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地坤 · 64괘 사전

초육(初六) — 履霜堅冰至

履霜,堅冰至。
미세한 조짐을 살펴 미리 경계하려는 마음초효, 음유가 아래에 거함 (시작/미천)사효와 정응 관계대기/잠복

풀이

곤괘 여섯 효 가운데 가장 아래, 초육은 음(陰)의 기운이 이제 막 생겨나는 자리다. 경문은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履霜堅冰至)“고 한다. 이것은 겁을 주는 말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눈을 길러 주는 말이다. 발밑에 서리가 밟히는 순간 이미 겨울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 조짐이 미약할 때 그 끝을 읽어 내는 것, 이것이 초육이 가르치는 선견(先見)이며 방미두점(防微杜漸), 곧 싹이 자라기 전에 미리 막는 지혜다.

정이천은 음이 아래에서 처음 생겨날 때 그것이 “지극히 미미하다(至微)“고 했다. 그러나 미미하기에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소인이나 나쁜 기운은 처음에는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게 시작하지만, 그대로 두면 자라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성인이 굳이 이 처음의 자리에 경계의 말을 매단 까닭이 여기 있다. 문제가 커진 뒤에 손쓰는 것은 늦다. 서리일 때 알아채야 얼음을 면한다.

주자는 이 효에 유독 상세한 풀이를 붙였다. 그는 음양이 조화의 두 근본이어서 서로 없을 수 없지만, 사라지고 자라나는 즈음(消長)에는 성인이 언제나 “양을 돕고 음을 억누르는(扶陽抑陰)” 뜻을 담았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이 효에는 길흉의 점사를 달지 않았는데, 그것은 미미함을 삼가는(謹微) 뜻이 이미 상(象) 안에 충분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눈앞에 해가 보이지 않아도 아직 싹트지 않은 화가 있으니, 마땅히 경계하고 삼가라는 것이다.

삶에의 적용

서리는 재앙이 아니라 신호다. 몸이 먼저 안다. 뒷목이 뻣뻣하고 아침에 몸이 무거운 것, 자세의 아주 작은 어긋남, 마음에 슬며시 든 게으름 한 조각 — 이것들이 다 서리다. 대수롭지 않다고 넘기면 서리는 얼음이 되어 병과 무너짐으로 굳는다. 수련의 언어로 말하면, 기본기의 티끌만 한 흐트러짐을 그때그때 바로잡는 것이 곧 얼음을 막는 일이다. 오늘 하루, 몸과 마음이 보내는 가장 작은 신호 하나를 무시하지 말고 살펴보라. 조짐을 읽는 눈은 큰 지혜가 아니라, 작은 것을 얕보지 않는 성실함에서 자란다.

통찰

서리를 밟고도 얼음을 모르는 사람은 겨울에 당하고, 서리에서 얼음을 읽는 사람은 미리 겨울을 준비한다. 지혜란 멀리 있는 것을 보는 힘이 아니라, 발밑의 작은 것을 얕보지 않는 마음이다.

원문과 주석 — 경문·소상전과 옛 주석

경문·소상전

初六:履霜,堅冰至。 象曰:履霜堅冰,陰始凝也。馴致其道,至堅冰也。

초육은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 소상전에 이르기를, ’이상견빙’은 음이 비로소 엉기는 것이다. 그 도를 길들여 이루면(점차 따르면), 굳은 얼음에 이르게 된다.

정이천 『이천역전』

陰爻稱六,陰之盛也。八則陽生矣,非純盛也。陰始生於下,至微也。聖人於陰之始生,以其將長則為之戒。陰之始凝而為霜,履霜則當知陰漸盛而至堅氷矣。猶小人始雖甚微,不可使長,長則至於盛也。

음효를 ’6’이라 칭하는 것은 음이 성하기 때문이다. ’8’이면 양이 생겨나니 순수하게 성한 것이 아니다. 음이 아래에서 처음 생겨나니 지극히 미미하다. 성인이 음이 처음 생겨날 때, 장차 자라날 것이므로 경계하신 것이다. 음이 처음 엉기면 서리가 되니, 서리를 밟으면 마땅히 음이 점차 성해져서 굳은 얼음에 이를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소인이 처음에는 비록 심히 미미하나 자라게 해서는 안 되니, 자라나면 성한 데 이르는 것과 같다.

象傳曰:陰始凝而為霜,漸盛則至於堅氷。小人雖微,長則漸至於盛,故戒於初。「馴」謂習,習而至於盛。「習」,因循也。

(상전 해설) 음이 처음 엉기면 서리가 되고 점차 성해지면 굳은 얼음에 이른다. 소인이 비록 미미하나 자라나면 점차 성함에 이르므로 초기(初)에 경계한 것이다. ’순(馴)’은 ’익힘(習)’을 이르니, 익혀서 성한 데 이르는 것이다. ’습’은 인순(因循, 그대로 따름)하는 것이다.

주자 『주역본의』

六,陰爻之名。陰數六老而八少,故謂陰爻為六也。霜,陰氣所結。盛則水凍而為冰。此爻陰始生於下,其端甚微,而其勢必盛,故其象如履霜,則知堅冰之將至也。

’6’은 음효의 이름이다. 음수(陰數)는 6이 노(老)이고 8이 소(少)이므로 음효를 일러 6이라 한다. 서리는 음기가 맺힌 것이다. 성하면 물이 얼어 얼음이 된다. 이 효는 음이 아래에서 처음 생겨 그 단서가 심히 미미하나, 그 형세는 반드시 성대해지므로 그 상이 서리를 밟는 것과 같아서, 굳은 얼음이 장차 이를 것을 아는 것이다.

夫陰陽者,造化之本,不能相无,而消長有常,亦非人所能損益也。然陽主生,陰主殺;則其類有淑慝之分焉。故聖人作易,於其不能相无者,既以健順仁義之屬明之,而无所偏主;至其消長之際,淑慝之分,則未嘗不致其扶陽抑陰之意焉。葢所以贊化育而參天地者,其旨深矣。不言其占者,謹微之意,已可見於象中矣。

대저 음양은 조화(造化)의 근본이라 서로 없을 수 없고, 사라지고 자라남(消長)에 떳떳함이 있어 또한 사람이 덜거나 더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양은 생(生)을 주관하고 음은 살(殺, 죽임)을 주관하니, 곧 그 부류에는 맑고 선함(淑)과 사악함(慝)의 구분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을 지을 때, 서로 없을 수 없는 것(자연적 음양)에 대해서는 이미 건·순·인·의의 등속으로 밝혀 치우쳐 주장한 바가 없으나, 그 소장(消長)의 즈음과 숙덕(淑慝)의 구분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부양억음(扶陽抑陰, 양을 돕고 음을 억누름)의 뜻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대개 화육을 돕고 천지에 참여하는 그 뜻이 깊다. 그 점(占)을 말하지 않은 것은, 미미함을 삼가는(謹微) 뜻이 이미 상(象) 가운데 족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주자 어류(語類)

陰陽有以動静言者,有以善惡言者。如乾元資始,坤元資生,則獨陽不生,獨陰不成,造化周流,須是竝用。如履霜堅氷至,則一陰之生,便如一賊。這道理在人如何看。直看是一般道理,横看是一般道理。所以謂之易。

음양에는 동정(動靜)으로 말하는 것이 있고, 선악(善惡)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예컨대 ’건원자시, 곤원자생’은 독양(獨陽)으로는 낳지 못하고 독음(獨陰)으로는 이루지 못하니 조화가 두루 흐르려면 모름지기 아울러 써야 한다(대등한 관계). 그러나 ’이상견빙지’와 같은 것은 한 음(陰)이 생겨나는 것이 곧 한 명의 도적과 같으니(선악 관계), 이 도리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세로로 보면 일반 도리이고 가로로 봐도 일반 도리이니 그래서 ’역(易)’이라 이른다.

盈天地之間,所以為造化者,陰陽二氣之終始盛衰而已。陽生於北,長於東,而盛於南;陰始於南,中於西,而終於北。故陽常居左,而以生育長養為功,其類則為剛、為明、為公、為義,而凡君子之道屬焉;陰常居右,而以夷傷慘殺為事,其類則為柔、為暗、為私、為利,而凡小人之道屬焉。聖人作易,畫卦係辭,於其進退消長之際,所以示人者深矣。

천지 사이를 채워서 조화가 되는 까닭은 음양 두 기운의 종시와 성쇠일 뿐이다. 양은 북에서 생겨 동에서 자라 남에서 성하고, 음은 남에서 시작하여 서에서 가운데하고 북에서 마친다. 그러므로 양은 항상 왼쪽에 거하여 낳고 기르는 것을 공으로 삼으니 그 부류는 강함·밝음·공정함·의로움이 되어 무릇 군자의 도가 속하고, 음은 항상 오른쪽에 거하여 상하게 하고 참혹히 죽이는 것을 일로 삼으니 그 부류는 부드러움·어두움·사사로움·이로움이 되어 무릇 소인의 도가 속한다. 성인이 역을 지어 괘를 긋고 말을 매달 때, 그 나아가고 물러나며 사라지고 자라나는 즈음에 사람에게 보여주는 바가 깊다.

又曰:易中說到陽處,便扶助推移他;說到陰處,便抑遏壅絶他。○ 聖人作易,常以陽為君子而引翼扶持,惟恐其不盛;陰為小人而排擯抑黜,惟恐其不衰。

또 말하였다. 역 가운데 양을 말하는 곳에 이르면 곧 부조하여 밀어주고, 음을 말하는 곳에 이르면 곧 억누르고 막아서 끊는다. 성인은 항상 양을 군자로 여겨 이끌고 부축하여 오직 그 성하지 못할까 두려워했고, 음은 소인으로 여겨 배척하고 억눌러 내치며 오직 그 쇠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問:履霜堅氷,何以不著占象?曰:此自分曉。占者目前未見有害,却有未萌之禍,所宜戒謹。

(문) 이상견빙에서 점상(占象)을 뚜렷이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답) 이것은 스스로 분명하기 때문이다. 점치는 자가 눈앞에는 해가 보이지 않으나 아직 싹트지 않은(未萌) 화가 있으니, 마땅히 경계하고 삼가야 할 바이다.

제가 — 운봉 호씨(雲峰胡氏)

履,初象;霜,一陰象;堅氷,六陰象;至,危之之辭。本義於此爻特詳焉者,易,交易也,變易也。交易者,對待之陰陽。陽之性健,為仁禮;陰之性順,為義知。不能相无者也。變易者,流行之陰陽。消長之際,陽為生、為淑、為君子;隂為殺、為慝、為小人。聖人未嘗不致其扶陽抑陰之意。又曰:履霜而知堅氷之將至,羸豕而知蹢躑之有孚。姤之一陰,即坤之初陰也。其謹微之意可見矣。乾之陽主發見,潛龍則明其未見;坤之陰主隱伏,履霜則彰其巳至。君子進之難,而小人進之易也。

’리(履, 밟음)’는 초효의 상이요, ’상(霜)’은 1음의 상이요, ’견빙(堅冰)’은 6음의 상이다. ’지(至)’는 위태로워하는 말이다. 본의(주희)에서 이 효에 대해 특별히 상세하게 한 것은, 역이 교역(交易)이고 변역(變易)이기 때문이다. 교역은 대대(對待)하는 음양이니(공존), 양의 성질은 굳세어 인·예가 되고 음의 성질은 순하여 의·지가 되니 서로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변역은 유행(流行)하는 음양이니(변화), 소장의 즈음에 양은 생·선·군자가 되고 음은 살·악·소인이 되니, 성인이 일찍이 양을 돕고 음을 억누르는 뜻을 다하지 않음이 없다. 또 말하였다.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장차 이를 것을 알고, 여윈 돼지(천풍구 괘 1효)가 뛰노는 데 믿음이 있음을 안다’. 구괘(姤卦)의 1음이 곧 곤괘의 초음(初陰)이다. 그 미미함을 삼가는 뜻을 볼 수 있다. 건의 양은 발현(發見)을 위주로 하므로 ’잠룡’이라 하여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밝혔고, 곤의 음은 은복(隱伏)을 위주로 하므로(숨어 들어옴) ’이상(履霜)’이라 하여 이미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군자가 나아가기는 어려우나 소인이 나아가기는 쉽기 때문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소주)

제가 — 습정 유씨(習静劉氏)

坤初六在姤為五月,一陰始生,便有凝意。驗之井泉已寒。然去氷霜之時尚逺。聖人見微知著,謂所履者已凝之霜,馴致其道,則至堅氷矣。

곤괘 초육은 구괘(姤卦)에 있어서는 5월(하지)이 되니, 1음이 처음 생겨나면 문득 엉기는(凝) 뜻이 있다. 우물물이 이미 차가운 것으로 징험할 수 있다. 그러나 5월은 더운 때라 얼음과 서리의 때와는 아직 멀다. 성인이 미세한 것을 보고 드러날 것을 아니(見微知著), 밟고 있는 바가 이미 엉긴 서리라면 그 도를 따라가면 곧 굳은 얼음에 이른다고 한 것이다. (출전: 『주역전의대전』소주)

이 효가 動하면地雷復(24번 괘로 갑니다)