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水師 · 64괘 사전

육사(六四) — 師左次

師左次,无咎。
물러나 전력을 보존하려는 의지사효, 음유가 음위에 거함 (득정)호응하는 짝이 없음 (독자적 판단)후퇴/보존

육사는 음(유약함)이 음의 자리에 있어 제자리를 얻었으나(득정), 재주가 부드러워 앞의 적을 이길 힘이 없다. 위로 바르게 응하는 짝도 없다. 이런 자리에서 무리하게 나아가면 바로 아래 육삼처럼 시체를 싣고 돌아오는 참패를 부른다. 육사는 다르다. 자기 힘의 한계를 정확히 읽고, 이길 수 없음을 알자 왼쪽으로 물러나 진을 친다(사좌차). 옛 병법에서 오른쪽은 나아가 치는 자리, 왼쪽은 물러나 지키는 자리였으니, ’좌차(左次)’란 곧 전력을 온전히 보전하며 뒤로 물러나 진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경문은 여기에 ‘무구’, 허물이 없다고 못박는다.

소상전은 이를 ‘미실상(未失常)’, 떳떳함을 잃지 않았다고 풀었다. 정이천은 나아감과 물러남의 마땅함을 헤아리는 것이 병법의 상식이라 하며 “가함을 보면 나아가고, 어려움을 알면 물러난다(견가이진 지난이퇴)“고 했다. 핵심은 재능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물러남이 때에 맞았느냐다. 이길 수 없음을 알고도 밀어붙여 전군을 잃는 것보다, 온전히 보전하여 물러나는 것(완사)이 훨씬 낫다. 다만 정이천은 반대편의 경계도 남긴다. 나아갈 수 있는데 물러났다면 그것은 도리어 허물이 된다고. 물러남이 미덕이 되는 것은 오직 ’지금은 아니다’라는 판단이 정확할 때뿐이다.

운봉 호씨는 뭇사람이 물러남을 겁쟁이로 여기기에, 마땅히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도 군대의 떳떳함임을 밝힌 것이라 했다. 성재 양씨는 우왕이 군대를 돌린 일과 진 문공이 초나라를 피해 삼사(三舍)를 물린 일을 들며, 한 고조가 백등산에서 포위되고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꺾인 것을 두고 “무리하게 들어가지 않았다면 무슨 허물이 있었겠는가”라고 물었다. 물러남은 패배가 아니라 다음 승리의 조건이다.

오늘 벽에 부딪혔다면, 물러섬을 곧 실패로 여기는 마음부터 내려놓으라. 승산 없는 싸움에 자존심으로 몸을 던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육삼의 만용이다. 진짜 용기는 자기 힘의 한계를 정직하게 재고, ‘이번은 아니다’ 싶을 때 대형을 흩뜨리지 않고 물러나 힘을 지키는 데 있다. 몸을 닦는 자리에서도 같다. 지치고 부상의 기미가 있을 때 억지로 밀어붙이는 훈련은 하루의 성취를 얻고 한 달의 회복을 잃는다. 그러나 물러날 때에도 중심과 시선은 살아 있어야 한다. 뒤로 가면서 자세가 무너지면 그것은 패주요, 자세를 지키며 물러나면 그것은 유리한 자리로의 이동이다. 멈춤이 아니라 회복이며, 도망이 아니라 온전함을 지키는 일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역대 풀이

경문과 소상전

六四:師左次,无咎。 象曰:左次无咎,未失常也。

육사는 군대가 왼쪽으로 물러나 진을 치니(사좌차), 허물이 없다(무구). 소상전에 말하였다. ’좌차무구’는 떳떳함(병법의 상식)을 잃지 않은 것이다(미실상).

정이천 『이천역전』

師之進,以強勇也。四以柔居隂,非能進而克㨗者也。知不能進而退,故左次。左次,退舍也。量宜進退,乃所當也,故无咎。見可而進,知難而退,師之常也。唯取其退之得宜,不論其才之能否也。度不能勝而完師以退,愈於覆敗逺矣。可進而退,乃為咎也。易之發此義以示後世,其仁深矣。

군대의 나아감은 강하고 용맹함에 있는데, 4효는 유(柔)로서 음자리에 거하니 능히 나아가서 승첩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능히 나아갈 수 없음을 알고 물러나므로 ’좌차(左次)’라 했다. 좌차는 ’퇴사(退舍, 군대를 물림)’이다. 마땅함을 헤아려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곧 마땅히 해야 할 바이므로 허물이 없다. 가함을 보면 나아가고(견가이진), 어려움을 알면 물러나는 것(지난이퇴)이 병법의 떳떳함(사지상)이다. 오직 그 물러남이 마땅함을 얻은 것을 취했을 뿐이지, 그 재능의 능하고 능하지 않음을 논한 것이 아니다. 이길 수 없음을 헤아려 군대를 온전히 하여 물러남(완사이퇴)이 전복되어 패하는 것(복패)보다 훨씬 낫다. 나아갈 수 있는데 물러났다면 곧 허물이 된다. 역(易)이 이 뜻을 발명하여 후세에 보였으니 그 어짊(仁)이 깊도다.

주자 『주역본의』

左次,謂退舍也。隂柔不中,而居隂得正,故其象如此。全師以退,賢於六三逺矣。故其占如此。

좌차는 군대를 물려 멈추는 것을 이른다. 음유하고 중(中)은 아니나 음자리에 거하여 바름(正)을 얻었으므로 그 상이 이와 같다. 군대를 온전히 하여 물러나는 것(전사이퇴)이 육삼(시체를 싣고 옴)보다 훨씬 현명하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다.

象曰:知難而退,師之常也。(一作進)

(소상전 해설)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는 것이 군대의 떳떳함이다. (주: 어떤 판본에는 ’진(進)’으로 되어 있다.)

제가 — 임천 오씨(臨川吳氏)

春秋師次于郎、次于召陵。左氏傳曰:「凡師三宿為次。」按兵家尚右,右為前,左為後。故八陣圖天前衝地前衝在右,天後衝地後衝在左。左次猶言退舎,謂不進前而退後也。

춘추에 ’군대가 낭(郎)에 차(次)하고 소릉(召陵)에 차했다’고 했다. 좌씨전에 이르길 ’무릇 군대가 3일을 묵는 것을 차(次)라 한다’고 했다. 상고하건대 병가에서는 오른쪽(右)을 숭상하여 오른쪽을 ’앞(前)’으로 삼고 왼쪽(左)을 ’뒤(後)’로 삼는다. 그러므로 팔진도에 천·지의 전충(前衝)은 오른쪽에 있고 천·지의 후충(後衝)은 왼쪽에 있다. ’좌차’는 ’퇴사(군대를 물림)’라는 말과 같으니,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남을 이른다.

제가 — 성재 양씨(誠齋楊氏)

善戰者不必進,而退亦進也。禹之班師,晉文之退舎,是已。使髙帝不至白登,太宗不渡鴨綠,咎於何有?(一无必字)

싸움을 잘하는 자는 반드시 나아가는 것만이 아니니, 물러남 또한 나아감이다. 우왕이 군대를 돌린 것(반사)과 진 문공이 (초나라 군대를 피해) 물러난 것(퇴사)이 이것이다. 가령 한 고조(髙帝)가 백등산에 이르지 않았고, 당 태종이 압록강을 건너지 않았다면 무슨 허물이 있었겠는가? (주: 어떤 판본에는 ’필(必)’자가 없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衆人以退為怯,故明當退而退,亦師之常也。

뭇사람은 물러나는 것을 겁쟁이로 여긴다. 그러므로 마땅히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는 것 또한 군대의 떳떳함(常)임을 밝힌 것이다.

이 효가 動하면雷水解(40번 괘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