수 있다. 이는 강함이 지나친 사람이되 능히 중도로써 자처하고, 부드러움을 써서 서로 구제하는 자이다.
過剛則不能有所爲, 九三是也. 得中用柔則能成大過之功, 九二是也. 楊者, 陽氣易感之物, 陽過則枯矣. 楊枯槁而復生稊, 陽過而未至於極也.
지나치게 강하기만 하면 할 수 있는 바가 없으니 구삼이 그렇다. 중을 얻고 부드러움을 쓰면 능히 대과의 공을 이룰 수 있으니 구이가 그렇다. 버드나무는 양기에 쉽게 감응하는 물건인데, 양이 지나치면 마른다. 버드나무가 말랐다가 다시 싹을 틔우니, 양이 지나치지만 아직 극한에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九二陽過而與初, 老夫得女妻之象. 老夫而得女妻, 則能成生育之功. 二得中居柔而與初, 故能復生稊而无過極之失, 无所不利也. 在大過, 陽爻居隂則善, 二與四是也. 二不言吉, 方言无所不利, 未遽至吉也.
구이는 양이 지나친데 초육과 더불어 하니, 늙은 남자가 어린 아내를 얻은 상이다. 늙은 지아비가 어린 아내를 얻으면 능히 생육의 공을 이룰 수 있다. 2효가 중을 얻고 유에 거하며 초효와 함께하므로, 능히 다시 싹을 틔워 지나치게 극단으로 가는 실수가 없으니 이롭지 않은 바가 없다. 대과괘에서는 양효가 음의 자리에 거하면 좋으니 2효와 4효가 그렇다. 2효에서 길(吉)을 말하지 않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만 한 것은, 아직 대번에 길한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稊, 根也. 劉琨勸進表云「生繁華於枯荑」, 謂枯根也. 鄭易亦作荑字, 與稊同.
제(稊)는 뿌리이다. 유곤의 권진표에 “마른 뿌리에서 번화가 생겨난다” 하였으니, 마른 뿌리를 이른다. 정현의 주역에서도 제(荑)자로 썼는데 제(稊)와 같다.
주자『주역본의』
陽過之始, 而比初隂, 故其象占如此. 稊, 根也, 榮於下者也. 榮於下則生於上矣. 夫雖老而得女妻, 猶能成生育之功也.
양의 지나침이 시작되는 때이나 아래의 초육(음)과 친하므로,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제는 뿌리이니 아래에서 번성하는 것이다. 아래에서 번성하면 위에서 생겨난다. 지아비가 비록 늙었으나 어린 아내를 얻으면 오히려 능히 생육의 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巽爲木, 兌爲澤, 楊近澤之木, 故以取象. 枯楊, 大過象. 稊, 初在下象. 老夫, 九象. 女妻, 初柔在下象. 九二陽雖過, 而下比於隂, 如枯楊雖過於老, 稊榮於下, 則復生於上矣. 老夫而得女妻, 雖過以相與, 終能成生育之功. 无他, 以陽從隂, 過而不過, 生道也.
손은 나무가 되고 태는 연못이 되니, 버드나무는 연못 근처의 나무이므로 상을 취한 것이다. 마른 버드나무는 대과의 상이요, 싹은 초육이 아래에 있는 상이다. 늙은 지아비는 구이의 상이요, 어린 아내는 초육이 유로서 아래에 있는 상이다. 구이가 양이 비록 지나치나 아래로 음과 친하니, 마치 마른 버드나무가 비록 너무 늙었으나 싹이 아래에서 무성하면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다. 늙은 지아비가 어린 아내를 얻음은 비록 지나치나마 서로 더불어 하니 마침내 생육의 공을 이룬다. 다른 것이 없다. 양으로서 음을 따르니, 지나치면서도 지나치지 않게 되는 것이 생명력의 도(生道)이다.
속수 사마씨(사마광)
大過剛已過矣, 止可濟之以柔, 不可濟之以剛也. 故大過之陽, 皆以居隂爲吉, 不以得位爲美.
대과는 강함이 이미 지나친 것이다. 다만 유로써 구제할 수 있을 뿐, 강으로 구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대과의 양효들은 모두 음의 자리에 거하는 것을 길함으로 삼고, 제자리를 얻음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구산 양씨(龜山楊氏)
聞之蜀僧云, 四爻之剛, 雖同爲木, 然或爲楊, 或爲棟. 棟負衆榱, 則木之强者也. 楊爲早凋, 則木之弱者也. 此卦本末皆弱, 二近於本, 五近於末, 故均爲木之弱也. 老夫之說少女, 少女之順老夫, 其相與過於常分.
촉나라 스님에게 들으니, 네 개의 강효가 비록 똑같이 나무가 되나 혹은 버드나무가 되고 혹은 대들보가 된다. 대들보는 뭇 서까래를 짊어지니 나무 중에 강한 것이고, 버드나무는 일찍 시드니 나무 중에 약한 것이다. 이 괘는 근본과 끝이 모두 약한데, 2효는 근본에 가깝고 5효는 끝에 가까우므로 모두 약한 나무가 된다. 늙은 지아비가 어린 여자를 기뻐하고 어린 여자가 늙은 지아비를 따르는 것은, 그 서로 더붊이 상식의 분수를 넘어서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