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삼은 겸괘 여섯 효 가운데 유일한 양효다. 다섯 음이 하나의 양을 우러러보는 형국에서, 이 효는 실력과 공로를 갖춘 사람이다. 위로는 임금이 큰 임무를 맡기고 아래로는 뭇 사람이 따르니, 자리는 낮아도 무게는 온 괘에서 가장 크다. 그런 사람이 공을 세우고도 스스로를 낮춘다 — 이것이 노겸(勞謙), 곧 수고로우면서도 겸손함이다.
경문은 여기에 “군자라야 좋게 마친다(君子有終)“는 단서를 단다. 겸손 자체는 오히려 쉬운 편이다. 정이천은 높음을 즐거워하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상정(常情)이라 하였다. 평소에도 겸손하기가 드문데, 하물며 존경받을 만한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자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힘써 겸손한 척하더라도 자부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오직 겸손을 편안히 여겨 떳떳한 행실로 삼는 사람만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그래서 군자라야 유종(有終)이다.
공자는 계사전에서 이 효를 특별히 풀었다. “수고로워도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후덕함의 지극함이다.” 자랑하지 않음(不伐)은 공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요, 덕으로 여기지 않음(不德)은 마음속으로도 내가 훌륭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갖춰질 때 만백성이 저절로 복종한다(萬民服). 시켜서가 아니라 감동해서 스스로 따르는 복종이다. 겸손은 이렇게 그 자리를 지키는 힘이 되니, 높아도 위태롭지 않고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다.
공이 클수록 자세를 더 낮추라는 이 가르침은 몸으로 쌓은 사람에게 특히 무겁다. 오랜 수련으로 힘을 갖춘 이가 살기를 띠거나 근육을 과시하지 않는 것, 실력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평범한 얼굴로 걷는 것 — 그것이 노겸의 몸가짐이다. 자랑을 앞세우는 순간 쌓은 것이 흩어지고, 침묵으로 낮출 때 그 자리가 오래 보존된다. 정점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긴장해서 한 뼘 더 몸을 낮출 때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九三은 謙의 유일한 양효라 위로 임금이 맡기고 아래로 다 따른다 — 공로가 크면서도 겸손하니 勞謙이다. 繫辭에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두터움이 지극하다(勞而不伐 有功而不德 厚之至也)' 했다."
"가장 좋을 때가 도리어 가장 나쁠 때다 — 거기 나쁜 게 속에 숨어 있어. 그래서 옛사람은 가장 좋을 때 '큰일 났다' 하고 억수로 긴장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 정이천·주자·제가
효사(爻辭)
九三 勞謙 君子有終 吉
구삼은 노겸이니 군자라야 유종이니 길하니라. 구삼은 공로가 있어도 겸손하니, 군자라야 좋게 마침이 있어 길하다.
소상전(象傳)
象曰:勞謙君子,萬民服也。
상전에 말하였다. “공로가 있어도 겸손한 군자는, 만백성이 복종한다.”
계사전 인용:
繫辭云:勞而不伐,有功而不德,厚之至也。語以其功下人者也。德言盛,禮言恭。謙也者,致恭以存其位者也。
계사전에 이르기를 “수고로워도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후덕함의 지극함이다. 그 공으로써 남에게 낮춤을 말한 것이다. 덕은 성대함을 말하고 예는 공손함을 말하니, 겸손이라는 것은 공손함을 지극히 하여 그 지위를 보존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정이천『이천역전』
三以陽剛之德,而居下體,為衆陰所宗。履得其位,為下之上。是上為君所任,下為衆所從,有功勞而持謙德者也,故曰勞謙。
3효는 양강의 덕으로써 하체에 거하여 뭇 음들이 으뜸으로 삼는 바가 되었다. 밟음이 그 지위를 얻어 아랫사람들의 윗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위로는 임금에게 맡겨지고 아래로는 대중에게 따름을 받으니, 공로가 있으면서 겸덕을 지키는 자이다. 그러므로 ’노겸’이라 하였다.
古之人有當之者,周公是也。身當天下之大任,上奉㓜弱之主,謙恭自牧,夔夔如畏。然可謂有勞而能謙矣。
옛사람 중에 이에 해당하는 자가 있으니 주공이 바로 그다. 몸으로 천하의 큰 임무를 감당하고 위로는 어린 임금을 받들며, 겸손하고 공손하게 스스로를 기르고 두려워하는 듯 조심하였으니, 가히 공로가 있으면서 능히 겸손하다 이를 만하다.
既能勞謙,又須君子行之有終,則吉。夫樂髙喜勝,人之常情。平時能謙,固已鮮矣,况有功勞可尊乎?雖使知謙之善,勉而為之,若矜負之心不忘,則不能常久,欲其有終不可得也。唯君子安履謙順,乃其常行。故久而不變,乃所謂有終。有終則吉也。九三以剛居正,能終者也。此爻之德最盛,故象辭特重。
이미 능히 노겸하다면 또 모름지기 군자가 그것을 행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곧 길하다. 대저 높음을 즐거워하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평상시에도 능히 겸손한 자는 진실로 이미 드문데, 하물며 존경받을 만한 공로가 있음에랴. 비록 겸손의 선함을 알아서 힘써 행하더라도 자랑하고 자부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항상하고 오래갈 수 없으니, 그 마침이 있고자 해도 얻지 못한다. 오직 군자만이 겸손하고 순한 것을 편안히 밟으니 이에 그 떳떳한 행실이 된다. 그러므로 오래되어도 변하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유종이다. 유종하면 길하다. 구삼은 강으로써 바름에 거하니 능히 마칠 수 있는 자이다. 이 효의 덕이 가장 성대하므로 상전의 말이 특별히 무겁다.
주자『주역본의』
卦唯一陽,居下之上,剛而得正,上下所歸。有功勞而能謙,尤人所難,故有終而吉。占者如是,則如其應矣。
괘에 오직 하나의 양이 하괘의 위에 거하고 강하며 정을 얻어 위아래가 귀의하는 바이다. 공로가 있으면서 능히 겸손한 것은 더욱 사람이 하기 어려운 바이므로 마침이 있어 길하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그 점과 같으리라.
제가(諸家)
쌍호 호씨(雙湖胡氏):
謙以九三一陽爻為成卦之主。文王彖辭,唯主九三一爻而言,不及其他。故周公爻辭不復易,但推原其勞而要其吉耳。
겸괘는 구삼 한 양효를 성괘의 주인으로 삼는다. 문왕의 괘사는 오직 구삼 한 효만을 주로 하여 말하고 나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공의 효사 또한 다시 바꾸지 않고, 단지 그 공로를 미루어 근본으로 삼고 그 길함을 요약했을 뿐이다.
운봉 호씨(雲峰胡氏):
文王卦辭曰謙亨,君子有終。周公於三之爻辭,以吉代亨字,謙之上加一勞字。葢謙非難,勞而能謙為難。九三之勞,當在上位,而位止於下,所謂勞而能謙者也。乾之三以君子稱,坤之三以有終言。謙之三,兼乾坤之占辭。葢所謂勞者,即乾之終日乾乾者是也;而謙則又坤之含章也。
문왕 괘사에는 ’겸형 군자유종’이라 했는데, 주공은 3효 효사에서 ‘형’ 자를 ‘길’ 자로 대신했고 ‘겸’ 위에 ‘노’ 자 하나를 더하였다. 대개 겸손한 것은 어렵지 않으나 공로가 있으면서 능히 겸손한 것이 어렵다. 구삼의 공로는 마땅히 윗자리에 있어야 하나 그 자리는 아래에 그치고 있으니 이른바 ’노이능겸’한 자이다. 건의 3효는 ’군자’라 칭했고 곤의 3효는 ’유종’이라 말했으니, 겸의 3효는 건과 곤의 점사를 겸한 것이다. 대개 ’노’라는 것은 곧 건의 ’종일토록 굳세고 굳센 것’이요, ’겸’은 또 곤의 ’아름다움을 머금은 것’이다.
구산 양씨(龜山楊氏):
夫六謙德也,而三則以九居之,何邪?曰:所以成天下之功者,非剛明之才不可也。今三以剛明之才,上為君所任,下為衆所倚信,勞而有功矣。然勞而不伐,有功而不德,此君子恭以存其位之道也。故獲有終之吉。
대저 육(음)은 겸손한 덕인데 3효는 구(양)로써 거하니 어째서인가? 답하기를, 천하의 공을 이루는 까닭은 강명한 재주가 아니면 불가하기 때문이다. 지금 3효는 강명한 재주로 위로는 임금에게 맡겨지고 아래로는 대중에게 의지와 신임을 받아 수고로워 공이 있다. 그러나 수고롭되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이것은 군자가 공손함으로써 그 지위를 보존하는 도이다. 그러므로 유종의 길함을 얻은 것이다.
동계 왕씨(童溪王氏):
舜之賢禹也,而曰「洚水儆予,成允成功,惟汝賢」,此服其勞也。又曰「汝惟不矜,天下莫與爭能;汝惟不伐,天下莫與爭功」,此服其勞而能謙也。
순임금이 우를 어질게 여겨 이르시길 “홍수가 나를 경계함에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루었으니 오직 네가 어질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그 공로에 탄복한 것이다. 또 이르시길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니 천하가 더불어 능함을 다투지 못하고, 네가 오직 공을 뽐내지 않으니 천하가 더불어 공을 다투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그 공로가 있으면서 능히 겸손함에 탄복한 것이다.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