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과(大過)는 기둥이 휘어질 만큼 무거운 짐이 실린 비상(非常)의 때다. 양(陽)이 지나치게 많아 음(陰)이 감당하기 버거운,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과 같은 위기의 국면이다. 그 첫 자리인 초육은 가장 아래에 놓인 음유(陰柔)로, 부드럽고 낮은 흰 띠풀(白茅)과 같다. 제사 음식은 그냥 땅에 두어도 괜찮다. 그런데 굳이 천한 띠풀을 깔고 그 위에 올린다. 이 지나친 정성, 지나친 조심이 도리어 허물을 없앤다.
대과의 때는 그 ’지나침’을 어디에 쓰느냐로 갈린다. 강함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기둥이 부러지지만, 공경과 삼감을 지나치게 하면(過於敬慎) 도리어 편안함을 보전한다. 정이천은 “두려워하고 삼가함이 지나친 자”라 하고, 공자는 계사전에서 이를 “삼감이 지극함(愼之至也)“이라 극찬했다. 띠풀은 지극히 하찮은 물건이나 그 쓰임은 중대하다. 하찮은 것 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 그것이 비상한 때를 도리어 좋은 때로 돌려세우는 대과의 쓰임(大過之用)이다.
초육이 삼감의 자리에 마땅한 것은 그 위치 때문이다. 음유하여 가장 아래에 처하니(柔在下也), 나설 힘도 지위도 없다. 낮고 미천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처세는 오직 삼가는 것뿐이다. 자리가 처세를 정한다. 낮은 자리를 억울해하지 않고, 그 자리에 맞는 지극한 조심으로 자신을 지키면(守己) 위태한 때에도 허물이 없다.
삶으로 가져오면 이렇다. 중대한 결정이나 마감을 앞두고 마음이 급할 때, 우리는 1분을 30초처럼 느낀다. 이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과도한 차분함’이다. 흰 띠풀을 한 올 한 올 깔듯 호흡을 얇고 길게 하며, 기초를 다시 점검하라. 몸을 가장 부드러운 상태로 낮추어 충격을 흘려보내는 것, 긴장을 푸는 것이 곧 생존이다. “너무 소심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 편이 오히려 안전하다. 허물이 없으려면 삼감이 조금 지나쳐야 한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藉用白茅·繫辭傳) "공자가 繫辭傳에서, 苟錯諸地而可矣—그냥 일반 땅에 둘지라도 가능하거늘, 藉之用茅—거기에다 천한 물건(白茅)을 깔아줘서 띠풀로 자리를 쓰니, 何咎之有—무슨 허물이 있을 수 있으리요. 그래서 묵으라(无咎) 했다."
(過於敬慎·能成敬慎之道) "茅之爲物薄—띠풀은 비록 지극히 천박한 물질이나, 用可重也—그 쓰는 용도는 가히 심중(중요)하니. 써 요걸 깔아주고 제사상을 올린즉, 중요하게 삼가는 방법(敬慎之道)이 되는 거다. 인간이 공경과 삼감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하는 것이지(過於敬慎), 이렇게 경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慎斯術也以往 其無所失) "慎斯術也以往—이런 방법을 삼가 생각해서 추리해 행동으로 옮기면, 其無所失矣—이 세상 모든 일에 절대 실수하는 일이 없을 거다. 인간이 실패하는 건 삼가고 공경하는 그 태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삼가는 그 자세만 투철해봐라, 절대 실수하는 일이 없을 거다."
(大過之用) "비상시국을 잘 이용해봐라. 억수로 고귀한(좋은) 때가 되는 거다. 大過之用이라—이것을 大過의 쓰임(좋은 大過)이라 한다. 잘못되는 일을 잘되는 쪽으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이 大過괘의 初六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이천역전』·주자『주역본의』·제가
초육(初六) 경문
初六,藉用白茅,无咎。
초육은 흰 띠풀(白茅)을 깔고 물건을 놓으니, 허물이 없다.
소상전(象傳)
象曰:藉用白茅,柔在下也。
상(象)에 말하기를, 흰 띠풀을 깔고 씀은 유(柔)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初以隂柔巽體,而處下過於畏慎者也。以柔在下,用茅藉物之象。不錯諸地而藉以茅,過於慎也,是以无咎。茅之爲物雖薄,而用可重者,以用之能成敬慎之道也。慎守斯術而行,豈有失乎?大過之用也。
초육은 음유(陰柔)로서 손(巽)체의 아래에 처하여, 두려워하고 삼가함이 지나친 자이다. 유(柔)로서 아래에 있으니, 띠풀로 물건을 받치는 상(象)이다. 땅에 두어도 어긋나지 않는데 굳이 띠풀을 까니, 신중함이 지나친 것이므로 허물이 없다. 띠풀이라는 물건은 비록 하찮으나 그 쓰임은 중대하니,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경신(敬慎)의 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신중히 지켜 행한다면 어찌 실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대과(大過)의 쓰임이다.
繫辭云:苟錯諸地而可矣,藉之用茅,何咎之有?慎之至也。夫茅之爲物薄,而用可重也。慎斯術也,以徃其无所失矣。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진실로 땅에 놓아도 괜찮은데 띠풀을 깔고 쓰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신중함이 지극한 것이다. 무릇 띠풀이라는 물건은 하찮으나 그 쓰임은 중대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신중히 하여 나아가면 잃는 바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공경하고 삼가함이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공경하고 삼가함이 지나친 것은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면서도, 그 편안함을 보전하여 허물이 없게 할 수 있다.
정이천은 소상전을 이렇게 풀었다.
傳:以隂柔處卑下之道,唯當過於敬慎而已。以柔在下,爲以茅藉物之象,敬慎之道也。
음유(陰柔)로서 비하(卑下)한 곳에 처하는 도(道)는 오직 마땅히 공경하고 삼가함이 지나쳐야 할 뿐이다. 유(柔)로서 아래에 있으니 띠풀로 물건을 받치는 상이 되며, 이는 공경하고 삼가하는 도이다.
주자『주역본의』
當大過之時,以陰柔居巽下,過於畏慎而无咎者也。故其象占如此。白茅,物之潔者。
대과(大過)의 때를 당하여 음유(陰柔)로서 손(巽)의 아래에 거하니, 두려워하고 삼가함이 지나쳐서 허물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백모(白茅)는 물건 중 깨끗한 것이다.
제가(諸家) 주석
주자(朱子)는 말하였다.
朱子曰:藉用白茅,亦有過慎之意,此是大過之初,所以其過尚小。
백모를 깐다는 것 또한 과도하게 신중하다는 뜻이 있으니, 이는 대과의 초입이라 그 지나침이 아직 작은 것이다.
절재 채씨(節齋蔡氏)는 말하였다.
節齋蔡氏曰:錯諸地而又藉以茅,過於厚也。藉以初言,柔以六言。
땅에 놓아도 되는데 또 띠풀을 까니, 두터움(후함)이 지나친 것이다. ’깔다(藉)’는 초(初)효를 말함이요, ’부드러움(柔)’은 육(六)효를 말함이다.
중계 장씨(中溪張氏)는 말하였다.
中溪張氏曰:茅柔物也,巽爲白。
띠풀은 부드러운 물건이고, 손(巽)괘는 흰색(白)이 된다.
운봉 호씨(雲峯胡氏)는 말하였다.
雲峯胡氏曰:成卦以棟橈爲象,三四爻亦取棟象。使六爻不出乎棟橈之一說,則付天下之事於不可爲然後已。故又因爻象而别發其義。初六以柔承上剛,剛易缺折,而柔以藉之,則可无傷。如物措諸地可矣,而必有以藉之。藉之用茅可矣,而必用白茅,此戒慎恐懼之過者也。故其占无咎。
괘가 이루어짐에 동요(棟橈, 기둥이 휨)를 상으로 삼았고, 3효와 4효 또한 기둥(棟)의 상을 취했다. 만약 6효가 모두 ’기둥이 휜다’는 하나의 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천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또 효상(爻象)에 인하여 별도로 그 뜻을 밝힌 것이다. 초육은 유(柔)로서 위의 강(剛)을 받들고 있다.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쉬우나 부드러운 것으로 깔아주면 상함이 없다. 물건을 땅에 놓아도 되는데 반드시 깔개를 쓰고, 깔개로 띠풀을 써도 되는데 반드시 ’흰 띠풀(白茅)’을 쓰니, 이는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함이 지나친 자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융산 진씨(隆山陳氏)는 말하였다.
隆山陳氏曰:柔在下,上承四剛,故有白茅藉物之象也。
유(柔)가 아래에 있고 위로 네 개의 강(剛)을 받들고 있으므로, 백모가 물건을 받치는 상이 있는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