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豫)의 한복판, 임금의 자리에 앉은 육오는 음유(陰柔)한 사람이다. 존귀한 자리를 얻었으되, 바로 아래 강력한 신하 구사(九四) 위에 얹혀 있다(乘剛). 힘이 그를 타고 오르는 형국이라, 무리는 모두 구사에게로 돌아가고 임금에게는 이름과 자리만 남는다. 그래서 효사는 “정질(貞疾)“이라 한다. ’정(貞)’을 흔히 ’바르다’로 읽지만, 여기서는 자리는 틀림없이 임금의 자리이되 스스로 감당할 힘이 없어 든 병, 곧 낫지 않는 고질(痼疾)을 가리킨다. 병이 뼈에 사무쳐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항불사(恒不死)”, 죽지는 않는다. 왜인가. 육오가 상괘의 가운데를 얻어(得中), 중(中)이 아직 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中未亡也). 권력은 잃었어도 자리의 명분은 남아 있다. 정이천은 이를 한(漢)·위(魏) 말세의 임금에 견주었다. 조조나 사마의가 실권을 다 쥐어도 황제라는 이름만은 감히 없애지 못했다. 명분상 신하이기에 임금을 죽이지는 못하는 것이다. 마치 춘추시대에 힘 잃은 주나라 천자를 제후들이 형식으로나마 받들었던 것처럼.
이 효의 무거움은 운봉 호씨의 한 마디에 응축된다.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生於憂患 死於逸樂).” 같은 음유의 임금이라도 육이는 돌처럼 단단해(介于石) 즐거움에서 하루 만에 몸을 뺐고, 육오는 즐거움에 빠져 겨우 숨만 붙어 있다. 리더가 중심을 잃고 쾌락에 기대면, 조직은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껍데기만 남는다.
삶으로 옮기면 이렇다. 자리가 나를 지켜 주리라 믿는 순간 병은 이미 시작된다. 권위(位)에만 기대는 사람은 힘을 잃고 아랫사람에게 휘둘린다. 몸의 언어로 말하면, 상대의 강한 힘에 눌려 내 중심을 쓰지 못하고 갇힌 상태(滯·虛)다.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으니 척추의 중정(中正)을 가까스로 붙들고 버틴다. 그러나 버티는 것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여기서 힘을 기르지 못하면 결국 무너진다. 자리를 지키려 애쓰기 전에, 그 자리를 채울 힘을 기르는 일이 먼저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육오는 정호되 — 틀림없는 임금 맞다, 정직하되, 지라나 병이 있으나. 예락한 시대에 지 능력으로 임금한 게 아니다, 사효의 힘으로 임금을 했다. (…) 그래서 정호되 맞기는 맞은데, 지라나 항상 병적이다 — 사효를 감당을 못하니까 병이 있으나."
"임금은 죽어도 임금, 살아도 임금이요 — 그 자리에서 죽으면 그 자리는 임금 자리에요. (…) 세상이 천 번 만 번 뒤집어져도 통치자 자리는 항상 남아 있는 거다. (…) 부모가 죽고 세상에 없어도 부모 몸뚱이만 죽었지 부모 자리는 항상 있지."
"병들병 자는 몸 속에서 들리는 걸 병이라 하고, 바깥쪽에서 쳐들어온 병을 질환이라 한다. (…) 마음에서 일어나는 건 한의학에서 희로우사 비경공 — 사단칠정이라 한다. 여기서부터 생기는 건 병들병 자고, 그래서 화병이 났다 — 모든 병은 화병이야, 속에서 나는 거."
"국가가 망하는 것은 즐거울 예자·미리 예자·기쁠 예자 뜻이 제일 많아 — 어느 국가든지 망할 때 임금이 대개 타락이 됐기 때문에 망해. 임금이 먼저 망하고 국가가 망하는 거다. (…) 허점이 있으면 바람이 들어와서 망하게 돼 있다 — 배도 구멍이 나니까 물이 들어오지."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주석
효사(爻辭)
六五 貞疾 恒不死
육오는 병이 든 채로 한결같으나(貞疾), 영원히 죽지는 않는다(恒不死). (’정貞’은 ’바르다’가 아니라 ’고질화되다·지속되다’로 새기는 것이 정설이다.)
소상전(象傳)
象曰:六五貞疾,乘剛也。恒不死,中未亡也。
상전에 말하였다. “육오의 정질은 강함을 탔기(乘剛) 때문이요, 영원히 죽지 않음은 중(지위)이 아직 망하지 않았기(中未亡)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六五以陰柔居君位,當豫之時,沉溺於豫,不能自立者也。權之所生、衆之所歸,皆在於四。
육오는 음유로서 군주의 자리에 거하여, 예(豫)의 때를 당해 즐거움에 빠져 능히 스스로 서지 못하는 자이다. 권력이 나오는 바와 대중이 귀의하는 바가 모두 사효(구사)에게 있다.
居得君位,貞也。受制於下,有疾苦也。六居尊位,權雖失而位未亡也。故云貞疾恒不死。言貞而有疾,常疾而不死。如漢魏末世之君也。
군주의 지위를 얻었으니 정(貞)이요, 아랫사람에게 제어를 당하니 질고(疾苦)가 있는 것이다. 음이 존위에 거하여 권력은 비록 잃었으나 지위는 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질 항불사’라 한 것이다. 자리를 지키나 병이 있어 항상 앓으면서도 죽지 않음을 말하니, 마치 한(漢)·위(魏) 말세의 임금과 같다.
若五不失君道,而四主於豫,乃是任得其人,安享其功,如太甲成王也。蒙亦以陰居尊位,二以陽為蒙之主。然彼吉而此疾者,時不同也。
만약 오효가 군도(君道)를 잃지 않았는데 사효가 예를 주관한다면, 그 사람에게 맡김을 얻어 편안히 그 공을 누리는 것이니 태갑(太甲)이나 성왕(成王)과 같을 것이다. 몽(蒙)괘 또한 음이 존위에 있고 이효가 양으로 몽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저것은 길하고 이것은 병이 되는 것은 때(時)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자『주역본의』
當豫之時,以柔居尊,沈溺於豫。又乘九四之剛,衆不附而處勢危,故為貞疾之象。然以其得中,故又為恒不死之象。即象而觀,占在其中矣。
예의 때를 당하여 유(柔)로서 존위에 거하며 예에 침닉한다. 또 구사의 강(剛)을 탔으니 대중이 따르지 않아 처한 형세가 위태롭다. 그러므로 ’정질’의 상이 된다. 그러나 그 중(中)을 얻었기 때문에 또한 ’항상하여 죽지 않는다’는 상이 된다. 상에 나아가 관찰하면 점이 그 가운데 있다.
제가(諸家)의 주석
후재 풍씨(厚齋馮氏)
貞疾,猶曰痼疾也。痼猶固也,疾自外入者也。(…) 君臣之名位未亡,此恒不死之證也。春秋時,齊以諸田疾,魯以三家疾,政在大夫。孔子周流列國,欲起其疾,而无能用者。
정질은 ’고질병(痼疾)’이라 말함과 같다. 고(痼)는 고(固, 굳다)와 같으니, 병이 밖에서 들어온 것이다. (…) 군신의 명분과 지위가 아직 망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항불사’의 증거다. 춘추시대에 제나라는 전씨(田氏)들 때문에, 노나라는 삼가(三家) 때문에 병들어 정치가 대부들에게 있었다. 공자께서 열국을 주유하며 그 병을 일으켜 세우려 하셨으나 써주는 자가 없었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六二貞吉,以中且正也;六五貞疾,以雖中不正也。當豫之時而不為豫者,六二是也;當豫之時而不得豫者,六五是也。
육이의 정길은 중하고 또 바르기 때문이요, 육오의 정질은 비록 중하나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움의 때에 스스로 즐거워하지 않는 자는 육이요, 즐거움의 때에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자는 육오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豫最易以溺人。六二柔中且正,能不終日而去之;六五陰柔不正,未免溺於豫而有疾矣。猶得不死者,中未亡也。人莫不生於憂患、死於逸樂。
예(豫)는 사람을 빠뜨리기가 가장 쉽다. 육이는 유중하고 바르므로 하루를 넘기지 않고 떠났으나, 육오는 음유하고 부정하므로 예에 빠져 병듦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죽지 않음은 중(中)이 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지 않음이 없다.
임천 오씨(臨川呉氏)
乘剛而有衰弱之疾,則无以御其下矣。處上卦之中,則位與號猶未亡也。周衰之時,權歸霸國,周雖微弱亦以乆存,此爻近之。
강함을 타고 있어 쇠약한 병이 있으니 그 아랫사람을 제어할 수 없다. 상괘의 가운데 처하였으므로 지위와 호칭은 오히려 망하지 않았다. 주나라가 쇠할 때 권력이 패국(霸國)으로 돌아갔으나 주나라가 미약해도 오래 존속했으니, 이 효가 그에 가깝다.
중계 장씨(中溪張氏)
正而不死、中而未亡者,君臣之分,不可冺滅故也。
바르면서 죽지 않고 중하여 망하지 않은 것은, 군신의 분수(君臣之分)는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