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육이는 곤괘 전체에서 가장 온전한 자리다. 음(陰)이 음의 자리에 있어 바르고(得正), 하괘의 한가운데 있어 중을 얻었다(得中).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가운데 자리에서 곤의 덕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난다. 건괘의 대장이 하늘 높이 오른 구오라면, 곤괘의 대장은 낮은 땅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육이다. 땅은 낮게 엎드려 있을 때 편안하고, 육이는 바로 그 낮음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효사는 그 덕을 세 글자로 압축한다. 直, 곧음. 方, 반듯함. 大, 큼. 정이천은 직을 마음의 바름(正)으로, 방을 행동의 의로움(義)으로 풀었다. 경(敬)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 밖을 반듯하게 하니(敬以直內, 義以方外), 안이 곧고 밖이 반듯해지면 그 덕은 억지로 키우지 않아도 저절로 커진다. 주자는 더 구체적으로 읽었다. 만물을 낳되 비뚤어지지 않음이 직이요, 땅에 결과 모서리가 있어 분수가 분명함이 방이요, 무엇이든 실어 주어 싣지 않음이 없음이 대라고. 곧음과 반듯함이 먼저이고, 큼은 그 두 가지에서 저절로 자라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이 不習无不利,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이다. 여기서 익히지 않음(不習)은 배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곧음과 반듯함이 몸에 완전히 배어 더는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치에 맞는 경지, 애쓰지 않아도 하는 일마다 어긋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소상전은 이를 地道光, 땅의 도가 빛난다고 했다. 땅이 만물을 기르는 데 따로 애쓰는 법이 없듯, 안이 여문 사람은 꾸미지 않아도 그 덕이 저절로 밖으로 빛난다.
오늘, 이 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 효가 가르치는 수양은 안과 밖을 함께 세우는 일이다. 안으로는 마음을 곧게 지키고(直), 밖으로는 행동을 반듯하게 하는 것(方). 이 둘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다. 마음이 곧으면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자세가 반듯하면 마음도 따라 곧아진다. 몸으로 옮기면 척추를 곧게 세워 중심을 잡고, 어느 쪽에서 밀려도 무너지지 않는 자리를 매일 다지는 일이다. 그렇게 곧음과 반듯함이 반복을 통해 몸에 배면, 정작 일을 만났을 때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바르게 움직인다. 그것이 오늘 내가 겨눌 불습(不習)의 자리다. 지금 조급하게 성과를 알리려 애쓸 것이 아니라, 안에 여물어야 할 것이 충분히 여물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통찰
곧음과 반듯함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매일의 자리 지킴에서 온다. 땅이 소리 없이 만물을 싣듯, 안이 여문 사람은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 덕이 저절로 빛난다. 오늘 하루, 애써 잘 보이려 하기보다 바른 자리 하나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원문과 주석 — 육이(六二) 直,方,大
경문·소상전
六二:直,方,大,不習无不利。 육이는 곧고(直), 방정하고(方), 크니(大),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六二之動,直以方也。不習无不利,地道光也。 상전에 말하였다. ’육이의 움직임(動)’은 곧고 또한 방정함이요,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은 땅의 도가 빛나는 것이다.
정이천『이천역전』
二,陰位之長,居下卦之中,得坤道之正者也。主利也,故六二之德,直、方、大。直,言其正也;方,言其義也。君子主敬以直其内,守義以方其外。敬立而義形,直且方矣,即大德也。在坤道,則莫之為而為,由其道而无所不至,自然之理也。故不假純習而无不利。 2효는 음위(陰位)의 어른이요, 하괘의 가운데에 거하여 곤도(坤道)의 바름을 얻은 자이다. 육이의 덕은 직·방·대이다. ’직’은 그 바름(正)을 말함이요, ’방’은 그 의(義)를 말함이다. 군자가 경(敬)을 위주로 하여 그 안을 곧게 하고(敬以直內), 의(義)를 지켜서 그 밖을 방정하게 한다(義以方外). 경이 서고 의가 드러나면 곧고 또 방정해지니 곧 큰 덕(大德)이다. 곤도에 있어서는 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니, 그 도를 말미암으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자연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익히고 배우기를 빌리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直方大,孟子所謂至大至剛以直也。在坤體,故以方易剛,猶貞加牝馬也。… 直方大,足以盡地道,在人識之耳。… 二坤之主,故不取五應,不以君道處五也。 직·방·대는 맹자가 이른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며 곧다(至大至剛以直)’는 것이다. 곤체에 있기 때문에 ’강(剛)’을 ’방(方)’으로 바꾸었으니, ‘정(貞)’ 위에 ’빈마(암말)’를 더한 것과 같다. 직·방·대는 족히 지도를 다한 것이니 사람이 그것을 알 따름이다. 2효는 곤의 주인이므로 5효와 응함을 취하지 않으니, 군도(君道)로써 5에 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程子曰:至大至剛以直,此三者不可缺一,缺一便不是浩然之氣。… 但坤卦不可言剛,言剛則害坤體。然孔子於文言又曰「坤至柔而動也剛」,方即剛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지대지강이직’ 이 세 가지는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니, 하나라도 빠지면 호연지기가 아니다. 다만 곤괘에서는 ’강(剛)’이라 말할 수 없으니, 강이라 말하면 곤의 체를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문언전에서 또 ’곤은 지극히 유순하되 움직임은 강하다’고 하였으니, 방(方)이 곧 강(剛)이다.”
又曰:坤六二直方大,不習无不利。… 於坤不言剛而言方者,言剛則害於地道,故下復云「至柔而動也剛」。… 大只是對小而言是大也,剛只是對柔而言是剛也,直只是對曲而言是直也。如此自然不習无不利。坤之六二,只為已是地道,又是二又是六,地道之精純者。 또 말하였다. “곤에서 강이라 말하지 않고 방이라 말한 것은 지도를 해칠까 봐서이니, 아래에서 다시 ’지극히 유순하되 움직임은 강하다’고 하였다. 대(大)는 소(小)에 대해 대라 한 것이고, 강(剛)은 유(柔)에 대해 강이라 한 것이며, 직(直)은 곡(曲)에 대해 직이라 한 것이다. 이와 같으면 자연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곤의 육이는 이미 지도가 되었고 또 2(중)이고 6(정)이라 지도(地道)의 정밀하고 순수한 자이다.”
주자『주역본의』
柔順中正,坤之本也。方,謂生物有常。… 直方大,形容其德也。生物不邪曰直,地勢有稜曰方,無不載曰大。又,直者,言其氣之正;方者,言其形之定;大者,言其性之廣。此三者,皆地之德也。不習无不利,言其自然也。 육이는 유순하고 중정하니 진실로 곤의 본체이다. ’직·방·대’는 그 덕을 형용한다. 만물을 낳음이 사특하지 않음을 ’직(直)’이라 하고, 지세가 모서리(구분)가 있음을 ’방(方)’이라 하고, 싣지 않음이 없음을 ’대(大)’라 한다. 또 ’직’은 그 기(氣)의 바름을, ’방’은 그 형(形)의 정해짐을, ’대’는 그 성(性)의 넓음을 말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땅의 덕이다. ’불습무불리’는 그 자연스러움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坤卦中惟這一爻最純粹。… 惟此爻得中正,所以就這說箇直方大。此是說坤卦之本體。然而本意卻是教人知道這爻有這箇德,不待習學而无不利。… 郤不是要發明坤道。伊川有這箇病,從頭到尾皆然。 주자가 말하였다. “곤괘 중에서 오직 이 한 효가 가장 순수하다. 5효는 존귀한 자리나 양의 자리(5위)에 음이 와 체를 깨뜨렸고, 4효는 중음이라 중이 아니며, 3효는 부정한데, 오직 이 효만이 중정을 얻었으므로 여기에 나아가 ’직방대’를 말한 것이다. 이는 곤괘의 본체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본뜻은 도리어 사람들에게 ’이 효에 이러한 덕이 있어 배우고 익힘을 기다리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지, 곤도를 발명하려 한 것이 아니다. 이천에게 이런 병통이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러하다.”
問:不習无不利?曰:坤是純陰,一卦諸爻皆不中正。… 唯六二居中得正,為坤之最盛者。故以象言之,則有是三者之德,而不習无不利。占者得之,有是則吉。 (문) “불습무불리란 무엇입니까?” (답) “곤은 순음(純陰)이라 한 괘의 여러 효가 다 중정하지 않다. 오직 육이만이 가운데 거하여 바름을 얻어 곤의 가장 성한 자이다. 그러므로 상(象)으로 말하면 이 세 가지 덕이 있어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점치는 자가 이를 얻어 이 덕이 있으면 길하다.”
제가(諸家) — 후재 풍씨
厚齊馮氏曰:乾六爻莫盛於五,坤六爻莫盛於二,何也?中而且正,乾尊坤卑,各盡其道也。 후재 풍씨가 말하였다. “건의 6효는 5효보다 성한 것이 없고, 곤의 6효는 2효보다 성한 것이 없으니 어째서인가? 중(中)하고 또 바르기(正) 때문이다. 건은 높고 곤은 낮으니 각기 그 도를 다한 것이다.”
제가(諸家) — 운봉 호씨
雲峰胡氏曰:… 唯六二柔順而中正,得坤道之純者也。正則内直,中則外方。直則生物不可屈撓,方則賦形不可移易。内直外方,其德自然盛大,不待習熟而无不利。占者如之,則自然无不利也。 운봉 호씨가 말하였다. “초·3·5효는 유순하나 바르지 않고, 4·상효는 유순하나 중이 아닌데, 오직 육이만이 유순하고 중정하여 곤도의 순수함을 얻은 자이다. 바르면(正) 안이 곧고(直), 중(中)하면 밖이 방정하다(方). 곧으면 만물을 낳음에 굽히거나 꺾이지 않고, 방정하면 형체를 부여함에 옮기거나 바꾸지 않는다. 안이 곧고 밖이 방정하니 그 덕이 자연히 성대하여, 익숙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자연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제가(諸家) — 쌍호 호씨
雙湖胡氏曰:六二之動,直以方也。欲知其直方,當於動處觀之。地之生物也,藏於中者畢達於外而无所囘隱,此可以見其直;其成物也,洪纎高下、飛潛動植,隨物賦形而各有定分,此可以見其方。… 地道之光,自然而然。人之徳能如地道之内直外方而又盛大,則豈待學習而後利哉? 쌍호 호씨가 말하였다. “육이의 움직임은 직(直)하고 방(方)하다. 그 직·방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움직이는 곳에서 관찰해야 한다. 땅이 만물을 낳음에, 속에 감춘 것을 다 밖으로 통달하게 하여 조금도 굽히거나 숨김이 없으니 이로써 그 곧음(直)을 볼 수 있다. 그 만물을 이룸에, 크고 작고 높고 낮고 날고 잠기고 움직이고 심겨진 것들에게 사물에 따라 형체를 부여하여 각기 정해진 분수가 있게 하니, 이로써 그 방정함(方)을 볼 수 있다. 지도(地道)의 빛남은 자연히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덕이 능히 땅의 도처럼 안이 곧고 밖이 방정하며 또 성대하다면, 어찌 학습을 기다린 뒤에야 이롭겠는가?”
태극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