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차오른 겸손은 소리가 난다
육이는 음효가 음자리에 있고 하괘의 가운데를 얻어 유순중정(柔順中正)한 자리다. 겸손의 덕이 마음속에 가득 쌓여, 감추려 해도 그 덕이 밖으로 배어 나온다. 그래서 효사는 겸손함이 울려 퍼진다는 뜻으로 명겸(鳴謙)이라 했고, 바르고 길하다(貞吉)고 맺었다.
정이천은 이를 안에서 밖으로 넘치는 덕으로 풀었다. 유순함으로 가운데에 거하니 겸손한 덕이 마음속에 쌓이고(積於中), 그 덕이 충만하므로 성음(聲音)과 안색(顔色)에 저절로 드러난다. 억지로 힘써 꾸민 것이 아니라 본래 스스로 지닌 것이기에, 조건 없이 바르고 길하다. 소상전의 중심득(中心得), 곧 마음속에서 얻었다는 말이 이 자리의 핵심이다.
주자와 운봉 호씨는 여기에 경계를 하나 덧붙인다. 스스로 자기 겸손을 울리는 것(自鳴其謙), 즉 나 겸손하다고 떠벌리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아첨에 가깝다. 진짜 겸손은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데도 은은히 소문이 나는 것이니, 이것이 들림이 있다(有聞)는 뜻이다. 초육은 너무 아래에 있어 아무도 몰라주었으나, 육이는 중(中)에 이르렀으므로 마땅히 들리게 된다.
삶에의 적용
내면이 비어 있을수록 소리를 크게 낸다. 자기를 낮춘다고 말로 광고하는 순간, 그 겸손은 이미 겸손이 아니다. 육이가 가르치는 것은 그 반대다. 안을 먼저 채워라. 호흡을 깊게 하고, 정성을 쌓고, 덕을 다지면, 굳이 알아달라 소리치지 않아도 말과 얼굴빛에 저절로 배어 나온다. 남이 안 알아준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속을 꽉 채우는 일에만 마음을 두라. 꽉 찬 종은 바람만 스쳐도 웅장한 소리를 낸다.
훈장님의 풀이 — 허곡 선생님의 주역 강의에서
"六二는 겸손한 덕이 가운데 쌓여(謙德充積) 저절로 소리·안색에 우러나 드러난다(鳴謙) — 억지로 광고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절로 얻은 거다(中心得). 같은 鳴謙이라도 上六은 겸손이 끝나가 비명 지르는 거니 다르다."
원문과 주석 — 효사·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효사
六二 鳴謙 貞吉
육이는 겸손함이 울려 퍼지니(명겸), 바르고 길하다.
소상전(象傳)
象曰:鳴謙貞吉,中心得也。
상전에 말하였다. 명겸하고 정길함은, 마음속에서 얻었기(중심득) 때문이다.
정이천『이천역전』
傳曰:二以柔順居中,是為謙徳積於中。謙徳充積於中,故發於外,見於聲音顔色,故曰鳴謙。
이효는 유순함으로 중(中)에 거하니, 이것은 겸손한 덕이 마음속에 쌓인 것이다. 겸덕이 충만하게 속에 쌓였으므로 밖으로 발하여 성음과 안색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명겸이라 하였다.
居中得正,有中正之德也,故云貞吉。凡貞吉,有為貞且吉者,有為得貞則吉者。六二之貞吉,所自有也。
중에 거하고 바름을 얻어 중정의 덕이 있으므로 정길이라 일렀다. 무릇 정길에는 바르고 또 길한 자가 있고 바름을 얻으면 곧 길해지는 자가 있는데, 육이의 정길은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傳:二之謙德,由至誠積於中,所以發於聲音,中心所自得也,非勉為之也。
(소상전 주) 이효의 겸손한 덕은 지극한 정성이 속에 쌓임으로 말미암아 성음에 발하는 바니, 마음속으로 스스로 터득한 것이요 억지로 한 것이 아니다.
주자『주역본의』및 어록
本義曰:柔順中正,以謙有聞,正而且吉者也。故其占如此。
유순하고 중정하여 겸손함으로써 들림(명성)이 있고, 바르고 또 길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다.
朱子曰:鳴謙在六二,又言貞者,言謙而有聞,須得其正則吉。葢六二以陰處陰,所以戒他要貞。謙而不貞,則近於邪佞。
육이에 명겸이 있는데 또 정(貞)을 말한 것은, 겸손하여 명성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그 바름을 얻어야 길함을 말한 것이다. 대개 육이는 음으로서 음자리에 처했으므로 바르게 해야 함을 경계한 것이니, 겸손하되 바르지 않으면 사악하고 아첨함에 가깝게 된다.
上六之鳴却不同。處謙之極而有聞,則失謙之意。葢謙本不要人知,况在人之上而有聞乎?此所以志未得。
상육의 명겸은 도리어 같지 않다. 겸손의 극단에 처하여 명성이 있으면 겸손의 뜻을 잃는 것이다. 대개 겸손은 본래 남이 알아주기를 요하지 않는데, 하물며 남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소문이 남에랴? 이것이 상육 상전에서 뜻을 얻지 못했다고 한 까닭이다.
제가(諸家)
동계 왕씨(童溪王氏)
童溪王氏曰:六二以謙德而居下之正位,則得其所欲矣。故發於聲音也。无非中心之誠然者,故曰鳴謙貞吉,而象以中心得也釋之。
육이는 겸덕으로써 아래의 정위에 거하였으니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음으로 발하는 것이니, 중심의 성실함이 그러한 자가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명겸정길이라 하였고, 상전에서 중심득으로 그것을 해석하였다.
운봉 호씨(雲峯胡氏)
雲峯胡氏曰:諸家釋鳴謙,多謂自鳴其謙。謙而以自鳴,非謙矣。
제가들이 명겸을 해석함에 다들 스스로 그 겸손함을 울린다고 이르는데, 겸손하면서 스스로 울린다면 겸손이 아니다.
或以為六二謙徳積於中,發見於聲音者,如此。本義以為六二柔順中正,以謙有聞。葢謂發於聲音,不若謙而有聲。有非可勉强為之者。要之,初六謙謙在下,而謙未必人皆聞之;至六二則宜聞之矣。
혹자는 육이의 겸덕이 속에 쌓여 성음에 발현되는 것이 이와 같다고 했다. 본의에서는 육이가 유순중정하여 겸손함으로써 들림이 있다고 여겼다. 대개 자기가 소리를 내는 것은 겸손하여 명성이 있는 것만 못함을 이른 것이니, 억지로 힘써 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초육의 겸겸은 아래에 있어 그 겸손함을 사람들이 다 듣지는 못하나, 육이에 이르면 마땅히 들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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