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 재주를 머금는 자리
육삼은 하괘(下卦)의 맨 위에 있다. 재능과 지위가 비로소 남의 눈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자리이지만, 음(陰)의 부드러움이 양(陽)의 굳센 자리에 앉아 있어 아직 스스로 주인이 될 처지는 못 된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그 재주를 함부로 내보이면 반드시 시기를 부른다. 그래서 이 효는 함장(含章), 곧 빛나는 문채를 입안에 머금듯 안으로 갈무리하라고 말한다. 없는 척 숨기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아껴 두라는 것이다.
’혹종왕사 무성유종(或從王事,无成有終)’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윗사람의 일을 도와 힘써 마무리하되 ‘이것은 내 공이다’ 하고 자처하지 않는다. 공은 위로 돌리고, 마무리는 묵묵히 자기 손으로 짓는다. 소상전은 이를 두 마디로 풀었다. 함장가정은 ’때에 맞게 발휘하는 것(以時發也)’이니, 끝까지 감추기만 하는 소극이 아니라 마땅히 나설 때를 아는 적극이다. 혹종왕사는 ’지혜가 빛나고 큰 것(知光大也)’이니, 공을 감추고도 흔들리지 않는 넉넉함이 실은 큰 그릇에서 나온다.
정이천은 얕고 어두운 사람일수록 선(善)이 조금만 있어도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조바심을 낸다고 했다. 동래 여씨는 이를 병(甁)에 빗댔다. 병이 작으면 물이 조금만 차도 넘치지만, 병이 크면 애써 누르지 않아도 저절로 넘치지 않는다. 재능을 감추는 힘은 억누름에서 오지 않는다. 자기 앎이 넉넉히 커진 자리에서 저절로 나온다. 그러므로 함장은 재주를 죽이는 겸양이 아니라, 그릇을 키운 사람만이 지니는 여유다.
삶에의 적용
몸의 언어로 옮기면 함장은 함흉발배(含胸拔背), 곧 가슴을 살짝 오므려 기운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자세다. 힘을 밖으로 뻣대면 상대에게 의도가 읽히고 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안으로 머금은 힘은 결정적인 순간에야 비로소 발휘된다(以時發). 일상도 다르지 않다. 회의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쏟아내기보다 끝까지 듣고 판을 읽는 것, 잘한 일을 굳이 내 이름으로 새기려 들지 않는 것 — 그 절제가 곧 수양이다. 오늘 하루, 재주가 근질거려도 한 박자 머금어 두는 연습을 해 보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익히는 것이다.
통찰
공을 감추는 일은 자신을 억누르는 고행이 아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조금만 잘해도 입이 근질거려 견디지 못하고, 그릇이 큰 사람은 감추고도 태연하다. 그러니 함장이 잘 되지 않거든 더 세게 눌러 참으려 애쓸 일이 아니라, 자기 그릇을 넓히는 공부로 돌아갈 일이다. 공은 위로 돌리고 마무리는 내 손으로 짓는 이 ’위대한 2인자’의 길은, 물러섬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단단한 자기 신뢰 위에서만 걸을 수 있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정이천·주자·제가
경문과 소상전
六三:含章可貞。或從王事,无成有終。 육삼은 빛나는 문채를 머금어 바르게 함이 가하다. 혹 왕의 일에 종사하여, 이룸은 없으나(자기 공이라 하지 않음) 마침은 있다.
象曰:含章可貞,以時發也。或從王事,知光大也。 상전에 말하였다. ’함장가정’은 때에 맞게 발휘하는 것이요, ’혹종왕사’는 지혜가 빛나고 큰 것이다.
정이천 『이천역전』
三居下之上,得位者也。為臣之道,當含晦其章美,有善則歸之於君,乃可常而得正。上无忌惡之心,下得柔順之道也。可貞,謂可貞固守之,又可以常久而无悔咎也。或從上之事,不敢當其成功,唯奉事以守其終耳。守軄以終其事,臣之道也。 3효는 아래의 위에 거하여 자리를 얻은 자이다. 신하된 도리는 마땅히 그 아름다운 문채를 머금고 감추어, 선(善)이 있으면 임금에게 돌려야 하니, 이에 떳떳하여 바름을 얻는다. 그리하면 위에서는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고, 아래로는 유순한 도를 얻는다. ’가정(可貞)’은 정고하게 지킴을 이르고, 또 항상 오래하여 후회나 허물이 없을 수 있음을 말한다. 혹 윗사람의 일을 따름에 감히 그 성공을 자처하지 않고, 오직 일을 받들어 그 마침을 지킬 뿐이다. 직분을 지키고 그 일을 마치는 것이 신하의 도이다.
夫子懼人之守文而不達義也,又從而明之。言為臣處下之道,不當有其功善,必含晦其美,乃正而可常。然義所當為者,則以時而發,不有其功耳。不失其宜,乃以時也。非含藏終不為也,含而不為,不盡忠者也。或從王事而能无成有終者,是其知之光大也。唯其知之光大,故能含晦。淺暗之人,有善唯恐人之不知,豈能含章也? 공자께서 사람들이 글만 지키고 뜻을 통달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다시 밝히셨다. 신하가 되어 아래에 처하는 도는 마땅히 그 공과 선을 소유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 아름다움을 머금고 감추어야 바르고 떳떳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의(義)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은 곧 때에 따라 발휘하고 그 공을 소유하지 않을 뿐이다. 그 마땅함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때(時)’이다. 무조건 머금고 감춰 끝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 머금고 하지 않음은 충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혹 왕의 일을 따라 능히 ’무성유종’하는 것은 그 지혜가 빛나고 큼이다. 오직 그 지혜가 빛나고 크기에 능히 머금고 감출 수 있다. 얕고 어두운 사람은 선이 있으면 오직 남이 알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어찌 함장할 수 있겠는가?
주자 『주역본의』·『주자어류』
六,陰;三,陽。內含章美,可貞以守。然居下之上,不終含藏,故或時出而從上之事。則始雖无成,而後必有終。爻有此象,故戒占者有此德則如此占也。 육(6)은 음이요 삼(3)은 양이다. 안으로 문채의 아름다움을 머금어 바르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하체의 위에 거하니 끝까지 머금고 감출 수만은 없으므로, 혹 때로 나아가 윗사람의 일을 좇는다. 곧 시작은 이룸이 없으나 나중에는 반드시 마침이 있다. 효에 이런 상이 있으므로 점치는 자가 이런 덕이 있으면 이와 같이 점치라고 경계한 것이다.
六三陰居陽位,本是陰帶些陽,故為含章之象。又貞以守則為陰象矣。或從王事者,以居下卦之上,不終含藏,故有或時出從王事之象。无成有終者,在人臣用之,則為不居其成而能有終之象;在占者用之,則為始雖无成而能有終也。此亦占意已見於象中者。 육삼은 음으로서 양의 자리에 거하니, 본래 음인데 약간의 양을 띠므로 함장의 상이 된다. 또 바르게 지킴(貞)은 음의 상이다. ’혹 왕의 일을 따른다’는 하괘의 위에 거하여 끝까지 감출 수 없으므로 때로 나가 왕의 일을 따르는 상이다. ’무성유종’은 신하가 쓰면 그 이룸에 거하지 않으면서 능히 유종의 미를 거두는 상이 되고, 점치는 자가 쓰면 시작은 이룸이 없으나 능히 마침이 있는 것이 된다. 이 또한 점의 뜻이 이미 상(象) 가운데 나타난 것이다.
제가(諸家)
운봉 호씨(雲峰胡氏)
陽主進,陰主退。乾九三陽居陽,故曰乾乾,其德主乎進也;坤六四陰居陰,故曰括囊,其位主乎退也。乾九四陽居陰,坤六三陰居陽,故皆曰或,進退未定之際也。特其退也,曰在淵、曰含章;唯進則皆曰或。聖人不欲人之急於進也如此。三多凶,故聖人首於乾坤之第三爻,其辭又獨詳焉。 양은 나아감을 주관하고 음은 물러남을 주관한다. 건 구삼은 양이 양자리에 있어 ’건건’이라 했으니 그 덕이 나아감을 위주로 하고, 곤 육사는 음이 음자리에 있어 ’괄낭’이라 했으니 그 지위가 물러남을 위주로 한다. 건 구사(양거음)와 곤 육삼(음거양)은 음양이 섞여 모두 ’혹(或)’이라 했으니 진퇴가 정해지지 않은 즈음이다. 특히 물러남에서는 ’재연(在淵)’과 ’함장(含章)’이라 했고, 나아감에서만 모두 ’혹’이라 했다. 성인이 사람들이 나아감에 급급하지 않게 하려 함이 이와 같다. 3효는 흉함이 많으므로, 성인이 건·곤의 세 번째 효를 앞세워 그 말을 유독 상세히 하셨다.
小象於三言知,於二言義。仁禮之性健,義知之性順。君子於坤,法其柔順之貞而已。 소상(小象)에서 (건) 구삼은 ’안다(知)’고 말하고, (곤) 육이는 ’의(義)’를 말했다. 인·예의 성품은 굳세고, 의·지(智)의 성품은 순하다. 군자는 곤에서 그 유순한 정(貞)을 본받을 뿐이다.
진재 서씨(進齋徐氏)
或者,不敢自决之辭;從者,不敢造始之意。成謂專成,无成謂以陰承陽,但當盡臣道,不可有所專成也。有終,陰之事也。陽不足於後,代其終者陰也。三下卦之終,故亦以終言。 ’혹(或)’은 감히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는 말이요, ’종(從)’은 감히 처음을 짓지 못하는 뜻이다. ’성(成)’은 오로지 이룸(專成)을 이르는데, ’무성(无成)’은 음으로서 양을 받드니 단지 신하의 도를 다할 뿐 오로지 이루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됨을 이른다. ’유종(有終)’은 음의 일이다. 양은 뒤(後)에 부족하니 그 끝을 대신하는 것이 음이다. 3효는 하괘의 끝이므로 또한 ’종(終)’으로 말한 것이다.
동래 여씨(東萊呂氏)
大凡人出來做事,多被人疑忌,只為預先多露圭角,不能含章。惟含章然後可以時發,初不是兩件事。 대개 사람이 나와 일을 함에 남에게 의심과 시기를 받는 것은, 미리부터 모난 뿔(圭角)을 많이 드러내어 능히 함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함장한 연후에야 때에 맞게 발휘할 수 있으니, 애초에 두 가지 일(숨는 것과 일하는 것)이 아니다.
傳云「惟其知之光大,故能含晦」,此極有意味。尋常人欲含晦者,多只去鋤治驕矜,深匿名迹。然逾鋤逾生,逾匿逾露者,葢不曾去根本上理㑹。自已知未光大,胸中淺狹,纔有一功一善,便无安著處,雖强欲抑遏,終制不住。譬如瓶小水多,雖抑遏固閉,終必泛溢;若瓶大則水自不泛溢,都不須閑費力。 역전에 ’오직 그 지혜가 빛나고 크기에 능히 머금고 감출 수 있다’고 했으니, 지극한 의미가 있다. 보통 사람이 감추려는 자는 대개 교만과 긍지를 김매듯 다스리고 이름과 자취를 깊이 숨기려고만 한다. 그러나 더 김맬수록 더 생겨나고 더 숨길수록 더 드러나는 것은 근본에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자기 앎이 아직 빛나고 크지 못해 흉중이 얕고 좁으면, 겨우 하나의 공과 선이 있어도 편안히 둘 곳이 없어 억지로 눌러도 끝내 제어하지 못한다. 비유컨대 병은 작은데 물이 많으면 굳게 닫아도 끝내 넘쳐흐르고, 병이 크면 물이 저절로 넘치지 않으니 조금도 힘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한상 주씨(漢上朱氏)
含章者,坤之静也;以時發者,坤之動也。 ’함장’은 곤의 고요함(靜)이요, ’이시발(때로써 발휘함)’은 곤의 움직임(動)이다.
왕대보(王氏大寳)
剛柔相雜曰文,文之成者曰章。剛動而柔縕之,含章也。 강과 유가 서로 섞인 것을 문(文)이라 하고, 문(文)이 이루어진 것을 장(章)이라 한다. 강(剛)이 움직이는데 유(柔)가 그것을 감싸는 것, 이것이 함장이다.
출전: 정이천 『이천역전』, 주자 『주역본의』·『주자어류』, 운봉 호씨·진재 서씨·동래 여씨·한상 주씨·왕대보는 『주역전의대전』소인(所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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